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에 안드로이드가 감지되었다. 모두가 적이 대체 어디에서 나올까 긴장하며 두리번거렸다. 저번에 열차를 레이저로 두동강낼 정도로 무서우리만치 창의적으로 공격해왔기에 이번에는 무슨 방법으로 공격할 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히 슈트에 방열기능이 있어 레이저에는 안전했다.
침이 절로 꼴깍 넘어갔다.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레이더 상으로는 안드로이드의 위치는 동쪽. 다시 말해 올림픽로 한복판이었다. 250m까지 감지되는 레이더라 그 너머의 안드로이드까지는 알 수 없었다.
기종명은 HON-A12-412와 XIA-H9-397이었다.

"저기다!"
크리스 이스트우드가 크게 소리쳤다.
도로 동쪽으로부터 실탄이 발사되었다. 안드로이드 두 대가 도로의 양쪽 인도로부터 달려오고 있었다.
재빠르게 사각지대로 숨었다. 다행히 아무도 맞지 않았다. 일종의 경고사격인 듯 했다.
분명 레볼루시아는 민간인을 죽이면 안 되는 조직이라고 했다. 그런데 통행량이 많은 강남의 한복판에서 이렇게 대담하게 쏠 수 있단 말인가?

무슨 일인지 그 뒤로 안드로이드의 발사는 뜸해졌다. 우리들은 천천히 반격을 준비했다.

레이더에 두 대가 더 포착되었다. 기종명은 SEN-B2e-1. 세나칼의 안드로이드였다. 저 세계에서 내가 만든 로봇이 이 세계에서 나를 노린다는 것이 은근 소름끼쳤다.
SEN-B2e-1의 위치는 남쪽이었다. 올림픽로4길 정신여자중학교 옆이었다.
XIA-H9-762의 위치는 북쪽이었다. 올림픽경기장 안쪽이었다.
이 배치는 다시말해 우리들을 동서남북 중 세 방향으로 포위한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안드로이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안드로이드는 이번에도 다른 사람들을 피난시키는 듯 했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도로 한복판을 습격하다보니 민간인을 없애는 게 우선인 듯 했다.
우리는 그 사이에 자리를 최대한 피했다. 올림픽로를 따라 서쪽으로 갔다. 안드로이드와 최대한 멀어지는 게 유리할 것 같았다.
 
"온다!"
안드로이드를 유의깊게 보던 팡 씬이가 말했다. 진짜였다. 안드로이드가 취한 자세는 사격준비자세였다.
"피해!"
안드로이드가 우리들이 있는 방향으로 돌격했다. 역시 로봇이라 그런지 속도가 웬만한 육상 선수에 버금갔다.
어쩔 수 없었다. 도시 한복판이었지만 비행용 베낭을 사용했다. 슈트와 연동으로 쓸 수 있어 슈트에 달린 버튼을 눌러 조작했다.
버튼을 누르자 베낭에서 추진력이 나오며 위로 솟아올랐다. 평소라면 SF에서나 보던 비행베낭을 쓰다니 공돌이 본능이 솟아 감개무량했겠지만 지금은 일단 살아야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베낭으로 허공에 떠올랐다. 일단 발을 디디기 위해 야구장 꼭대기에 착지했다.
공중에서 밑을 보니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혼비백산하며 도망가고 있었다. 안드로이드가 민간인을 공격하면 안 됐다는 것에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서울은 지옥이 되어있을 터였다.

그 때 올림픽로 동쪽으로부터 달려왔던 XIA-H9-397 안드로이드가 바주카포를 들었다. 레이저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그 생각이 끝을 맺기도 전에 CIA-H9-397이 바주카포를 발사했다. 미래의 바주카포인가 했지만 현재에도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그냥 바주카포였다.

