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한다 새끼야-3화


조선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한다 새끼야-5화


음? 내가 뭘 들은거지? 혼인? 내가? 


"왜 그리 얼어있소, 경?"


"에... 그것이..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그렇사옵니다."


아니, 근데 누구랑? 주상 전하가 나하고 맺어줄 만한 여인이 있나?


"실은 짐의 셋째 누이가 헌사코 혼인을 거부하다 경의 행적을 듣고 바로 혼인하자고 하였소. 상왕 전하께서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허락하셨지. 짐 또한 마찬가지고."


공주 자가가? 왜? 왜 나지? 


"경의 표정을 보아하니 왜 경이 선택되었는지 모르는 얼굴이구려. 실은 짐도 잘 모르겠소. 누이가 어릴 때 부터 독특하긴 했지만... 뭐 좋은게 좋은게 아니겠소? 어차피 경은 평생 짐과 일해야 할텐데 말이오."


오, 그건 좀 무섭군.


"아! 중전이 그대를 찾소. 퇴청하기 전에 교태전에 들렀다 가시오."


교태전이라고? 그렇게 깊숙한 곳까지? 아 진짜 뭐지?


* * *


"중전 마마, 소신 좌의정 장영실, 분부 받고 대령했나이다."


"어서오세요, 경. 명성이 자자한 경을 보니 반갑네요."


"황공하옵니다. 그런데 소신은 무슨 일로 찾으셨사옵니까?"


"아, 잠시 확인할께 있어서요. 참, 고개를 들어도 좋습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중전마마는 젋지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우아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감정기복이 크지 않은 사람인 듯 하였으나, 오늘은 웬지 모르게 옅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음, 경.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잠시 눈을 감고 움직이지 마세요. 아시겠습니까?"


"예, 마마.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이상한 명이었지만 윗사람이 까라면 까야지. 눈을 감고 있는 사이,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치마자락이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게 여자가 웃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사라졌다. 아마 그 여자는 다시 나간 모양이었다.


"이제 눈을 떠도 좋습니다."


"방금 그 분은 누구십니까?"


"음, 우리 언니였어요."


갈수록 이상해졌지만, 그려려니 하고 넘어갔다.


"손에 가지고 계신 그것은?"


"아, 이거 받으세요. 언니가 전해주라고 한 서신입니다."


천축국의 성인은 작물을 내주고 금강석을 받아간다.


"이게 무슨 뜻인지 경은 아나요? 언니는 가르쳐주질 않아서.."


"예... 알 것 같사옵니다."


무슨 뜻이긴, 간디가 다이아몬드 내놓으라고 지랄하고 있다는 거지.


이젠 뒷목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이곳에, 나 말고 또 다른 현대인이 있다.


* * *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혼인 날이 됐다. 왕실도, 우리 집안도 급했는지 절차는 순식간에 진행됐다. 왜 내가 이 나이까지 결혼을 안했냐.


1. 나이가 어릴 때 결혼하기엔 죄짓는거 같아서

2. 일이 바빠서


그래서 미루고 미뤘더니 이 나이가 됐다. 어쨌거나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완전 늦은 결혼을 하는 내 심정은ㅡ거지같았다. 무섭기도 했고. 


그러나 교배례 때 신부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런 감정이 싹 사라졌다. 신부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다 때려치고 신부를 끌고 신방으로 들어갔다. 주위에서 당황하는 목소리와 함께 "껄껄! 신랑이 첫 눈에 반했나보구먼!"따위의 소리가 퍼졌으나, 그딴거 신경 쓸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야! 니가 왜 여기있어!"


"넌 니가 왜 여기 떨어진지 알아?"


"아니!"


"근데 나는 그걸 어떻게 알아 빡대가리 새끼야!"


아, 그러네?


내가 혼인하기로 한 것은 태종대왕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딸, 경안공주였으나ㅡ내 앞에 있는 건 15년지기 소꿉친구였다. 아 씨, 그러니까 간디 드립을 쓸 수 있었겠네. 근데 얘는 공주면서 용케 결혼을 안했네? 근데 왜 하필 나야?


"야, 근데 왜 하필 나야?"


