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항구는 그만의 맛이 있다. 사람들이 넘쳐나고바다가 배로 덮여 나무로 된 땅이 흔들리는 듯한 거대한 항구ㅡ이를테면 마르세유나 암스테르담 같은ㅡ세상 모든 물건이 존재할 것만 같은 그곳에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그런 맛이다. 


하루에 드나드는 배는 고작해야 열 척 이내. 그마저도 배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작은 고기잡이 조각배이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갈매기들은 배가 들어올 시간이 되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을 피해 먹이를 낚아채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기엔, 그들에게 돌아올 것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밖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왔다. 그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그랬고 그 아들도 그럴 것이다. 바다일이 자신의 운명이라 믿고 성실히 해내는 순박한 이들의 보금자리가 이곳이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그 남자는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우선 바다일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해가 어둠을 살라먹기 직전에 집에서 나와 다시 어둠 속에 몸을 뉘일 때까지ㅡ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게 남자의 일상이었다. 가끔 술을 들이키거나 로켓을 물끄럼히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듯 했다.


남자의 옷차림도 마을의 다른 사람과는 크게 차이가 났다. 우선 남자가 걸치고 있는 자켓은 보통의 자켓과는 그 형태가 달랐다. 실용성보다는 장식성을 크게 살린 듯 한 화려한 그것이었다. 다른 옷들은 크게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안목있는 이들이라면 감탄할만한 고급품이었다. 다만 그 옷들은 관리가 그다지 잘 되지않은 모양인지 전체적으로 바래있었다. 남자의 목에는 로켓이 걸려있었는데, 그것이 주로 여자의 장신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 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선술집 둘째 딸 레아가 대장장이 네 스미스를 세 번째 깠고, 빵집 개가 또 이웃집의 닭을 물어갔던 것을 제외한다면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날이었다. 


오늘도 그 남자는 해변가에 나와 술을 들이키고 있었으나, 그의 오른쪽에는 평소와는 달리 한 남자가 함께 앉아있었다. 그 남자는 굉장히 고급스러운 옷을 갖춰 입고 있었는데, 아마 마을의 그 남자의 옷이 색이 바래지 않았다면 비슷한 모습이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관리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되는 남자였다. 오랫동안 말없이 지평선만 바라보던 두 사람 중 왼쪽의 남자가 술을 한모금 들이키며 물었다.


"국왕폐하? 원수? 내가 무엇으로 불러드리면 되겠소?"


남자의 물음은 분명히 비꼬는 투였지만 그것이 비꼬는 것으로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남자의 그 눈빛 때문이었으리라. 그 눈빛이 상처받은, 혹은 회한에 찬 것라는 데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베르나도트."


남자는 짧게 대답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후, 남자가 다시 물었다.


"날 원망하나?"


"가끔. 당신은?"


"했었지. 지금은 아니지만.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겠나?"


남자의 말대로였다.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이곳ㅡ세인트 헬레나는 그런 곳이었다. 시간이 느려져가고, 기억마저 서서히 마멸되어가는 이곳에서는 누구나 젊은 날에 가졌던 불꽃과 같은 감정을 잃어갈 것임이 틀림없다.


허나 그 말을 하는 남자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묻어있었다.


"좋군.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 할텐가?"


"코르시카 산이나 스웨덴 산이라면 사양하죠."


"다행이군. 죽기 전에 마시려 넣어둔 보르도 산이라네. 오랜만의 손님이니 내오도록 하지. 따라오게나."


"예, 보나파르트."


어느새 시간은 흘러 영광과 오욕의 나날들이 그들의 뒤로 저물고 있었다. 서서히 걸어오는 어둠은 바다와 땅을 잠식했고, 이내 기억마저 덮어갔다. 바다는 완전히 잠들기 전 뉘어있는 몸을 뒤척이며 두 사내에게 작별을 고했다. 


곧 모습을 드러낸 순백의 달은 두 남자가 함께 걸어간 길에 남은 발자국을 끊임없이 아로새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