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4월 30일 13:12 GMT, 모스크바 크렘린


혁명은 여기까지 와버렸다고 밀러는 생각했다.


 그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6월의 그날은 다가오는지 오후의 늦은 시간인데 태양은 아직 높다. 소방대원과 병사들이 잔해 정리를 거의 끝내고 그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배열된 트럭에 잔해들을 운반하고 있었다. 여전히 현장과 그 참상을 수습하는 사람들의 옷은 먼지투성이였다. 다섯 번째의 작은 유해가 조심스럽게 들어올려졌다. 이미 손쓸 도리도 없고 완전히 상해버린 모습이었다. 또 한 어린아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실낱 같은 희망이 남아 있었다. 왼쪽에서는 육군 제복을 입은 사내가 분노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그에게도 자식이 있을 것이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와 있었다. 소련 취재반 곁에 미국 취재반도 보였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대량살인을 국제적인 구경거리로 만든 것인가. 밀러는 분노한 나머지 감정을 나타낼 수 없을 정도였다.


 서기장이 중태에 빠져 그의 별장으로 급히 옮겨졌다. 이건 나에게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나와 서기장은 목요일 회의에 항상 일찍 출석한다. 그것은 모두 알고 있다. 경비병, 사무직원, 그리고 정치국의 동료들은 물론이고. KGB 의장도 잘 알고 있다.



같은 시각, 우크라이나 공화국 키예프 서부전선군 사령부


"어린아이들이라니!"

바투틴은 간신히 소리를 내어 말했다.


'당은 모략을 위해 어린아이를 죽이나? 우리 자신의 어린아이들을! 우린 어떻게 된 거야! 그렇다면 나는 뭐가 다른가? 4명의 대령과 몇 명의 사병을 재판에 의해 죽인 일을 내가 정당화할 수 있으니, 정치국이 몇 명의 어린아이를 날려버려도 된다는 말인가? 그것과 이건 다르다.'

바투틴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총사령관 이바노프스키 원수도 창백하게 되어 텔레비전 스위치를 껐다.

"KGB의 계략이 이런 것이었다니! 우리들은 이 생각을 잊어버려야만 하겠군. 어렵지만 잊어버려야만 해. 국가는 완전하지 않아. 그러나 그 국가에 우리들은 봉사해야만 하는 거야."


 바투틴은 저편에서 훈장을 잔뜩 단 채 서있는 늙은 군인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총사령관은 그런 말을 씁쓸하게 했다. 이미 그는 진상을 짐작하면서도 그런 무모한 짓이 없었던 것처럼 의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부하들에게 이 사건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투틴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결국 응징당하는 날이 올 것이다, 사회주의의 진보라는 이름아래 저지른 모든 죄에 대한 응징의 날이. 나는 그날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아니, 아마도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



1985년 5월 21일 17:18 GMT, 벨라루스 공화국 브레스트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3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언덕 그늘에서 발사된 포탄이 그들 좌측 하늘에 호를 그리며 날아가고,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공기를 가르고 나갔다. 당에서 나온 고위 관료가 몸을 움츠리는 것을 바투틴은 깨달았다. 이 친구도 겁쟁이 민간인인가...


"그 소리는 아무래도 좋아질 수 없군."

밀러가 짧게 말했다.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까, 장관님?"

바투틴이 물었다.


"나는 소비에트 육군의 차량화연대에 4년 있었네."

밀러가 대답했다.


"그때 사격통제장치나 방열장치에 붙어 있는 것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 멍청이들이야. 허허 실례하네, 장군.“

석유장관이자 생생한 정치국 후보위원이 귀마개를 끼고 포화로 어지럽혀진 훈련장을 바라보았다.


 다음은 전차였다. 그들이 쌍안경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T-80 전차의 한 무리가 악몽에서 나온 것처럼 숲속에서 나타났다. 울퉁불퉁한 훈련장을 미끄러지듯 달리면서 길고 두꺼운 포신이 불을 뿜었다. 전차 사이에 기관포를 올린 보병전투차가 흩어져 진격했다. 그리고 공격 헬리콥터 몇 대가 달려들어 실물 크기의 엄폐호와 적성장비 모형에 훌륭한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했다. 그 무렵에는 포탄이 쏟아진 위의 목표는 무너져 흩어지는 흙더미에 의해 거의 가려져 있었다. 바투틴의 날카로운 눈이 훈련을 평가했다. 그 언덕 위에서는 누구나 가혹한 꼴을 당할 것이다. 전차와 보병수송차가 언덕 정상에 오르기까지 12분이 필요했다. 표준은 14분이었다.


"훌륭했네, 장군."

밀러는 귀마개를 벗었다. 모스크바로부터 떠나오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다, 비록 몇 시간에 불과할지라도. 


"장관님, 정치국에 계신 분이 역시 군인으로서 국가에 봉사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기쁜 일입니다.“

바투틴은 최고기관에 있는 친구를 지녀도 해롭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이 밀러는 상당한 인물이었다.


