검은 캡을 푹 눌러쓴 여자는 무더운 날 검은색의 짚업 트레이닝복을 입고 길가 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가 한 손에 든 막대 아이스크림은 그녀의 입에 몇 번 들어가지 못하고 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녀는 신경질 적으로 아이스크림을 씹어 넣었다. 끈적끈적한 손을 아무렇게 나 돌 담에 문질렀다. 애꿎은 손에 먼지만 더 묻었다.

“이게… 이게! 다! 태호녀석 때문이야!”

편의점에서 돌아오던 그녀는 무더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큰 나무 공원의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

일의 시작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태호의 한마디였다.

“너? 너는 통통하지~”

“뭐? 뭐라고 했냐? 죽고 싶은 거지?”

“왜, 내가 틀린 말 했냐, 너 항상 옷 펑퍼짐하게 입잖아, 뱃살 가리려는 거 아냐? 아! 왜 때리고 그래!”

“닥쳐! 넌 더 맞아야 해!”

도망가던 태호는 뒤통수에 정확하게 들어 박힌 보온병에 자세를 잡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신주는 태호가 자빠지는 꼴은 보지도 않고 옷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가슴팍부터 배살까지 쭉 쓸어내리는 손이 두툼한 흉부를 타고 둥글게 내려가 배에 닿았다. 그녀는 살짝 잡히는 살집에 화들짝 놀라 얼른 상의를 잡아 내렸다. 17세의 몸이라곤 볼 수 없는 가슴은 자연스럽게 교복 가슴팍을 앞으로 밀어내 상의가 끌려 올라가 배가 보이게 만들었다. 때문에 신주는 항상 XL사이즈를 입고 다녔다. 165cm의 그녀에게는 큰 사이즈였지만 부푼 가슴에 옷이 들어 올라가도 뱃살이 보이는 일은 없었다.

아침 등교에 태호는 신주를 길가에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킨더 초콜렛을 까줬다.

“킨더 초콜렛? 웬일이야. 너 단거 잘 안먹잖아.”

“응, 돼지 키워. 억!”

‘돼’라는 단어부터 신주의 주먹은 이미 태호의 배를 향해 출발한 상태였다. 아침부터 태호를 흠씬 두들겨 팬 신주는 앞에 물고 있던 킨더 초콜렛를 쫙쫙 씹어 먹곤 태호가 떨어트린 초콜렛 상자를 주워들었다.

“내가 킨더 니까 봐줬다.”

“와, 보이냐? 나 발 절뚝거리는 거? 허벅지에 무릎을 찍어버리는데, 봐준거야?”

“엄살 부리지마, 다음엔 허쉬야.”

태호의 깝죽은 항상 손해만 남았다. 궁시렁거리며 어기적 걸어가는 태호 뒷모습은 신주에겐 익숙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녀에게 놓칠 수 없는 익숙함이었다.
***

태호가 초콜렛을 먹고 있었다. 본적 없이 큰 조각의 초콜렛, 살짝 반달 같이 생겼다.

“뭐야? 너 단 거 안 먹잖아?”

“응, 누가 선물이라고 책상에 넣어뒀더라구.”

“와~ 오태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와~ 나 인기쟁인가봐?”

“지랄, 좋냐?”

신주는 태호의 손에 들린 초콜렛을 자세히 봤다. 하트 모양이었다. 그 초콜렛 위를 태호의 혓바닥이 촵촵 지나갔다. 초콜렛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신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윽, 야 좀 깨끗하게 좀 먹어라.”

“뭐래, 나 초콜렛 안 좋아한다고. 이거 한 번에 씹어 먹으면 얼마나 느끼한 지 아냐?”

 “그런데, 왜 먹고 있어? 그냥 안 먹으면 되잖아?”

“어떻게 그러냐, 선물 받은 건데. 성의가 있지. 다는 못 먹어도 좀 먹어 봐야지.”

“어이가 없네, 왜 그런데에서 착한 건데?”

“나 원래 착한데?”

