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스위트 남아있나요?"

 

  "오늘은 스위트룸이 모두 예약이 차 있어서요. 그 아래 디럭스로 이용해보시면 어떨까요? 디럭스는 지금 시간이면 5만원이세요."

 

 오후 11시. 일을 마무리 지을 시간이다. 청소 도구를 정리하고, 프론트로 내려와 뒤쪽에 있는 백오피스로 들어왔다. 역사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사람이 그렇게 많이 다니지 않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대면 방을 달라는 사람들이 가득 찬다. 사람은 욕망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의 문전성시를 두고 이 모텔의 지배인인 강만수는 이렇게 평하였다.

 

 "아무리 봐도 대한민국에서 인구가 줄어들 일은 없어 보인단 말이지."

 

 밖이 조용한 것을 보니 일단 마지막 손님까지 모두 받은 모양이다. 형우가 지금 백오피스로 들어오는 것만을 봐도 알 수 있다. 형우는 어떻게 들었는지, 지배인의 말에 토를 달면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에이, 형님. 이거랑 그거랑 같습니까. 그렇게 무책임한 애들은 이런데까지 계획적으로 안 와요. 그냥 집에서 하지."

 

 "그런가?"

 

 지배인은 고개를 끄덕여 대충 대답하고서는 다시 매출장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형우는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 캔을 하나 꺼내 따고서는, 멈춤 없이 그대로 원샷을 들이켰다. 하긴, 손님도 저렇게 많은데 말하는 것만 계속하면 목이 타긴 하겠지.

 

 "아이고, 되다. 어쨌든 이제 끝났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고, 형식적인 손사래가 쳐진다. 어차피 형우는 24시간 맞교대 근무라 지금부터 아침까지 또 밤을 새야 한다. 지금 말하는 건 내가 지금 퇴근을 하니까, 그에 대해서 미리 해 두는 인사 같은거다. 

 

 "그래 임마. 너는 수고했다. 나는 더 수고할란다."

 

 윤기 없는 농담에 나도 피식 웃으면서 음료수 캔을 땄다. 지금이야 땀이 다 식었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에어컨 없는 복도를 돌아다니느라 진땀을 뺐다. 어쨌든 모텔이기에, 생수와 음료수 같은 것은 차고 넘쳐난다. 처음에는 비품이라 괜히 먹으면 안 되겠거려니 생각했는데, 이젠 그냥 아무렇게나 집어먹는다. 육체 노동하는 사람이 물도 제대로 보급받지 못하고 일하면 어쩌겠는가. 어차피 한 방 받았다 나가면 음료수가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 알지도 못한다. 다만 주의해야 될 것은 - 

 

 "야, 그거 망고 단가 비싸다. 적당히 먹어라."

 

 ....보이는 곳에서 마시다 보면 이렇게 지배인이 한 마디를 꼭 덧붙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장부를 계속 들여다 보느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캔 따는 소리만으로 지레 넘겨 짚어 이야기한 것이다. 형우는 기가 차다는 말투로 지배인의 벗겨진 뒷머리를 보며 말했다.

 

 "아, 형님. 망고 안 먹었어요. 뭐 음료수 하나만 먹으면 꼭 그래. 우리 매출 잘 나오잖아요? 이런건 좀 봐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음료수 취식범(?)은 백오피스 문을 열고서는 프론트 쪽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자신이 먹은 망고 캔을 집어 던졌다.

 

 "매출이 잘 나와도, 아낄건 아껴야 수익이 나는 거야. 우리가 예전에 세탁업체 쓰다가 세탁기 사다 왜 돌리겠냐? 지금이야 물값하고 세제값 다 빼고서 이만원 삼만원 차이밖에 안 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어쨌든 이게 다 경영에 도움이 되니까 하는 거 아니겠냐. 작은 것부터 아껴야 큰 데도 틀어막을 수 있는거다, 형우야."

 

 "네, 네. 야, 재혁아! 빨리 저거 정산 맞춰봐!"

 

 형우는 쳐다도 보지 않고 건성건성 대답하고서는 그대로 말을 돌려버렸다. 지배인은 잠깐 고개를 돌려 '저새끼가?'라는 눈빛으로 잠시 형우를 쳐다보다,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민재야."

 

 "예, 지배인님."

 

 "너 그냥 주중까지 쭉 일할 생각 없냐?"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시간이 없어요. 그리고 주중 팀은 따로 있잖아요?"