바주카포가 야구장 외벽 한 쪽을 때렸다. 정확히 우리들이 서있는 곳이었다. 굉음괴 함께 야구장 외벽에 금이 가더니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위험했다. 이대로면 추락사할 것이었다. 다시 비행베낭을 가동해 빠르게 피했다.
그 때 긴급재난문자가 왔다. 지진이었다. 위례 5.5 대지진. 딱 15시 47분이었다.리와인더의 말이 실현된 것이었다.
땅이 흔들렸다. 주변 일대가 모조리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총성에 놀라 달아나던 시민들도 지진에 놀랐다. 일부는 갑자기 떨어진 야구장 외벽에 까무라쳤고 다른 사람들은 수도를 뒤흔드는 진동에 경악했다. 주변 일대가 바스라지고 간판 등 조형물 따위가 붕괴했다.
그리고 마침내 토양액상화. 리와인더의 말 그대로 위례대지진으로 인한 대한민국 이래 최악의 재난이 일어나고 있었다.
롯데월드타워 부근에서 굉음이 울렸다. 먼지와 분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결국 롯데타워가 한 쪽으로 기울더니 더 큰 굉음을 내며 호수와 놀이공원 등 주변 일대를 집어삼켰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쑥대밭이 되어있을 잠실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먼지가 바람을 타고 주변 일대로 날아갔다.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실 전체를 뒤덮었다. 그리고 잠실 종합운동장인 이쪽으로도 날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았기에 슈트에 방진 마스크 기능도 달아놨다. 그래서 안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밑으로 내려가야 됩니다!"
먼지구름이 이쪽으로 오는 것을 보며 크리스 이스트우드가 왠지 다급해보였다. 무슨 일인가 하며 온 신경이 바짝 세워졌다.
"왜 그런가?"
천 슈어 단장님이 말했다.
"저 먼지가 비행베낭에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추진기가 고장납니다! 슈트에는 방진 처리 해놨지만 베낭에는 안 해놨어요!"
"그 말이 진짜인가?"
"그렇습메다!"
제작에 큰 비중을 차지한 최은준이 동의했다.

큰일이었다. 위에는 지진으로 생긴 먼지가 우리를 위협하고 밑에는 최소 4대의 안드로이드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 새끼들 이걸 노린 거였어?"
팡 씬이가 신경질내며 밑으로 내려갔다.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따라 하나 둘 내려갔다.
"어디에 내릴까요?"
시즈오카 히카리가 물었다.
"크리스 이스트우드, 어디로 가는 게 좋겠나?"
천 슈어 단장님은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크리스에게 물어본 이유는 그가 경찰 출신이라 혹시 도움울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다만 크리스는 이런 건 처음이라 대충 아무데나 내리려는 듯 했다.
"일단 안드로이드 없는 곳 아무데나 내립시다!"
"그게 어딘데요?"
"일단 서쪽 아무데나 갑시다!"
크리스가 갈팡질항했다.
그 때 세르게이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럼 난 저기 주차장으로 간다."
탄천 공영주차장을 말하는 것이었다. 포위망에서 벗어난 서쪽이고 아래쪽이었다. 야구장 쪽 도로보다 저지대여서 역공하기에는 불리해보이긴 하지만 일단 그쪽이 안전해보였다.

일단 모두가 탄천 공영주차장에 착지했다. 그쪽에서 일단 대열을 정비하기로 했다.
탄천 공영주차장도 야구장 쪽과 마찬가지로 패닉에 빠져있었다. 자동차들은 지진으로 차체가 흔들려 삐용삐용하며 경보음을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가 소름끼쳤다.
"안드로이드의 위치가 어떻게 돼요?"
"전부 이쪽으로 집결중입니다. XIA-H9-762는 종합운동장, HON-A12-412와 XIA-H9-397는 올림픽로에서 집결중, SEN-B2e-1은 학교를 가로질러 오고 있습니다."
내가 빠르게 체크하여 말했다. 학교 사이를 통해 오다니 그쪽의 학생들이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꼭 식별번호로 불러야 되요? 이름 길어서 싫은데."
팡 씬이가 투덜대며 말했다. 듣자하니 일리가 있었다.
"그럼 762, 412 이런 식으로 뒤에 있는 번호로 불러 말합세다."
"알겠네."
최은준의 제안을 천 슈어가 승낙했다.