“눼눼 그러시게쪼”

어깨를 으쓱 거리는 태호를 향해 신주는 턱을 삐쭉 내밀었다. 태호는 시시덕대며 초콜렛을 빨아먹었다.

“맛있어?”

신주는 태호를 살폈다.

“음… 모르겠어. 난 초콜렛이랑은 잘 안 맞나봐. 달고 느끼하니까.”

“그래? 너한테 초콜렛 준 사람은 안타까워서 어떻게 해? 준 보람도 없겠네.”

“그러게, 이거 만든 거 같던데, 봐바, 여기 땅콩 뭉친 거 보이냐?”

“뭘 보여주고 그래, 먹기나 해.”

태호는 신주의 눈앞에 초콜렛의 단면을 보여줬다. 신주는 손사래를 치며 몸을 돌렸다.

“이거 만든 사람은 자기 취향을 잔뜩 넣었나봐. 땅콩이랑 초콜렛이라니 대박 느끼해.”

“…넌 어떤 맛이 좋은데?”

“나? 음…”

“응 응 그래도 단거 좋아하는 거 있을거 아냐?”

“난, 녹차 아이스크림이랑 양갱”

“녹차? 양갱?”

“응”

“늙었네 늙었어. 할아부지가 따로 없네.”

“흐흐흐흐흐 돼지 할멈 언제 죽어?”

“너 죽이고 죽어야지.”

신주는 태호를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태호는 신주의 주먹을 보곤 빙긋 웃곤 얼마 남지 않은 초콜렛을 입에 쏙 집어넣곤 으적 으적 씹어 먹었다. 태호는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손에 묻어 있던 초콜렛을 닦았다.

“야. 이신주.”

“응. 왱~”

“초콜렛 잘 먹었다.”

“응. 그래. 응?!”

이신주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오태호를 바라봤다. 오태호는 손가락을 닦은 물티슈로 책상을 닦고 있었다. 신주는 벌떡 일어나 태호에게서 주춤 주춤 떨어졌다. 신주는 순간 딸꾹질을 하곤 으익, 이익 같은 의성어를 냈다.

“나, 갈게.”

신주는 태호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려 후다닥 태호의 반에서 뛰쳐나왔다. 붉게 달아오른 양 볼을 쥐고 선 옆 반으로 들어섰다. 원래 신주가 있는 반이었다.

신주는 그날 태호같이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이 뒤숭숭했다. 태호는 어느 때와 같이 그녀의 반에 찾아왔지만, 그녀는 이미 일찍 돌아간 뒤였다. 신주는 그날 저녁에 태호의 페메도 읽지 않았다.

‘돼

돼지~ 할멈~ 뭐해~’

페이스북 메시지에 뜬 메시지에 읽음 표시도 뜨지 않고 반응하지 않자 태호의 메시지 작성도 도중에 멈추고 메시지 창은 조용해졌다. 신주는 PC에서 메시지 창을 켜서 태호의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엄지 손가락의 손톱 밑 살을 뜯었다. 태호에게 초콜렛을 준날은 금요일이었다. 공교롭게도 다음날은 주말이었고 일요일인 오늘까지 그녀는 태호를 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단게 당겼다. 하루 종일 집에서 죽치고 누워있었다. 금요일 밤엔 이불이라도 신나게 깠는데, 이제는 집 문 밖을 나가는 게 두려웠다. 태호의 집은 같은 아파트 동의 앞집이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나가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신주는 태호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태호가 자기를 어떻게 바라볼지, 아니 태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신주는 태호가 초콜렛을 열심히 까는 모습이 생각났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태호는 신주를 그냥 친구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신주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생각하기를 그만두려고 침대에서 흰곰이 그려진 바디 필로우를 붙잡고 뒹굴었다. 신주의 눈에는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신주는 일어났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나가야 겠어. 여기 있으면 자꾸 그 새끼 생각만 하잖아.”

