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9화



"저기..."

"히익!"


침착하자.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분명 면식도 없는 작은 소녀에게 말을 걸긴 했지만 그건 그녀가 학생이 아닌데도 학교에 있고 길을 잃은 듯이 보였기 때문이야. 거기에 뒤에서 말을 건 것도 아니잖아. 응. 그래. 괜찮아. 


그러한 생각들이 고작 0.1초 사이에 내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그래서 어색한 기류가 흐르기 전에 나는 말을 이을 수 있었다. 


"왜, 왠놈이냐!"

"아니 그게... 여기는 학교라서, 외부 손님이 방과 후까지 있을 수는 없거든."


그건 틀린 말은 아니다. 학교 손님이라면 보통 노을지는 시간에 부르지 않을 거고, 견학 역시 오후 1시까지로 한정되니까. 내가 '원칙'을 들이밀자 억지 사극 같은 대사를 내뱉던 소녀가 당황하는 표정을 보였다. 




"에...?"

"에가 아니라... 무슨 용건으로 부지에 들어왔는지라도 좀..."

"에... 저... 저는 그게... 시, 심부름을..."

"응? 심부름?"

"그게... 아! 혹시 학생회실이 어딘지 아시나요?"


'학생회실...? 회장네와 아는 녀석인가.'


그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학생 수에 비해 부지가 압도적으로 넓은 이상한 학교. 구두로 길 알려줘봤자... 길 잃겠지?


"데려다 줄게. 같이 가자."

"네!? 그, 그러실 필요는..."

"됬어. 대신 일 끝나면 바로 돌아가."


나는 좀 오지랖 넓은 오빠처럼 말하고 앞장섰다. 발걸음이 들려오지 않는 걸 보니 날 의심하거나 이유없는 친절에 당황하는 거겠지. 나는 몇걸음 더 나가 뒤를 돌아보며 재촉했고, 소녀는 그제서야 따라왔다. 





"서화라고 했지? 학생회실은 무슨 볼일이야?"

"심부름이에요..."

"심부름? 뭐 들고 있지 않잖아...?"


서화, 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이는 평범한 블라우스 차림에 가방도 없고 양손 다 비어있었다. 


"그, 그게... 편지에요!"

"편지?"

"네! 편지요."


지금은 21세기다. 문자고 뭐고 일단 내 주머니에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다. 하지만 안절부절 못하는 서화에게 나는 더 추궁하지 않았다.


"자, 저 앞이야."


학생회실은 좀 멀리 떨어진 4층 건물 최상층이다. 거기 주위 방은 사람이 거의 없거나 폐쇠된 부, 창고 등등 뿐이라 오가는 사람이 아예 없다. 왜 이런 곳에 떡하니 학생회실이 있는지는------ 모를리 없지.


"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서화는 예의바르게 90도 인사를 했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옆을 휙 지나쳐 학생회실쪽으로 갔다. 




"저, 저기...!? 이제 괜찮으니까 가셔도 되는데..."

"응? 아, 나도 학생회실에 볼 일이 있어서. 프린트물 건으로."


나는 클리어화일에 종이를 펄럭이며 말했다. 물론 뻥이다. 


"아니... 그게..."

"그리고 애나 늦게까지 학교에 있는 것도 걸리고. 나도 뒤에서 기다려줄게."

"그, 그게 그러니까... 비밀! 비밀스러운 일이라서요!"


말을 더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꺼낸 말은,


"편지 가져다 주는 거라며?"

"!!"


내 한마디에 격침되었다. 




음, 적당히 밀어붙였다고 생각한다. 과한 친절과 오지랖으로 당황하게끔 말이다. 물론 그녀를 의심한다던가 경계한다던가 그런 의미에서 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궁금했거든. 흑이든 백이든 상관 없었어. 자, 본색 좀 드러내봐. 




더 빠르지도, 더 느리지도 않은 예상대로의 타이밍이 맞았다. 부들부들 떨던 서화는, 별안간 손바닥을 내 쪽으로 들이밀면서------


"------미, 미안해요...!!" 


라고 말하는 그 모습은, 그날 밤. 내게 손가락을 들이밀어 날 잠재웠던 그 사람의 모습과 겹쳐보인다. 그리고 그와 별개로------ 똑똑히 느껴졌다. 알 수 없는 힘의 기운이, 그 손바닥에서부터 쏘아지는 것을. 


맞아도 상처입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마도 잠에 빠지거나 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슬쩍 몸을 비틀어서 그걸 피했다.  


"응? 뭐가?"


마치 갑자기 내밀어진 손바닥에 놀란듯이 뒤로 물러선 것으로 보였으리라. 그 작은 움직임에도 나는 피하는데에 무리가 없다. 


아니, 사실 '보이기만' 한다면 왠만한 사람은 다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회장 선배도 검지를 내 바로 앞에 들이밀어 핀 포인트로 조준해서 수면마법을 걸었었다. 하물며 힘의 종류는 다를지라도, 이런 먼 곳에서 대충 손바닥으로 방향만 맞춘 느린 공격이 내게 맞을리가. 





자신의 공격이 '우연히' 피해진 서화는 놀라면서 다시 내쪽으로 손바닥을 뻗었다. 하지만 휙휙, 나보다도 쪼만한 애가 들이미는 손바닥 따위 피하는건 간단하지. 


"엑...! 피하지 마세요!"

"뭐야...? ------뭔데!?"


갑자기 난이도 업그레이드!? 그녀의 작은 손이 휘둘러진 궤적에서 푸른 여우불 여러개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내 손등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뜨뜨뜨뜨뜨뜨뜨!!!"


내가 생각해도 참 괴상하게 꺾여 바둥바둥대는 내 몸. 불꽃이 품고 있던 요사스러운 기운의 일부가 내 손과 접하면서 순식간에 몸 전체로 퍼져나갔기 때문에 전신이 뜨겁다.


"...흐앗...!? 사람에게 도깨비 불을 쓰면 안되는데...!"

"그럼 빨리 꺼어어!"




아무래도 도깨비불은 요력(?)을 태우는 불꽃인 모양이다. 공 형태로 모은 요력은 대상에게 맞을 경우 전신에 도포되는 것 같고. 


다행히 요력을 다 태운 뒤에 몸에 옮겨붙는 건 아닌지, 푸른 불은 순식간에 꺼졌다. 거기에 내가 새로운 힘과 접촉해 미약한 내성이 붙은 것도 있을 것이다. 화상은... 손등을 빼면 없네. 과연 몸은 만화처럼 새까매졌을까.


복도 바닥에 푹 엎드려있는 내 위로 허둥지둥 당황해하는 서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른 목소리도 들렸다. 


"어라, 밖이 소란스러워서 나가봤더니 너희들이었구나."

"도, 도도도와주세요오...!! 사람이, 제가... 으으...!"


학생회장 목소리였다. 엎드린 상태로 있어서 죄송해요. 고개를 들어 치마속을 본다던가 하는 바보짓은 안할게요.


"그래그래, 얼른 들어오렴. 차랑 과자라도 내줄테니까 울지 마."

"흐윽... 네..."




...이사람들이.



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