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내 언니—! 어서 일어나—!”


잠결에 들려오는 목소리, 아마도 나를 깨우려는듯, 머리맡에서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러댄다. 연속적으로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잠에서 덜 깬 목소리를 내는가 동시에 몸을 일으켜 세워 목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7화 리내 시점) 



- 으어어어......


- 리내 언니, 이제야 깨어났네.


- 어....초아...? 내 방에는 무슨일로...?


- 언니ㅋㅋㅋ 아직 잠이 덜 깼구나. 여기 지금 내 방이야. 리내 언니, 내 방에 있다가 잠이 든거 같애. 곤히 잠든거 같길래 일부러 안깨웠어. 나, 잘했지? 히힛.



주변을 살펴보니 주위에 초아하고 방에 같이 있으면서 놀았던 흔적들이 있는것으로 보아, 초아 말대로 난 초아 방에서 그만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거 좀 민망한걸; 근데 밖을 보니 아직 꼭두새벽인거 같은데, 왜 이런 이른 시간에 나를 깨웠지?



- 언니. 아침 일찍 깨워서 미안, 실은 언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게 있어! 그러니까 같이 가자!


- 왜 굳이 나를...? 다른 애들도 있잖아.


- 솔직히 별로 친하지 않고, 또 난 리내 언니랑 같이 가는게 제일 좋거든!


- 내...내가 제일...! 크흠! (발그레) 아, 생각해보니 변태용사랑 같이 가면 위험하겠네. 그렇게 정 원한다면 같이 따라가주도록 하지.


- 진짜? 와아! 고마워, 리내 언니~!



초아는 겨우 몸을 일으킨 나를 작은 손으로 내 팔을 잡고 이끌고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 1층에서 일찍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시는 아주머니께 초아는 나랑 같이 가고 싶은데가 있으니, 언니랑 같이 나가겠다면서 잔뜩 어리광을 부린다. 걱정하시는 아주머니께 나도 모르는 사이, 잘 데리고 가겠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아주머니는 안심의 표정을 약간 짓고 잘 갖다오라는 말과 함께 우리 둘은 어디론가 향해 간다. 솔직히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옆에 있는 초아의 미소를 보니, 괜히 안심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내심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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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가 가장 싫은 순간이지만, 어쩔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 이 짓을 거듭할때마다 머릿속 한 구석에선 누군가 날 여기서 구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흝어 스쳐지나가지만 순진한 언니 덕분에 그런 잡생각보다 계획대로 차차 진행되어가는 지금을 바라본다. 미리 개장하도록 정해진 상점에 도착해서 수면제를 잔뜩 탄 간식거리를 집어들고 사고 싶다고 내숭을 떨고, 혹시라도 바로 먹으면 안되니까 거기가서 먹자는 핑계로 처리할 장소로 유인해서 먹도록 부추기는 거야. 만약 계획대로 안되더라도 상관없어. 그분이 알아서 처리해 주시겠지. 물론 혼날것은 감수하고 말이다.


그렇게 자신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기구한 운명에 처해있는 리내라는 마법사를 데리고 마을 안 숲속을 헤쳐 도착한 곳은, 가운데 나무 두그루가 마란히 우뚝솟은 작은 초원. 아침 햇빛에 비추면 풀들이 붉게 변하는 신비한 초원이다. 무슨일이 생겨도 전혀 의심되지 않은 그러한 곳.



- 바로 여기야~!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곳. 우리 마을안에 있는 유일한 자랑거리지!


- 진짜네! 풀들이 점점 붉게 변하고 있어. 신기하다...!


- 이걸 보면서 먹자고 하길 잘했지? 자, 이제 먹자~! 아침밥 안먹어서 초아 넘 배고파~ (어서 먹어. 그래야 편할거야.) 


- 그럴까? 그럼. (부스럭)



그러고 내가 고른 과자(수면제) 하나를 들고선 입쪽으로 다가간다. 그래! 어서 먹으라고! 근데 입으로 향하던 간식을 갑자기 내려놓고는 아직 다 뜨지않은 해를 바라보면서 뭐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뭐하는거야. 어서 먹으라니까!



“이민, 걔도 이걸 보면 좋아할까?”



그러더니 내게 얼굴을 돌리고 뜬금없는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 초아야. 미안한데; 나중에 다른애들이랑 같이 다시오면 안될까? 나만 보기엔 좀 아까워서.


