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공간은, 뭐, 내 방이 지금 어떤 꼬락서니가 되었는지 다시 한 번 설명하자면, 졸지에 2층집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천장에 붙어있는 루비의 포스터를 문처럼 이용하여 윗층으로 올라가면, 약 한 평 정도 되는 공간이 콘크리트 벽들로 둘러 싸여 있다. 한쪽 벽에는 침대처럼 쓰는 뭉툭 튀어나온 콘크리트 덩어리가 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실용주의를 넘어서 거의 감옥과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 처음에 만들어 놓았던 것과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너무나 삭막해 보여 이불이라도 좀 줄까 라고 이야기해 보았지만 거절당했다. 아마 본인이 이런 취향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외에 다른 집과 비교할 때 가장 비교되는 점을 꼽자면, 천장이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 처럼 뻥 뚫려 있는데, 비바람이나 다른 물체가 전혀 통과를 하지 못한다. 전에 비 올때 걱정이 되어 구멍을 통해서 위를 보았더니, 마치 유리지붕에 떨어진 듯 빗줄기들은 무언가에 부딪혀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그리고 입는 것 - 지금 이 녀석에 관련된 부분 중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정말, 아무리 생활양식을 최소화하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아니, 사람이 좀 이렇게 깔끔하게 살기 위해서는 씻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옷을 좀 갈아입어야 하는게 아닌가 이 말이다. 패션도 좀 바꾸고. 그런데 이 녀석, 우리 집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옷을 갈아입은 적이 없다. 단색 회색 원피스 단 하나. 그리고 이 녀석, 씻지도 않는다. 마실 물을 제외하고서는 아예 물을 몸에 대질 않는다. 지가 무슨 소금인형이여?

 

 사실 리돌이 처음에 올 즈음 해서 청결에 대한 중요성을 설파한 적이 이미 있다. 같이 사는 입장인데 그렇게 안 씻고 다니면 내가 불쾌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된다 라는 식으로 주욱 일장연설을 했던 것 같다. 그 때 이 녀석은, 그저 미래에서 온 고양이 로봇이 4차원 주머니에 손 넣듯이 만능권총을 꺼내어 방아쇠를 자신의 몸을 한번 훅 훑을 뿐이었다. 그러자, 마치 청소기로 훑은 것 처럼 먼지와 개기름 같은 것들이 싸악 사라져 버렸다. 얼굴빛 또한. 리돌은 달나라에선 이렇게 씻는다고, 마치 자랑스러운 듯이 자기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나 역시 찌뿌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니, 뭐 달나라 스타일 세수는 그렇게 하는거 좋다 이거야. 하지만 아무리 이론적으로 청결하다고 하더라도 직접 물을 대고 씻는 것이 아니기에, 본능적으로 약간 거리감이 들게 되어 있다. 그리고, 집에서야 그렇다 치더라도 밖에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꾸민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그저 내 욕심일 수 있겠다. 하지만 방금 말했듯이, 한 번도 옷을 갈아입지 않은 상태를 주욱 지켜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혐오감이 들게 되어 있다고.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리돌은 그저 TV만 주욱 지켜 보고 있을 뿐이었다. 영화는 함선 위에서 싸우는 해적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거의 절정 단계로 치닫고 있었고, 리돌은 주먹까지 꼬옥 쥐면서 영화를 흠뻑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숨을 쉬며 오늘 저녁때 리돌이 먹을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주방으로 갔다. 가스불은 절대 손 대지 못하게 하였기에, 그저 밥과 함께 단순히 집어 먹을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식탁 위에 올려두면, 저 녀석이 알아서 먹을 것이다. 김, 어제 볶아두었던 감자, 김치. 이런 것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일단 손에 집힌 반찬만을 꺼내어 밥상 위에 두고서는, 대답을 하며 문 쪽으로 나갔다.

 

 "누구세요?"

 

 "성희에요."

 

 아, 성희 씨. 저번에 캐롤라인이 와서, 자기가 원래부터 알고 있던 지인이니 잘 대해주라는 이야기를 하고 갔었다. 덤으로, 리돌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고 있다는 말까지. 하지만 그런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성희 씨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최고의 미인이라는 것. 괜시리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는 접대용이 아닌 진심과 사심이 듬뿍 담긴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시죠?"

 

 그녀는 나의 얼굴을 보더니, 나와는 다른 약간 곤혹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아차, 표정이 너무 과했나? 나는 잽싸게 적당해 보일 법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 생각한다. 내 얼굴을 직접 볼 수는 없으니까. 그다지 효과는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전히 곤혹스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그녀는 나의 말을 받았다.

 

 "저기, 괜찮으시다면 이것 좀 드셔보시라고 갖고 왔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양 손에는 냄비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냄새는...

 

 "닭도리탕인가요?"

 

 성희 씨는 엄청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와, 맞아요! 민재 씨, 음식을 어떻게 냄새만 갖고 맞추세요? 저번에도 그렇고?"

 

 저번에야... 카레를 갖고왔으니 못 맞추는게 이상한 거고 닭도리탕도 냄새가 특이하잖아? 고추장 양념으로 한 음식들이 다 비슷비슷한 냄새가 나지만, 조금만 요리 좋아한다 하면 누구라도 맞출 수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성희 씨는 제일 처음에 우리 집에 떡을 돌리고 난 이후로, 왠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한 요리를  먹어보라고 우리 집에 가져 온다. 내가 말한 대로 저번에는 카레, 그 이전에는 김밥, 그냥 길거리에서 파는 뻥튀기 같은 것도. 나야 이런 미녀와의 교류가 즐겁지만, 솔직히 계속 이렇게 받아 버릇하면 굉장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한 번 올라온 냄비에는 나도 찌개라든가 아니면 다른 반찬 한 것들을 담아서 돌려주기는 하고 있지만, 계속계속 이렇게 주면 좀 그렇지.

