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12화



'아무리 그래도 이런 길을 타냐?'


산을 오르면서 끊임없이 든 생각이었다. 물론 나나 서화나 신체능력은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고, 그 상태로 남의 눈을 피하기에는 이런 길을 타는게 알맞다. 그치만, 직선 주로탓에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는 길을 전력질주하는 속도로 올라가라니... 


오빠로서의 위엄에 금이가겠지만, 만약 이대로 몇십분동안 움직여야했다면 바로 제지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서화의 발이 멈추었다. 




"오빠-아?" 


서화는 능숙하게 나무위로 뛰어올라가면서 사람을 불렀다. 나 말고, 저쪽 공터에 있는 사람을 말이다. 그쪽에서부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조금 걸어나오니 두명의 요호가 나를 막아섰다. 위로 그들은 나를 경계 반 호기심 반의 눈빛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시선이 이상하다거나 불쾌하다거나 하지 않기에, 그저 무표정한 시선을 돌려주기만 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내 모습은 이색적이기는 해도 위협적이지는 않다. 아니 생각해봐, 물빛 머리에 눈동자라는 우리나라에 유니크 오브 유니크한 색배합에 소녀같은 외모의 소년. ...아니, 역으로 위험할지도. 

 



"야, 야... 이 녀석은 뭐야?"

"응? 마법사 언니의 부하 오빠야!"

"뭐?"


서화의 당돌한 말에 오빠라고 불린 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수상한 것을 보는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래도 나는 반응을 하지 않았다. 마치 면접을 보는 것 같은 시선압박이 나에게 가해진다. 하지만 나도 반쯤 여기로 쫓겨온 몸, 찔릴만한 구석은 어디하나 없지.


"흐음... 멸마의 마법사라면... 아니 그보다, 왤케 늦은거야?"

"이 녀석이------"


나는 서화를 가리켰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바로 눈치챈 서화가 나무에서 뛰어내렸지만, 나는 몸을 살짝 움직여 그걸 부드럽게 받아내고 말을 이었다. 


"------올때 걸어온 모양이더라. 갈때는 내가 기차 같이 타줬지만."

"오빠아!"//"왜?"




다시 한번 달려들었지만 그 정도의 움직임 쯤은 강화된 신체능력만으로도 받아낼 수 있다. 그래도 나는 날아오는 서화의 궤도를 부드럽게 틀어서 오빠 요호에게 건네주었다. 

 

묘기같은 움직임에 주위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서화의 오빠는 무표정하게 딱밤 한대를 찧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뭐어., 노려봐서 미안해. 요즘 다들 신경이 좀 날카롭거든."

"아니에요. 경비가 허술한 지금, 경계심이 높아진 건 이해할 수 있죠."

"고마워. 내 이름은 박화야, 너는?"

"저는 세열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결계에 대해 아는 척까지 해서 간신히 통성명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나는 박화씨가 내준 손을 잡았다. 다만 그럼에도 그의 눈빛은 아직 날카로웠는데...


"...근데, 내 동생이 너를 오빠라고 불렀는데..."


아, 역시나...


"목소리나 냄새 같은걸로 알아보실 수 있지 않나요?"

"좀 크면 보통 남녀 구별을 할 수 있긴 한데... 넌 진짜 모르겠다."


아니 내가 2차성징도 못겪은 초딩이랑 동급이란 말입니까. 와 말넘심. 




"오빠는 남자야!"


서화가 오빠 품에서 내려오면서 나를 가리키며 대꾸했다. 고마워.


"나를 도와주는 모습이 굉장히 남자다웠으니까."


하지만 미안해. 그건 내가 원하는 도움의 말이 아니었어. 서화는 [고맙지?]라는 표정으로 보고 있지만, 나는 쓴웃음으로 돌려주었다. 


당연하지만 저런 물음은 수없이 많이 들었다. 유니크 체형의 숙명과도 같은 문제, 이걸 푸는 것은 거의 포기한 상태지. 하하...