그 때 커다란 폭발이 울렸다. 탄천 공영주차장 강변이 타격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다행히 많이 빗나가 있어 피해는 없었다.
"피해!"
어디서 날아왔을까? 확실한 건 서쪽 저 멀리서 날아왔다는 것이었다. 강남구 쪽에도 안드로이드가 있는 것이었다.
"또 날아온다!"
포환이 연이어 주차장으로 날아들었다. 어떻게 했는지 민간인이 없는 곳만 딱딱 맞추고 있었다. 자기들이 만든 법 하나는 참 잘도 지키네.
발사된 포환만 10개가 넘어갔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우리들에게 한 발도 맞지 않았다. 딱 우리들이 피할 수 있을 정도로만 쏘고 있었다.
무슨 속셈일까? 주위를 둘러보니 주차장의 민간인들이 기겁하며 주차장 밖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설마 민간인들을 밖으로 보내고 그 다음 제대로 치겠다는 건가?

안드로이드 레이더를 봤다. 412번, 397번, 762번 안드로이드가 어느새 가까이 와있었다.
397번과 762번이 있는 쪽을 보았다. 다리 위였다. 397번과 762번이 삼성교 위에서 아까 야구장 외벽을 부쉈던 그 바주카포로 지원사격을 가했다.
412번은 야구장 쪽에 있는 주차장 입구에 있었는데 무슨 생각인지 소총만 장전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397번과 762번의 공격이 계속 빗나갔다. 확실히 안드로이드가 유리한 상황인데 명중률이 이렇게 처참한 건 분명 무슨 계획이 있는 것이었다.

안드로이드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나는 사살 불가라고 했다. 나는 죽지 않을 거다 자기암시를 주며 주변 상황을 둘러보았다. 리와인더 단원들은 전부 주차장에 주차된 자동차와 버스를 엄폐물 삼아 피하기에 바빴다. 남쪽으로는 다리 위에서, 서쪽으로는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에서 포탄이 날아오니 당연했다.
서쪽에서 포탄이 날아오는 곳이 어디일까? 일단 동부간선도로는 아니었다. 강변을 따라 지어진 다리 위를 지나는 동부간선도로에는 레이더 상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적어도 250m 밖에서 포탄을 쏘고 있는 것이었다.
같은 이유로 250m 안에 있는 서울의료원은 후보에서 제외. 그렇다면 서울의료원 뒤쪽 어딘가가 포격지점이었다. 삼성역 쪽으로 가봐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412호도 이상했다. 지금 쏘면 백발백중일 텐데 한 발도 쏘고 있지 않았다. 총을 겨누고 있지도 않고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레이더를 다시 보았다. 세나칼에서 만든 1호가 412호 곁으로 이동했다.
1호가 무엇을 하는 지 보았다. 412호와 다를 바 없었다.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슨 속셈이지? 무엇을 기다리는 거지?

통신앱을 켜서 대화를 시도했다. 가장 먼저 통화를 받은 사람은 눈 앞에 50대임에도 불구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최은준 교수였다. 나는 일단 같이 행동하기 위해 최은준이랑 같이 다니기로 했다.
"최교수님, 지금 강 너머로 날아오는 포탄이 어디서 날아오는 걸까요?"
"레이더에는 안 잡히나?"
"네, 안 잡혀요."
"그럼 그 너머겠지비. 비전투인원인 츠바사한테 물어보던가."
"일단 그럴게요."
패러렐라인의 호출버튼을 눌러 비전투인원인 츠바사를 호출했다. 츠바사는 신체적인 능력치가 너무 낮아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그녀의 해킹능력이 필요할 때 호출하기로 했다.
미야자키 츠바사가 호출을 받았다. 시간이 없어 바로 말했다.
"츠바사! 지금 서쪽에서 날아오는 포탄이 어디서 날아오는 건지 알아봐줘!"
"응."
그리고 츠바사가 통화방을 나갔다. 나는 다시 최은준 교수와 대화를 시도했다. 다시 날아오는 포탄을 피하며 말했다.
"그리고 저기 412호랑 1호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뭐 하고 있는 걸까요?"
"몰라. 민간인을 아이 해하면서 우리를 죽일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 거겠지비."
"그럼 어떻게 죽이려는 걸까요?"
포탄이 날아왔다. 바로 옆 버스 뒤로 피했다.
"우리가 죽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냐... 음, 안드로이드가 슈트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 것 같냐? 지져죽이거나 데워죽이거나 때려죽이거나 총으로 죽이는 건 안 될 거잖아. 그럼 뭘까? 압사? 질식사? 추락사? 폭사? 익사?"
질식사나 익사? 일단 바로 옆이 강이기 때문에 그 점을 고려해보고자 했다.

