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사냥꾼


램프의 고래기름이 다 떨어져서 깜빡깜빡거렸다.

선장으로 보이는 말쑥한 남성이 악취가 나는 기름을 채워 넣고는 다시 불을 붙인다.

그는 어지간히도 냄새가 싫은 모양인지 향수를 뿌려댔다.

"벌써 자정이 넘었소, 당신 말대로 뛰어난 사냥꾼들도 고용했고 그 불쾌한 덩어리들도 배에 가득 실었소.


그런데도 괴물은커녕 그림자도 안 보이는군."


"내가 배에 있으면 놈은 반드시 올 거요, 걱정하지 마시오."


"잡을 수 있겠소?"


"선장님은 여기 가만히 계시게, 오늘 밤이 지나면 당신의 이름은 서쪽 바다에 영원히 기억될 테니."


확신에 찬 사냥꾼의 말에 선장은 더는 말하지 못했다.

램프만 처량하게, 활활 타올랐다.


늙은 사냥꾼은 놈과 처음 맞닥뜨린 순간이 떠올랐다.

야심한 시각, 고래고기를 가득 실은 배가 회항하던 중이었다.

울림바위 등대의 불빛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지친 선원들은 회포를 풀 생각에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어디선가 기침이 나올 정도로 톡 쏘는 냄새, 고래시체의 냄새가 선원들의 코를 찔렀다.

영악한 놈이었다.

그건 수면 아래에서 눈깔을 번뜩이며 차분히 다가왔다.

기회를 보며 유영하던 물체는 예고도 없이 후미에 쾅 소리를 내고 부딪혔다.

육중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원들은 옷자락을 찢어서라도 코를 막아야 했다.

시체의 덩어리였다.

따개비와 선원들의 팔다리, 얼굴, 수상한 고깃덩어리들이 한데 뭉쳐서 이루어진 거대한 산이 그곳에 있었다.


놈은 작은 배는 통째로 삼킬 만큼 커다란 덩치로 작은 육편들을 튀기며 다가왔다.

저 덩어리들이 움직이는 건 선원들의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이내 그 커다란 원형의 아가리를 벌리자 덕지덕지 붙은 소화되다 만 고깃덩어리와 놈의 커다란 눈알이 드러났다.

모두가 공포에 질렸다.

저곳에서 죽느니 익사자가 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선장은 경적을 울려대고 신호탄을 쐈다.

놈의 모습을 보고 패닉에 빠진 그는 배가 점점 가라앉자 주저앉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사냥꾼들은 가라앉는 배 위에서도 공포를 이겨내고 어떻게든 놈에게 한 방 먹이려 작살을 들었다.

순순히 생지옥으로 들어갈 사냥꾼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놈에게 유리했다.

놈은 거대한 몸뚱아리로 반쯤 기울어진 배를 위에서 아래로 덮쳤다.

사냥꾼들은 작살을 드는 것조차 어려웠다.

배는 굉음을 내며 이제 거의 직각으로 기울었다.


놈은 아가리를 벌린 채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기름진 고래고기를 찾았다.

후미는 박살이 난 지 오래였고 놈은 아래서부터 배를 집어삼키며 천천히 기어 올라왔다.

늙은 사냥꾼은 간신히 돛대를 잡아서 목숨을 건졌지만 다른 사냥꾼 몇 명과 선원들이 고래고기와 함께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남은 이들도 마찬가지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수도 없이 많은 작살이 놈의 피부를 뚫지 못했고 상처하나 입히지 못했다.

놈을 죽이려면 필히 저 아가리로 들어가야 했다.

저 속의 눈알을 꿰어버리지 않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이었다.

그때의 그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멀리서 나마스의 군함 두 척이 빠르게 다가온 탓이기도 했다.

쓰러져가는 돛대에 매달려서 놈이 제발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버텼다.


배는 빠르게 가라앉았다.

사냥꾼 몇몇을 제외하면 모두 놈의 일부가 됐다.

구원의 손길은 한참이나 뒤늦게 도착했다.

원래라면 반갑게 마중 나왔을 군함이 놈을 보고 포탄을 퍼부었다.

워낙에 거리가 멀었던 탓인지 대부분 빗나갔지만 주춤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절호의 기회였다.


늙은 사냥꾼은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있던 기울어진 돛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당시에는 젊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심을 잡기조차 어려웠지만, 등에 매단 작살을 다시 꽉 동여매고 놈의 얼굴을 마주했다.

고깃덩어리 안에서 앞서간 이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감정이 격해지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보다 뛰어났던 동료, 마음이 잘 맞았던 친구, 믿음직스러웠던 선원들의 비명이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눈알이 아가리 속에서 드러났다.

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탐욕스러운 눈빛이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이를 악물었다.

늙은 사냥꾼은 눈알을 노리고 온 힘을 다해 작살을 집어 던졌다.

명중이었다.

정 가운데를 노렸지만 그래도 눈알의 살짝 윗부분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한 방 먹였다는 쾌감이 찾아오기도 전에, 놈은 고통스러운 모양인지 형언할 수 없는 덩어리들을 내뿜었다.

때마침 함포도 여러 발, 놈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눈알은 핏물을 흘리면서도 작살을 던진 그를 기억이라도 하려는 듯 시선이 고정돼 있었다.

늙은 사냥꾼은 그제야 비로소 공포를 느꼈다.

온몸이 붉은 건더기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