===== ===== ===== =====



구름처럼 짙은 요기가 세계의 경계를 일시적으로 뒤틀리고, 그 사이로 우리를 이동시킨다. 축지의 요술을 그나마 내 감각으로 이해한걸 풀어낸 말이다. 까놓고 말해, 내가 느낌 모든 감각은 일단 저장했지만, 해석은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니 내가 남의 밑천을 까고 보는 타입은 아니니까. 그냥 느낌만 알아둔다고. 전이되어 내 앞에 나타난 풍경에 마음을 뺏겼다는 이유도 있지만 말이지. 


우리나라에 사람의 손길이 뻗치지 않은 곳이 얼마나 될 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는 그 얼마 안되는 곳의 필두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 




그런, 천혜의 경관 사이에, 요호의 마을이 있었다. 전통 기와집같기도 하고, 그보다도 더 자연과 어우러진 것 같기도 하다. 


또 하나의 눈으로는, 천혜의 요새라고 느껴지지만 말이다. 


'...시야를 흐리는 효과? 그리고 물리 충격 완화도 있고, 체력 감소에... 나머지는 모르겠네.'


직접 실험해보지 않고, 고작 바람에 묻어오는 효과들을 다 알아내기는 무리다. 거기에 마을을 둘러싼 결계만이 아니라 가옥과 지대등 여기저기에도 수많은 요술진이 제각기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일주일만 살면 요력 내성 MAX를 찍지 않을까?' 


22세기 최첨단 도시의 기술력을 통째로 요술로 치환한 느낌. 벌써 신체 강화 배율이 아주 그냥 미쳤는데. 그렇게 조금 다른 의미에서 감탄을 하고 있으니.




"난 얘랑 같이 장로님을 뵈고 올게."

"나는?"

"너는... 응 뭐야? 너 괜찮아?"//"응?"


아까 말했듯 [결계] 때문에 내 체력은 시시각각 빼앗기고 있다. 심지어 들어오는 순간 신체강화 마법은 꺼져버렸다. 하지만 워낙 강화배율이 똥파워를 내고 있어서 전혀 문제 없다. 젓가락 들어올릴 힘으로 운동도 할 수 있는 수준이라... 그래도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모르는 그에게는 이런 반응이 당연하지.


"여기에는 우리들이 인정한 자를 빼면 다 지속적으로 체력을 빼앗기게 되어있는데..."

"아니 진짜. 이 정도 빼앗기는 것 정도면 뭐 문제 없지."


그렇게 말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이다. 쩝. 


"그, 그러냐... 진짜 이상한 녀석이네."실례야"어쨌든 아까 네가 말한 레이나양은 마을 앞 돌계단 아래에 있으니까 만나면 돼. 들어올때는 너에 대한 효력이 풀릴테니까 그냥 들어오면 되고." 

"알았어."


나는 곧바로 뒤돌아서서 두어번 도움닫기를 한 뒤 땅을 걷어찼다. 5미터 되는 땅을 넘어, 4미터는 넘는 목책을 넘어... 미친. 




'와우... 내 몸 맞냐.'


뼈와 근육에서 전해지는 진동의 급이 달랐다. 마치 그들의 재질이 다른 것으로 치환된 것만 같았다. 무술을 단련하지 않았다면 세세한 힘의 컨트롤이 안되 목책 기둥 위에 올라서지 못했으리라. 


놀라고 있는 서화, 박화와 몇몇 다른 요호들에게 인사를 하고, 반대쪽으로 뛰어내렸다. 목책 틈 사이에서 쉬고 있던 박쥐 몇마리가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날아올랐다. 


레이나 선배를 만나기 전에 이 몸을 좀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저 박쥐라도 잡아볼까? ...아. 




'헐 미친, 붉은박쥐네. 어떡하지.'


잡아야 하는데... 못잡겠네. 


아니, 저거 천연기념물... 잡으면 체포잖아. 




...잡아야 하는데...



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