"그럼? 니가 내 성격을 모르냐? 내가 평생 남자를 모시고 살 성격이냐?"


그 한마디에 납득해버렸다. 얘는 남자를 바꾸면 바꿨지 지가 바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아, 그리고. 나 애는 안 낳는다?"


"뭐 그러던가."


나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18년 동안 볼 거 못볼 거 다 보면서 컸는데 그런 감정이 생길리가. 


"아 씨. 개 피곤하네. 나 잔다?"


그때 훌륭한 생각이 떠올랐다. 얘도 대학생이면 웬만한 관리들 보다는 훨 나을텐데? 거기다..


"야. 너 혹시 문명 해봤냐?"


"어. 왜?"


금상첨화네. 넌 내일부터 나랑 같이 일한다. 그렇게 건전한 하루가 지나고, 난 이 웬수와 같이 등청했다.


* * *


하루가 끝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축하 인사를 해서 받아주고, 주상 전하가 놀리는 걸 한 귀로 흘렸다. 앞으로는 부인과 등청해 일하겠다고 선언하고 주상 전하와 상왕 전하가 윤허하신 후 뒤집어지는 신료들을 구경하니 곧 퇴청할 시간이 되었다.


"야."


하루만에 찌든 친구놈이 말했다.


"뭐."


"너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냐?"


"너하고 나 빼고 이 나라에 이 시스템 쓸 수 있는 사람 있냐?"


"없지."


"그래서 하는거야. 너 문명 5  기준으로 이 땅에 도시 몆 개나 들어가는지 알아?"


"아니."


"막 건설된 도시 기준 3개다. 딱 잘 큰 도시국가 수준이라고. 발전이 있겠냐? 이걸로는 죽도 밥도 안돼. 기술을 발전시키고 일본을 먹는다. 그게 내 목표다. 최소한 나중에 서양에 꿀꺽당하지 않을 정도는 돼야지."


"뭐래.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나라사랑 했다고?"


"아, 물론 제일 큰 이유는 따로 있지. 재밌잖아?"


나의 그 답에, 공주로 태어난 이후 잘 먹고 잘 살던 소꿉친구 놈의 표정이 미친놈 보는 듯한 얼굴로 바뀌었다.


어쨌든 그 이후로는 순조로웠다. 우리의 공주 자가는 주상전하를 협박?해서 군기감 도제조 자리를 빼왔다. 원래 그 자리 주인이던 병조 참판은 일 줄었다고 좋아하더라. 뭐 여튼. 군기처에 대충 개념도하고 화약 제조법 알려주니까 할 일이 거의 없어졌다. 응? 문과가 개념도하고 제조법은 어떻게 알았냐고? 문명 시스템이 줬다. 어떤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하면 그 기술에 대한 결정적 힌트를 주고 그 시대 사람들이 개발해내는 방식이더라고. 물론 좌의정으로의 업무는 여전히 있었지만, 그 동안 했던거에 비하면 뭐.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이 흘러갔다. 그럴 줄 알았다.


"경하드리옵니다! 회임하셨사옵니다!"


분위기를 못 읽는 의원 뒤에서 우리 공주 자가는 날 죽일 듯이 쳐다보았다. 


어이, 술은 니가 먼저 깠잖아. 날 먼저 덮친 것도 너라고 친구야.


"야! 너 진짜 디질래?!"


"아, 뭐! 술쳐먹고 달려든 건 너잖아!"


"말렸어야지! 좋다고 같이 하고 있냐?"


"술 먹고 미쳐서 잠시 예뻐 보였나보지!"


"아오, 진짜... 됐다 됐어. 이젠 뭐 어떻게 할건데?"


"뭘 어떻게 해. 잘 키워야지."


"그거 말고 멍청아. 출산휴가 어디로 갈꺼냐고."


음? 휴가? 


내가 멍하니 있자,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 설명을 했다. 


"너 휴가 한 달 받잖아. 그때는 어디라도 가야지. 이왕 조선까지 왔는데."


오, 그래? 그럼 미리미리 돈 좀 벌어놓지 뭐.


"너 혹시 은 좋아하냐?"


이제 은 생산량을 두배로 늘려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