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피가 묻은 검을 한번 휘둘러 피를 털어내고 검자루에 집어넣는다.

 앞에는 심장을 찔린 남자가 죽어있다.

 뭐, 말할 것도 없이 내가 죽인거지만.

 어쨌든 이걸로 남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나는 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걸로 내가 용사인가?"

 

 나의 말에 왕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미소지으며 말한다.

 

 "아아, 남은건 그대뿐이니 그대가 용사로다. 그 검을 받아라. 그 검은 용사의 검이다. 마왕을 없애기위해 만든 검이지. 이제부터는 그대의 것이다. 자, 검을 하사하라"

 

 왕의 말에 비서가 나에게 검을 건네준다.

 비서로부터 검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보석이 푸른색인 그대로였다.

 그걸 보고는 왕이 크게 웃어댄다.

 

 "하하하하, 안타깝구나. 마물이 아닌 인간이라면 누가 잡든 변하지 않는 푸른색의 보옥이거늘. 쓸모없는 죽음이었구나, 녀석은"

 

 안타깝다고 말하면서 웃어대는 왕은 비서에게 시체를 치우라 명한다.

 이런 왕에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쓸모없지는 않지. 어차피 나는 안 잡을 생각이었으니까, 녀석이 잡았다면 난 떨어졌을테니"

 

 내 말이 또 녀석, 아니, 왕의 웃음을 부추겼는지 왕은 소리죽여 웃는다.

 그런 왕을 지켜보다가 웃음이 멈추지 않았기에 먼저 물어보았다.

 

 "그래서? 난 이제 마왕을 잡으러 가면 되는건가?"

 

 그제서야 왕은 웃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아, 지금 당장 떠나라. 한시라도 빨리 처리해주면 좋겠군. 아, 참고로 혼자가는건 아니다. 나의 비서랑 내 기사들을 붙여줄테니, 넌 마왕이랑만 싸우면 된다. 그럼, 가봐라. 기사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다"

 

 왕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비서에게서 하얀 갑옷을 받아입고 왕궁을 빠져나와 성의 북쪽문으로 향했다.

 

 

 ◇

 

 

 언제 준비했는지 시민들의 열렬한 송영인사를 받으며 북쪽에 위치한 성문을 빠져나오자 언제 왔는지 모를 비서가 나를 불러세우더니 그대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아니, 이럴거면 왕궁에서부터 쓰라고.

 송영인사 같은거 필요없으니까.

 어찌됐든 그렇게 어딘가의 모래사막에 도착했다.

 

 "음, 여기가 어디야?"

 

 비서에게 말을 건네자 비서가 지도를 꺼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직접 보는게 빠르겠죠. 여기가 저희가 있는 곳입니다"

 

 비서가 가리킨 곳은 왕성으로부터 북북서쪽으로 12km에 위치한 용의 무덤, 거기로부터 서쪽으로 5km에 위치한 이름이 따로 없는 모래사막이었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내가 알기론 마물은 용의 무덤에 자리잡은걸로 아는데?"

 

 나의 물음에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거긴 왕의 기사부대를 보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응?

 그럼 난 대체 뭘 위해서 온거지?

 이런 나의 생각이라도 읽었는지 비서는 말을 이어나간다.

 

 "용사님은 마왕과 싸우시면 됩니다. 괜히 잡몹들이랑 싸우느라 시간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자, 그럼 전 이만"

 

 "뭐?! 잠깐!"

 

 그러나 이미 비서는 사라졌다.

 이걸 어쩌라는거지, 하고 서있었더니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용사여. 날 치러 온 모양이구나"

 

 목소리와 함께 모래가 솟아오르며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검은 갑옷에 검을 지닌 자.

 아마 그가 바로 마왕이겠지.

 그런데 어찌된건지,

 

 "너가 어째서 그 검을 들고있지?"

