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달......
 붉디붉은 새빨간 달.
 그때는 오로지 그것만이 시야에 박혔는지, 달을 볼 때마다 떠올리는 붉은 달.
 분명 붉은 달은 나를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던 것일테다, 전부 죽여버리라고.


 ◇


 ......
 전부 죽어있었다.
 목이 꿰뚫려 있다던가, 정수리에 구멍이 나 있다던가, 안면이 뭉개져 있다던가, 배로부터 내장이 튀어나와 있다던가, 상반신과 하반신이 나누어져 있다던가, 전부 죽어있었다.
 전부 죽어있는 시체들로부터 시선을 떼내어 하늘을 바라본다.
 거기에 떠 있는 것은 여전히 붉은 달.
 너무나도 붉어서 지상을 붉게 만들 정도인 붉은 달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저 달은 태양이 될 수 없는 것일까.
 분명 언젠가 녀석에게서 들었던 적이 있다.
 달은 아무리 지상을 밝게 비추더라도 태양은 될 수 없어.
 달은 그저 태양의 빛을 대신 전해주고 있을 뿐이니까.
 그러니까 너도---.
 잡념이 흘러들어온다.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버린다.
 그런 것을 생각할 시간은 없다.
 내게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생명을 죽이는 시간뿐이다.

 자, 가자.
 다음의 장소에는 분명 더 밝게 빛나는 생명이 있으리라.

 

 01


 해가 쨍쨍한 오후 2시,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에 태양만이 지상을 밝게 비추고 있다.
 분명 평소라면 거의 누구나 좋아할 날씨다.
 그런데도 모두가 아쉽다는 듯, 하늘을 바라보는 건 분명 날짜의 탓일 테지.
 12월 25일, 누구나가 하늘을 바라보며 눈이 내리길 바라는 특이하다고 하면 특이한, 특별한 날이다.
 그런 금요일의 크리스마스, 어제부터 지금까지 쉴 새 없이 케이크를 파는 고전풍의 빵집 안에서, 케이크를 구경하는 남자가 있었다.
 보기 드문 은빛의 머리칼을 왁스를 발랐는지 앞머리만을 위로 올려세운 남자는 케이크를 사려는지 이것저것 번갈아가며 구경하고 있었다.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는 170cm쯤 되는 키에 하얀 코트에 빨간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오른손에 검집과 같은 것을 들고 있지만, 설마 총도법이 있는 이 나라에서 설마 진검일 리는 없겠지.
 그 때문인지 가게에 있는 손님과 점원들의 눈이 그에게로 향해있지만, 남자에게는 당연한 일상인 모양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생크림 케이크를 가리켜 주문하고는 그걸 왼손에 들고 가게를 나선다.


 ◇


 오른손엔 검집, 왼손엔 케이크를 들고서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를 먹을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웃으며, 아무래도 번화가다 보니 사람이 많은 길을 조심스레 걸어나간다.
 그러는 도중 진동과 함께 스마트폰의 벨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 하필 이런 상황에, 재수도 없네.
 양손을 못 쓰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근처의 상가의 복도에 들어가 케이크를 의자에 내려놓고 앉아, 주머니를 뒤적거려 스마트폰을 꺼낸다.
 발신자 번호로 표시되는 번호는 090-114-7512, 누구지 싶어서 생각해보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ANGEAB 아닐 테고, ANGEL 인가, 이상한 취향의 번호다.

 "여보세요"

 침묵.
 어째선지 전화 건너편의 상대편은 말을 건네오지 않는다.
 장난전화인가, 싶어 끊으려는 찰나, 쿵, 하고 건물이 흔들린다.

 "우와악"

 철퍽, 하는 소리.
 무언가가 뭉개지는 듯한 소리에 뇌리에 붉은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지만, 고개를 흔들어 떨쳐내고 소리가 났던 방향을 쳐다보자, 방금 샀던 케이크가 담긴 상자가 바닥에 떨어져, 그것도 옆으로 떨어져있었다.

 "아-, 미친"

 "다짜고짜 욕을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응?
 케이크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어째선지 전화의 건너편에 있는 상대가 말을 걸어왔다.
 방금까지는 조용했던 주제에.