"나의 장남은 작년에 제대했지. 둘째도 대학을 나오면 육군에 들어갈 거야. 그런 일을 하는 당 간부의 자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지.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우선 국가에 봉사해야 하는 거야.“


"이쪽으로 오십시오. 앉아서 말씀하시죠."

두 사나이는 바투틴의 장갑차로 돌아갔다. 바투틴은 칸막이 박스에서 뜨거운 홍차가 든 보온병을 꺼내 김이 오르는 액체를 두 개의 금속제 컵에 따랐다.


"건강을 위해, 장관님.“


"당신의 건강도, 장군.“


"훌륭해, 빅토르 니콜라예비치. 그럼, 진심을 털어놓지. 준비는 정말로 갖추어졌는가, 장군? 우리들은 이길 수 있을까?“


"전략적 기습과 거기에 계략 공작이 제대로 된다면 가능합니다. 이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일부러 부탁하여 이곳으로 온 거야. 정치국의 빅토르 바실레예비치 동지가 장군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지.“


"아저씨가요? 우크라이나에서 한바탕 포위전을 벌일 때 아버지의 동지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제가 어릴 적에 자주 집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건강하십니까?“

바투틴은 반색을 했다. 


"아니. 늙어서 병들었어. 그는 서방을 공격하는 짓 따위는 미친 짓이라고 했지. 아무래도 늙은 사람의 헛소리였기를 바라네. 그러나 전쟁 중에 그의 기록은 훌륭했잖나. 지금은 우리 쪽의 승산에 대해 평가를 듣고 싶은 거야. 나는 장군의 전문적 의견을 필요로 하고 있는 거야. 부탁하네.“


"기습입니다."

바투틴은 바로 대답하고 소련의 군사이론을 정확히 설명했다.


"예측이 불가능한 일이 많습니다만, 장관님, 전쟁에서는 기습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거기에는 두 종류, 전술적 기습과 전략적 기습이 있습니다. 전술적 기습은 노련한 야전 사령관이라면 대부분 할 수 있습니다. 전략적 기습은 정치 면에서 달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아니라 정치국의 일이고 군인인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일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만약 이쪽의 계략과 선동이 제대로 되고 전략적 기습에 성공한다면, 그렇지요, 우리들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래, 제대로 해야 할거야. 실패하면 그때는 6명의 어린아이를 허무하게 죽이게 되는 거니까."

이 훌륭한 사나이는 여기까지 알고 있는 것인가?


"그럼 저의 질문에 대답해주시겠습니까? 우리들은 NATO를 정치적으로 분열시킬 수 있을까요?"

밀러는 당혹해하며 어깨를 들썩했다.


"빅토르 니콜라예비치, 장군 말처럼 예측이 불능한 일이 많지. 만약 그것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럴 경우 전쟁은 의지의 시련과 예비 병력의 시련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길 것입니다. 이쪽이 증원도 훨씬 용이합니다. NATO보다 우리 쪽이 훈련된 부대, 전차, 항공기를 더 많이 전투지역 가까이에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미국은?“


"미국은 대서양 너머 저쪽에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대서양을 봉쇄할 계획이 있습니다. 그들은 병력을 유럽으로 신속히 공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력뿐이지요. 무기나 연료까지는 공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것을 수송하려면 배가 필요한데 배를 격침시키는 일은 그들의 지상군 사단을 격파하기보다 손쉽습니다. 만약 완전한 기습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바다가 상당히 중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나저나, 아드님은...?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에 상당한 실력자라고 들었습니다만...“


”아, 장남 말인가? 대학원에서 외국어를 전공하는데 이제 곧 1년째가 끝나지. 성적은 반에서 1등이네.“


”장관님, 곧 소집령이 떨어집니다. 이번 임무에는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완전히 안전한 자리는 약속드리지 못하겠습니다만...”


장관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1985년 5월 28일 05:23 GMT, 우크라이나 공화국 키예프 서부전선군 사령부


"이반 알렉세예비치 밀러 대위, 발령을 명 받아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장군님."


"앉게, 대위."


자신의 아버지와 아주 많이 닮았다고 바투틴은 생각했다. 키가 작지만 단단한 체격, 똑같이 자랑스런 눈빛과 지성미 넘치는 인상, 역시 오르막길에 있는 젊은이였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라면 자네는 페르시아어와 아랍어를 전공하며 우등생이라던데."


"그렇습니다, 장군님."


"그 언어를 말하는 인간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나?"


"그것도 교육과정 중의 하나입니다."

젊은 밀러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들은 코란도 읽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그 책밖에 읽지 않습니다. 따라서 야만적인 미개인을 이해하는 면에서 코란은 중요한 교재입니다."


