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야. 일단 진정하고...”


 “사과하십시오. 사과하십시오.”


 리돌이 한국말을 좀 제대로 배웠으면 하는 바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죽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느낌을 실어서 말을 한들 번역기의 말투로는 도저히 진의를 알아들을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번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이 녀석이 지금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는 건 알겠다마는... 내가 공감을 해 줘야 이야기가 통할 텐데, 도무지 감정선을 일치시킬 수가 없다. 

 그 때. 천장 열린 틈새 사이로 작고 검은 그림자가 침대 위로 뛰어 내렸다. 그리고 그 그림자의 주인공은 우렁차게 내게 포효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그 녀석이.


 “거기까지다, 인간!”


 하지만 내가 목소리를 인지할 틈도 없이, 나비 녀석은 떨어지는 위치에너지를 침대스프링에 그대로 실어 내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녀석의 박치기는 내 턱에 명중했다. 덕분에 나는 혀를 깨물어 버렸다. 컥!


 “허, 허야?!”


 혀를 깨물어 버린 나머지 발음까지 새 버렸다. 나를 신나게 가격하던 리돌은 전광석화와 같은 나비의 움직임에 움찔하며 때리는 것을 그만 두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나는 느닷없는 충격에 침대 위에 앉은 자세 그대로 뒤로 자빠져 버렸고, 나비는 넘어져 있는 나의 가슴을 밟고 서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일갈했다.


 “어디서 버러지같은 인간놈이 존엄하신 주군의 심기를 저해하려 드는가! 네놈의 저열한 생활 수준에 맞춰 주느라 주군께서 지금까지 겪으신 수모가 얼마나 되는 지 알기나 하느냔 말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천둥벌거숭이마냥 날뛰는 모습을 이 몸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노라!”


 분노가 차오르는 양상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마치 가스불 위에서 물을 끓이듯이 천천히 열이 오르는 모양. 그리고 마치 백열하는 쇳물을 물에 부으면 바로 증기가 피어오르듯 즉발적으로 끓어 오르는 모양. 교양있는 지성인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보통 열받는 상황이 오더라도 이성적인 대화로 풀어 나가려 노력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후자다. 


 “이 고양이 새끼가아아!”


 죽고 싶다 이거지?! 오냐, 그 소원 지금 당장 이뤄 주마.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지른 손끝은 분노에 마치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듯 하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러나 누운 상태에서 허우적거린 내 손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고, 나비는 가볍게 폴짝 뛰어 리돌에게 안기면서 나의 공격을 피했다. 도약하는 그 중간에도 나를 끊임없이 조롱하며.


 “하하하! 네놈의 느리디 느린 움직임으로는 나를 잡을 수 없다, 인간! 마치 동네 바둑이 녀석이 꿈을 꿀 때 내지르는 잠꼬대 같구나!”


 “크악!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아까 리돌이 나를 그렇게 구타해도 침대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던 나의 몸뚱아리가 벌떡 제껴졌다 사실 너무 일찍 일어난 것도 있고 해서 대화가 끝나면 더 자기 위해 딱히 움직이지 않았던 건데, 분노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이불을 제끼고 나비를 향해서 돌진하는 나를 가로막는 것은 새하얀 신호등 가운데 박힌 빨간 두 불빛이었다. 리돌은 잽싸게 품에 안긴 자신의 가신을 등 뒤로 숨겼고, 분노에 가득 찬 나의 돌진을 저지했다.  


 “그만두십시오.”


 “나와, 임마!”


 “목적을 이룰 방법이 폭력밖에 없는 소인배의 말을 들어줄 이유는 없다!”


