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 채널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아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현재는 에이로맨틱(무로맨틱) 에이섹슈얼(무성애자) 에이젠더 삼종세트를 머릿속에 깊이 새겨두고 있지만,  LGBT라는 단어를 검색해보고 흥미로워 했던 어린 시절도 있었죠... 그때 생각이 나서 개인적으로 그때 당시에 성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글 짧게(?) 남겨보려고요. (다 쓰고 나니 긴 것 같습니다 시간 여유가 없으시다면 후회하기 전에 뒤로가기 버튼을...)


저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그리고 여전히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성소수자를 진심으로 혐오하거나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사실 제 처음 반응은 호기심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이성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줄 알았는데, 동성과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였어요. 심지어 그때는 동성애자를 제외한 다른 성소수자는 알지도 못했고요. 기독교 사상은 제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어요. 교회에서는 꼬꼬마 아이들에게 성소수자는 나쁜 거라고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교회 밖에서는, 그리고 어른들 예배에서는 성소수자를 비난할지 몰라도(물론 모두 그렇지는 않아요) 아이들 예배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불결한 문화"로부터 아이들을 격리하려는 시도 같기도 하지만... 어차피 다 알게 될텐데. 그런다고 "정상"이 되는 것도 아닌데.


자라면서 몇 번 LGBT를 가볍게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때는 별로 좋은 인상은 못 받았어요.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는 노출이 심한 복장이 보이기도 했고, 동성끼리 로맨틱한 혹은 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모습도, 무언가 조화롭지 못하고 어색한 외모도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죠.(기분이 나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저는 무지했으니까요...)


그러다가 무성애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무성애자가 성소수자라는 게 놀라웠어요. 저는 분명 무성애자의 기준에 의심할 여지 없이 부합하는데, 저는 제가 평범한 성 다수자인 줄로만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저 역시 소수자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무로맨틱과 에이젠더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차츰 저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이후 저와 같은 사람들을 찾으려고 했는데... 그때 LGBT 커뮤니티들을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제서야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죠. 


첫번째로 깨달은 사실은 지금까지 스스로가 속한다고 여겼던 이성애자, 시스젠더 역시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당연히 제가 이성애자이고 시스젠더라고 했습니다. 그에 대한 반대되는 느낌이 없었던 (로맨틱 끌림, 성적 끌림, 성 정체성을 어느 방식으로도 느끼지 못한) 저는 그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였었고요. 그런데 그렇게 당연해 보이던 것이 제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성 다수자가 갑자기 싫어지지는 않았어요. 이전부터 그것이 당연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으니까요. 여기까지 도달하니 자연스레 다름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고요.


두번째로 깨달은 사실은, 제가 LGBT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어도 그들에 대한 태도에는 분명한 차이가 생겼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제가 이전에 그분들에게서 좋은 느낌을 받지 못한 것은 그분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성소수자인 것이 아니라 아무리 퍼레이드 행사 당일이 덥다지만 자신의 성적인 부분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것이, "동성"끼리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끼리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에 인공적인 행위를 가하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걸 제 정체성과 지향성을 깨달은 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성적 끌림과 성 정체성이 없는 성소수자로 정체화한다고 해서 성적인 끌림이나 성 정체성이 있는 성소수자분들을 갑자기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었어요. 그러나 제가 성소수자란 것을 알고 얻게 된 첫번째 깨달음(이성애자 시스젠더는 내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당연하다)이 그분들에 대한 제 생각과 태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이성애자 시스젠더가 당연하다면, 똑같이 제가 이해할 수 없는 LGBT 역시 당연하잖아요. 이성애자 시스젠더분들을 분명 제가 마음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지는 않는데, 그러면서 저와 다른 성소수자 분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이전의 LGBT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은 과거에 그런 게 있었다는 기억만을 남긴 채 사라졌더군요. 매우 잘 된 일이죠.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어도 어느 커뮤니티에서는 자신과 다르고 이해할 수 없다고 특정 성소수자를 욕하는 성소수자도 있다고 하는데... 제가 말해봤자 뭐가 될까 싶지만 (그리고 이런 말을 하기에는 이곳이 너무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많은 사람에게서 이해받지 못하고 그러려는 시도조차 적잖아요? 그러면 적어도 우리끼리는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머리로나마 이해한다면, 아니 그러려는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잖아요.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정신 차려보니 에세이에서 끝자락에 갑자기 감정팔이 논설문이 된 이 글에 한 3시간을 쏟은 것 같군요... 기말고사가 며칠 전에 끝나서 다행입니다... 하하

근데 아무리 그래도 3시간은 너무한 거 아닌가 하고 얼마나 썼는지 확인해 봤더니 한 2800자는 되는군요. 흠 생각보다 많이 쓰긴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