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한다 새끼야-7화


문명 5에서 정복 후에 해야될 건 생각보다 많다. 꽤 복잡하긴 하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민심 관리'다. 한 도시를 정복하면 5턴 정도 '항전' 상태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이후에는 특수 건물인 법원을 지어야 한다. 이걸 안 지으면 '불행'을 지속적으로 생산한다. 그러면 꽤나 방대한? 영역에서 페널티가 생긴다. 그러니까 결론은 뭐냐. 복잡한 건 우리 마님께 맞긴다 이거지. 나보다 경험도 많으신 인재잖아?


내가 해야 할 건 이거다. 현실적인 민심 관리. 일본을 지배하는 건 막부고, 그 권한은 형식적이지만 천황에게서 왔다. 고로 문제는 천황의 위치를 어떻게 뽑아오는지였다. 천황의 정통성을 우리가 가져온다면 깔끔하게 해결된다 이말이지.


처음에는 외국에서 종교를 가져와서 그거의 대리자가 되어 볼까ㅡ 생각도 했지만 곧 포기했다. 지금까지도 불교와 기독교가 신토에 흡수되는 나라에서 뭐가 되겠어? 


그래서 그냥 신토를 이용하기로 했다. 있는거 이용하는게 제일 편하지 뭐. 일본 신화에 의하면 일본 천황은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손자의 후손이다. 고로 조선 국왕이 그보다 신위가 높으면 되는거다. 그래서 일본 신화하고 단군 신화를 짬뽕했다. 


아마테라스의 남동생 스사노오는 천상계에서 쫓겨났다. 여기서 스사노오가 쫓겨난 땅이 한반도라고 설정하는거다. 스사노오가 한반도에서 정착해 아들을 가졌고, 그 아들이 우연히 내려온 아마테라스의 딸과 눈이 맞아서 나온 자식이 조선 국왕의 조상이라는 거지. 여기서 스사노오의 아들이 환웅이고 아마테라스의 딸이 웅녀라고 설명하면 짜잔! 단군 신화하고 일본 신화를 깔끔하게 믹스된다. 이러면 아마테라스의 손자인 일본 천황보다 격이 높아진다. 아직 용비어천가 짓기 전이니까 이 내용을 딱 넣어주면 장땡인거지. 일본 침공의 이유? 거짓된 천황을 끌어내리고 진정한 천황이 돌아왔다고 하면 된다. 여기에 총하고 대포 소리를 바다와 폭풍의 신 스사노오와 번개의 신 타케미카즈치의 힘을 받은거라 하면 완성! 야, 진짜 이정도면 천재 아니냐?


솔직히 이 정도 했으면 뭐 현지 장악은 일도 아니다. 일본 영주=군인이기 때문에 지난 번에 거의 쓸려나가서 간단히 관리들을 파견하면 그만이다. 유자들이야 눈 뒤집고 달려들께 뻔하니까.


에 또....


뚝. 하고 문서에 피가 한 방울 떨어졌다. 


"야, 너 괜찮아?"


마침 문이 열리며 혜인이가 들어왔다. 


"어? 안잤어?"


"그래도 남편이라는 애가 안자고 일하는데 나만 잘 수 있겠냐. 그래서 괜찮아?"


"아... 좀 피곤하긴 하네."


"너 고3 때도 그렇게 안했잖아. 빨리 자자."


"응."


그렇게 우리는 함께 잠에 들었다. 잠결에 누군가 이불을 올려주는 게 느껴졌지만 그걸 제대로 느끼기고 전에 잠이 덮쳐왔다.


* * *


공신 책봉. 이 정도의 업적을 이뤘으면 당연히 공신 책봉이 있어야 됐다. 물론 나도 있었다. 1등. 뭘 받지는 않았다. 좌의정인데 지위를 더 올려봤자 별 의미 없고. 돈이나 땅도 굳이? 그거 없어도 잘 사는데 뭐. 그래도 공식적으로 행사는 참여해야 했기에 다른 문무백관들이 그렇듯 근정전 앞에 도열해 있었다.


