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걷고 있다. 현재까지 모든 종류의 시와 수필과 소설과 심지어 신문기사에 약방문까지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의 동작에 어떠한 수사를 갖다 붙인 들, 군더더기가 될 뿐 인듯 했다. 그저, 그는 걷고 있을 뿐이었다. 오른다리가 앞으로 나감에 따라 진행하는 왼팔의 동작에는 어떠한 감정의 미동도 느껴지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오른팔 또한 그러하였다. 일부러 얼굴 표정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혹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따위의 진부한 표현으로 그의 눈과, 코와, 입의 부동성(不動性)을 표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가 잠시 자신의 반복적인 걸음에서 변화를 주어 의미없는 손짓으로 라이터의 부싯돌을 돌리자, 가스로 피어오르는 아주 잠깐의 섬광이 먹먹하게 거리를 내리누르는 가로등 불빛에 잠시나마 보탬을 준다. 그는, 마치 영화의 주인공에 포커스를 맞춰 두고 진행하는 신에서, 뒤로 걸어가는 엑스트라의 존재감만큼 이 거리에서 압도적이었다.

 

 지금 당장 너무나도 설명할 거리가 없는 J의 주변에서 이야기를 잠시 따와 보도록 하겠다. 그 완벽한 걸음 옆으로 지나가는 운행을 끝난 차들 아래로는 J가 자주 손을 내밀어 쓰다듬어 주는, 이 동네에서는 나름 유명한 붙임성 좋은 삼색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나비는(사람들은 언제나처럼, 그 고양이를 나비라고 불렀다. 그 나비의 새끼들도 나비라고 부른 것처럼.) 자신을 쓰다듬어주던 J와, J와 같이 다니던 여자의 모습을 기억해 냈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자기 자신조차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잠에서 깰 정도의 커다란 비명소리가 한낮의 고가도로 밑으로 퍼져 나갈 때, J는 여자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마침 다른 가게에서 밥을 얻어먹고 노곤하게 잠을 청하려던 나비는 불만섞인 그르렁거림을 한 차례 토해 내고는, 다시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잠을 청했다. 세상을 모두 짓내리 누를 것 같던 J의 돌아오는 발자욱이 옆으로 지나가도, 나비는 잠을 자고 있었다.

 

 담배불이 고가도로 기둥 아래를 지나간다. 30년 넘게 이 자리를 지켜 온 터줏대감과 같은 그 기둥은 여느 전신주들과 마찬가지로 거리를 지나다니는 갖은 인간군상들의 벗이 되어 주었다. 한 팔로 자신의 몸을 기대온 채 입으로는 침을 질질 흘리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계속해서 읊조리던 한 아가씨, 마치 어떤 사이비 종교행사처럼 일렬종대로 경건한 자세로 무릎꿇고 앉아 자신이 먹은 것들을 확인하던 중년들. 이루 말할수 없이 수 많은 반복 속에서도, 자신의 물질적이건, 아니면 정신적인 것이던간에 속 깊은 곳을 털어놓고 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시는 그 기둥을 찾지 않았다. J를 빼고. J는 방금 언급했던 마치 복받쳐 터져나오는 고해성사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저, 그 곳에 있는 친구를 잠시 앞에 둔 마냥 기둥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전화기 건너편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때로는 웃으면서, 때로는 애걸하듯이, 때로는 화를 내면서. 아무도 들을 수 없을 것 같이 낮은 소리로 전화기에 짧게, 짧게 대답만을 흘리던 그 때도 누군가는 헤드라잇 강물이라 칭했던 어딘가를 향하는 행렬은 고가 위에서 여전히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소음에 묻혔는지, 말하기 싫은건지 모를 통화의 끝에 J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볼 수 없었던 빠른 뜀박질로 기둥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 역시 기둥을 찾던 다른 1회성 방문객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오지 않았다.

 

 여전히 밤거리는 무거운 어둠만을 빛의 파편 사이로 흩뿌리고, 단 하나뿐인 인적은 여전히 더 이상 묘사할 수 없는 그 걸음걸이로 거리를 벗어나고 있다. 그 사이 담배불은 바닥으로 집어던져져 있었고(이 동작마저도 무언가를 덧붙일 수 없이 깔끔했다), J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있는 수단은 더 남아있지 않았다. 걷는 걸음 그대로, J의 얼굴은 하늘로 향한다. 초승달은 구름 뒤에서 자신의 실팍한 빛을 나릴 뿐이었고, 별은 보이지 않았다. 


-----------------------------------


Copyrightⓒ. OK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2는 텍스트량의 문제로 올리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