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각자 다른 세 명의 여자와. 너무 통속적인 결말이잖아, 이건. 나는 배신감보다는 실망감이 들었다. 이런 남편이라니, 이런 상황을 나에게 던지고, 이런 걸 받아들이라니.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고 다른 여자와 남편이 키스하고 있는 사진을 차근히 뜯어보았다. 어두운 밤 가로등 아래 단발의 여자와 차 안에서 짙게 키스하는 남편, 아파트 입구에서 남편의 목을 감싸고 키스하고 있는 긴 생머리의 여자, 모텔 앞에서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키스하는 보브컷의 여자. 생각할 거리고 뭐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불륜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도대체 남편에게서 뭘 원했던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가슴을 졸였나 생각했다.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랐었고, 이왕이면 좀 더 납득할 수 있는, 그럴싸한 이유 같은 게 나타나길 바랐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애초에 내가 어쩐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사진들을 다시 우편봉투에 집어넣고, 그것들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가위를 가져와, 지갑에 있는 남편의 카드를 두 동강 내었다. 그렇게 하자 조금은 무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한 것 같았다. 남편과 이어진 무언가를 드디어 잘라낸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나의 시간은 그 이후로 완전히 표류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저 흘러가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남편의 불륜을 확인한 것보다는 그것이 더 힘겨운 것으로 다가왔다. 나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럴 듯한 목적을 손아귀에 쥐지 못했다.

   그리고 폭풍은 그렇게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엔 괴상한 장식인줄 알았다고, 그 지점의 KFC 아르바이트생은 말했다. 매니저는 전날에 가게 문을 닫을 땐 그런 게 없었고, 아침에 개장을 준비하면서 발견했다고 했다. 새벽 시간대의 CCTV를 확인해보자, 검정 우비를 푹 뒤집어쓴 사람이 검정 봉투를 들고는 가게로 접근하는 것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켄터키 할아버지 앞에서 멈춰 서서는, 봉투에서 준비해온 물건을 꺼내 켄터키 할아버지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리고는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그 사람이 켄터키 할아버지의 목에 걸고 간 것은, 잘라낸 사람들의 발목에 신발을 신겨서 그것들을 철사로 꿰뚫어 이은 것이었다.포도송이에 포도알들이 매달려 있는 모양처럼 말이다. 잘라낸 발목에 신겨진 신발의 종류는 다양했다. 명품 구두, 시장 신발, 한정판 스니커, 쪼리, 짝퉁 운동화. 발목은 총 일곱 쌍이었고, 저마다 특징들이 확실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나무 팻말이 걸려 있었다. 거기에는 빨간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의 발은 누구를 위해 뛰는 거지?

우리는 목적지를 잃은 양 때야.

열심히 달리지만 우리의 몫은 없어.

 

 

   누군가는 있는지도 몰랐고, 누군가는 그저 쓱 보고 지나치고, 누군가는 신기하다는 듯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누구도 거기에 손을 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훑어보고, 지나칠 뿐이었다. 오후에 찾아온 지점장만이 그 광경을 보고 기겁했을 뿐이다. 이거 어떤 새끼가 이래놓은 거야. 지점장은 직원들에게 화를 냈고, 직원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점장은 매니저를 찾았다. 매니저는 뭐가 문재야, 하는 표정으로 지점장 앞에 섰다. 저거 어떻게 된 거냐고. 지점장이 매니저에게 따지자 매니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점장이 해 놓으신 거 아니었어요? 지점장은 버럭 화를 냈다. 저런 걸 왜 해 놓냐 이 새끼야. 전번에 할로윈 때 조리실에 가짜 피 뿌려놓고 배에 칼 꽂고 누워있던 게 누군데요. 지점장님 무서운 거 좋아하시니까 이번에도 장난치신 줄 알았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걸 떡 하니 방치시키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럼 치우면 되잖아요. 매니저는 그렇게 말하곤 밖으로 나가서, 목에 걸려있던 발목 뭉치를 들고는 조리실로 다시 들어왔다. 왜 이렇게 무거워. 매니저는 투덜거렸고, 들고 온 발목 뭉치를 지점장의 눈앞에 툭 하고 던졌다. 그러자 철퍽, 하는 불길한 소리가 조리실에 울려 퍼졌다. 순간 모두가 조용해졌다. 차분히 내려앉은 공기 속에서 직원 중 하나가, 이거 잘린 단면이 너무 리얼한데요. 라고 말하면서 발목 뭉치로 다가갔고, 잘린 단면을 쿡, 하고 찔러보았다. 새빨간 핏물이 그 직원의 검지에 묻어나왔다. 그 직원은 공포에 질려 뒤로 자빠지면서 말했다. 씨발, 이거 진짜 사람이잖아. 그리고 가게에 있는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같은 날,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는 노란 우비를 입은 사람 두 명이 낑낑거리면서 둥그런 판때기를 옮기며 나타났다. 그들은 광장 중앙에 그것을 내려놓고는, 재빠르게 사라졌다. 둥그런 판때기 위에는 점토로 표현한 핏물 같은 불길과, 오만 원 뭉치를 쥐고 있는 손들이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눈길로 슬쩍 훑고는 자기의 발길을 빠르게 옮겼다. 둥그런 판때기 앞 쪽에는 기다란 명패 같은 게 붙어있었는데, 거기에는 깔끔한 흰색 글씨로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너희들이 그 불구덩이 속에서 잡으려고 하는 것을 봐.

