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밤

 

내가 어렸을 적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 동네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셨다. 근처 마트의 사장님, 근처 시장의 아주머니, 근처 이웃집 아저씨와 자주 만나셨다. 나도 자주 마트며 시장에 가서 조금은 이야기했고, 희미하지만 정겨웠던 기억이 있다. 마트 앞 평상에 앉아 잠깐 할머니를 기다리며 아주머니와 이야기했던 장면이 흐릿하게 기억난다.

 

몇 년 전 할머니와 할아버지 댁에서 그분들 제사를 지낸 그날 밤은 추웠고, 구름이 껴 유난히 어두웠다. 가로등이 부옇게 골목길을 비추었고, 추위를 피하려 깊숙이 숨은 고양이 소리와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만이 이따금 들려왔다. 이 동네에서 사람들은 이제 다른 곳으로 가거나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만이 좀 있을 뿐이었다.

 

갈라진 콘크리트 주차장 옆 버얼건 벽돌로 지은 빌라 2, 쇠창살 사이로 뉴스인 듯 퍼어런 불이 설렁이고, 골목 저 안 다른 집에서는 방금 돌아온 듯 불이 껌뻑, 또 깜빡이며 켜졌다. 창 하나하나마다 새어나오는 빛에서 사람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정겨운 듯 했지만 닳아버린 길에서도, 그렇게 빽빽이 모인 집에서도 사람 소리라고는 들리질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외롭고, 또 적막해서 문득 반짝이기만 하는 저 별들을 보았다.

 

저 별들, 그들은 서로 말이 없다. 조그마한 빛을 내며 존재를 알리지만 구태여 소리 내어 말을 하려 하진 않는다. 그 고요한 일렁임들이, 어쩌다 여기로 모이고 모이지만 여전히 거리는 한없이 멀게 느껴진다. 분명 그들도 서로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그저 조용히들 반짝이기만 한다. 때로는 저 밝은 도시의 각박함에 제 힘을 못 쓰고, 혼자 살아가기도 버거워 조용할 뿐이다. 군데군데 반짝이는 이 동네는 말이 없어졌다.

 

그들은 별들이 주변에 있음을 알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러지 않으려 한다. 그 동네에서, 따뜻한 기억 속 그곳에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자신도 더 조용히, 홀로 견디며 그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