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찾고…환상적인 십자가…길 위에서 흔들리다 보면…당신에게 필요한 이미지를 찾아 십자가에 매달 거예요…


“이미지를 찾고…십자가를….”


무언가 뺨을 때리고 지나간다. 아픔과 함께 붉은색 빛이 깜박인다. 

아마 눈앞에서 반짝이는 불빛일 거야. 

아마도 내 얼굴을 치고 간 것은 멍청한 공무원의 주먹일 테고, 곧 있으면 화가 난 나의 신고 전화를 받은 뒤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겠지. 


그는 생각한다. 십자가와 이미지를 생각하는 동시에, 그것을 보려 하는 순간 짜증 나는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뺨을 때리고 지나간다.

그는 옆을 바라본다. 시각이 이상하게 선명하다. 마치 각성제를 맞은 것처럼. 각성제를 생각하니 조금 전의 아련한 쾌락이 떠오른다. 


아니, 고통이었나. 어찌 되든 상관없다. 

방금 느낀 것이 고통이었다면 민원을 넣으면 되는 것이고,

쾌락이었다면 다시 해 달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변태 취급을 받더라도 괜찮다. 

그저 그 행동이 그에게 쾌락을 느끼게 하였다는 사실만 알리면 된다. 

이봐, 너의 그 매콤한 주먹은 동시에 아주 달콤하기도 하다고,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그 쾌락은 오른뺨만 느껴야지. 

왼뺨까지 그걸 느낀다면, 오,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봐, 너의 그 매콤달콤한 주먹 때문에 내가 학교도 다니지 못해. 


학교? 


그는 학교를 떠올린다.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범람한다. 생각과 시각이 겹쳐서 힘들다. 그래서 그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한다. 그러자 시야가 맑아진다. 힘든 느낌은 사라진다. 생각을 그만두니 한층 더 편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정신이 맑아지니 아까 느낀 것이 고통이었다는 확신이 든다. 


그는 분노를 느낀다. 


조금 더 힘을 써서 현실에 관심을 가지기로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현실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 말이다. 


그게 정말이지, 소외된 기분은 너무 슬프잖아. 


그러니 현실에 집중하기로 한다. 먼저 그가 의지하고 있는 현실은 어떤 곳인가…

엉덩이로 차가운 금속이 느껴진다. 소름이 끼친다. 


그 소름은 원래 엉덩이에서 머리까지 오는 거야. 

그 반대일 수도 있고. 아이스크림처럼. 


아이스크림, 그는 여름날에 항상 그걸 먹었다. 공원에 앉아서. 공원에 있는 의자에. 

이것도 비슷한 거야. 

아쉽지만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의자 말이야. 

그래, 이건 기다란 의자 모양의 세금 덩어리인가. 

열심히 일한 대가가 고작 이런 금속으로 만든 더러운 의자란 말이야. 

그렇단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니 그는 더더욱 슬퍼진다. 슬퍼지니 정신은 더러워지고, 


그럼 현실에 집중할 수가 없잖아. 


그는 감정도 그만 느끼기로 한다. 그러니 기분이 훨씬 나아진다. 그는 다시 현실에 집중한다. 


이번엔 내 몸에 대해서.


머리가 아프다. 

이건 좋지 않다. 

금속 의자로 머리를 치는 것 같다. 

그래도 그것 역시 현실의 일부니까. 


그는 받아들이기로 한다. 


대신 다른 것도 집중해 보자. 

대리석 바닥에 대리석 벽, 옆에는 이상한 직선들이 그려진 표지판이….


앞에는 노란 사각형 조각들이 박혀 있다. 그 위에는 노란 둥그런 조각들이 일렬로 줄을 맞추고 있고, 또 그 앞에는, 그 앞에는…. 그 앞에는 더 낮은 바닥이 있다. 더 낮은 바닥, 더 낮은 바닥이다. 그 바닥 위에는 돌들이 잔뜩 깔려 있고, 사다리 같은 것을 눕혀 놓은 모양의 구조물이 죽 늘어져 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 춥고 어둡고 밝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아무래도 현실은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것 같다. 왜냐면, 그는 지금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까 뺨을 맞은 것 때문이다. 


정말로 그래, 정말로. 

아까 그 더러운 14등관 녀석이 뺨을 때리고 지나간 거야.

그럼 도망치기 전에 잡아야겠네. 

그런다고 해서 현실이 내게 가지는 기분을 좋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 기분은 나아지겠지.


그는 공무원을 잡기로 한다. 그는 민원을 넣어 그 배은망덕한 자를 혼내 주기로 한다. 그래서 엉엉 울면서 집으로 갈 수 있도록,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핀다.

그러나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 공무원도 없거니와 그것과 비슷하게 생긴 무언가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저 황량하고 차가운 회색의 터널 공간뿐이었다. 그럼 그의 뺨을 때린 공무원은 비겁하게 도망을 쳤다는 것인가. 


용납할 수 없다. 

기습했으면서 책임도 지지 않는다니, 

한심하고 비열한 수법이다.

 아주 한심하고 비열하고 끔찍한…


또다시 뺨에 무언가가 부딪친다. 그리고 붉은색의 빛이 번쩍인다. 


눈이 아프다.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곧 가라앉고, 가라앉아서, 그 불편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당혹감이 차지하며, 오래 지나지 않아 당혹감은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격렬한 분노로 바뀐다. 

그는 분노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휘젓는다. 


그 공무원 녀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가. 