거기에는 썩은 동아줄조차도 안 달려있잖아.

 

 

   그것은 한동안 사람들에게서 시선만을 받다가, 이윽고 한 노숙자에 손길에 닿게 되었다. 그 노숙자는 그 둥그런 판때기를 유심히 보더니, 손들이 쥐고 있는 오만 원 짜리를 꺼내려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멈춰 서서 노숙자가 오만 원 짜리를 빼내려는 것을 지켜보았다. 노숙자는 자기가 잡고 있는 손의 감촉들이 소름 돋게 시체 같긴 했지만, 잘 만든 모형이겠거니 했다. 뭐가 이렇게 안 빠지는 거야. 오만 원 짜리는 계속해서 북북 찢어졌고, 노숙자는 헥헥거리다가 빼내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찢어진 지폐조각을 들어서, 햇빛에 비춰보았다. 그러자 종이 속에서 신사임당의 모습이 슝하고 떠올랐다. 노숙자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신 내림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온 몸을 덜덜덜 떨어댔다. 그리곤 그 둥그런 판때기를 번쩍 들어 올리고는, 빠르게 달려 나갔다. 무게 때문인지 노숙자는 계속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계속 집어 들고는 달려 나갔다. 팔꿈치와 무릎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촬영하고, 동물원의 동물 바라보듯 보았다. 누군가가 신고를 했고, 의경들이 달려 나와 노숙자를 진정시키려했다. 아저씨, 아저씨, 진정하세요. 그래도 노숙자는 계속해서 달렸다. 계속해서 넘어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일어났다. 의경 한 명이 노숙자의 몸을 붙잡았다. 그러자 노숙자는 의경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이빨들이 뿌리 채 뽑혀 나가 바닥으로 투두둑 쏟아졌다. 의경들은 노숙자를 향해 사정없이 곤봉을 휘둘렀다. 노숙자는 한참 동안을 저항하다가, 둥그런 판때기를 꼭 끌어안고는 등으로 곤봉세례를 견뎌내었다. 의경 다섯 명이 들러붙어서야 그 판때기에서 겨우 노숙자를 떼어낼 수 있었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노숙자는 악을 쓰며 그렇게 말했다. 두 손을 묶고 두 다리를 묶어도 계속해서 버둥거렸다. 지원 병력들이 도착해서 사정을 물어보고, 그 둥그런 판때기를 쳐다보자 노숙자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그거 내 거야, 내거라고, 이 새끼들아! 보다 못한 의경 중 한 명이 손날로 노숙자의 뒷덜미를 세게 쳤다. 그제야 노숙자는 잠잠해졌다. 의경들 중 한 명이 그 노숙자처럼 손 안에서 오만 원짜리를 꺼내려고 애를 썼다. 이윽고 한 장을 빼내어서 햇빛에 비춰보고는, 야, 이거 진자 오만 원짜리야, 진짜 오만 원짜리라고! 라며 아리스토텔레스마냥 자신의 발견을 주변의 동료들에게 알렸다. 그러자 거기에 있던 모두가 그 판때기에 달려들었다. 혼돈이 그 둥그런 판때기 일대를 점령하고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의경 중 한 명이 둥그런 판때기에서 떨어져 나온 손목을 주워들고는, 이래저래 살펴보다가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동료들에게 말했다. 야, 이 미친놈들아, 그거 진짜 사람 손목이야, 진짜 사람 손이라고! 그러나 동료들에게는 공기의 색깔이 그러하듯이 인지할 수 없는 없는 속성의 소리였다. 그 의경은 동료들의 광기를 잠시 마주하더니, 자기 품속에 손목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인파가 드문 곳으로 달려가서, 손이 쥐고 있는 오만 원 짜리를 꺼내려고 돌로 손목을 마구 으깨어댔다. 그 둥그런 판때기가 불러온 혼돈은 아주 오랫동안 불타오르다, 어렵사리 진압되었다.