 

 "안녕하십니까, 성희."

 

 "아, 리돌 안녕?"

 

 어느 샌가 리돌은 내 옆에 와서 예의바르게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었다. 성희 씨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고. 처음에 떡을 갖다 줄 때만 해도, 마치 당장 꺼지지 않으면 허리를 분질러 버리겠다는 표정으로 뒤에 서 있던 리돌이었지만, 그녀가 갖고 온 시루떡 맛을 보고 난 이후에는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 졌다가, 카레를 먹고 나서는 거의 존경의 눈빛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그 때를 기점으로 성희 씨는 이 녀석에게 말을 놓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먹을 것만 주면 아무래도 상관 없는 모양이다. 

 

 "지난번에 주었던 카레는 맛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리돌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래도 이제 예의 차리는 법은 알게 된 것 같아 다행이다.

 

 "후후, 그래.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네."

 

 그러면서 성희 씨는 나에게 냄비를 들려 주었다. 허허, 참. 부담스럽다니까. 나는 잘 먹겠노라고 대답하며, 냄비를 가스렌지 위에 올려 두었다. 일 갔다 와서 같이 먹든가 해야겠구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 다시 문 앞으로 가려 하는데, 그녀는 내가 문 앞에 오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이어갔다.

 

 "아, 두 분에게 할 말이 있어요. 정확하게는 리돌한테 용무가 있는 거지만."

 

 "말씀하세요."

 

 "저, 리돌을 잠시 데리고 나갔다 와도 될까요?"

 

 "네? 왜요? 물론 본인이 가고 싶다면 문제는 없지만..."

 

 뒤에 생략된 말은 '퍽이나 나가겠다' 다. 방금 전까지 내가 이 녀석하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한 번 들어나 보시라 말하고 싶다. 그랬다면 이런 말이 쉽게 나오지는 않을 거다. 

 

 "아, 다른 건 아니고, 음... 전에 말했듯이 전 모델로 일하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 옷입는데 좀 민감한 구석이 있어요. 그런데, 물론 오지랖이긴 한데,"

 

 라고 말하면서 성희 씨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서는 잠시 끊어가는 타이밍을 가졌다. 헛기침을 한 번 흠흠 하고 나서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 아이, 지금도 충분히 예쁘긴 한데, 좀만 더 옷 잘 입히면 진짜, 엄청 예뻐질 거에요. 제가 올 때 마다 회색 옷, 그것도 통짜 원피스. 이거 이렇게 입는 거 자체가 몸 굴곡이고, 사람 얼굴이고 모두 못 살려 주는 거거든요. 올라올 때마다 계속 보고 있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요. 오늘 저 쉬는 날이기도 하고, 백화점 가서, 얘 옷 좀 골라 주려고요. 그래도 될까요?"

 

 어쩜 이렇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실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방향성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결론은 대동단결이다. 역시 사람 생각하는 거 어딜 가도 다 똑같다.  나는 눈에서 물이 떨어질 것 같은 얼굴을 하며 성희 씨에게 대답하였다.

 

 "성희 씨. 저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제발 이 녀석좀 오늘 꼭 데리고 나가 주세요. 저도 아까 잠깐이라도 


옷 좀 사러 나가자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안 나가겠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리네요. 성희 씨가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보실래요?"

 

 나도 아까 권한 사항이기도 하고, 꼭 같이 갔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녀석도, 알게 모르게 고집부리는 부분이 있다... 기 보다는, 그냥 고집이 세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불도저와 같고, 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 우리집이 2층집이 된것도 그렇고, 예전에 그렇게 내쫓으려고 했건만 부득부득 나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그래도, 혹시 같은 여자로서 이야기를 한다면 무언가 다른 공감대가 형성되어, 어떻게 나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그러기에 성희 씨에게 반신반의하며 지금 리돌의 설득을 맡겨 본 것이고. 
 성희 씨는 눈웃음을 지으면서 리돌을 돌아 보았다.

 

 "리돌, 방금 이야기 들었지? 어떻게 할래?"

 

 아니나 다를까, 이 녀석은 극도로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나는 영화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게 그 히키코모린가 하는 그거냐. 정말 일관성 있는 녀석이로구만. 성희 씨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리돌을 다시 설득하기 위해서 운을 띄웠다.

 

 "에이, 그러지 말고 리돌."

 

 "싫습니다."

 

 "먹을 거 사줄테니까."

 

 "좋습니다."

 

 ...그런 거였냐.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보다 지금 먹을 밥 한 공기가 더 소중한 것이었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먹을 거 사준다니까 한 방에 같이 간다는 녀석이 어디 있어. 부모님이 어릴 때 까까 사준다는 아저씨는 따라가지 말라고 안 가르쳐 줬나? 달나라에서 아이를 인질로 돈을 받는 납치범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방 안, 내 옆에 있던 리돌은, 밖으로 나갈 준비가 끝나 있었다. 내 삼선슬리퍼를 신고서는 어느샌가 문 밖에 있는 금발 아가씨의 팔에 착 달라붙어 있다. 원래 그랬다는 듯이. 아무래도 성희 씨가 나보다 리돌을 다루는 기술이 더 뛰어난 것 같다. 


 성희 씨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왠지 얼굴에 이겼다 라고 쓰여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