 "아, 미안. 그쪽한테 한 게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것보다 못 보던 번호인데, 엔젤이라니 취향 독특하네? 아니, 취향은 존중할게. 근데 누구냐?"

 "누구냐뇨, 엔젤인걸 알았으면서도 묻는 겁니까?"

 상대는 마치 자신이 진짜 천사라도 되는 양 말한다.
 말도 안 돼, 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자칭 천사가 말했다.

 "것보다도 지금 수다 떨 때가 아니에요, 쿠로우[クロウ]. 지금 당장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도록 하세요, 지금 당장! 그럼 잠시 후에 뵙죠"

 끊겼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자기 할 말만 해대고 끊다니 예의가 없다.

 "그보다 지가 전화만 안 했으면 이미 집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멍청하네"

 어쨌든 돌아가 보도록 할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득 손이 허전해 아래를 바라보니,

 "아"

 떨어졌던 케이크는 아직까지도 그 상태 그대로였다.


 ◇


 결국, 뭉개졌을 케이크가 담긴 상자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엔 검집을 들어 집으로 향한다.
 앞으로 코너만 돌면 집에 도착한다.
 크리스마스의 바깥은 나돌아다닐 만한 곳이 아니었구나, 란 생각을 하며 코너를 돌아,
 푹---
 검은 모자에 검은 선글라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와 부딪힌다.
 배가 무언가에 찔린 느낌이 들었다.
 남자와 거리를 벌려 배를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내리자, 거기엔 새빨간 피가---

 "아, 죄송합니다. 이걸 어쩌죠. 여기 세탁비-"

 왼손에 막대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남자가 빨간색의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지갑을 꺼낸다.
 아무래도 아이스크림이 옷에 묻은 듯하다.

 "아니, 됐어. 괜찮아. 바지랑 잘 어울리니까"

 남자에게 인사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쳐 집으로 향한다.
 효고현 고베시에 있는 '호텔 몬토레 고베'라는 이름의 10층 호텔이 내 집이다.
 뭐, 한마디로 집 없이 호텔 생활 중이란 이야기다.
 어찌됐든 호텔에 들어가 2층까지 계단을 올라 오른쪽에 있는 현재 거주 중인 세 번째의 문 앞에 선다.
 이미 뭉개졌을 케이크를 바닥에 내려놓고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연다.

 "어라? 열려있네. 크리스마스라고 일찍 끝났나 보네"

 문을 열고 발을 낀 채로 케이크 상자를 집어 들고 방으로 들어선다.

 "나 왔어-"

 어둡다.
 밖은 크리스마스와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도 밝은데, 방 안은 너무나도 어둡다.
 그 어두운 방의 한가운데만이 어둠에서 벗어나 있었다.
 새빨갛게 붉은 것이 놓여있었다.
 그것은 마치 잘 익은 사과와 같이 새빨간 인간의 머리였다.
 덕분에 나는 또 한 번, 케이크를 떨어뜨려 버리고 말았다.
 뭐, 상관없나.
 이미 먹을 사람도 없어져 버렸으니까.

 "의외로 침착하네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아까 전 전화로 이야기했던 여자의 것이었다.

 "음? 아-, 아니아니, 이거 보라고 케이크 떨궈버릴 정도로 당황하고 있거든?"

 뒤돌아봐 여자를 보며 옆에 떨어뜨린 케이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이건 여자라기보다는, 꼬마다.
 키는 155cm쯤 되려나, 나이는 얼핏 봐도 10대.
 근데 무슨 코스프레라도 하나, 머리는 금발에 옷 입은 꼬라지하고는 흰 코트에 흰 치마, 흰 스타킹, 흰 구두, 무슨 병이냐?
 아, 그러고 보면 엔젤이랬던가?
 아무래도 중2병이라도 걸렸나 보군.

 "실례네요. 키는 어쩔 수 없지만 이래 봬도 500살도 넘게 먹은 진짜 천사 견습인데요"

 속마음이라도 읽는지 반박해오는 자칭 천사.

