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이 집으로 들어와 바로 자기 방 침대를 향해 직행했다. 강찬이는 계속 아까 대전 경기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심각하게 고뇌하고 있었다. 태오가 이 사건에 말려들지 않도록 겉으로 내보이지 않았던 무거운 짐이 매트리스를 향해 눌렀다.

 

문이 닫혀있는 방에서 강찬이 이불을 뒤집어썼다. 최고의 흑마법사인 김초은과 그녀의 서포터인 전청아. 강찬은 그들이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고 확신했으나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말하려고 하면 음기가 머리를 쓰다듬고 주무르는 듯한 강력한 통증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강찬이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한숨을 크게 쉬었다. 이럴 때는 누구에게라도 의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생각에 미치자 강찬은 몸을 일으켜 주연재를 떠올려내며 그녀가 준 쪽지를 꺼냈다. 그곳에 써있는 숫자는 역시나 전화번호였다.

 

강찬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바로 전화번호를 저장한 후 주연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해결책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을 지 알고 있을까.

 

전화 너머에서 연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찬이 다급하고 초조한 마음에 반사적으로 말했다.

"여보세요?"

"이제서야 전화거냐?"

강찬이 말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연재가 말했다. 차가운 성격이어서 늦게 대답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빨리 대답했다고 강찬이 생각했다. 그러나 이럴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 이게 무슨 일인지, 이를 어찌해야 할 지 물어야 했다.

"근데 그게 진짜인 거야? 김초은이랑 전청아가 어둠의 마법으로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 데 이번 대회의 우승상품이 마지막 재료라는 거?"

"당연하지. 마법까지 건 거 보면 몰라? 다행히 네 친구들이 경기가 그 때 끝났으니 망정이지 그 경기가 더 늦게 끝났다면 우린 이미 마법이 완성되어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을 거라고."

사실 강찬도 이미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화가 닿았다는 사실에 몹시 흥분했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말이 먼저 나온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한테 건 마법은 뭐야? 기억을 봉인한 걸 보면 제일력을 이용한 마법인 것 같은데."

"제일력 맞아. 기억을 한 곳에 봉인시켜 결과적으로 잊어버리게 하는 고위마법이지. 근데 그게 중간에 끊겨가지고 겨우 기억이 남아있는 거고."

"근데 가만히보니까 우리들끼리는 대화가 되네?"

드디어 말을 해도 두통이 나지 않는 상대가 생겼다는 것에 몹시 들떠 높은 어조로 말했다. 연재도 그 사실에 안도하며 기뻐했다.

"그 말은 비록 우리들끼리라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지."

"그래서 방법은 있어?"

"아직은. 일단 뭐라도 해보고 있는 중이야."

연재의 말에 강찬이 살짝 기운을 잃었다. 해결책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증발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나도 뭐라도 해봐야 할까?"

"그래. 그러면 뭐라도 해봐. 근데 안 되면 이 방법을 써야 해."

"뭔데?"

강찬의 기대감이 다시 차올랐다. 연재가 대답했다.

"대회에서 이기지 못하게 하는 것. 일단은 네가 1등을 해서 걔네들을 이기는 게 더 빠르겠지. 걔네들도 우승상품을 훔치지는 못하는 것 같으니까."

딱봐도 어려워보이는 방법에 강찬이 살짝 실소를 내었다. 연재가 이어말했다.

"주최측의 보안이 워낙 강하기도 하고 애초에 우승상품은 정식 루트로 얻어야만 효력을 쓸 수 있으니까 말이지. 그래서 네가 이겨야 하는 거야. 김초은 혹은 전청아가 1등에 오르지 못하도록 막는 최후의 수단이지."

뭔가 갑자기 책임이 어깨를 마구 짓누르려는 느낌이라고 강찬이 생각했다.

"그래서 나보고 이기라는 말이지?"

"응. 나는 너한테 떨어졌잖아. 그리고 그게 가장 간단하기도 하고. 그게 아니면 내가 패자부활전에서부터 올라가야 하는데 그게 확률이 더 적단 말이지."

"그럼 다른 방법이 성공하면?"

강찬이 일말의 차선책이라도 찾고자 간절히 말했다.

"그럼 우승을 하지 않아도 막을 수 있는 거지. 나도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그럼 같이 찾아보자. 나도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어?"

"그러지 뭐. 대신에 아주 험난한 방법이라는 건 알아둬."

 

그렇게 얼마 후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바로 시험에 들어갔다. 강찬이 이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기도 하다.

 

강찬이 마법으로 만든 케이지에서 식재료들을 꺼내 손질했다. 앞다리살, 양파, 마늘 등등. 그리고 대파를 꺼내들었다. 참고로 대파는 마법을 무력화시키는 데 자주 사용되는 식재료이다. 그 기원은 사람이 소로 보여 서로 잡아먹게 된 마을에서 대파를 먹었더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내용의 동화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대파의 무력화 성분을 마법 주문을 이용해 최대로 활성화 시킨 후 여느때처럼의 조리과정을 거쳤다. 양념장을 만들고 채소를 썰고 센불에 익힌 다음에 양념장과 채소를 넣는다. 그리고 플레이팅.

 

강찬이 일말의 희망을 안고 완성된 해독제인 제육볶음을 보고 한껏 기대에 절었다. 그리고 간절하게 제육볶음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제육볶음이 입에 닿자마자 머리에 엄청난 고통이 밀려와 젓가락을 놓치고 말았다. 기억을 봉인하던 마법이 무력화되기 시작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아팠다. 미칠듯한 통증이었다. 마치 트레일러가 머리 위를 깔아뭉개고 지나가는 듯이 깨질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살려줘, 라고 강찬이 괴로움과 고통에 신음하며 몸부림쳤다. 그리고 마음을 겨우내 가라앉히고 다시 한 입 먹으려고 했다. 그러나 혀끝에 닿자마자 아까의 그 고통이 똑같이 반복될 뿐이었다.

마법이 해제되는 과정의 고통만 버텨내면 마법을 풀 수 있를 터인데 그러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의 양지에 진실을 알리기 전에 무덤의 음지에 내가 먼저 묻힐 지경이라고 강찬이 절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