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중학생 쯤이었다. 분명  성관련 수업이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생기는 방법을 설명하시고 계셨다. 


서윤은 이상함을 느꼈다. 스크린에서 설명하던 행위가 새아버지가 자신에게 행해오던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주변 아이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몇몇은 눈을 감고 있었다. 자신이 잘못을 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서윤은 그자리에서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선생님께서 수업에 관련된 질문을 건냈을 때는 식은 땀이 나는 것만 같았다.


얼마안가 서윤은 자신이 새아버지에게 강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불쾌했다. 그런 행위는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서윤은 새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새아버지를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 이후로 새아버지에게 반항을 해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폭력뿐이었다. 어머니에게도 말해보았지만 꾸중을 들을 뿐이었다. 자신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었다. 서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렇게 별다른 변화없이 고등학생이 되었다. 지속되는 폭력과 강간. 어머니의 무시 등으로 정신적으로 점점 고립되어갔다.


서윤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자신이 이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변 남성들의 시선이 새아버지의 눈빛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미쳐버릴 거 같았다. 또래 아이들과 달리 남성에게서 불쾌감만이 느껴졌다. 


교실에서 엎드려 있던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주위에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이 고립감이 너무 싫었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까. 오랜시간 고민해왔지만 별다른 해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얼마뒤 서윤의 오른쪽 앞에 뭉쳐있던 무리에서 소곤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뉴스에 관한 이야기 같았다. 내용은 여자아이가 양아버지에게 강간당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법을 찾아냈다. 


판단을 내린 것은 한순간이었다. 자신이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은 저 방법 뿐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성적을 판단을 내리기에는 부모님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서윤은 왼쪽에 앉아있는 남자애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것인지 남자애는 쑥스러워하는 듯했다. 


남자애의 이름은 현우로 우리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말을 걸었다. 현우와 여러 이야기가 오고갔다. 일상적인 이야기. 연애이야기. 몇 마디를 나누니 현우의 얼굴에는 행복감이 가득했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나고 현우에게서 고백이 왔다. 웃으며 고백을 받아주었다. 물론 현우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아마 자신이 남성을 좋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관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얼마뒤 현우가 자신을 집으로 초대했다. 아마 그 행위를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현우의 집에 찾아가 새아버지가 아닌 남성과 처음으로 관계를 가졌다. 좋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반응해주었다. 현우는 기분이 좋았는지 연신 허리를 흔들어됐다.


일이 끝나고 침대에 누워 목적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신의 부모님을 죽여달라고. 이유도 덧붙였다.


현우는 당황한 기색을 들어냈다. 팔을 들어 현우의 얼굴에 가져갔다. 키스를 나누며 귓가에 속삭였다.


"단 한번이면 되니까. 사랑해"


현우에게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몇번의 관계를 더 가지고 난 후 허락을 받아냈다.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이후 일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내용은 현우측에서 사람을 고용해서 교통사고를 낸다는 것이었다.


몇일이 지나고 자신도 준비를 끝마쳤다. 오늘 밤 아버지를 죽이기로 했다. 뒷 일은 역시 현우 쪽에서 해결해주기로 했다.


하늘에는 왠일로 별이 많이 떠있었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파트 입구로 들어갔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엘레베이터가 올라갔다. 심장이 크게 뛰는 것만 같았다.


'띵동' 소리가 난 후 문이 열렸다. 천천히 자신의 집으로 걸어갔다.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문이 열렸다. 새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말도 없이 왜이렇게 늦게왔어! 시발 너네 애미는 또 어디갔고. 기분 안좋으니까 오늘은 씻지말고 바로 와."


천천히 새아버지에게로 걸어갔다. 새아버지가 못참겠다는 듯이 자신에게로 걸어왔다. 불쾌한 시선을 자신에게 보내고 있었다. 


천천히 거리가 가까워지고 한발자국 거리가 되었을 때. 서둘러 몸안에 숨기고 있던 식칼을 꺼내들었다. 


새아버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식칼을 새아버지의 가슴에 쑤셔넣었다. 박혀있던 칼을 빼서 다시한번 찔러넣었다.


붉은 액체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왔다. 붉은 피가 온몸을 적셨다. 뜨거웠다. 손이 떨려왔다. 심장이 강하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호흡이 가파라졌다.


눈 앞에 남자가 잠시 경련하더니 털썩 쓰러졌다. 자신도 다리의 힘이 풀려 털썩 앉았다.


눈 앞에 그렇게 원망하던 남성이 누워있다. 힘 없이 축쳐져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불안감이 점점 행복감으로 변해갔다. 공포감이 고양감으로 변해갔다. 웃음이 나왔다. 실실 웃던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하하하하하하"


입을 벌리며 크게 웃었다. 몇분이 지났을까. 눈물이 흘러나올정도로 신나게 웃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운한 감정이 들었다. 시체를 바라보았다. 몸에 박혀있던 칼을 뽑아내서 다시한번 찔러보았다. 여전히 몸은 축쳐져있다. 


"흐흐."


실실 웃고있자 문이 열렸다. 현우 측 사람이 도착했다. 뒤에는 현우도 서있었다. 현우가 서둘러 나에게로 다가왔다.