 "아니, 그러니까 진짜라고요"

 "멍청하긴, 견습이란건 진짜라고 말할 수 없거든. 그보다 뭐야, 너가 진짜 천사라고 쳐도 뭔가 이유가 있어서 온 거 아니야? 빨리빨리 말하라고. 아니, 애초에 죽은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너가 전화만 안 했어도 지금 행복하게 케이크 먹고 있을지 모르잖아, 결국 너 때문이란 거 아니냐? 하아-, 이러니까 견습은"

 내가 쉴 새 없이 쏘아대자 천사라는 녀석은 할 말이 없는지 멍때리고 있다.
 뭐, 그야 그렇겠지.
 틀린 말 하나 없으니까.

 "지나간 일은 됐다 치고 뭔가 할 말이라도 있어서 온 거 아니냐?"

 대답이 없길래 멍때리고 있는 천사의 어깨를 툭 건드리자, 앗, 하고 정신이 든 모양이다.

 "그렇네요. 뭐, 별건 아니고요"

 "아, 그래? 그럼 됐어. 바이바이, 여기나 좀 치워줘. 천사니까 해줄 수 있지?"

 천사라는 놈을 놔두고 손에는 검집만을 든 채 방을 나선다.
 앗,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외치는 자칭 천사.
 어딘가의 주소, 아마 거기에 그녀를 죽인 녀석이 있다라는걸까?

 "오케이! 땡큐!"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큰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달려나간다.

 

 02


 스마트폰에 천사가 불러준 주소를 찍어 도착한 곳은 30층 정도로 보이는 빌딩이었다.
 조심스레고 뭐고 대놓고 정문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있는 놈들은 누가봐도 야쿠자, 아무래도 야쿠자 보스가 범인일 테지.
 방문객인 나를 환영해주기 위해 다가오는 놈은 단둘, 나머진 위인가.
 그중에서 뚱뚱한, 둘 다 뚱뚱하지만, 그중에서도 더 뚱뚱한 놈이 묻는다.

 "뭐야, 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쓸데없이 전형적인 대사에 왼손을 들어 올려,

 "오케이, 스톱. 그것보다 너네 보스 어딨냐?"

 녀석의 말을 끊고 묻는다.
 이에 어이없다는 듯 웃는 녀석의 턱을 검집 채로 후려친다.
 단 일격, 죽지는 않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후에 다가오는 남은 놈은 두 다리를 차례로 찌른다.
 넘어지는 놈의 머리채를 쥐어 잡고 묻지만, 대답은 없다.

 "뭐, 말 안 하면 맞을 뿐이지"

 퍽, 하는 목탁이라도 때린듯한 소리와 함께 녀석은 기절한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최상층으로 향했다.
 딩동-, 하고 열리는 엘리베이터의 문 앞에 칼을 든 사내들이 서 있다.
 아마 1층의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닌 듯하다.

 "그러면 좀 도와주러 올 것이지, 매정하네. 그보다 바보와 고양이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더니, 역시 최상층인가"

 "이 자식, 감히 보스 보고 바보라고 한 거냐?!"

 검을 들고 있는 금발 머리의 말라깽이가 소리치며 달려든다.
 손에 든 검집으로 검을 막아내고 한마디,

 "바보라고 한 건 너다? 고양이일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딴 웃기지도 않는-"

 "시끄러워, 좀 자라"

 쓸데없이 칼을 위로 치켜드는 녀석의 명치를 한방 찔러준다.
 아, 아무리 검집이라지만 이번엔 좀 위험했다.
 그러나 다행히 쓰러진 채로 컥컥대는 모습을 보고 안심한다.

 "이 자식이-"

 그 모습을 보고 나머지 녀석들이 한꺼번에 달려들 듯 자세를 잡고---

 "떨어져라, 얘들아"

 "보... 보스"

 뒤에서 들려오는 단 한마디에 의해 길이 열렸다.
 약 30m 거리에 서 있는 남자는 검은 올백의 머리에 검은 콧수염을 기른 30대의 남자였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그 남자가 아무래도 보스인가보다.

 "여긴 무슨 일로 왔지? 복수라도 하려고 온 거면 돌아가라. 우리 쪽 애들을 먼저 건드린 건 너잖아?"

 "뭐? 먼저... 라고? 먼저 그녀를 건드린 건 너희잖아?"