   이 사건들의 전말은 조각조각 나뉘어져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번져나갔다. 촬영한 동영상들, 사건, 근처 목격자들의 게시글. 한국 뿐 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까지 이 사건을 인지하는 데에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여과 없는 현실의 폭력과 혼돈에 사람들은 대책 없이 흔들렸다. 무수한 추측들이 난무했다. 테러집단의 소행이다. 음지의 단체에 의한 경고적 메시지다. 정신 나간 부자가 벌인 일종의 소동이다. 동기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몇 가지에는 사람들이 공통된 의견을 제시했다.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 분명히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이라는 것. 사람을 죽였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 이 범행의 주모자는 말도 안 되게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분명히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추가적인 범행이 더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실제 사람들의 신체 부위가 이 범행에 사용되었다는 사실보다는, 범인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에 더 주목했다. 분명히 비윤리적인 방식이지만, 설치 ‘미술’이라고 인식하고,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데에는 더 없이 성공적이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종교단체에서는 악마의 소행이었고, 세상이 악에 물들어있다는 징표였다. 경찰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이 사건의 갈피를 쉽게 잡지 못하고, 어울리지 않은 때에 우비를 입은 사람을 발견할 시에는 반드시 신고할 것만을 당부하며 반드시 범인을 검거할 것이라는 텅 빈 약속의 말만을 뱉어댈 뿐이었다. 지구상에 있는 모두가 이 사건을 들었고, 보았고, 각자의 방식대로 소비했다. 나는 바텐더에게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바텐더는 이렇게 답변했다.