신주는 떡진 머리를 틀어 올렸다. 늘어진 셔츠와 반바지만 입고 있던 그녀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검은 캡을 눌러썼다. 상의는 검은 짚업 후드를 입고 문을 열었다.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신주 네 문과 태호 네 문 사이에 엘리베이터 문 과 방화 문, 4개의 문 사이에는 당연하게도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의 내려가는 버튼을 누른 신주는 혹시나 몰라 발을 놀려 계단으로 내려갔다. 신주가 내려간 방화 무 뒤로 태호 네 문이 삐걱 열렸다.

뜨거운 날에 검은 옷을 입은 신주는 편의점으로 가는 길 중간에 큰 후회와 마주했다. 그녀는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이 아닌 한 블럭 떨어진 곳의 편의점을 가고 있었다. 아파트 편의점은 태호를 볼 가능성이 이었기에 그녀는 나름 머리를 굴려 동네 편의점을 골랐다. 다만 그 거리를 계산하진 못했다. 잔인한 열기는 검은 옷을 후끈하게 데웠다. 잠겨 있는 후드속의 그녀의 몸은 찜질방에 있는 것 같이 땀을 뿜어냈다. 그녀는 후드의 지퍼를 열어 옷 안의 열기를 빼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셔츠는 잔뜩 젖어 몸에 달라붙었다. 신주는 편의 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최대한 느긋히 골랐다. 그녀는 밖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며, 마음을 단념하고 편의점 문을 열고 나갔다. 편의점 옆에 자동 광고 판은 체감 온도 38도를 보여주며 외출을 삼가 하세요. 라는 문구를 띄우고 있었다.

신주는 큰나무 공원의 나무 그늘에 앉아 자포자기 한 얼굴로 그늘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 그림자가 사라지면 나의 삶도 끝나겠지’

그녀의 손에는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비장하게 쥐었다. 그녀는 뜨거운 태양 빛의 군사들이 그림자의 여왕인 자신과 그림자 가신들을 포위해 창을 목 아래까지 들이미는 상상을 했다.

“이야~ 우리 신주 또 무슨 상상을 하고 계신 걸까?”

“아아아악!”

눈 앞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태호의 얼굴에 신속하게 찔러 든 신주의 아이스크림 막대는 정확하게 태호의 눈을 향해 있었다. 태호는 그걸 종이 한 장차이로 피했다.

“미쳤네, 누굴 애꾸로 만들려고.”

“왜, 왜, 너 왜 여기 있어?”

“왜긴 왜야, 너 찾아다녔지.”

“왜?”

“연락이 안되니까?”

“…”

신주는 태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마에 송글 송글 맺힌 땀은 그가 오랜 시간 밖을 걸어다녔다는걸 알게했다.

“덥게 왜그랬어?”

“니가 연락이 안되니까. 요 앞에 편의점 간 줄 알았는데, 왜 여기까지 온거야? 덕분에 편의점 3곳은 더 들렸다.”

“왜… 왜 찾은거야.”

태호는 주저앉아서 쭈뼛거리는 신주에게 맞춰 쭈구려 앉았다.  

“왜 찾았을거라 생각해?”

“… 몰라”

“내가 어떻게 네가 만들은 걸 알았을 거라 생각해?”

“… 모르겠어.”

“땅콩이랑 초콜렛 같이 먹는 사람이 내 주변에 너 밖에 없어.”

신주는 입을 크게 벌리며 깨닳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호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신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때렸다. 상당히 쎄게 들어간 힘에 신주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태호는 그녀를 보여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음?”

“내가 너 땅콩이랑 초콜렛 같이 먹는 거 좋아한다는 거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너한테 맞으면서 왜 항상 이것 저것 져주는 걸까?”

“…”

신주와 눈을 맞추고 있던 태호는 일어났다. 태호는 신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가자. 여긴 너무 덥다.”

신주는 물끄러미 태호를 바라보다 홀린 듯 태호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태호의 힘의 이끌려 일어났다. 마음 속에는 뭔가 뭉게뭉게 껴 있었지만, 그녀는 태호의 얼굴을 다시 보고 그의 옆에 있다는 것에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