 

 잠깐 근무시간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금, 토, 일 3일만 이 곳에서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근무시간은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12시간. 당연한 듯이 주말만 되면 꽉꽉 들어차는 커플들을 소화하기 위해서 쓰이는 용병같은 존재다. 그리고 원래 일하는 두 팀이 있는데, 두 팀 다 중앙아시아 - 우즈베키스탄인가? 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걔네 있지. 있기야 있는데, 만약에 너 일한다고 하면, 한명 더 알아보고 사람 차면 그 이반하고 류다하고는 자를려고."

 

 "네? 왜요?"

 

 지배인은 한숨을 푹 쉬고서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너도 알잖냐. 걔네들 제대로 일 못하는거. 지네 나라 말만 하면서 뭔 말만 하면 못 알아듣는 척 하고, 그렇게 방바닥하고 시트에 머리카락 남기지 말라고 해도 가보면 청소를 한건지 안한건지 알수도 없고. 진짜 요새 모텔 오는 사람 많고 청소 구하기 힘드니까 그대로 내비두는거지, 진짜 다 갖다 내버리고 싶다." 

 

 "못하긴... 하죠."

 

 내가 그렇게 깔끔떠는 성격은 아니기에, 만약 내가 봤을 때 지저분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라면 진짜 지저분한 거다. 일을 처음 배울 때 지배인하고 같이 올라가서 방금 말한 이반과 류다가 일하는 것을 제일 처음 샘플로 보았는데, 그 때도 지배인은 청소를 이따위로 해서 되겠냐고 그 둘에게 열불같이 화를 냈었다. 그 때, 마치 둘이 짠 것처럼 전혀 못 알아듣는 표정연기가 작렬하였다. 당연히 지배인은 더욱 길길이 날뛰었고, 내가 이 곳에서 첫 날 배운 것은 '어떻게 하면 혈압을 최대치까지 올릴 수 있는가' 였다.

 지배인은 내가 맞장구를 쳐주자 신이 난 듯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치? 다른 모텔들은 지금 가격이 어쩌고 이벤트룸이 어쩌고 이런 걸로 호객하고 바쁘고 지랄들을 하는데 내가 볼때는 우리는 그런거 신경 쓸 때가 아니에요. 가장 기초부터 되어 있지가 않은데 도대체 무슨 장사를 할 수 있겠냐. 저것들 정신머리를 뜯어 고치든가, 자르고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 되는데, 내가 볼 때는 자르는 게 맞거든. 안 그러냐 형우야?"

 

 형우는 냉장고에서 음료수 캔 하나를 더 꺼내면서 말을 받았다.

 

 "형님, 그러면 구하는 김에 주말에 일할 사람도 하나 더 구하면 안 됩니까? 뭐 민재야 그냥 일한다 치더라도 주말에 재혁이나 상철이 혼자서 프론트 커버치기에는 좀 빡센 것 같은데요. 제가 받으면 모를까."

 

 "어차피 상철이네에서 진환이가 배우는 단계라서 객실 올려보내야 되고, 재혁이는 이제 프론트 배울라면 지금 주말에 혼자 좀 굴려야 감이 선다. 너도 그렇게 배워 놓고서는 왜 위해주는 척이여. 이거 짬 좀 먹었다고 니가 올라가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냐?"

 

 "아, 아니에요 형님. 전 그저 순수하게 재혁이를 위해서..."

 

 "임마, 그리고 음료수 아껴 먹으랬지. 저거 또 망고 깐 거 봐라?"

 

 형우는 잠시 당황한 듯 눈 둘 곳을 모르고 안절부절 못하다, 갑자기 문워크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지배인이 어이없이 그를 뻔히 바라봄에도 전혀 꿈쩍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음료수 캔을 든 채로 발자욱 소리도 없이 프론트 뒷문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얌마, 거기 안 서?!"

 

 지배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형우 녀석을 쫓기 시작했다. 동작은 민첩하였으나 화난 기색은 아니었다. 프론트에서 재혁이가 '또 저런다 저 사람들' 하는 혼잣말이 들려왔다. 나도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도 별 거 없이 끝났고,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아마 저 두 사람은 저렇게 나가서 별 채근 없이 담배나 태우겠지. 나는 뒷문으로 따라 나가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서는 집으로 향했다.

 

 "지배인님, 그럼 저 들어가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