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나온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마카를 사기로 했다. 군대에선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기엔 애로사항이 많기에 대체품으로 마카를 고른 것이다. 입시미술을 할때 자주 서현역의 화방에 들러 미술도구를 사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여긴 바뀐게 없구나 3년간만인데 라고 생각하면서 무슨 제조사의 마카가 좋은지 비교하다가 문득 또 생각이 나버렸다.


서현역에 가면 매번 입시미술 학원에서 봤던 한 여자애가 떠오른다.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그녀의 기억에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칼단발에 목소리가 매력적이였던,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전부 녹아들은 그 모습, 완벽까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형에 가까웠다. 이름도 그 모습과 연결되는 듯한, 마치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는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름이였다.


왜 그 애가 생각이 나는지 집어든 마카를 계산하면서 생각해보았다. 답은 단순했는데 그 애 집이 서현이였기 때문이다. 겨우 이런 이유가지고 서현을 가면 갈때마다 그애가 생각나는지, 내가 그 애를 많이 신경썼다는걸 생각 날 때마다 느낀다.


학원을 다니면서 그 애를 알게된건 고3 막바지 특강수업 때였다. 반이 두개로 나눠져 있었는데 나랑 그 애는 다른 반이라 서로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특강수업때는 합반으로 진행되어 그때 알게 됐던 것이다. 나는 중학생때부터 엄청 친했던 베프 여사친이 있었다. 베프가 그 애랑 같이 밥먹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나는 입시학원을 다닐때는 항상 베프와 밥을 먹었는데 친구 한명 끼는건 좋다고 생각해 수락했다.


처음 보았는데 순간 너무 내 이상형이라 뚫어지게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인가 신경이 쓰인것 같다. 목소리는 또 왜이렇게 매력적인건지,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그 뒤로도 몇번 같이 밥을 먹고, 쉬는 날은 코노를 같이 가서 그 애의 노래를 감상했다. 물론 둘이 가는건 아니였다. 아직은 어색한 사이였기에 베프의 중재가 필요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입시가 끝이 났다.


입시가 끝날 때까지 말 몇번 섞어보지 못하고 헤어진게 아쉬웠다. 학원에서 짐을 챙겨 나갈 때 서로 나중에 술 한잔 하자 라고 말한게 마지막이였다. 전화번호는 교환한 상태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애가 먼저 연락 해주길 바랬지만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못했다. 괜히 연락했다가 불편해 할까봐.


3년이 지났다. 들려오는 소식도, 그녀가 뭘 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디자인계열 대기업의 직장인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군대에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살도 많이 쪄서 혹여나 그 애가 날 보더라도 실망할것같아 잘지내냐는 문자를 썼다가 지운다.



보고싶다. 너무 보고싶다. 이게 좋아한다는 감정일까 모르겠다. 맞다면 나는 3년간의 짝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현역의 정체된 기억을 책갈피로 삼아서 그 페이지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책을 닫아도 서현역을 가면 느껴지는 이 감정의 페이지를 책갈피처럼 표시해주는 매개체라고, 화방을 나와 간단하게 버거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