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왕성으로부터 북북서방향으로 약 12km 떨어진 곳에 있는 용의 무덤, 그 곳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5km 떨어진 모래로 뒤덮여있는 산인지, 아니면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산인지 모를 곳의 정상에 두명의 남자가 마주보고 있었다.

 

 세 군데에 빨간 브릿지가 들어간 파란 머리칼이 바람에 헝클어진 남자는 키 182cm의 장신이었으며, 입고 있는 백은의 갑옷과 푸른 보석이 박혀있는 검을 들고 있는걸로 봐선 기사인 듯 하다.

 

 그런 미남 기사의 앞에 서있는 자는 그와는 달리 검은 갑옷을 입고 서있었으며 얼굴에는 투구를 쓰고 있어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푸른 머리의 기사와 비슷한 신장의 그 역시 손에는 검 한자루를 쥐어들고 있었다.

 그의 검엔 푸른색이 아닌 붉은색의 보석이 박혀있었다.

 아무래도 이 자도 기사인듯 하지만 내뿜는 기운은 기분 나쁠 정도로 악의 것이었다.

 

 "마왕, 오늘에야말로 끝이야"

 

 청명한 목소리의 주인은 백은의 기사였다.

 

 "그런가, 드디어 끝인가. 후회는 없다, 용사"

 

 마왕이라고 불린 검은 기사의 목소리 또한 악의 기운에 어울리지 않게 청명했다.

 아무래도 그 목소리에 용사는,

 

 "뭐야, 꽤나 좋은 목소리잖아. 그 얼굴 보여줄 수 없어?"

 

 마왕의 얼굴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에 마왕이 웃겼는지 쿡쿡, 하고 웃더니 자신의 칼을 지면에 박고는 양손을 투구에 가져가 투구를 벗어 용사에게 집어던졌다.

 용사가 이를 받아드는 동안 마왕은 머리를 몇번 흔들고는 용사를 바라보았다.

 용사는 웃으며 그 투구를 받아들고는 머리를 올려 마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이내 그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지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왕은 웃으며 말했다.

 

 "놀랐나, 용사. 뭐, 놀랐겠지. 보다시피 나는 너니까"

 

 똑같았다.

 투구를 벗은 마왕의 얼굴은 용사와 단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았다.

 그야말로 자기자신이 아니고서야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01

 

 

 시대는 용과 인간 그리고 마물 등 여러 종족이 공존하는 환상의 시대, 아니, 그렇게 불리운건 어느덧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인간이 자연을 파괴해나가자 마물을 비롯한 묘호[猫虎], 조견[鳥犬], 어인[魚人] 등 많은 종족들이 인간들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용들만은 인간과 다른 종족간의 전쟁을 지켜보며 지는 쪽을 도와주며 전쟁을 계속해나가길 어느새 수천년의 시간이 흘러 번식이 불가능한 용들이 죽어나가 단 한명의 용만이 살아남자 인간들은 그를 꼬득여 자신들을 돕게 하였고 수천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십년도 지나지 않은 시간 내에 모든 종족이 멸종당하고 인간과 마물만이 남은 상황에서 마지막 용이 죽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돌입하게 되자 인간의 왕은 마물을 퇴치할 용사들을 모으는 문구를 여기저기에 붙이기 시작해, 드디어 4월 1일인 오늘 그것을 보고 모인 사람들로 왕궁 앞의 광장을 가득 메웠다, 라고 할까, 나도 그 중에 하나지만.

 북적대는 광장을 어떻게든 뚫고 들어가 왕궁의 3층 높이에 있는 왕이 나올 테라스가 보이는 곳까지 들어왔다.

 그러자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왕궁의 창이 열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와...... 아니, 앉아서 나왔다.

 의자에 바퀴라도 달린 양, 자신의 앉은 키의 두배정도 되는 새하얀 의자에 앉은째로 나오는 것은 분명 왕이겠지.

 

 왕은 전신이 새하얗고 발과 팔 끝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있었으며, 갈색빛의 머리카락은 한가닥을 남긴채 뒤로 넘겨 어째선지 만화에서 경화수월이라도 쓸 법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런 왕이 북적대는 용사지원자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그 입을 열었다.

