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서해안의 안개는 손에 닿을 듯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들이 나오자 마자 불이 꺼진 조개구이집을 나온 두 남녀는, 말없이 안개를 헤치고 인적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라기 보다는, 이 해안가에 이미 인적은 없었다. 어디선가 낙엽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그들의 발 앞에 구를 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담해 보이려 무던히도 애를 쓰는 그의 손 끝은 떨림을 잘 참아내고 있었다. 걸음은 계속되고 있었다. 안개는 그의 표정을 가리는 데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와 상응하는 이유로, 그 역시 자신의 옆에서 고개숙여 걷고 있는 여자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안개 입자가 하나 하나 세세하게 잡힐 듯한 얕은 불투명 속에서, 아직까지 영업을 하고 있는 해안가 선술집 일렬 횡대의 강렬한 불빛은, 밝았다. 야속하리만큼. 차마 여자의 얼굴을 쳐다 볼 수 없었던 그는 멀리 바다를 보기로 했다. 보일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태양과도 같이 남자의 표정을 생생하게 내려쬐는 그 불빛의 군집은 저 멀리 파도가 밀려오는 곳을 비추기엔 너무나도 미약했다. 그나마 보이는 뚝방 아래 갯벌은 아까 전까지 물이 차 있었다는 것이 이상할 만큼 메말라 갈라져 있었다. 그 둘에게는, 걸음이 더 필요했다. 더 멀리, 더 어둡게.

 

  불야성을 뒤로 하고 접어든 곳은 가로등의 숲이었다. 아까까지 그들의 시야를 어지럽히던 따가운 백열등의 가시는 저 멀리 사라지고, 여전히 그들의 옆으로 펼쳐져 있는 메마른 갯벌이 어둠으로 그들을 두르고, 반대쪽으로는 안개에 묻혀 포근하게 느껴지는 은은한 빛무리만이 그들의 다른 한 면을 둘러쌌다. 방둑 쪽으로 걷고 있던 여자가 먼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어둠 저편에 묻혀있는 수평선을 찾는 듯이 모호한 시선을 저 너머에 두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남자도 그 옆에 섰다. 바닷가답지 않게 바람은 없었지만 밤공기는 스산했다. 남자는 자신의 윗옷을 벗어 여자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둘 사이에 마치 안개와 같이 놓여 있었던 침묵을 먼저 깬 건 그녀였다. 다시 고개를 숙인 채로 웅얼대듯이 말하는 그녀의 말을 한 글자도 놓치기 싫은 듯이, 남자는 그녀의 옆으로 바싹 다가갔다.

 

 때로는 긍정하듯이, 아니면 고개를 저으며, 침묵이 이어질 때마다 다시 쳐다보는 검은 바다는 자신의 모습을 여전히 보여주지 않았다. 여자는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혹은 더 깊이 고개를 숙이며, 때때로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갔다. 여자의 호흡이 계속해서 거칠어지고, 입에서 나오는 말의 크기가 점점 더 고조되가던 그 때, 그녀는 서 있던 그대로 뚝방에 주저 앉았다. 고요한 적막을 깬 커다란 오열의 파열음만이 바다 저 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는 끊임없이 온몸으로 눈물을 떨구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주었다. 지금까지 짧은 긍정과 부정의 의미만을 표시했던 그의 입에서 조용히, 노래처럼 감싸안은 그녀의 귓속으로 이야기를 흘려넣기 시작했다. 천천히, 부드럽게.

 

 안개는 모든 것을 포용했다. 부드럽게 내리깔리는 가로등의 불빛 역시 여전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흐느낌은 그의 이야기처럼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잦아들었다. 상호간의 독백이 끝나고, 이제 서로간의 이야기로 그 자리를 채워 나갈때 즈음,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검은 바다 저 편으로 파도소리가 두 남녀의 가사에 맞추어 배경음악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살풋이 어색한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던 두 남녀는 잠시 멍하게 그 소리를 감상하였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이 들고 있던 카메라로 여자를 찍기 시작했다. 자신의 얼굴상태가 지금 어떤지 이미 잘 알고 있는 여자는, 아까보다 더 큰 소리를 지르며 남자의 셔터를 피하기 시작했다. 마치 술래잡기라도 시작한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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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4|작성자 OK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