"....의정. 좌의정!"


아. 깜빡 졸았나보다. 나도 참. 


"좌의정은 앞으로 나오라."


"예, 전하."


한 발, 두 발. 뭐지? 걷는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뭐지? 왜 앞이 안보이지?


세상이 기울었다. 땅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야가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내가 쓰러졌던가.


"어의! 게 누구 없느냐! 어의를 불러오라!"


세종대왕이 손수 부축을 해주시다니, 이거 영광인걸.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내 세상이 암전되었다.


* * *


장영실은 ....선무 공신 1등에 책봉되었으나, 과로로 쓰러져 졸하였다. 사관은 논한다. 장영실은.. 


"음. 잘 써 줬고만. 좋은 말만 골라 써주게."


사관의 붓이 떨어져 서책을 더럽혔으나,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그 앞에 죽은 좌의정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던 경안 공주가 "애 그만 놀리고 가자"라며 그를 타박하자,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지나갔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때까지 사관은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 * *


"전하, 경안공주 자가와 좌의정 대감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뭐라? 짐이 좌의정을 아직 임명하지 않았거늘, 그게 무슨 망말이더냐!"


그대로 문이 열리며 보스는 직접 나오셨고, 그대로 소리지르며 뒤로 넘어갈 뻔 했다.


"전하, 제가 죽어 귀신이 되어도 좌의정 노릇을 하라고 아직도 새 좌의정을 임명치 아니하셨사옵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와이프가 말했다.

 

"전하, 우선 주위를 물려주시겠사옵니까?"


곧 방에는 우리 3명만 남게 되었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보스 앞에서 우리 부인님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게 미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도야... 내가 그리 부탁하지 않았니? 우리 남편 그만 괴롭히라고 내가 꽤나 간절히 부탁했던 것 같은데..?"


"아, 누님, 저 그게..."


오, 저 성격을 어떻게 감췄나했더니 동생을 갈궜구나. 어쨌든 난 이 좋은 타이밍에 사직서를 냈다.


"허하겠네."


음? 진짜? 내가 진심으로 놀라는 표정을 하니, 주상전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며 말했다.


"아무리 짐이라도 죽다 돌아온 사람을 괴롭히진 않네. 단, 일주일에 3일만 나와서 도와주게."


그렇다. 나는 살아 돌아왔다. 관에 묻혀 흙에 덮일 타이밍에 관을 열고 나왔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문명 시스템과 관련있는게 아닐까. 문명을 하다보면 그 군주가 바뀌었다는 언급이 한 번도 없었으니 그것 처럼 죽지 않는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는 먹어가니까 아마 나이 들어서 죽은거 아니면 안 죽을 거라고 추측했다. 어쨌든ㅡ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아, 그 전에 저 3개월만 휴가 좀 주십시오."


"무엇을 하려 하는가?"


"우리 공주자가와 제대로 못 간 여행이나 가볼까 합니다."


"그래. 잘 다녀오게나."


궁궐을 나가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뒤로 넘어가는 걸 보니 꽤 재미있었다. 히히덕거리는 날 보며 우리 마님은 날 한심하게 봤으나, 뭐 어때. 이 좋은 날에.


그 이후로도 우리는 잘 먹고 잘 살았다. 가끔 부활의 비법을 물어보며 전국에서 도사와 승려가 올라오기도 했지만, 그것만 아니면 조용하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문명 시스템도 점점 흐릿해지고 사라져갔기에 근심걱정도 많이 없어졌다. 당장 눈에 보이는게 사라지니 걱정이 줄더라고.



역사가 날 어떻게 기록할지, 또 나 이후에 이 나라가 어떻게 나아갈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정도 했으면, 그리고 예쁜 부인과 딸과 함께 행복했으면ㅡ꽤 잘 산 인생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