 

 마왕은 내가 들고있는 용사의 검과 같은 검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가지, 내가 지닌 검의 푸른 보석 대신 거기엔 피처럼 새빨간 붉은 보석이 박혀있었다.

 

 "뭐가 이상하지? 왕에게 못 들었나보군. 불쌍한 녀석, 결국 너도 버리는 패 중 하나라는 것이겠지"

 

 마왕이 짓거린다.

 

 "뭔 개소린지 모르겠지만 어찌돼든 상관없어. 마왕, 오늘에야말로 끝이야"

 

 나의 말에 마왕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런가, 드디어 끝인가. 후회는 없다, 용사"

 

 마치 자신을 죽일 용사를 기다렸다는 듯한 말투다.

 그것보다도 어째 목소리가 알고있는 마왕의 나이에 맞지않게 젊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뭐야, 꽤나 좋은 목소리잖아. 그 얼굴 보여줄 수 없어?"

 

 이에 마왕은 뭐가 웃겼는지 쿡쿡, 하고 웃더니 자신의 칼을 지면에 박고는 양손을 투구에 가져가 투구를 벗어 집어던졌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마왕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미간에 주름이 잡혀가는게 느껴진다.

 

 "놀랐나, 용사. 뭐, 놀랐겠지. 보다시피 나는 너니까"

 

 똑같았다.

 투구를 벗은 마왕의 얼굴은 나와 단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았다.

 그야말로 내 자신이 아니고서야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04

 

 

 "너가 나라고? 개소리하지마. 그래봤자 환각이나 마술로 내 얼굴을 만들어낸거겠지"

 

 아니다.

 마술을 쓴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혹시나하는 생각해 되도 않는 말을 던져보지만,

 

 "그게 아니란건 너(나)는 잘 알고 있어, 그렇지?"

 

 마왕은 웃으며 현실을 들이밀었다.

 

 "뭐, 너가 나든, 내가 너든, 어찌됐든 간에 너는 날 죽이러 왔으니까 죽이면 된다. 그 다음 어찌될지는 너의 문제지, 나의 문제가 아니니까"

 

 웃으며 말하는 마왕의 말이고 뭐고 패닉의 빠진 나는 생각한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어째서 내가 둘이지?

 아니, 그것보다도 설마 이 상황을 왕은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그리고 결론에 도달했다.

 

 "왕을 만나러 가겠어. 널 죽이는건 그 다음이야"

 

 나는 녀석에게서 돌아서 걸어나간다.

 그러거나말거나 녀석은 말을 계속해나갔다.

 

 "왕에게 간다고? 가서? 가서 뭘 어쩔거지? 내가 왜 둘인가, 어째서 자신이 마왕인가 묻기라도 할거야? 그러면 그 빌어먹을 왕이 친절하게 설명해줄거라고 생각하냐?"

 

 계속해서 쏘아대는 마왕의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소리쳤다.

 

 "그럼 날보고 어쩌란 말이야!!! 널 죽이고 돌아가 왕한테 가면 되는거냐?!! 모든걸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녀석한테 돌아가라고?!!"

 

 내 말에 마왕은 뭐가 웃겼는지 살짝 웃더니,

 

 "날 죽이고 너가 마왕이 되면 된다. 그걸 위한 존재다, 너(나)는"

 

 이상한 소리를 짓거린다.

 어안이 벙벙해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나를 보고 녀석은 말을 잇는다.

 

 "설명은 내가 해주지, 용사여. 너도 모르겠지만 넌 만들어진 존재다. 호문클루스라고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 아니, 내가 용사였을때는 몰랐으니 너도 모르겠지. 어쨌든 넌 호문클루스다. 왕에 의해 만들어진 용사, 그것이 너다"

 

 "잠깐, 그럼 어째서 용사를 뽑는거냐? 말이 안되잖아!"

 

 내 말에 녀석은 뭐가 웃긴지 시종일관 웃은채로 말을 이어나간다.