 내 말에 녀석은 마치 멍청한 아이를 쳐다보듯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면 간섭하지 말라고 충고했잖아. 그 년이 뭐라고 지껄였는지는 안봐도 비디오다. 그렇기에 넌 살려주는 거야. 이해했으면 잘 가라 꼬마야"

 "......그렇다고해서 사람을 죽인 자를 못 본척하고 넘어갈 순 없지"

 나의 대답에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여기서 죽어라"

 녀석의 오른손이 들린다.
 거기에 들린 것은 한 정의 권총으로,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방아쇠가 당겨져 총구가 불을 뿜는다.

 "윽"

 탕, 하는 소리와 동시에 나의 왼쪽 눈 위가 고통을 호소한다.
 아무래도 눈썹 쪽을 살짝 스쳤는지, 피가 흘러 왼쪽 시야를 가리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적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오른손을 휘두른다.
 녀석은 휘둘러지는 검집을 왼손에 든 자신의 검으로 막고는,

 "이 상황이 되어서도 검을 안 빼 들다니, 멍청하긴"

 오른손에 든 총을 나의 배에 눌러, 그대로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나는 그대로 쓰러진다.
 녀석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무언가 말을 하더니 그대로 뒤돌아 걸어나간다.
 질질, 끌려가는 느낌과, 땡, 엘리베이터의 소리.
 위잉, 열리는 자동문과, 털썩, 던져지는 신체.
 떨어지면서 머리를 땅에 부딪혔는지 꽤 큰 충격이 전해져온다.
 그렇게 강제로 눕혀진 나의 시야는 그저 위만을 바라봐, 보이는 것은 그저---
 ---달, 그뿐이다.
 ---배로부터 피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메마른 겨울 하늘엔 그저 너무나도 밝게 빛나는 보름달뿐이었다.
 ---피가 부족한 것일까, 졸음이 닥쳐온다.
 아무래도 피가 시야를 가리는 탓일까, 달이 너무나도 붉다.
 ---그런데도 어째선지 붉은 달은 뇌리에 박혀,
 그런 붉은 달은, 아마 전에도---
 그걸로 끝, 시야는 암전됐다.


 ◇


 고층빌딩 사이의 쓰레기봉투가 널려있는 곳에,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누군가를 던져놓고 돌아간다.
 은발의 머리를 지닌 사내는 하얀 코트에 아이스크림이라도 묻었는지, 바지와 같은 색으로 새빨간 얼룩이 져 있었다.
 오른손에는 검집이 하나 들려있어, 자는 상태인 것 같은데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1분 정도 누워있었을까, 남자는 몸을 일으키더니 검집에서 검을 빼내곤 살짝 휘청거리는 느낌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들어간 건물로 향한다.

 "아아, 오랜만이다, 칼. 검집? 그런 거 나중에 녀석이 찾겠지. 나는 사냥이 우선, 알고 있잖아?"

 그것은 마치 칼에게 말을 건네는 듯 보였다.


 ◇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못생긴 놈들 8명이 모여 이쪽을 쳐다본다.

 "뭘 쳐다보냐, 못생긴 놈들이"

 달린다.
 순간 녀석들이 총을 꺼내 쏘아대지만,

 "캬캬, 총인가! 머저리 같은 놈들! 그깟 게 이 몸의 날에 통할 거라고 생각하냐?!!!"

 그딴건 손에 들린 칼이 알아서 처리해줄 테니, 내가 하는 것은 그저 달리는 것뿐이다.
 날아오는 총탄을 칼이 내 팔을 움직여 모조리 베어낸다.
 그사이에 나는 녀석들 한 명의 앞에 도달해,

 "못생긴 얼굴로 살려면 힘들지?"

 남은 왼손의 주먹을 녀석의 얼굴에 처박는다.
 단 한방으로 녀석의 얼굴은 뭉개졌다.

 "아, 이제 좀 괜찮아졌네"

 어느새 칼을 준비했는지 칼로 나를 공격해오는 놈들은 오른손에 들린 칼이 난동부리며 해결한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쓰러진 녀석들을 뒤로하고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향하는 곳은 당연히 30층.
 그 사이에 칼이 떠들어댄다.

 "캬캬, 물건과는 달리 역시 사람은 베는 맛이 있단 말이야. 그보다 요즘 너무 안 부른 거 아니냐? 몇 년 만이냐?"

 "글쎄? 이번으로 열일곱 번째던가?"