"그렇다면, 자넨 아랍인이나 이란인을 좋아하지 않나?"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그들과 상업상의 거래를 해야만 합니다. 저는 그들과 잘해 나갈 수 있습니다. 저희 반은 언어 훈련을 위해 각국 외교관과 때때로 만나곤 했습니다. 주로 리비아인이고 때로는 예멘인이나 시리아인들입니다."


"자네는 아프가니스탄 전차대대에 3년 있었지. 우리들은 전투에서 아랍인에게 이길 수 있을까?"


"이스라엘은 아주 간단히 아랍인을 이겼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조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들의 병사는 무식한 농민이며, 훈련은 불충분하고, 무능한 장교가 인솔하고 있습니다."

만사를 충분히 아는 젊은이였다. 그렇다면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투틴은 생각했다.


"대위, 자네는 페르시아 만으로의 진격에 나의 참모로 참여하게 되네. 자네의 어학 능력을 믿네. 정보평가도 도와주게. 자네는 외교관 교육을 받고 있었지? 그것이 도움이 될 거야. 나는 항상 KGB로부터 오는 정보에 관해 다른 입장에서의 의견이 필요해. 우리나라의 정보기관 동지들을 신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다만 우리 군도 정보를 충실히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있어 주기 바라는 거야. 자네가 전차대에 있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이중으로 도움이 될 거야. 또 한 가지 묻고 싶은데, 예비역 장교들은 이 동원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


"물론, 열광적입니다."

대위는 대답했다.


"이반 알렉세예비치, 아버님은 나에 대한 얘기를 자네에게 했겠지. 나는 당의 말을 경청하지만, 전쟁에 대비한 병사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 필요가 있어. 그렇게 해야 우리들은 당의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거야."

밀러 대위는 그것이 신중한 은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민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장군님. 어린아이들을 죽이고 서기장 동지를 중태에 빠뜨린 크렘린에서의 사건에 분격하고 있습니다. '열광적'이라는 것은 그다지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네는, 이반 알렉세예비치?"


"장군님, 아버님이 장군님께서 그런 질문을 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이 그것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도 않으며, 아울러 중요한 것은 똑같은 비극이 일어날 필요가 두번 다시 없도록 국가를 단단히 방어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장군님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바투틴은 바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일주일 전에 밀러가 그의 마음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으며 엄청난 비밀을 아들에게 털어놓은 것에 아연해진 것이다. 그러나 밀러라는 정치국의 인간을 오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안심했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사나이였다. 아마 아들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렉세이 블라디미로비치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위, 지금 한 말은 잊어버리게. 우리들은 걱정할 일이 너무나 많아. 자네는 내 부관 사무실인 3층 2호실로 가 주게. 그곳에서 일이 기다리고 있어. 물러가도 좋아.“



1985년 6월 2일 11:52 GMT,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아헨


 사무실 TV에는 소련과 독일의 맹렬한 갈등, 그리고 부쩍 늘어난 소련의 군사행동 소식이 연일 특보로 방송되고 있었지만 경위는 지난 수 년간 그랬든 으레 있는 일이겠거니 하고 신경을 끄기로 했다. 


경위는 방금 그 수상한 신사가 길에 떨어뜨린 갈색 봉투 두 개를 들어올렸다.

"팔켄, 지크프리트. 함부르크, 알트나 구 카이저가 17."


 그는 신사가 유대인처럼 생겼다는 점을 떠올렸지만 그런 생각조차도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봉투는 어제 저녁, 슈투트가르트에서 우송되어온 것이었다. 10마르크의 우표가 붙어 있었다. 그는 충동적으로 주머니칼을 꺼내어 봉투 위쪽을 잘라서 열었다.  어쨌든 경찰관이니까. 속에는 큰 봉투가 하나, 그리고 작은 봉투가 2개 들어 있었다.


 경위는 큰 쪽을 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우선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설계도 같았지만 곧 '게하임'이라는 스탬프가 찍힌 독일연방군 육군의 문서 복사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밀문서였다. 이어서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라마스도르프!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이곳에서 30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유럽연합군 최고사령부 통신시설의 도면이 아닌가. 경위는 서독 육군의 예비역 대위이며 복무시절 정보업무를 맡았었다. 지그프리트 팔켄이라는 신사는 어떤 자인가? 그는 다른 봉투도 뜯었다. 그런 다음 그는 서둘러 전화를 걸러 갔다.



=Comment=

1. 얻다대고 신성한 우리 령토에 불질이야! 어디 맞설 테면 맞서 보자. 아예 뼈다귀도 추리지 못하게 진짜 싸움 맛이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보여 주겠다. 쏘볘트 련방의 군인들은 이렇게 외치면서 지금까지 다지고 다져온 증오와 복수심을 터트려 '쐇!' 구령이 떨어지자, 적들에게 무자비한 복수의 불벼락을 퍼부을 예정입니다.

2. 다음 에피소드 브금 추천



[극지의 폭풍]

1부

1화 도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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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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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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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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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사냥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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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화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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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급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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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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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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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나이트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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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붉은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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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라인의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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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사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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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사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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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1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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