 

 "쓸데없이 너무 많군. 약해빠진 놈들이 가봤자 개죽음이지. 오늘부터 일주일에 걸쳐 그 수를 하나로 줄이도록 하겠다"

 

 애초에 선택 받는 자가 한명이라는 말이 없던 탓일까, 지원자들의 대부분이 말도 안된다며 소리치자 왕은 다물고 있던 입을 다시 한번 열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말이 많구나. 어차피 죄다 마왕의 목에 걸린 포상금을 노리고 온 자들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돈을 내줄 나의 말을 따르는 것이 순리이거늘. 싫다면 여기서 떠나도 좋다. 어차피 필요한건 단 한명 뿐이다"

 

 왕의 말에 지원자들은 갑과 을이 누군지 깨달았는지 조용해졌다.

 왕은 이를 보고 조용히 미소지었다.

 

 "좋다. 그럼 이 순간부터 용사의 시험을 시작하지. 떠벌떠벌 떠들어대는 것은 질색이다. 단 한번만 말하도록 하겠다. 정확히 오후 1시에 도마뱀의 숲의 중앙에 있는 '도마뱀의 꼬리'라 불리우는 거대한 나무의 나뭇가지를 가진 상태로 광장에 있어라. 무슨 수를 써도 좋아. 필요하다면 팀을 맺어도 좋고, 상대를 죽여도 좋다. 단, 명심하도록. 이 성 안에서 사람을 죽이는 자는 나의 손에 죽을 것이다. 자, 시작이다. 부디 살아돌아오라, 용사들이여"

 

 그 말에 광장에 있는 모든 자들이 너나 할것 없이 달린다.

 나뭇가지가 몇개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오로지 용사가 되기 위해 도마뱀의 숲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남쪽 성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도마뱀의 숲은 여기 왕성으로부터 남서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그곳은 예전에 인간과 싸우던 벌레처럼 생긴 종족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그들이 죽은 지금은 독기만을 뿜어낸다고 한다.

 그런 곳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달려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으러 달려드는 것이랑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나는 광장 구석으로 향해 거기에 있는 나무벤치에 앉아 광장을 빠져나가는 자들을 구경한다.

 그런 나의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음? 넌 뭔데 안가냐?"

 

 마치 친구에게 말을 거는 듯한 남자는 금발의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어 마치 어딘가에 나오는 금삐까를 연상시켰다.

 

 "글쎄? 그러는 너는 왜 안가는데?"

 

 의문에 물음으로 답하자 녀석은 외형과는 달리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어차피 나뭇가지인데 이런걸로 속이면 되는거 아니냐?"

 

 녀석은 손에 든 나뭇가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러더니,

 

 "뭐, 농담이지만. 어쨌든 아직은 갈 필요가 없잖아? 시간이 안됐으니까"

 

 그 나뭇가지를 나에게 던지며 웃는다.

 나는 나뭇가지를 받아들고 말했다.

 

 "그러면 나와 같군. 설마 너, 여행자냐?"

 

 나의 물음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제는 시간이지만 말이지, 라며 자리를 떠난다.

 뭐 때문에 말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여행자라는 것은 말 그대로 여기 왕성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자들의 통칭이다.

 마물이 있는 용의 무덤을 제외하곤 거의 전국을 돌아다닌 나 역시도 여행자이다.

 아무래도 이번의 퀘스트는 여행자들을 위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번이라도 도마뱀의 숲에 가본 자들이라면 쉽게 해결할만한 퀘스트다.

 그 이유는 독을 내뿜는 도마뱀의 숲이 오후 12시부터 1시까지의 약 한 시간 동안 그 활동을 멈추기 때문이다.

 

 그러나 녀석의 말대로 문제는 시간이다.

 1시까지 가져오려면 12시 이전에 도마뱀의 숲을 찾아가 12시가 되자마자 숲에 들어가서 도마뱀의 꼬리를 찾아 여기까지 가져오는걸 1시간만에 해내야한다는 소리인데 5km를 그 시간 안에 걸어올 수 있을리도 없고, 이거야 원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하나......

