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물어가는 황혼 녘, 노을빛에 붉게 물든 황량한 평야 한 가운데에 있는 술집은 악당들의 은신처 사용되어 왔다.


악당들이 오늘 벌어들인 돈을 흥청망청 쓰며 노랫소리와 총소리로 가득하던 술집은 최근 들어 무겁고 적적한 공기만 가득하였다.


술집 안에 앉아 있는 수십의 사람들은 침울한 분위기로 각자 술을 마시거나, 닦아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총을 또 닦고 있었다.


얼음이 가득 들어 있는 위스키를 쭉 들이킨 잭은 얼음 밖에 남지 않은 위스키 잔을 테이블에 쾅- 찍으며 말했다.


"젠장!! 빌어먹을 보안관 놈 때문에 오늘도 허탕만 잔뜩 쳤어."


옆에서 자신의 샷건을 닦고 있던 그의 동료 페트로는 그의 잔에 다시 위스키를 채워주며 말했다.


"그래도 넌 양반이지. 이번에 새로 여기 왔던 쌍둥이 놈들 중에 형인 조니는 오늘 그 망할 보안관에게 잡혔다더라."


"젠장. 그 망할 보안관 때문에 악당짓도 못해먹겠네. 그냥 악당짓 해먹을 만한 다른 곳을 찾아야 되나?"


잭이 이마에 손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자, 반대편 테이블에서 테이블 위에 다리를 올린 채 시가를 태우고 있던 보헴이 웃음을 터뜨렸다.


"킥킥! 겁쟁이 새끼."


한껏 비웃음을 머금은 보헴과 눈이 마주친 잭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방금 니 입구녕에서 나온 '겁쟁이 새끼'라는 말, 나한테 말한 거냐?"


"그럼, 여기 너 말고 겁쟁이가 더 있냐? 겨우 보안관 한 명 때문에 쫄아서 도망간다는 놈이 총잡이냐? 겁쟁이지."


"아아~ 그렇구만. 그럼 넌, 겁쟁이한테 총알 구멍 생겨 죽은 머저리겠네?"


잭은 재빠르게 홀더에 꼳혀 있던 리볼버를 꺼내 보헴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누가? 내가? 너한테? 큭! 그거 참 재밌는 농담이네."


보헴도 어느새 뽑아 둔 리볼버를 테이블에 걸쳐둔 채 잭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술집의 모든 악당들이 이목을 집중하였다.


"오, 싸우냐?"


"싸우기는 무슨. 계집애마냥 기 싸움나 하고 있잖아!!"


"남자새끼면 빨리빨리 쏘라고!"


새로 온 보안관 때문에 탄약 냄새와 피 냄새에 굶주린 악당들은 모두 광기에 사로잡힌 것 처럼 두 사람을 보며 발을 굴렸다.


모두의 기대에 부흥하듯 잭과 보헴이 리볼버의 노리쇠를 잡아당기던 그 때, 술집 문이 조용히 열리며 누군가가 걸어들어 왔다.


"멍청한 놈들. 이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해서 지들끼 싸우냐?"


이 일대에서 가장 위험한 총잡이, 윌리가 두 사람의 총구 사이에 서자 잭과 보헴은 황급히 총을 치웠다.


"에, 에이. 싸우다니. 그냥 장난 좀 친 건데."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저 새끼가 먼저 나한테 겁쟁이라고 도발해서……."


"시끄러워! 이 머저리들."


두 사람을 변명에 이를 드러내며 일갈한 윌리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네도 마찬가지야, 이 겁쟁이 머저리들아! 니들이 그러고도 총잡이냐?"


바텐더가 바에 올려 놓은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킨 윌리는 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이 땅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던 황야의 무법자인 우리들이 왜 이렇게 됐냐."


"그거야 그 망할 보안관 때문이잖아."


술집 구석의 테이블에서 들려 온 대답에 윌리는 그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그럼, 해답은 나왔잖아. 그 보안관을 족치는 거야."


"하지만, 어떻게? 난 그 놈이 총을 뽑는 것도 못 봤는데, 내 형이 옆에서 쓰러지는 걸 그저 보기만 했다고."


오늘 자신의 형인 조니를 떠나보낸 대니의 말에 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보안관 총 쏘는 실력 하나는 끝내주지. 까딱 잘못하면 나도 질 지도 몰라. 하지만, 생각 해 봐."


윌리는 천천히 권총 홀더를 열어 자신의 총을 꺼내들었다.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 수많은 사람을 죽여 온 애총을 보던 윌리는 총을 문 밖을 향해 겨누었다.


"아무리 총을 잘 쏴봐야 그 놈도 사람이고, 사람은 총에 맞으면 죽는다."


총구의 끝에 걸린, 땅 아래로 사라져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윌리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우리는 총이 아주 많지."


그 말을 들은 술집의 모든 사람들은 윌리를 따라 입꼬리를 올렸다.


서부의 총잡이는 한 명을 상대로 절대 다수로 싸우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냐.


그건 명예로운 보안관의 사정이고, 우린 악당인데.


"가자."


그 단 한 마디만을 남기고 윌리는 술집을 나갔다.


그리고, 그 한 마디를 따라 술집에 모든 악당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누구는 자신의 총알 조끼를 걸치며, 누구는 자신의 샷건을 어깨에 짊어지며.


철컥-


철컥-


신발에 박힌 박차 소리가 평야를 가득 매우며, 윌리의 뒤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둠이 지는 곳을 향해, 그들의 박차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망자여 일어나, 총성이 울려 퍼지게 해라.


그림자들을 불러들여 총성이 울려 퍼지게 해라.


악마를 위해 싸워 총성이 울려 퍼지게 해라.


검은 열차가 온다 총성이 울려 퍼지게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