그 때였다. 멀뚱멀뚱 서있던 412호가 도로 밑으로 내려와 습격을 가했다. 타깃은 세르게이 아시모프였다.
"세르게이! 너한테 습격 온다!"
세르게이가 이미 공격을 감지하고 있었는 지 옆구리에 달린 폭탄 수납함에서 접착탄을 꺼냈다. 그리고 412호에게 던졌다. 412호가 일단 피했다. 가망이 없는 듯 했다.
그 때 세르게이가 한 번 더 던졌다. 안드로이드의 발이 접착탄에 맞았다. 412호가 관성의 법칙에 의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때였다. 412호가 어떻게든 자세를 갖추려고 하더니 소총을 장전했다. 세르게이가 잽싸게 버스 뒤로 도망쳤다.
412호가 이쪽으로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나랑 최은준 교수가 반응하기도 전에 총을 발사했다. 순간 이제 죽는구나 했다. 머리에서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장면들이 재생되었다. 총알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였다.
다행히 총알은 우리를 한참 빗나가고 뒤쪽을 때렸다. 뭔가 하면서 뒤쪽을 보았다. 뒤에는 천 슈어 단장님이 있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피한 듯 했다.

"단장님!"
"저거 맞지 않게 조심하게나."
그 때 총알이 다시 발사되었다. 이번에도 뒤쪽에 맞았다. 아무래도 타깃이 천 슈어 단장님인 듯 했다.
"아무래도 목표4ㅏ 천 슈어 단장님인 것 같다우.
"그럼 어떻게 하죠?"
"일단 돌격해보지. 어차피 이 슈트 방탄이잖냐? 그러니까 맞아도 괜찮을 거야."
"돌격이요? 아니에요. 위험하다고요!"
"저 총 연사가 안 되는 것 같아. 그러니까 저거 발사한 직후에 달려가서 접착총이든 화학총이든 때려박으면 될 거야."
"혹시 그러다가 죽으시기라도 하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비!"
최은준 교수가 진짜로 가려는 듯 했다.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무모해보여서 말리려고 했다.

탕.
412호가 다시 총을 천 슈어 단장님을 향해 쏘았다. 단장님이 다시 어떻게든 피하려고 자세를 잡았다.
최은준 교수가 진짜 실행을 하려고 412호를 향해 돌진했다. 총알이 최은준 교수의 슈트에 맞았다. 방탄이라 큰 고통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심상치 않았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기 일어났다.
최은준 교수가 총알을 맞더니 그 자리에서 맥도 못 추스르고 쓰러졌다. 내뱉은 말은 단말마가 전부였다.
총에 맞았다고 쓰러질 리는 없었다. 분명히 성능검증까지 끝난 슈트일 터인데 이상했다. 무언가가 있었다.

최은준 교수가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그리고 바로 기척이 사라졌다. 기절한 듯 했다.
"최 교수님!"
누군가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에 두려워 최은준 교수에게 달려갔다. 최은준 교수는 대체 왜 쓰러진 걸까?