 나는 손에 든 나뭇가지를 주머니에 넣고 광장을 떠났다.

 

 

 ◇

 

 

 현재 시각 10시, 나는 지금 도움을 청하기위해 누군가의 집에 와있다.

 노란 지붕의 2층집이라 병아리집이라고 놀려댄 기억이 있다.

 어쨌든 녀석의 집 앞.

 조심스레, 뭘 조심하는진 모르겠지만, 조심스레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수초간의 정적.

 아니, 정적은 계속되었다.

 

 "흠, 아무래도 집을 비운 모양인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어쩔 수 없기에 주머니에서 나의 전용무기를 꺼낸다.

 짜잔-, 하는 효과음이라도 있을 법하게 철사를 꺼내들었다.

 뭐, 용도는 간단하다.

 우선 문의 열쇠구멍에 철사를 넣는다.

 그리고 돌린다.

 그러면 마치 마술을 쓴 것처럼,

 

 "짠!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근데 나 누구한테 설명하냐. 뭐, 어쨌든"

 

 철사를 빼내 주머니에 되돌리고 열린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어 집으로 들어간다.

 집 안엔 진짜로 아무도 없는 모양인지 적막했다.

 

 "자주 나돌아다니는 녀석이 아닌데 말이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방을 열어보다가 거실에 들어간다.

 거실의 식탁엔 마치 나에게 말하는 듯한 글씨가 써진 종이가 놓여있었다.

 

 '너도 용사시험 들었으니까 알겠지만, 나 이번건으로 돈 좀 벌어야겠으니까 넌 알아서 해라. 아 그보다 너, 갈 때 문 닫는거 잊지마라'

 

 ......

 망했다.

 이 녀석만 믿고 있었는데 도망가다니, 그럼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을 고용해야 되는건가.

 어쨌든 여기엔 더 이상 볼일은 없다.

 

 

 ◇

 

 

 녀석의 집 문을 열어둔채로 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참고로 녀석의 집엔 허락된 자만 들어갈 수 있는 결계가 있으니까 문을 잠글 필요는 없다.

 게다가 절대로 일부러 문을 열어두고 온 건 아니다, 어쩌다보니다, 어쩌다보니.

 어쨌든 나는 걸어서 걸어서 성의 북쪽편에 위치한 마술사길드로 찾아갔다.

 

 "우와-"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온다.

 평소에는 개미 한마리도 보이지 않던 길드건물 앞이 사람들로 북적댔다.

 아무래도 용사지원자들이겠지.

 이거야 원, 순간이동이 가능한 녀석들은 별로 있지도 않을텐데, 이러다 경매라도 시작하겠는데.

 

 

 시간은 어느새 11시 30분.

 아니나다를까, 길드 주체로 순간이동이 가능한 마술사들의 경매가 시작되었다.

 돈의 액수는 엄청나게 올라간다.

 아니, 그 정도의 돈이 있으면 그냥 집에서 먹고 놀아도 되지않나, 싶을 정도의 액수를 불러대는 놈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일이 이렇게 되자, 돈이 없는 자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돈이 없어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자들도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길드를 떠나 성의 중앙인 광장으로 향했다.

 

 

 ◇

 

 

 어느새 광장 중앙에 있는 시계탑의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마뱀의 숲이 휴면에 들어가있는 시각이다.

 아마 지금쯤 대부분이 도마뱀의 숲에 들어가 있는지 광장에는 나를 포함해 열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있었다.

 나는 둘째치고 다른 녀석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자리에 있는건지 궁금한데,

 

 그 순간 시계탑의 근처에 푸른빛과 함께 두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생각할 것도 없이 텔레포트, 공간이동이다.

 아무래도 벌써 도마뱀의 꼬리를 가지고 온 모양이다.

 그런 두 남자에게 원래부터 광장에 있던 사람들 중 한명이었던 남자가 다가가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궁금해하고 있자, 광장에 점점 푸른 빛이 늘어났다.