 내 말에 녀석은 뭔가 생각하는지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해왔다.

 "아아, 맞아. 저번은 아마 숲 속이었지? 뭐야, 1년 정도밖에 안 됐구만? 캬캬, 이번에도 화려하게 가자고"

 녀석이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도착을 알린다.
 막은 열렸다.
 그럼 이 녀석의 말대로 화려하게 가볼까.


 ◇


 고층빌딩의 최상층, 건물의 내부는 피투성이의 시체로 가득했다.
 목이 잘려나갔다던가, 정수리가 뚫려있다던가, 가슴이 뚫려 심장이 빠져나와 있다던가, 배가 갈라져 내장이 빠져나와 있다던가, 하는 쓸데없이 번거롭게 죽어있는 시체들의 사이에 두 남자가 있었다.
 흑발의 남자는 오른쪽 허벅지가 칼에 관통된 채로 유리창에 기대앉아있었고, 그 앞에 서 있는 은발의 남자는 오른손에 칼날마저도 새까만 검을 들고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그였지만, 아무래도 거의 전부 자신이 아닌 근처에 죽어있는 자들의 피일 것이다.
 흑발의 남자가 은발의 남자에게 물었다.

 "한 가지만 묻지, 이름이 뭐냐?"

 상황상 죽기 직전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다.
 이에 은발의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한다.

 "이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음, 야, 칼. 넌 이름이 뭐냐?"

 마치 진짜로 칼한테 말을 걸듯, 손을 올려 칼을 바라보며 말하는 남자.
 그러더니 칼이 무언가 대답이라도 해주는 걸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카라스텐구[烏天狗]인가. 헤에, 좋은 이름이네. 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그러더니 칼을 내리곤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곤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쿠로우[黒烏]다. 검은 밤하늘의 쿠로, 까마귀의 우. 성은 그래, 열일곱번째의 밤으로 카나키[十七夜]다. 카나키 쿠로우, 지금부터 그게 내 이름이다. 죽을 놈이 알아서 뭐할진 모르겠다만"

 그에 흑발의 남자가 미소 짓더니 대답했다.

 "카나키 쿠로우인가, 좋아. 기억해두지. 네 녀석의 목은 꼭 내가 비틀어줄 테다"

 그 말과 동시에, 쨍그랑, 하며 남자가 기대고 있던 유리창이 깨지며 남자가 추락한다.
 이에 쿠로우라고 자칭한 남자가 밖을 내다보자, 고층빌딩의 현관 앞에 소방서에서나 쓸 거대한 에어백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걸 보곤 쿠로우는 웃으며 중얼거린다.

 "헤에, 재밌게 됐는데. 이걸로 나올 기회가 증가할지도 모르겠는걸?"

 쿠로우는 뒤돌아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사이에도 계속해서 웃으며 걸어나갔다.

 

 03


 그대로 집, 호텔에 돌아와 문을 열었더니, 거기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게다가 어째선지 방은 온통 피투성이의---

 "왜 이렇게 늦었습니까? 청소 힘들었다고요"

 ---착각이었다.
 여자가 혼자서 청소를 마쳤는지 깨끗한 방을 보며, 불평을 말하는 여자를 머릿속을 뒤적여보지만,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기에,

 "너, 누구냐?"

 직접 물어보았다.
 그 질문에 여자는, 하아? 하며 마치 이쪽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건 너쪽이잖냐.

 "배에 상처 난 거 보면 배는 알겠는데, 머리 쪽에도 구멍 났습니까?"

 "글쎄, 구멍이 난 거 같진 않지만, 이상은 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아니, 그보다 누구냐고, 너"

 "정말, 낮에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기억력에 문제라도 있는 모양이죠? 저, 천사예요"

 천사?
 하늘에 있다는 그거 말인가?
 뭐, 보기에 따라선 그렇게 안 보이는 것도 아닌데.
 옷도 죄다 하얗고, 게다가 등 뒤엔 어느새 커다란 날개도 달려있고 말이지.

 "뭐, 천사라고는 해도 견습이지만 말이죠"

 말하면서 웃는 천사.
 어라?
 날개가 좀 작아진 거 같은데, 아니, 많이.
 머리부터 무릎까지 오는 날개가 방금 전의 말로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뭐, 어찌 돼 든 상관없지만.

