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완)

이거 후속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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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영웅의 망나니 자식


평화로운 시대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었다.


카이저 프리드리히 4세와 ‘푸른 방패의 소년’ 아인 폰 발터가 ‘죽음의 기사’ 토트를 저 멀리 쫓아낸지도 어느덧 17년이 흘렀다. 17년간 이렇다 할 전쟁 한 번 없었고, 백성들의 불만도 사그라든지 오래였다. 모두가 ‘영웅왕’ 프리드리히 4세를 찬양하던 어느 봄, 카이저는 트리움피한의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건조된 수십 척의 함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종이 다가와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한 다음 말했다.


“폐하, 아인 폰 발터 백작이 왔습니다.”


“오라 하게.”


오래지 않아 카이저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손에 꼽혔지만, 이젠 얼굴 표정에서부터 연륜이 풍기는 그 남자의 등 뒤엔 푸른 빛으로 빛나는 방패가 매여 있었다. 그 남자, 아인은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폐하, 신 아인 폰 발터, 이렇게 왔습니다.”


카이저는 자신의 옆 자리를 가리켰다.


“이리로 오게.”


아인은 카이저의 옆에 섰다. 카이저는 손을 뻗어 항구를 가리켰다.


“멋지지 않나? 200년 전 ‘탐험왕’ 루트비히 6세 폐하 이후로 이 정도의 함대는 처음일 걸세.”


“저도 이렇게 많은 배를 보는 건 생전 처음입니다. 허나 폐하, 무슨 바람이 불어 이런 것을 명하셨습니까?”


“욕심이 생겼다…고 말해두지. 더 이상 대륙에서 할 게 없으니, 저 ‘공포의 바다’ 너머로 나아가고 싶다는 욕심.”


아인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카이저와 함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폐하, 저는 작은 마을의 일개 백작에 불과하지만 루트비히 6세 폐하의 ‘마지막 원정’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대평원과 검은 늪을 비롯해 대륙 전부를 샅샅이 탐험한 폐하는 바다 너머로 고개를 돌렸고, 재위 22년 차에 황태자이자 다음 카이저이신 트리움피한 공 ‘오토 6세’께 카이저 자리를 맡긴 뒤 100여 척에 달하는 함대와 원정을 나갔다가…”


카이저가 대신 입을 열었다.


“2년여 만에 돌아온 것은 1척. 3만 명에 달하는 원정대는 100명 정도로 줄어 있었지. 물론 루트비히 6세 폐하도 승하하셨고. 생존자들이 말한 건… ‘거인들의 섬’이었다네. 온 몸이 아궁이 속의 석탄처럼 타오르는 거인들이 함대를 공격했다. 바다가 펄펄 끓고 하늘에선 불붙은 바위가 떨어졌다. 물고기인지 뱀인지 알 수 없는 생명체가 바다에 빠진 선원들을 유린했다… 그 이후 오토 6세 폐하는 바다로 나가는 것을 포기하셨지.”


“그렇기 때문에 무례를 무릅쓰고 폐하께 여쭤보는 것입니다. 어찌 바다로 나가시려는 겁니까? 탐험왕 폐하와 달리 폐하는 후계를 이을 황태자 전하도 어리지 않습니까.”


“경이 검과 방패를 차고 카이저의 곁에 오도록 허락한 이후로, 이 카이저는 경의 간언을 무례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네. 또한 바다로 나가려는 이유는 토트 때문이지.”


카이저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아인은 자기도 모르게 표정을 구겼다.


“토트…”


“토트가 날아간 방향은 거인들의 섬과 비슷하네. 놈의 숨이 붙어있는 한 분명 음모를 꾸미고 있을 게 분명하니까. 아마… 경이 죽은 이후를 노리지 않겠나?”


아인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놈이 동맹 비슷한 걸 맺을 존재는 지금으로선 거인 밖에 떠오르지 않아. 그 때문일세. 만일 거인들이 대화가 통한다면… 우리가 설득이란 걸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니 아인 경, 부탁이 있네.”


카이저는 아인의 어깨 위로 두 팔을 올렸다.


“3개월 뒤, 거인들의 섬을 향해 갤리온 10척으로 구성된 선봉대가 출항할 건데, 아인 경이 그 선봉대 대장을 맡아주게.”


아인은 깜짝 놀랐다.


“제가 말입니까?”


“그래, 다시 생각해 보아도 경만큼 믿음직스러우면서 전쟁과 통솔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 없더군. 경이 제격일세.”


아인은 허리를 굽혔다.


“예, 폐하. 따르겠습니다.”


카이저는 미소를 짓더니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


“그러고보니 경의 아들 말인데, 오스카라고 했던가? 경의 재능을 그대로 받았다고 들었는데 원정에 같이 참여하는 게 어떤가?”


아인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 앞에서 한숨을 내쉰 무례는 사죄드리겠습니다. 오스카는… 맞습니다, 검술 재능 하나만큼은 저와 똑 같은, 어쩌면 그 이상입니다. 허나…”


아인은 또 한숨을 쉬었다.


“저 역시 트리움피한에 오랜만에 오긴 했지만 저잣거리에서 들리는 이야기 정도는 압니다. 저잣거리에서 이런 말이 돌더군요. ‘사자는 사자를 낳건만, 영웅은 망나니를 낳았구나.’ 제 아들은 아비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습니다.”


카이저 역시 혀를 찼다.


“경의 아들이 트리움피한에서 유명한 사고뭉치라는 것은 대충 들어 알고 있다네. 약혼녀가 있다지 않았나?”


아인은 또 한숨을 쉬었다.


“그런 거로 제재가 되었다면 아비된 자로써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듣자하니 창관 단골손님에 멀쩡한 집안 여식 처녀만 가져가고 책임도 안 진다고 동네가 뒤집어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답니다. ‘그 아이’만 고생이죠. 20살이나 된 놈이 철이 안 들었으니 원.”


카이저는 그런 아인을 위로한다는 듯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분명 경이 곁에 있으면 금방 고쳐질 걸세. 걱정 말게.”


“그러면 좋으련만…”


한편, 트리움피한의 어느 골목. 우당탕 소리와 함께 한 젊은이가 진흙이 얇게 덮인 골목을 내달렸다. 그 뒤로 장정 세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그를 뒤쫓았다.


“서라!”


“아까도 말했지만 ‘입’ 서비스만 부탁했는데 그 여자가 끝까지 다 해버리고 가격 부른 거라고!”


“믿을 것 같냐!”


“그 전에 빚진 10골드도 내놔!”


“말이 안 통하네 진짜!”


달리고 또 달리던 남자는 결국 막다른 길에 가로막혔다. 장정들은 당장이라도 몽둥이 찜질을 해주려는 듯 다가왔다.


“이봐, 오스카 폰 발터. 돈 낼래, 아니면 실컷 얻어 맞고 낼래?”


“아니… 진짜 돈 없다고…”


“아이고, 아버지는 영웅인데 넌 그냥 망나니 새끼가 따로 없구만.”


오스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지가 뭐? 그 인간이 영웅인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진짜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냐!”


오스카는 곧바로 주먹을 쥐고 싸우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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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하던 거 마무리 짓고 연재할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