 아무래도 1시가 다 되어가다보니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겠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1시가 되기 1분 전, 아침에 그랬던 것보다는 현저하게 적지만 왕이 보이는 곳에 가려면 여길 뚫고 들어가는 수 밖에-

 뚫고 들어가는 도중 툭, 하고 누군가와 부딪힌다.

 미안, 이라고 말하곤 그 뒤로도 몇명과 부딪히면서 수없이 많은 인파를 빠져나간다.

 그리고 그 사이 1시가 되어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02

 

 

 왕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입을 열었다.

 

 "모든 확인은 끝났다. 진짜 도마뱀의 꼬리를 꺾어온 자는 단 2명인가, 그런데 많이도 꺾어왔군. 가져오지 못한 1088명의 용사들은 나의 기사들이 직접 광장의 밖으로 인도할 것이다"

 

 왕의 말에 왕궁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백은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나온다.

 그들은 마치 물과 같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 각자 자신이 맡은 사람이 있는지 그들의 앞에 선다.

 그런데 어째선지 대부분의, 아니 모든 녀석들이 괴성을 지르며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그들의 말을 듣고 왕이 입을 열었다.

 

 "시끄럽다, 얼간이들. 이 몸의 판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네 녀석들이 가진 도마뱀의 꼬리를 꺼내들어 태워보아라. 불에 타지 않는 것이 도마뱀의 꼬리이며 불에 타는것이 가짜이니. 그리고 도둑 맞은 자가 있을것인데,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지니고만 있으면 된다고. 아니면 적에게 무기를 도둑 맞더라도 지금처럼 소리만 칠 것인가?"

 

 왕의 말에 자신의 것을 꺼내 불 태워보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전부가 전부 불에 타들어갔다.

 그런 지원자들의 모습은 신경도 쓰지 않은채 왕은 말을 이어나갔다.

 

 "자, 진짜를 지닌 자들을 왕궁에 들라. 참고로 들어오면서 나의 비서에게 가져온 도마뱀의 꼬리를 전부 건네지 않으면 그 순간 실격이다"

 

 왕의 말을 듣고 나는 인파를 헤치고 지나가 왕궁에 들어서는데 어느새 먼저 온 파란머리칼의 남자가 있었다.

 12시부터 광장에서 보이던 사람들 중 한명인 이 남자가 어떻게 통과한거지?

 어쨌든 그런 그가 자신의 바지주머니에서 도마뱀의 꼬리를 하나 꺼내더니, 회수를 위해 서있는 회색머리칼을 뒤로 빗어올리고 검은 양복을 입고있는 비서가 아닌 비서의 근처 바닥에 던졌다.

 그러자 던져진 도마뱀의 꼬리가 바닥에 닿자 마치 수도꼭지에서 물이 뿜어져나오듯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들이 쏟아져나왔다.

 그걸 본 탈락한 지원자들이 소리쳐댄다.

 그러거나말거나 비서는,

 

 "1082개, 확인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통과시켜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뒤를 쫓아 각각의 바지 주머니에서 나뭇가지를 꺼내 총 4개를 건네고, 상의에 있는 두개의 주머니에서 2개를 더 꺼내 비서에게 전하고 들어섰다.

 

 

 ◇

 

 

 2층의 거대한 응접실에 안내되어 단 두명.

 파란머리의 남자와 나뿐이었다.

 남자는 180cm 정도 되어보이는 키에 머리엔 파란색의 머리칼에 브릿지를 넣었는지 얇게 세줄로 빨간색의 머리칼이 있었다.

 뭐랄까, 이미 용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뭔가 어색한 분위기이기에 말을 건넬까 하는 도중, 사람들이 음식을 들고 들어온다.

 이것저것 맛있어보이는 것들로 식탁을 가득채우자 그제서야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음, 안타깝군. 꽤나 많은 지원자들이 통과할거라 생각하고 음식을 많이 준비해두었는데. 뭐, 어찌됐든 배도 고플텐데 많이들 먹으시게나"

 

 왕의 말에 내가 음식을 먹으려고 손을 뻗기 직전,

 

 "독을 먹으라고 내주다니, 지저분하군. 죽이고 싶으면 직접 죽이는게 나을 것을"

 

 파란머리의 남자가 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에 왕은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그 자를 쳐다보고 말한다.