- ????(지금 뭐라는거야?) 무슨소리야; 리내 언니. 이때가 특히 아름답게 초원이 붉게 빛난다고. 그리고 보자마자 바로 가는건 실례지; 안그래?


- 그래도 혼자 좋은거 구경하는것보다, 그 왜... 변태용사도 같이 보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


자꾸 이민이라는 용사얘기만 꺼내면서 자꾸 망설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점점 다급해져간다.


- 안돼! 지금 돌아가면 해가 다 떠서 더이상 이 광경은 영영 못 볼거라고! (네가 가면 계획의 차질이 생긴다고!) 


- 초아야? 왜그리 성급해? 뭐 중요하거라도 있어?


- !!!!(뭐야, 들킨건가?!)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멋진 광경을 그냥 보내기엔 아까워서...;;;



“하하하하——!”



갑자기 내가 우물쭈물 대답을 간신히 내놓으니 마법사는 날 보며 웃어대니 나 또한 그 모습에 몹시 당황했다. 뭐야. 대체 저 웃음은? 미친건가.



- 하하. 뭐야. 초아 너, 고작 그런거 때문에 그리 성급했던거야? 아직 한참 어린애구나.


- 뭐뭐?! (또 이상한 소리) 아니, 진짜 그러니까 난....


- 초아야. 그러면 저쪽을 한번 볼래?



그러더니 손을 쭉 뻗은 쪽을 바라보자 내가 태어났을때부터 있었던 나무 두그루를 가리키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왜;



- 초아야. 저 나무, 원래부터 저기 있던거지? 

 

- 으응? 어... 근데 그게 왜?


- 그럼 저기있던 나무는 우리가 지금 본 광경을 몇차례나 우두커니 지켜봤을까?


- 한....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으니.... 많이? (아니 난 왜 이런거에 답변해주는 건지) 


- 당연히 그렇겠지? 그럼 초아 넌 이 광경을 몇번 봤어?


- 난 아ㅃ... 아니 가족끼리 처음갔을때부터 매일 같으니까 많이 가지 않았을까? 그것보다 몇번이라니 그걸 어떻게 알아..


- 맞아. 몇번이든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 오직 한번, 그 순간이 중요하겠지. 초아야. 넌 이걸 처음봤을때 어땠어?


- 나? 이걸 처음 봤을땐 좀 신기하기는 했어. 근데 그런게 어쨌다고...


- 너도 이걸 너 혼자서 찾아낸거 아니잖아. 그때 곁에 있던 가족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널 여기에 데려왔을거라 생각해?


- 그거야... 보여주고 싶은걸 보여줬으니 뿌듯하지 않았을까?


- 맞아. 네가 날 여기 데려왔던것처럼 뿌듯했을거야. 그런데 혼자 뿌듯해하지 않았을거야. 네가 있었기에 뿌듯했겠지?


-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 ㅎㅎ 아직 어려서 모를려나? 네가 내 반응을 보고 혹은 네 가족이 네 반응을 보고 뿌듯했다고 했어. 그건 분명...



“옆에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었을때 였을거야.”



- 저 나무들도 네가 태어나기전부터 여태까지 매일같이 이 광경을 봐왔겠지. 오랜 세월 동안 처음에 겪었던 감동도 점차 잋혀져 가고 있을테지. 똑같은걸 매일 보다보면 누구든 흥미를 잃을테니까. 나도 그럴때가 있어.


내가 너만한 나이정도에 처음 마법을 썼을때, 모두가 내게 칭찬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어. 사람들이 그러는데 마법은 인간들중, 극히 일부만 할수있는 거랬거든. 그래서 내 할아버지 절친중에 마법 하시는 분이 있다고 해서 그분 제자로 들어가서 마법을 배우기로 했어. 처음에 모두의 기대와 더불어 자신감도 같이 쌓여서 부푼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해왔는데, 


점차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지. 왜냐면 전국에 마법한다는 애들이 다 모였는데 거기서 나만 유달리 못하는편에 속했거든. 그래서 뒤쳐지지 않을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쉽지 않더라고. 그래서 용사하고 같이 여행을 떠났을때도 내 마법으로 과연 도움이 될수있을까 하고 괜히 옆에 있는 용사한테 시비를 붙이면서, 한편에 마음속 깊은곳에선 혼자 낙담하고 있었지. 


언젠가 기초 마법도 못다루는 나를 보면서 같이 배우던 애들이 못한다고 엄청 놀려된적이 있었어. 그래서 집 마당에서 혼자 마법을 어떻게든 해내려고 노력하다가 끝내는 못해서 혼자 울고 있었거든. 그럴때마다 할머니가 혼자 울고있던 내게 다가와 해줬던 말이 아직도 떠올라.


