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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 잠시 쉬었다가 가요. 지금 너무 오랫동안 운전했어요. 꺼졌다 켜지길 반복하는 가로등이 자동차 위로 잠시 내비췄다 멀리 사라진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는 지칠 줄을 모르고 두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있었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며 점멸 해갔다. 나는 말없이 뒷좌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쌓인 A4 용지들 위로 에너지 드링크 캔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제발요 선배. 선배가 걱정 되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제가 죽을까봐 그래요. 사고 나서 죽으면 선배가 책임질 거예요? 논문도 좋고 석사도 좋지만 일단 살고 봐야죠. 나는 내비게이션을 흘끗 바라봤다. 가까운 휴게소까지 20km는 족히 남아 있었다. 게다가 휴게소를 들리기 위해서는 국도로 빠져야만 했다. 동이 트기 전까진 도착해야 제대로 된 촬영을 할 수 있어, 너도 그거 알고 따라온 거잖아? 후배가 툴툴거리며 새(鳥)사전을 뒤적거렸다. 우리는 겨울철에 대한민국을 지나는 나그네새를 촬영하기 위해 내려가는 중이었다. 겨울이어서 해가 늦게 뜨기는 했지만, 그래도 서두르기는 해야 했다. 아무리 나그네새를 보러 간다지만 우리가 나그네새가 될 필요는 없잖아요. 나는 투정 부리는 후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나그네새가 떠도는 줄 아냐? 먹이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배부른 새가 굳이 왜 떠돌겠어. 우리도 배고프기 때문에 떠도는 거다. 논문 찾아 이곳저곳. 교수님처럼 텃새가 되고 싶으면 일단 나그네가 되어야지. 그럼 밥이라도 사 먹이고 부려 먹든지요. 확 그냥, 펑크라도 나버려라. 후배가 발 받침대에 발길질을 하는 순간, 뒤쪽 타이어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차체가 휘청이며 덜컹거리더니 갓길로 빠져버렸다. 나와 후배는 서로를 쳐다봤다.

 

 이거 휠 안 망가졌어야 하는데…. 나는 자동차 타이어를 보며 말했다. 급하게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에 있는 휴게소에 들렸으니 후배의 소원 중 반은 이루어진 셈이었다. 단지 휴게소가 닫혀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스물 네 시간, 성수기와 명절 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을 휴게소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정비소는 물론이고 화장실마저 잠겨있어 후배는 화장실 옆에 있는 풀숲을 헤쳐 들어갔다. 휴게소에는 더 이상 허기를 자극할 음식 냄새가 없었고, 고요가 잔뜩 내려앉은 등나무 벤치에는 미지근한 온기조차 남아 있지 않아 보였다. 자동차 배기가스와 피로를 실은 하품 한 점 없는 휴게소의 공기는 맑고 깨끗했다. 타이어는 로드 킬을 당한 개구리처럼 땅에 달라붙은 채 푹 꺼져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타이어를 고쳐보기 위해 트렁크에서 스패너를 꺼내 들었다. 버려진 휴게소보단 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어느새 볼일을 보고 온 후배가 내 옆에 앉아 중얼거렸다. 휴게소인데 왜 운영을 안 하고 있을까요? 수익이 안 생기니깐. 다들 고속도로로 달려 나가기 바쁜데, 누가 굳이 시간을 내어 국도를 타면서 휴게소에 들리겠어. 머무는 사람들이 있어야 운영을 하지. 마치 선배 같네요. 앞만 보고 달리는 모습이. 나는 스패너로 나사를 풀며 생각했다. 새가 좋아 무작정 생물학과에 진학 한 지 어언 6년. 남들이 취업을 다 하는 동안 나는 새만 바라보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분명 좋아서 한 일이었는데. 다른 동기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돈을 버는 동안 나는 학위를 따기 위한 떠돌이 생활에 불안정한 미래와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어쩌면 학위에 대한 집착을 가져온 것일지도 몰랐다. 다급한 마음 때문일까. 스패너에 맞물린 나사가 계속해서 헛돌았다.

 

 선배! 언제부터 부르고 있던 걸까, 후배가 고함치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내 스패너를 뺏어 들은 후배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스패너를 풀숲으로 멀리 집어 던졌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질 않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금 뭐하는 거야? 저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있을게요. 후배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딴청을 피우며 자동차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후배를 따라 자동차 안으로 들어갔다. 후배는 자동차 시트를 젖힌 채 거꾸로 누워있었다. 선배도 따라해 보세요. 나는 슬슬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는 거냐니깐? 후배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꾸로 생각해보자고요. 뭐를? 긴급출동 서비스 불렀으니, 사람 도착하기 전까지는 좀 쉬자고요. 선배 지금 당장이라도 졸도해 버려도 이상할 것 하나도 없으니깐. 선배가 그랬잖아요, 휴게소에 사람이 있어야 운영을 한다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휴게소에 들리듯, 사람의 마음에도 여유가 있어야죠. 휴게소도 쉬는데 선배도 좀 쉬어요.

 

 내가 뭐라고 하기 전에 후배는 어느새 골아 떨어져 있었다. 나는 후배를 깨우려다 그만두고는 후배를 따라 옆에 누웠다. 차창으로는 귀뚜라미조차 울지 않는 새벽이 그려져 있었다. 지친 탓일까. 나도 금세 후배를 따라 잠에 들기 시작했다. 휴게소에서 깨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휴게소도 자동차도 잠시 멈춰 갈 수 있는 것 같았다. 꺼졌다 켜지길 반복하는 가로등을 따라 보안등 밝힌 렉카가 달려오고, 휴게소 간판에 나그네새가 쉬어가는,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