 

 "호오, 대단한 식별이로군. 먹어보지않고 보기만 해도 아는가? 좋다. 음식을 새로 들라!"

 

 왕의 말에 마치 준비되어있었다는 듯 음식을 가져왔던 자들이 음식을 교체해나간다.

 그제서야 남자는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나도 그가 먹는것을 지켜보고 나서 음식을 입에 갖다댔다.

 

 

 준비된 음식을 먹어 배를 채운 우리는 3층의 한 방으로 불려졌다.

 방이라기엔 너무 커서 친구녀석의 집을 통째로 옮겨와도 될 법한 공간이었다.

 그 방의 끝엔 언제 온건지 이미 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맛있게들 먹었으니 이제 최후의 1명을 가려야겠지? 뭐, 간단하다"

 

 왕이 말을 하는 도중,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들어올 때 1층에서 봤었던 비서가 손에 검을 들고 서있었다.

 검의 손잡이부분엔 푸른 보석이 하나 박혀있어, 어째선지 눈에 띄었다.

 

 "저 검을 둘 중 한명이 들어봐라. 누가 들어보든 상관없다. 허나, 선[善]의 기운이 더 강한자는 푸른빛이 유지될 것이고 악[悪]의 기운이 더 강한자는 붉은빛으로 변할 것이다. 만약 그대들 둘 다 악의 기운이 강하다면, 검을 잡은 자는 떨어질 것이고, 잡지 않은 자는 여기에 남아 용사가 될 것이다. 반대로 둘 다 선의 기운이 강하다면, 검을 잡은 자는 여기에 남고, 나머지 하나는 떨어질 것이다"

 

 요컨대, 검을 집어 보석이 푸른채로 남아있거나, 상대가 집어 보석이 붉게 변하면 용사로 선택받는다는 것인가.

 

"자, 선택하라.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면 먼저 집으면 될 것이고, 그렇지않다면 집지 않는 편이 낫겠지. 뭐, 상대방이 선하다면 기회따위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이에 나는 망설였다.

 아니, 안 집는것을 선택했다고 보는게 낫겠지.

 첫번째의 시험에 도마뱀의 꼬리를 다른 자에게서 몰래 훔친 내가 선의 기운이 강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살아오면서 느낀게 있고 말이지.

 게다가, 옆에 녀석도 다른 참가자의 모든 나뭇가지를 뺐은것 같고 말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 파란 머리의 녀석이 왕에게 말을 걸었다.

 

 "하나만 묻겠다, 왕이여. 여기서 아무도 검을 잡겠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그의 말에 왕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그럴수도 있겠군. 그럼, 둘 중 하나를 죽이면 되지. 그렇다면 자연히 한명만 남으니 용사가 되지않겠나"

 

 뭣?!

 용사가 되고 싶으면 상대를 죽이라는거냐.

 이 무슨 말도 안--

 휘익-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파란머리놈이 자신의 검을 뽑아 나에게 휘둘렀다.

 

 "왕의 말을 들었겠지?"

 

 미친놈.

 이렇게 죽을 바에 잡는게 낫지.

 

 "기... 기다려. 내가 잡으면 되잖아"

 

 나는 말을 하며 비서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어째선지 그 앞을 파란머리의 남자가 가로막았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지. 만약 너가 잡아서 보석이 푸른채로 유지된다면 이쪽이 떨어질테니 말이야"

 

  또 다시 휘둘러지는 검을 어떻게든 피한다.

 

 "이런 젠장. 그럴리가 있겠냐?!!! 도둑이 선의 기운이 강할리가 있겠냐고"

 

 내가 소리치자 어째선지 그가 아닌 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도둑이라고 모두 악이라고 볼 순 없는 일이지"

 

 왕의 말이 도화선이 된 것인지, 녀석은 진짜 죽일 기세로 검을 휘둘러온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내가 반대로 녀석을 쓰러뜨릴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