"울지마. 잘될 거야."


손으로 부드럽게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눈가에 있는 눈물을 보고 울고 있다고 착각한듯 했다.


밖으로 나와 현우와 대화를 했다. 어머니 쪽도 성공적으로 해결한 듯 했다. 모든 일은 끝났다.


현우네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니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늘이 새빨갛다. 


푸르렇던 하늘이 새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무섭지는 않았다. 


현우와 관계를 이어나가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길을 걸어다니던 도중 배우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배우라는 말을 듣고 영화에 조금 흥미가 생겼다.


이후 여러 영화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영화라는 것에 매료되었다. 영화에서 다들 제각각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행복한 영화도 있었지만 몇몇 영화는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영화도 있었다.


묘한 행복감이 느껴졌다. 동질감을 느꼈다는 표현이 더 옳바른 것일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위로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 후 배우라는 직업에 큰 관심을 가졌다. 현우에게 부탁해서 유명제작사를 찾아갔다. 배우 면접을 보게 해달라는 목적이었다.


관계자 사람이 나를 보더니 흥분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이쁘다고, 배우를 위한 얼굴이라고 연신말하며 나를 정성스럽게 받아주었다.


그 이후 일은 순조로웠다. 단역으로 몇몇 작품에 출현해서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나에게는 연기의 재능이 있었다.


얼마안가 주역을 따내었다. 첫 주역이라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지만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매스컴에서는 천 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천재여배우라고 연신 기사를 만들어냈다.


주변에서는 질투의 시선이 느껴졌다. 같은 여배우에게서 여럿 폭언을 듣기도 했으며 회사에 몸을 팔아 주역을 따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별로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그냥 벌레들이 윙윙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세계적인 배우가 되기까지는 몇 년 걸리지 않았다. 여러 주역들을 소화해냈으며, 한국에서는 나를 이용해 그들의 자존심을 채워갔다.


우스웠다. 남을 이용해서 자신의 자존감을 채운다는 것이 웃겼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이는 영화를 통해서 동질감을 느낀 나와 같이, 인생의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의 보호기제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 뒤로는 그들에게 나쁜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은 시선을 보낸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구나 라는 느낌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영화 배우를 시작한지 6년이 지난 오늘. 다시금 영화 캐스팅이 들어왔다.


영화의 내용을 듣고 묘한 흥분감을 느꼈다. 영화의 내용은 옛날 고등학교에서 들었던 자신의 양아버지를 죽인 여자아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찌릿함이 느껴졌다. 이것이 나의 인생의 클라이맥스 부분이라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곧바로 영화 제안을 수락했다. 그후 영화의 대본을 받아 연습을 시작했다.


"완벽하다. 손 떨림과 호흡, 시선처리 등. 진짜 현실에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될 정도야."


감독님의 극찬이 쏟아졌다. 속으로는 감독이 날카롭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저질렀던 일들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에서 흥분감이 느껴졌다.


얼마뒤 영화가 개봉되었다. 약속이라도 한듯이 영화는 엄청난 인기를 끌어냈다. 신들린 연기라며 극찬이 쏟아졌다.


그리고 영화는 아카데미 수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수상에 성공했다. 곧바로 미국으로 날라갔다. 끝맺음을 하기위해서.


여럿 유명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연신 좋은 말을 꺼냈다. 어떻게든 나에 눈에 띄고 싶어하는 눈빛이었다. 몇몇은 구애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그들에게 싱긋 웃음을 주며 이야기를 끝마쳤다. 물론 그들의 이름과 얼굴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시상식에 올라섰다. 관중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져나왔다. 감독님이 먼저 연설을 시작했고, 이윽고 나의 차례가 왔다.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제각각 다른 눈빛을 나에게로 보내고 있었다. 질투의 시선, 경외의 시선, 구애의 시선 등 여러 시선들이 느껴졌다.


"일단 이 작품의 바탕이된 민아씨에게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모두들 묵념하는 모습이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금 마이크를 붙잡았다. 


"제가 이곳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라면, 일반적인 배우였다면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하는 것이 정석이었을 것이다. 


"제가, 저또한 경험해본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찍이 친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얼마안가 어머니께서는 새아버지를 데리고 오셨죠. 그리고 저희 새아버지는 저를 강간하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모른채 하며 넘어가셨죠. 그래서 죽였습니다. 제손으로, 영화처럼."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관중석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메라 셔터음이 계속해서 울렸다. 뒤에 관계자들 또한 당황한 듯한 눈치였다.


"인생은 어찌보면 한편의 영화입니다. 다들 자신만의 사연이 있고, 자신만의 끝맺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저라는 영화의 끝맺음을 지을려고 합니다."


그 후 품안에 숨겨놓았던 건총을 꺼내들었다.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뒤에서 관계자가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렇다. 17살 이후 단 한번도 푸르지 않았던 하늘이, 구름 한점없이 푸르렇다.


"그럼 안녕히."


붉은 피가 무대위를 적시며 서윤이 털썩하고 쓰러졌다. 쓰러져 있는 그녀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