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돌풍과 함께, 뒤에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김씨! 좀만 더!”

김씨의 앞에는 홍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이미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지만, 홍씨가 있는 곳까지 가기에는 터무니없이 느렸다. 더군다나 그의 신발은 달리는 데에 적합하지 않은 구두였다. 결국 비바람은 김씨보다 앞서가게 되었다.

안돼!”

김씨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또다시 그 꿈이었다.

이상하고 해괴망측한 달리기 꿈. 홍씨는 언제나 김씨 또는 이씨, 박씨 어쩌면 민씨를 기다리고 있었고 항상 그들은 홍씨에게 오기 전에 비바람에게 추월당했다. 그리고 비바람에게 추월당한 순간, 언제나 그들은 외마디 비명 혹은 욕설같은 것들을 외쳤고, 거기서 꿈이 끝나는 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은 꿈에서 그들의 성을 부르게 된 것일까... 홍씨는 슬슬 이 꿈에 대해 정신상담이라도 받아야 되는게 아닌가 싶었다. 프로이트 선생의 클리닉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홍씨는 생각했다.


 

 잡생각은 떨쳐버리고 홍씨는 아침 630분에 일어나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10~15분을 쓰고, 15분동안 아침을 먹은 후, 75분에 무조건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면 걸어서 5분 거리인 지하철역으로 가 1~3분동안 지하철을 기다리고 강남역 혹은 잠실역 혹은 한티역으로 자신을 이동시켰다. 강남역에 도착하면 절대로 12번 출구로 나가야했다. 잠실역에 도착하면 절대로 8번 출구로 나가야했다. 한티역에 도착하면 절대로 2번 출구로 나가야했다

 하지만 홍씨의 이러한 습관들은 그의 인생살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짐만 되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티역에서 절대로 나가야하는 출구는 사실 3번 출구였다. 그러나 언젠가 한티역에서 3번 출구를 막고 에스컬레이터 공사를 하고 있었다. 홍씨는 막힌 3번 출구를 보고 난 뒤, 그 자리에서 한 시간동안 서 있었다. 지하철 역무원이 와서 그를 2번 출구로 데려다주지 않았다면 홍씨는 막차 시간까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을 수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홍씨는 지하철역에서 빠져나오면 항상 출구에서 가장 가까운 벤치나 의자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꼴을 보곤 했다.

 머저리같은 작자들.

홍씨는 언제나 생각했다.

 무엇에 그리 쫓겨 사는 것일까?

그의 집은 부모님이 마련해주신 것이었다.

 무엇이 당신들을 맥빠지고, 정형화된 사람들로 만드는 것일까?

그는 직업이 없다.

  무엇이 저 청년들을 달려가게 만들까?

그는 평범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무엇이 저 사람들끼리 싸우도록 하는 것일까?

그는 군대에 가지 않았다.

  저 인간은 메기를 닮았네. 이 사람은 그냥 평범하고.

그는 강남역 12번 출구 앞 성형외과에서 성형을 한 바가 있다.

 

 그리고 주저리 저저리가 끝나고 그는 다시 그의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30분 정도 자신의 모든 것을 꾸미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의 이성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송씨는 홍씨의 이성친구이다. 그들은 불알친구이기도 하면서, 직업이 없다는 점에서 겹치는 것이 많다. 애초에 부모님끼리 아는 사이여서 친해진 것이기도 하고, 서로 공유하는 것도 많다. 그들은 쭉 지속되는 만남을 유지했고, 오늘은 영화관에 가기로 했다. 영화관 앞에서 송씨와 홍씨는 만나 팝콘을 커플 메뉴로 주문하고 자리도 커플석으로 앉았다

 영화 내용은 뻔했다...호텔에 한 부부가 묵게 되었는데, 남편은 항상 밖으로 나가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고, 전 부인과 섹스를 하고, 아내의 친구와 섹스를 하고, 친구의 아내와 섹스를 했다. 아내는 호텔에 머물면서 호텔 직원들과 한 번씩 섹스를 했다

 그중 백미는

나랑 섹스해요.”라고 손님이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손님.” 그가 손님에게 당황한 듯 거절했다.

왜 안 되는 거죠? 저는 이해가 안 되네요.” 손님이 그에게 대꾸했다.

안 되는 거는 안 되는 겁니다. 손님.” 그가 손님에게 단호히 말했다.

계속 안 된다고 하면 당신을 어떻게 할지 몰라요.” 손님이 그를 협박했다.

손님, 그렇게 나오시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가 손님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란제리만 걸친 그녀를 따먹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송씨와 홍씨는 손을 잡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그들은 바로 호텔은 아니지만 모텔로 가놓고서는 그 주위를 맴돌았다. 계속 맴돌고만 있으니 배가 고픈 참에, 먹자골목에서 그들은 부대찌개를 안주삼아 술을 마셨고, 커피랑 아이스크림도 먹고 모텔로 들어갔다.




난데없는 돌풍과 함께, 뒤에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송씨! 조금만 더!”

송씨의 앞에는 홍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송씨는 이미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지만, 홍씨가 있는 곳까지 가기에는 터무니없이 느렸다. 더군다나 그의 신발은 달리는 데에 적합하지 않은 단화였다. 결국 비바람은 송씨보다 앞서가게 되었다.

아니 씨발!”

송씨의 마지막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