 "그래서? 천사씨가 여기는 무슨 일로?"

 내 말에 천사는 그제야 깨달은 듯이 말을 나열해나간다.

 "그게 말이죠. 제가 다시 하늘로 돌아가려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응? 도움?"

 "네, 별건 아니고 마왕을 처리하는 일인데요"

 마왕?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요즘 같은 세상에 웬 마왕?
 아무래도 내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모양인지, 천사는 강하게 말해왔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마왕! 그를 처치해야 돌아갈 수 있다니까요?"

 아니, 그건 그렇다 치는데.

 "어째서 나야? 다른 놈들도 많을텐데 왜 하필 나한테 와서-"

 "그야 당신이 용사니까요!"

 ......
 용사?
 내가 마왕과 싸우는 용사?
 천사의 말에 내가 손으로 나 자신을 가리키며, 내가? 라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몇 번이고 크게 끄덕인다.

 "그런가, 난 용사였구나. 여태까지 내가 누군지 몰랐었는데"

 "그건 어쩔 수 없었어요. 용사의 존재가 들통나면 마왕한테 먼저 죽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저희는 일부러 용사가 어느 정도 힘을 갖춘 뒤에 찾아온 거에요"

 그 말에 문득 방금 전의 일이 떠오른다.

 "아! 그럼 방금 내가 죽이고 온 것들이 전부-"

 "네, 마왕의 부하들이에요. 역시 용사님! 뭐, 상처는 입었지만 역시 대단해요"

 상처, 그러고 보면 천사는 치유 스킬이란 게 있지 않나?

 "너, 천산데 힐 같은 거 없어?"

 내 말에 천사는 그제야 깨달은 듯이, 아, 하고 치료 마술을 써주었다. 
 덕분에 모든 상처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오오, 대단한데. 견습주제에"

 히히, 하고 웃는 천사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고 다시 이야기해나갔다.

 "그 마왕이란 녀석의 위치는 알고 있어?"

 "아, 네. 저희 천사를 얕보면 안 되죠. 여기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나는 천사가 말한 장소를 듣고 그녀와 함께 마왕의 성으로 향했다.
 호텔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 주택, 여기가 마왕의 성인가보다.

 "근데 이거 성이라기보다 그냥 집이네?"

 "무슨 소리에요, 이래 봬도 마왕의 성이라고요? 긴장하지 않으면 안 돼요!"

 어째선지 마왕의 성을 욕했는데 천사가 화를 낸다.
 겉모습만 보고 방심하지 말라는 것이겠지만, 왠지 천사의 말을 듣고 나니 성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럼 갈까?"

 "네!"

 용감한 천사의 말에 나는 검을 빼 들었다.

 "캬캬캬, 어째 오늘 밤은 길구만 그래!! 자, 화려하게 가자고!!!"

 "이 카나키 쿠로우가 마왕을 쓰러뜨려 주겠어!!!"

 우선은 성문이 닫혀있길래, 어쩔 수 없이 옆의 창문을 깨뜨리고 들어갔다.
 적막한 어둠을 걸어 2층으로 올라간다.

 "뭐야, 어딨는지도 아는 거야?"

 나의 말에 천사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한다.

 "후후후, 물론이죠! 천사를 무시하지 말라고요"

 그 말에 검, 카라스텐구가 껄껄대며 웃더니 말했다.

 "쿠로우, 너보다 훨씬 쓸모 있잖냐. 저 천사"

 "시끄러, 멍청한 칼"

 마왕의 성이라고 하는데 잡담을 하며 걸어나간다.
 그리고 도착했는지 천사가 2층의 한 방문을 가리킨다.

 "저긴가? 좋아, 이제부턴 나에게 맡기라고"

 "크카카, 너가 아니라 나겠지!!!"

 시끄러운 녀석의 말과 동시에 방문을 발로 차서 연다.
 방 안에는 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흰머리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나처럼 일본도를 손에 들고 서 있었다.

 "흥! 좀도둑이라고 생각했더니, 날 죽일 작정으로 온 모양이지?"

 말하면서 공격해오는 마왕의 칼을 막아낸다.
 챙, 하는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가는 카라스텐구.