투명 망토를 걸치고 죽음의 빛을 내뿜으면서 한다는 짓이 고작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뺨을 때리는 것이라,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때, 그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온다. 키가 살짝 큰 상자 모양인데, 검은색에 붉은색 빛을 내뿜고 있다. 


어라, 저건 기계장치인가. 

자판기인가. 


그의 분노는 순식간에 시들어 고개를 숙인다. 그는 즉시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그 기계에 다가간다. 그것은 의자 바로 옆에 있었는데, 아주 신기하게 생긴 것이…

거대한 섬광을 번쩍인다. 


자신의 온 얼굴에 고통이 느껴진다. 

다시, 또다시? 

이번에 그의 마음속을 채운 것은 분노도, 당혹감도 아닌 공포이다. 


과연 공무원은 저 자판기였나? 

사람이 기계를 이길 수 없듯이 나도 결국 저것의 비행하는 투명 주먹에 끝없이 뺨을 맞고 말 운명인가? 


그가 이런저런 절망에 빠져 두려워하고 있는 동안, 그의 눈은 의젓하게도 홀로 이 사건의 원인을 찾아 배경을 살폈다. 그렇게 주인이 하지 못한 일을 그의 커다란 두 눈이 해내었으니, 주인의 뺨을 무자비하게 후려친 것은 바로 종이 꾸러미였다. 그 또한 이 사실을 깨닫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파란색 종이 끈으로 깔끔하게 묶인, 허리가 잘록한 곤봉 모양의 종이 꾸러미가 세 개쯤 쌓여 있었다. 


옳거니, 저것들은 신문이로구나. 


그는 허리를 숙여 그것들을 감싸 안아 의자 위로 올린다. 그리고 기계를 다시 바라본다. 저것은 자판기처럼 생겼고, 신문을 뱉는다. 그럼 저것은 신문을 뱉는 공무원인가. 모든 의문이 풀리자, 그의 마음은 환희로 가득 찬다. 그는 즐겁게 조금 전까지 자신의 오른쪽 뺨을 사정없이 때렸던 신문의 끈을 풀어 펼친다. 한꺼번에 펼치자 거의 사람이 깔고 앉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종이가 된다. 그는 첫 번째 페이지부터 읽어 보기로 하고 자리를 고쳐 앉는다.



이상한 일이다. 신문들은 하나같이 사진과 그림만 있을 뿐 글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신문이라는 매체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질문한다. 


신문이라는 것은, 아마, 종이를 가득 메운 글씨가 새로운 소식을 알려 주는 물건.


그래서 매일 아침(아니면 저녁)에 아마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종이는 분명 그것을 가득 메웠어야 할 글씨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럼 이것은 신문이 아닌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어디를 보아도 신문이라는 단어 외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다른 신문들도 펼친다. 하지만 두 번째 신문 역시 아무런 말도 쓰여 있지 않다. 


마치 그가 있는 현실처럼, 텅 비어 공허하다. 


그는 무기력한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거의 히스테릭한 손놀림으로 가장 밑의 신문을 펼친다. 파란색 끈을 미친 사람처럼 풀어헤치고, 가끔 기합을 내지르면서, 페이지를 한 장 넘기고, 다시 기합을 내지르고, 페이지가 한 장 더 넘어가고, 끈이 손에 걸려 화를 내면서 다시 풀어헤치고, 페이지를 한 장 더 넘기고.


그는 다시 페이지를 한 장 앞으로 넘긴다. 


글씨가 있다. 

분명 글씨를 보았다. 


그는 신문의 구석에 무엇이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걸어가는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얼굴을 신문에 들이민다. 


글씨들이 놀라 도망칠 정도로 가까이, 가까이, 더 가까이.

글씨가 보인다. 

깨알 같은 글씨들이다. 


그는 마음속으로만 소리 내어 그것들을 읽는다.

 



‘중에…하나일종으로…이전까지는…너무나…당연히…금기시되었던…풍습이…요즘에…들어…점차…되살아나고…있다는…것이다.’

 



그는 계속 읽었다. 

 



‘올해 완공 예정이며, 완공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양식장 어장이 될 것이다.’

 



’심각한 인명 피해가 초래되었으며, 지난 50년간 발생한 어떤 것보다 큰 사례였다. 이는 앞으로 일어 나게 될 것들에서도 보기 힘들 수치라고 한다.‘

 


그는 모든 것을 읽었지만, 대체로 그것들은 맥락 없는 단어들의 반복인 것 같았다. 아무런 정보도 전달하고 있지 않았다. 일기예보라거나, 아니면 주가의 상승이라거나 하는 것들은 아무리 다시 읽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 한심한 오합지졸 단어 모임을 보고 깊게 실망한다.


너희들,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거야? 


그는 엉망으로 펼쳐진 신문을 얼기설기 모아 옆으로 치웠다. 파란색 끈은 바닥에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숙이고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 밑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다. 눈을 깜박인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다. 조금의 먼지 조각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얼음처럼 깨끗한 대리석 바닥이다. 


허리를 펴서 의자에 앉아 천장을 본다. 전등이 아깝다는 듯이 푸른빛을 흘리고 있었다. 눈꺼풀이 바들바들 떨렸다. 졸음이 평정심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안돼. 

참아, 참으란 말이야. 




하지만 뭘 위해서? 



그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악착같은 졸음은 그를 마음속부터 차근차근 잡아먹고 있었다. 


졸려, 

잠을 자지 않기엔 너무 졸렸기에

나는 가장 졸린 순간에 수면제를 먹고자 했고…

아…제산제는 딸기…맛이지만…

절반쯤…그러지…않기엔…

너무…썼기에…

나는…아니…

’그는‘…인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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