  「지나가는 폭풍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기록으로 남고, 종종 언급되겠죠.」

   장마철에는 조용히 집에 있는 게 제일이에요. 라고 덧붙이며, 바텐더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바텐더의 말이 맞았다. 어떤 큰 사건이든, 직접 내가 겪지 않는 이상 없다고 생각하면 없었던 사건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직접 겪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러나 나의 직감은 그냥 흘러가기만 하는 폭풍이 아닐 것이라고,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온통 그 사건 이야기뿐이었다. 어느 채널이든 마찬가지였다.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꼭 그 얘기를 꺼냈다. 그러다가 자기들끼리 한참동안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각자의 의견을 나름 종합하여 그 사건에 대한 평을 내렸다. 그리고 꼭 한번씩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의미로든 참 대단한 사람이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 8시가 되자 새로운 정보가 보도되었다. 두 범행에 사용된 손과 발은 7명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으로, 손과 발의 DNA가 일치하는 것이 7쌍이었다고 알렸다. 손과 발의 절단에는 5시간 정도의 시간차가 있으며, 발목을 먼저 절단했다고 했다. 그 후에 손을 절단했는데, 손을 자른 상태에서 돈을 쥐게 만든 것이 아니라, 손에 돈을 쥔 상태에서 자른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발목이 잘린 상태에서도 5시간 동안 생존해 있었고, 분명히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손을 절단하는 잔학무도한 방식을 사용했음을 밝혀냈다고도 알렸다. 현재 경찰은 현재 신고가 접수된 실종자들 중에서 어느 한 시기에 동시에 실종된 이들을 중심으로 행적을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전국에서 발생한 실종자들의 주변사람들을 패닉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사실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어떤 남성이 발목들 중 여성의 발목에 신겨져 있던 명품 구두가 실종된 여자 친구가 실종된 날에 신던 것과 같은 모델이며, 발 사이즈조차 비슷하다고 말하면서 그저 흥미진진한 사건으로만 생각하고 댓글을 남기던 이들에게 욕을 퍼부어댔다. 사람들이 비아냥거리자, 그 남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거기에 있는 손목이랑 발목이 니들 가족이어도 너희들이 이렇게 구경만 해댈 수 있을 것 같냐, 라고. 실종자들의 가족들은 자기의 가족이 희생의 대상이 아니길 바라면서 감식반에 DNA 일치 결과를 알 수 있을 만한 것들을 보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나고 이틀 뒤, 찾을 테면 찾아봐라, 더 이상 지체할 시간 따윈 없으니까, 라고 말하고 싶은 듯이 다음 사건은 발생했다. 대전의 어느 한 공원, 풀밭 한 가운데에는 마네킹 아홉 구가 자세를 취하고서 자리하고 있었다. 마네킹 일곱 구는 양손으로 유리통을 들고 있었는데, 그 유리통에는 눈과 귀, 그리고 뿌리 채 뽑힌 혓바닥이 포르말린에 잠긴 채 담겨있었다. 그 마네킹들은 일렬로 서서, 나머지 마네킹 두 구를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다. 마네킹 두 구는 서로를 마주하고 서 있었는데, 한 마네킹은 포장된 선물상자를 들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마네킹은 한 손에 수술용 메스를 쥐고 있었다. 그것들은 산책하는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다가,공원관리자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원관리자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마네킹들이 일제히 들고 있는 유리통 안에 담긴 것을 보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맞았음을 알아차렸다. 공원관리자는 공포에 질려서,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켜가며 경찰에 신고를 했다. 신고를 하는 도중에 핸드폰을 세 번이나 떨어뜨렸다.경찰이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오는 동안, 공원관리자는 호기심이 그의 귀에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저 상자 안에는 뭐가 들었을지 궁금하지 않아? 그 살인범이 저기에 무엇을 준비했는지 말이야. 너가 그걸 최초로 확인하는 거야. 분명히 열면 위험하다는 것을 공원관리자는 알았지만, 호기심이 속삭이는 소리를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그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고, 공원관리자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선물 상자를 들고 있는 마네킹에게 다가갔다. 마네킹이 들고 있는 상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질긴 줄들로 너무 여러 번, 세게 묶여 있어서 손으로는 풀 수 없었다. 공원관리자는 다른 마네킹이 들고 있는 수술용 메스를 쥐어 들고는 상자를 감싸고 있는 끈을 잘라내었다. 그리곤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으며, 박스의 뚜껑을 열었다.

   경찰은 현장에 도착해서 공원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공원관리자는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경찰은 생각했다. 뭐야, 허위신고인가. 요즘 들어서 그 사건 때문에 온통 난리였던 것이다. 장난 전화에, 자기가 범인이라는 허위 자백에, 실종자를 어서 찾아달라는 주변인들의 성화에 3일 내내 밤잠을 설친 상태였다. 그러나 신고자의 목소리로 보아 그냥 넘기기라도 하면 상관에게 된통 깨질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만에 하나 진짜일 수도 있지. 경찰은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면서 인파가 한적한 평일의 공원을 걸어 다녔다. 경찰의 눈에 먼저 띈 것은 마네킹들이 아니라 메스를 쥔 채로 풀밭에 누워 기절해있는 공원관리자였다. 메스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이 시간에 공원에서 손목을 긋는 미친놈이 다 있네, 노인네들은 진짜 시한폭탄이라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경찰은 공원관리자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재빨리 공원관리자의 손목을 확인했다. 그러나 손목에는 어떠한 상처도 없었다. 경찰은 어리둥절해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경찰은 자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마네킹들을 인지했다. 유리통 안에 담겨있는 것들을 보고, 경찰은 공원관리자가 신고자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경찰은 바로 자기의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열려 있는 상자에 담겨있는 내용물을 확인하곤, 풀밭으로 달려가 수차례 구토를 해대었다. 박스 안에는 코팅된 종이 카드 하나와, 사진 7장이 들어있었다. 종이 카드에는 혈액으로 쓴 글씨가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희들이 가진 건 그게 전부야?