 "읏"

 보기엔 별거 아닌 거 같아 보였는데, 역시나 마왕.
 검술 실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마왕이 내 뒤로 따라 들어온 천사를 보곤 입을 열었다.

 "허! 누구의 사주인가 했더니, 네 년이었나? 흥, 고작 애미를 뺐긴 거 가지고 이 난리인가"

 나는 뭔가를 떠들어대는 마왕의 말을 무시하고 달려들었다.
 나와 카라스텐구를 얕보면 안 되지!


 ◇


 그 후 어떻게든 마왕의 목을 베어낸다.
 그걸 보고 있었는지 천사는, 와아! 하며 쫑쫑 달려온다.

 "역시 용사님이에요! 마왕을 이리도 쉽게 처치하다니"

 "하! 별거 아니지. 이런 거 쯤은"

 내가 잘난 척 좀 하자, 카라스텐구가 킥킥대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이끌렸는지 천사도 킥킥대고 웃더니,

 "그럼 고마웠어요, 용사님. 이걸로 저는 하늘나라에 돌아갈 수 있게 됐어요"

 그런 말을 했다.
 돌아갈 수 있게 됐다니 축하해줘야겠지.
 그런데,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야?"

 용사인 나는 마왕을 죽였으니 이제 어쩌면 좋지?
 나의 말에 천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글쎄요, 그건 일단 내일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가볍게 말한다.
 그 말에 나는, 확실히 그게 낫겠군, 이라 대답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작별의 인사를 나눠, 천사는 마왕 성의 창으로부터 그 자그마한 날개를 처음에 보았었던 것처럼 다리까지 크게 넓혀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나는 긴장이 풀린 탓일까,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Epilogue


 병원에 한 남자가 실려 들어온다.
 응급실로 들어가는 환자를 바라보며 간호사 몇몇이 수군댄다.

 "어째서 살인자가 병원에 온 거에요?"

 "그야 다쳤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방금 들어온 환자는 오늘 아침 뉴스 1면에 크게 실린 살인용의자, 마츠시타 쿠로우[松下九郎]였다.
 그는 야쿠자인 쿠로기리[黒霧]조의 빌딩에 단신으로 쳐들어가 전부를 죽이고 그들의 조장의 저택에 잠입해 조장인 쿠로기리 아카토[赤人] 마저도 죽인 용의자이다.
 게다가 쿠로기리 아카토의 재혼한 아내의 딸이 그로부터 도망가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저택의 창문으로부터 뛰어내렸다고 한다.

 경찰이 그를 발견한 것은 쿠로기리저택으로 뒤통수를 세게 부딪힌 듯한 흔적이 있었고 누군가의 총에 맞았는지 배에 총탄이 박혀있어 과다출혈로 쓰러져있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우선 병원으로 데려온 것이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그가 애초부터 이곳에 정신병을 치료하러 다녔었기에 이곳으로 온 것이기도 하다.
 그의 담당 주치의는 3년 전 그에게 이중인격 판정을 내렸다.
 '검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몇 차례나 우승을 해왔던 그는 어느 날 사고가 난 후부터 이중인격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목검만 봐도 성격이 변하는 그였지만 요즘은 점차 나아져 식칼, 커터칼 등의 칼날이 아니면 성격이 변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일부러 진검을 들고 다니게 한 것은 조금씩 진검에 익숙하게 되길 바라서였다고 주치의는 말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그는 깨어났다.
 그가 깨어난 후부터 그의 주치의는 정신치료를 하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가 자신의 칼과 대화를 하고 있다라고 느낀다는 것과 어째선지 상대가 말하는 대로 사물을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걸로 주치의는 그를 정신분열증이라 판단해 정신치료를 계속해나갔다.


 병원의 침대에 쿠로우는 누워있었다.
 멍하니 누워있는 그의 치료가 끝났는지 그의 주치의는 방을 나가면서 말했다.

 "예전에도 말했다고 생각하는데, 마츠시타씨. 아니, 지금은 카나키씨던가. 달은 아무리 지상을 밝게 비추더라도 태양은 될 수 없어. 달은 그저 태양의 빛을 대신 전해주고 있을 뿐이니까. 그러니까, 당신도 거기를 원래의 인격에게 돌려주도록 해"

 그걸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그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