 

 "녀석은, 왕은 그런 놈이다. 이벤트를 좋아하지. 어차피 이기는건 너로 정해져있다. 그게 무슨 게임이 되었든 승자는 너로 정해져있다는거다. 첫번째 경기에서 몇명이 남든, 두번째 경기에서 몇명이 남든 말이지. 뭐, 그래서 어찌됐든 그런 너가 여기에 온건 마왕을 없애고 그 자리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다"

 

 "어째서냐, 어째서 녀석은 마왕과 용사를 만들어내는거냐"

 

 "그야 단순하지. 나라의 통제다. 마왕과 마물이라는 적이 있는 한, 녀석들은 성에서 나와 다른 도시를 만들진 못하지. 이 넓고넓은 땅이 전부 비어있는데 말이지. 그렇기에 녀석은 그 작은 성에서 언제까지나 군림하는거야. 게다가 몇 십년에 한번씩 용사를 보내 마왕을 퇴치하면서 말이지"

 

 마왕은 모든 설명을 마치고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어쩔거냐?"

 

 고민할 것도 없다.

 결국은 왕의 심심풀이에 놀아나는 꼴이 아닌가,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내가 직접 왕을 죽이겠다"

 

 내 말에 녀석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가능할 리가 없지만 혹시 또 모르지. 무운을 빌도록 하지, 용사여"

 

 그리하여 나는 왕성으로 향하는 길에 나섰다.

 

 

 ◇

 

 

 며칠이나 흘렀을까, 어느새 눈앞에 왕성이 보여온다.

 호문클루스라던 마왕의 말이 맞았는지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않았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완전 괴물이다.

 물 없이도 살 수 있다니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몸이라도 외형은 인간인 덕분에 아무런 의심없이 왕성에 들어간다.

 

 그리고 왕궁에 도착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들어가느냐, 하는 것인데,

 

 "오, 왔는가, 용사여"

 

 마치 나를 배웅나오듯 왕이 여전히 의자에 앉은째로 3층 높이의 테라스에 나타났다.

 나는 왕을 보자마자 용사의 검을 꺼내고 왕궁의 벽을 발로 차올라 녀석을 베어버렸다.

 새빨간 피가 흐른다.

 너무나도 간단해서 대역이 아닌가 싶을 정도.

 왕을 죽였으니 더 이상 호문클루스는 만들어지지 않겠지.

 나는 웃었다.

 용사라는 자가 왕을 죽이다니 이상한 이야기지만, 마왕이 나이기에 어쩔 수 없다.

 그래, 나는 마왕이니까.

 어느샌가 푸른색이었던 검에 박힌 보석은 왕의 피가 묻은 탓일까,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Epilogue

 

 

 시대는 용과 인간 그리고 마물 등 여러 종족이 공존하는 환상의 시대, 아니, 그렇게 불리운건 어느덧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인간이 자연을 파괴해나가자 마물을 비롯한 묘호[猫虎], 조견[鳥犬], 어인[魚人] 등 많은 종족들이 인간들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용들만은 인간과 다른 종족간의 전쟁을 지켜보며 지는 쪽을 도와주며 전쟁을 계속해나가길 어느새 수천년의 시간이 흘러 번식이 불가능한 용들이 죽어나가 단 한명의 용만이 살아남자 인간들은 그를 꼬득여 자신들을 돕게 하였고 수천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십년도 지나지 않은 시간 내에 모든 종족이 멸종당하고 인간과 마물만이 남은 상황에서 마지막 용이 죽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왕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힘 센 용사를 찾아내 그에게 마왕을 처리하라 명했으나, 용사는 상대의 모습으로 변하는 마물의 꼬임에 넘어가 자신이 마왕이라 착각하고 인간들의 왕을 죽이고 그것만으론 부족했는지 단신으로 모든 인간을 죽여버린다.

 그렇게 세계에서 마물을 제외한 생명체는 전부 사라져 마물만의 세계가 되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