 리돌은 뚱하니 서서 나비를 향해 돌진하는 나를 저지하고 있었다.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서 있는데도 분노한 나를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저 빨간 두 눈에 물기가 맺혀 있어서 내가 함부로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리돌은 리돌이고 나비는 나비다. 내가 오늘은 기필코 저놈을 포를 떠 나의 옥탑방 옆에 두고두고 말리리라. 후일 나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침범할 또다른 길고양이 놈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리돌이 양 손을 뒤로 돌려 나비를 숨기고, 그 앞에서 내가 나비를 덮치려는 대치상황은 바보라도 금세 판단할 수 있는 심리전 양상으로 가고 있었다. 내가 오른쪽으로 돌아 나비를 잡으려 하면, 리돌도 나를 따라 돌아서 왼쪽을 본다.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돌면, 이 녀석은 오른쪽을 보고. 마치 자석의 N극이 S극을 피해서 움직이듯이, 그렇게 두 명과 한 고양이는 방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갈수록 속도를 높여서.

 옥탑방 중간에서 발생한 이유없는 회전은, 대략 5분 가량을 소모하고서는 사그라들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깨닫고 난 뒤였다. 그 댓가로 나는 모든 체력을 다 써 버렸고, 침대에 다시 뻗어 버렸다. 제자리에서 가만히 돌고 있던 리돌조차 방바닥에 대자로 누운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멀쩡한 건 리돌의 등 뒤에서 가만히 있던 나비밖에 없었다. 나비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리돌의 얼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나비는 괜찮습니까?”


 “저보다는 지금 주군의 안위가 걱정입니다만.”


 이 녀석이 육체적으로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생물이라는 건 아까 확인했다. 리돌은 방바닥에 널부러져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비 녀석도 눈치라는 게 있어서 그런지, 나에 대한 비난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접어두고 리돌만 걱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더욱 더 밉살맞게 보였지만, 나 역시 계속되는 공회전으로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어 버렸다. 졸립고, 피곤하고.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 고양이는 오늘은 오지 않았나 보군요.”


 “네.”

 

 나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였다.


 아침의 그 소동이 모두 정리되고, 공부를 하는 한 사람, TV시청을 하는 달나라 사람, 수면하는 고양이로 이루어진 오후가 느지막이 제 갈길을 가고 있었다. 해도 거의 다 져 가던 그 무렵, 나비 녀석이 눈을 번뜩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에 코를 박고 있던 내가 나비의 행동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급작스런 리돌의 질문이 귀에 박혔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나비?”


 리돌이 무척이나 의아해 하는 얼굴로 나비에게 진상을 캐물어도, 나비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허공에 코를 벌름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란 듯 제자리에서 펄쩍 뛰더니, 나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처음에 이 녀석과 대면했던 것처럼 벽을 타고 천장을 올라 리돌의 방으로 향하는 출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저거 왜 저래? 나야 저번에 한 번 보았던 기술이라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리돌에게는 거의 서커스와 같은 진기명기였나 보다. 리돌은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리돌의 꼬리가 사라질 때 까지, 멍하니 시선으로만 그 모습을 뒤쫓을 뿐이었다. 


 “나비는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감이야.”


 리돌의 짤막한 촌평에 매우 여러가지 뜻이 담긴 한 가지 단어로 대답을 해 주고 몇 초 뒤,

 갈색머리의 외국인이 문을 두들겼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모든 인사치레를 생략하고서 캐롤라인은 일단 나비의 안부부터 물어 보았다. 음, 역시 이 외인구단의 수장다운 행동이로다. 그게 어떤 행동이냐고는 묻지 마라. 나도 모르니까. 언제부터인가 내 머릿속선 리돌, 캐롤라인, 성희 씨, 그리고 나비까지를 모두 다 같은 집단으로 묶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방금 말한 말마따나, 이들의 두목은 캐롤라인. 

 여하간 나는 왜 거짓말을 하냐는 리돌의 의구심섞인 눈빛을 손사래로 치워 버리고서는, 일단 손님을 받을 준비를 하였다. 무슨 이유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래도 리돌 이야기면 들어는 봐 줘야지. 나는 식탁 위를 대충 물티슈로 훑고, 음료수를 나누기 위한 컵을 올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