“네가 현재 노력하는건 미래를 도약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과거에 너를 움직이게 해준 ‘소중한 사람’하고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서” 라고 말이야.


추억은...상상만해도 즐겁거든. 물론 이렇게 말해준 당사자는 날 버리고 이미 떠났지만, 추억 안에선 아직도 살아있어. 특히 마법을 처음 썼을때 주변에 보던 사람중에 ‘소중한 사람’이 있었거든. 그때 날 보고 웃으며 분명 이렇게 말했어.


“대단하다고” 말이야. 자세히 생각해보니 무의식중에 그 말 덕분에 날 여기있게 해준 원동력이 된거같애.


이후로 좋은걸 경험할때마다 소중한 사람과 곁에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 저 나무들도 서로 곁에 있어줬기에 지금까지도 계속 같은걸 보고 있던게 아닐까?....하고 나무 두그루를 본 순간 생각했거든. ㅎㅎ 미안, 말이 길어졌지;


- (.......소중한 사람) 


- 이제 그만 가자. 나중에 같이 와서 보면 되니까.


- 싫어.


- 싫다고?


- 그게 나랑 어쨌다는거야. 난 그저 언니하고만 보고싶어서 여기 온거야! (버럭) 그리고 언니의 소중한 사람이랑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아무 상관도 없는 말을 대뜸....


- 무슨소리 하는거야? 너도 마찬가지야.


- 뭐....? 마찬가지...?





















“너도 내게 있어 ‘소중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다같이 여기에 또 오자. 알겠지?”


“!”



그때였을거다. 갑자기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게, 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된게. 언니는 그때 진심으로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이제까지 여행자들의 목숨을 우리 마을을 연명하기위한 수단이라고 매일같이 세뇌되어 왔었다. 혹여나 마음속에 혼자 잘못된 짓이라고 자신을 타이를때면 과감히 그 감정을 무시할때도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무시한 감정들을 지그시 눈을 뜨고 안을 보니, 내 행동에 죄책감보다 앞서 해친 사람 곁에 있었을 ‘소중한 사람’을 잃게 만드는 거 같아 가슴이 아파왔다. 내 자신과 소중한 마을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만들지 않기 위해 다른 여행자들의 영혼을 바친다는 모순의 굴레 안에서, 이 악순환에서 이제야 한가지 결심을 하게된다. 그리고 돌아가는 언니 뒤에서 이런 말을 꺼냈다.



“그럼 언니, 돌아가기 전에 우리 한곳만. 더 들렀다 가자.”



그리고 내가 이끌고 간 곳은 오래된 마을 장벽에 세월이 들어 생긴 작은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을 ‘구멍’ 하나. 숲속 깊은 곳에 있어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는지 아직도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나도 우연히 발견한지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 하고있는 일이 고될때면 혼자 여길 가끔 찾아와 여길 나가면 아무도 모르겠지 하고 생각한다. 밖에 빠져나가면 마을 바깥 숲으로 이어져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나가고 나서 남겨지게 될 마을사람들의 잔상이 앞을 가려 바로 접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제 이 구멍은 ‘도망치기 위한’ 구멍이 아닌 ‘새로운 변화’의 구멍이라 생각을 고쳐 먹는다. 


먼저 구멍을 통해 빠져나온 나는 후에 따라나올 리내 언니에게, 예비로 갖고 있던 정확히 하루를 재울 수 있는 수면제를 움큼 쥐어잡아 뿌린다. 언니는 후로 얼마있다 내가 무엇을 뿌렸는지도 모른채 스르르 잠이 든다. 그리고 매일 이곳을 찾아와 비몽사몽 깨어있을 언니에게 수면제가 든 간식을 쥐어주며 속삭였다.



“내가 언니의 ‘소중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하루동안 쌓였을 허기를 멋도 모르고 쥐고있던 간식을 먹곤 이것을 반복 또 반복. 용사님이 이를 눈치채고 구하러 와준다는 희망과 만약 안된다면 리내 언니 만큼은 내가 지켜내겠다는 감정이 서로 교차되어 갔다. 그리고 곧 있을 위험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한채. 그래도 괜찮다. 내가 스스로 결정한 선택이 잘못된걸 못 느꼈는지 몰라도, 깨닫게 된 후로도,








전혀 후회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