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한다 새끼야-5화


조선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한다 새끼야-7화


위대한 과학자. 위인 계열에 속하는 이 유닛은 다른 어떤 유닛보다-한국의 입장에서는-유용한 유닛이다. 이 유닛을 소모하면 과학력을 뿜뿜하는 특수 시설 '아카데미'를 짓거나, 현재 연구하고 있는 기술의 시간을 절반 가까이 줄여준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뭐냐ㅡ과학자를 갈아(!) 넣으면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거다! 


그러니까 결론은 뭐냐. 난 최해산 씨를 갈아넣으면 된다는 거다. 하지만 최해산과 난 꽤 어릴 적 부터 인연이 있다. 10살차이 정도 나고 아버지인 최무선과 우리 아버지가 친밀한 사이셨으니 그냥 형 동생하고 지냈다. 그러니까 친한 동네 형이라는 건데, 그런 사람을 말도 없이 갈 수야 있나. 그래도 갈기 전에 말이라도 해주는게 예의 아니겠어?


"아이구! 이거 우리 좌의정 대감 아니신가! 허헛, 이 누추한 곳엔 어쩐일로 오셨나?"


"아이고, 거 형님 평소처럼 하쇼. 안 어울리게 존대하지 말고."


"그를까? 클클클.  오랜만일세, 아우."


"오랜만이요, 형님."


아니, 이 형님은 그새  근육이 늘었어. 못 본지 한 달밖에 안됐는데. 좀 있으면 마동석이 아니라 헐크가 되겠는걸?


"오랜만에 봤는데 술이나 한 잔 합시다 형님."


"그건 돈 많은 우리 아우님이 사시는 건가?"


"암요. 제가 사야죠."


"크하하하하핫! 좋아! 그럼 오늘도 화련각인가?"


기방이요? 거기 가면 전 아마 내일부터 살아있는 신세가 아닐껄요?


"에헤이, 혼인한 몸이 어딜 가겠습니까. 저희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뭐, 그러세. 술을 어디서 먹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맛만 좋으면 됐지."


* * *


우리는 내 집에 있는 작은 정자에서 술상을 벌였다. 나는 형님께 청주를 권했지만, 우리 형님은 그런 조그만 잔으로는 기별도 안간다며 막걸리를 사발째로 들이키셨다.


"크아! 이제야 좀 살겠구먼!"


네 사발째를 다이렉트로 비우며, 형님은 만족하듯 말했다.


"그래서 무슨 용건인가 아우님은? 이 시기에 날 불렀다는 건 필시 병기와 관련된 일일 터인데."


"옳게 보셨습니다. 사실 제가 생각해 본 것이 있는데, 이걸 만들 사람이 조선 팔도에 형님 말고는 없어서 말입니다."


"그만 띄우고 말해보게. 뭔가?"


"이번에 개발한 장총 있잖습니까. 그게 한 발씩만 나가는게 영 별로라서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본 건데, 장총을 여러 개 묶어서 한 번에 발사하면 어떻겠습니까?"


"호오, 화차같이 말인가?"


"말하자면 그런 식이죠."


그렇다. 내가 개발하기를 원하는 기술은 산업시대의 문을 여는 기술-산업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기술을 연구하면 해금 가능한 개틀링 기관총이고. 


"정말 좋은 생각이군! 지금 당장 가서 연구해야겠어!"


"하이고, 진정하십쇼 형님. 마시던 건 마저 마시고 가야지 않겠습니까?"


"그럴 시간 없네! 술 고마웠네. 난 이만!"


자기가 갈리는 줄도 모르고 자발적으로 갈리러가는 모습을 보니 참... 난 모르겠다. 묘하게 현실적인 이 세계 특성상 같은 화포 기술자니까 좀 더 빨리 끝나겠지만... 미래도 모르고 갈리러 가는 모습을 기분이 묘했다. 자기가 하겠다는데, 뭐. 술은 항상 부족하지 않게 채워드리겠습니다, 형님. R.I.P


* * *


"다 뽑았냐?"


공주 자가 하이.


"엉. 거의 다 했어."


지금 나는 일본 원정군을 위한 유닛들을 뽑고 있었다. 거의 다 뽑긴 했지만, 뒤늦게 개틀링 기관총의 연구(그동안 해산이 형님을 비롯한 군기감의 장인들이 갈려나간 건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가 끝나 그것을 마저 뽑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거기에 파이크병 좀 뽑아서 데려가."


우리 마님은 내가 만들어 놓은 유닛들을 보더니 말했다. 근데 파이크병? 화약도 못 쓰는 창병 데려다 뭐하게?


"안돼. 돈 없어. 지금 유닛 유지비도 딸리는데 무슨 파이크병이야."


"아, 좀 하라면 시키는 대로 해봐! 말 겁나 안들어 진짜!"


"니가 쓸데없는거 시키니까 그렇지! 총알 날아다니는데 무슨 창병이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뽑아라?"


"꺼져. 나 바빠."


씨이. 안그래도 피곤해서 기분 더러운데 성질이야. 내가 끝까지 그걸 뽑지않자 공주 자가께서는 품 속에서 종이를 꺼내 내 눈 앞에 던지셨다.


"아 좀! ....뭐야 이거. 이게 왜 니 손에 있는데."


"이거 뿌리기 전에 파이크병 만들자?"


"이거 뿌려지면 왕실도 위신이 깎일텐데?"


"잠깐 망신당하는 정도겠지. 넌? 넌 니 모가지 간수할 수 있을 거 같냐?"


당연히 아니었다. 얘가 던진 이 종이는, 왕비의 친정이 모조리 쓸려나간 그 일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는 걸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내가 이 젊은 나이에 좌의정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아닌 태종의 절대적인 신뢰였다. 그걸 잘 보여주는게 이 문서였다. 태종은 외척이 권력을 가지는 걸 원치 않았다. 아니, 외척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걸 알고 있었던 나는 태종에게 제안을 했다. 당시 내 직책은 이조정랑. 품계는 높지않지만 상당한 실권을 가진 요직이었다. 무엇보다 난 가문도 빵빵하고 똘똘한 루키였고. 그런 내가 제안을 했다. 


왕비의 친정을 밀어버리십시오. 그것이 전하께서 뜻하는 바가 아니옵니까? 반발이 있을 것이옵니다. 허면 저를 방패로 쓰십시오. 제가 앞장서서 반대하고 앞장서서 벌 받겠습니다. 삭탈관직 후 유배하면 반발하는 목소리가 줄어들겠지요.


태종과 나만 알고있는 그 날의 비밀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밝혀진다면, 난 다시는 정계에 복귀할 수 없다.그러니 뭘 어쩌겠어. 그냥 부인님 말씀을 따르는 수 밖에.


"그런데 굳이 그런 걸 꺼내야했냐?"


"이런 거 꺼내기 전에 순순히 말 좀 듣던가."


할 말이 없네. 쩝. 


그리고 전황을 살펴본 나는, 더 할 말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