그런 걸로는 너희가 정말 원하는 건 얻을 수 없을 걸.

정말로 원하는 건 그런 걸로 얻는 게 아니야.

 

 

   상자 안에 담긴 일곱 장의 사진에는 벌거벗은 사람들의 나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거기에 찍힌 사람들은 눈이 뽑혀있었고,귀가 잘려있었고, 머리카락이 모두 밀려있었다. 잘린 손목과 발목의 단면을 앞으로 내보인 채 버둥거리면서, 입을 크게 벌리곤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그들의 입은 혓바닥이 없기 때문인지 더더욱 깊은 심연을 담고 있었다. 지혈해 줄 붕대 한 조각 없이 그대로 노출된 그들의 상처에서는 새빨간 혈액들이 싱그럽게 솟아나오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일부 사람들에게서 ‘생각해 볼만한 메시지를 던지는’ 살인범의 영역에 있던 이 사건의 주모자는, 일곱 장의 사진을 공개한 것으로 완전히 미친놈의 영역에 자리했다. 일곱 명의 사람을 죽여 놓고 절단하는 것은 이해의 영역이었으나, 일곱 명의 사람을 살려놓은 채로 절단해 나가는 것은 공포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사진을 공개함으로서 이 사건의 주모자는 새로운 사실을 간접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공표한 것이었다. 나를 찾아내지 못하면 계속해서 이 일곱 명을 이 상태로 방치하겠다. 라는 사실을. 이 사진의 실체를 접한 모든 이들이 아우성이었다. 당장 찾아내라, 당장 찾아내서 이 사건을 종결시키고, 이 미친 짓을 멈추어라.한국의 공권력이 얼마나 약해빠진 것이면, 일곱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납치를 당해 고통을 받고 있는 이런 커다란 사건의 주모자가 보란 듯이 날뛰어도 수사에 전혀 진전이 없고, 그럴싸한 대책 하나 내놓지 못하느냐, 외국의 힘이라도 빌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주모자를 비난했다. 집회를 열었고, 경찰을 믿을 수 없으니 국민의 힘으로라도 수사를 해야 한다는 단체가 나타나서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다. 정말 종이 카드에 적힌 그대로였다. 그들이 가진 것들은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것으론 나를 잡지 못해. 출제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음에도, 문제를 풀려는 이들은 그러한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불나방처럼 그저 불 속으로 뛰어들기만 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사람들의 분노는 점차 무력함으로 치환되어갔다. 살인 ‘사건’ 이라기보다는, 마치 천재지변 같은 취급을 받았다. 지진, 해일, 낙뢰처럼 ‘어쩔 수 없는 것’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그러나 사건의 주모자는 천재지변과 명백히 다른 점을 가지고 있었다. 의도가 있고, 목적이 있고, 무엇보다 말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그 사실조차 잊은 듯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스스로 밝혀낸 점이 드디어 하나는 나타나게 되었다. 피해자 중 한 명의 신원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피해자는 40대 초반의 남성으로서, 택시 운전기사였고, 30대 후반에는 꽤나 재력이 있던 중소기업의 임원이었다. 그러나 사장이 기업의 적자를 주주들에게 숨기고 있던 것이 적발되면서 기업은 한 번에 신용을 잃게 되었고, 사장은 채무자들을 피해 해외로 도주했다. 그리고 피해자는 연대보증으로 인해 사장이 지고 있던 채무를 고스란히 넘겨받았다. 그의 모든 재산은 압류되었으며, 배우자에게 이혼을 당했다. 그리고 빚을 갚아 나가기 위해 개인택시를 운용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던 사람이었다. 그의 가택을 수사하던 중, 경찰은 이런 편지가 책상 서랍 속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손으로 작성한 것이었고, 필체 또한 평소 피해자의 필체와 동일한 것이었다.

 

 

20XX, XX, 19.

나는 그에 의해 선택받았다. 그는 나에게 당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절대로 그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 고통이든 견뎌낼 것이다. 나는 고통 속에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위대한 과정 속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나는 추락해가는 이 사회에서 그의 선택을 받아 구원을 손에 넣은 것이다. 나는 드디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구원의 문 앞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