최은준 교수를 챙기면서 안드로이드를 째려보았다. 안드로이드는 예상 외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살며시 피했다. 무지에 대한 공포가 나를 지배했다.
412호가 갑자기 오류에 휩싸인 듯 경련했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던졌다. 412호가 던진 것은 주사기였다. hydrogen cyanide antidote라고 써있었다. 화학인 듯 한데 무슨 뜻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팔에..."
412호가 뭐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 때 팡 씬이가 언제 달려왔는지 화학총을 412호에게 난사하고 있었다.
"야 이 개새끼야!!!"
팡 씬이가 분이 풀리지 않는 지 육두문자를 날리며 412호에게 계속 총알을 퍼부었다. 슈트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지만 눈이 돌아가 있을 것이었다. 발길질을 연거푸 하기도 했다. 412호가 화학총의 효과로 기능을 정지했다. 하나 처치한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몰라! 갑자기 쓰러지셨어!"
팡 씬이가 최은준의 슈트를 벗겼다. 의사 출신이었기에 뭔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인가?"
"독이라고?"
독이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슈트를 만들 때 공기가 통하게 해야 했기 때문에 방독면 기능은 없었던 것이다.

그 때 세르게이 아시모프가 이 쪽으로 달려왔다. 목소리에서 매우 당황했다는 게 보였다. 포격은 어느새 멈춰있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하긴 아까까지만 해도 계속 포탄 피해다녔으니 모를만 했다.
"최은준 교수님이 총에 맞더니 갑자기 쓰러졌어요!"
"독에 맞은 것 같아요."
팡 씬이가 내 대답에 동조했다.
"그리고 아까 저 안드로이드가 뭐 던지던데요."
"뭐? 어딨는데?"
"저기요."
아까 그 주사기였다. 세르게이가 그것을 줍고는 잘못되어도 한참은 잘못되었다는 투로 말했다.
"미친. 최 교수를 도대체 왜..."
"뭔대? 씨발 그거 줘봐."
팡 씬이가 세르게이에게서 주사기를 채갔다. 그리고 놀란 듯 다급하게 그녀의 수납함에 있는 구급키트에서 소독약을 꺼내 주사기의 바늘을 소독하고 최은준 교수의 팔에 주사했다. 손이 엄청 빨라서 눈이 따라가지도 못할 정도였다.
"hydrogen cyanide antidote. 청산 해독제라는 뜻이잖아."
주사기에 쓰인 영어가 그거였다니 놀랐다.
"강 건너에 저거 병원이지? 일단 최 교수님 어떻게든 서울의료원에 보내자. 아 맞다 롯데타워 무너져서 의료진 다 거기에 투입될텐데 씨발! 야! 히카리! 와봐!"
팡 씬이가 시즈오카 히카리를 호출했다. 시즈오카 히카리는 한 쪽에 숨어있었는데 호출을 받고 다급하게 뛰어왔다.
"히카리! 최 교수님이 청산에 중독되셨어! 나노머신 적당한 거 빨리!"
"뭐? 청산? 일단 적당한 거 줄게."
히카리가 수납함에서 나노로봇 캡슐 하나를 꺼내 팡 씬이에게 건넸다. 팡 씬이가 육두문자를 계속 내뱉으며 나노로봇을 강제로 먹였다. 어떻게든 살려내겠다는 의지였다.
"이거 뭐하는 나노로봇아야?"
"거의 모든 질병에 적용되는 기초 응급용 나노로봇. 청산을 치료할 수 있을 지는 몰라. 거기에 해당되는 건 지금 없어."
"씨발! 씨발! 씨발!"
팡 씬이이가 근성으로라도 최은준을 살리고자 했다.
"일단 저기 서울의료원으로 보낼게!"
"나도 거들게!"
세르게이 아시모프가 봉사를 자청했다. 세르게이도 패닉 상태인 듯 했다.
"저기 다리 있네. 간다!"
팡 씬이가 최 교수님을 들고 탄천을 건넜다. 팡 씬이가 근력이 좋은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한편 세르게이도 돕겠다고 팡 씬이를 따라갔다.

최은준 교수의 중상.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전투 중 첫번째로 일어난 동료의 부상이자 치명상이었다. 안드로이드가 우리들을 죽이려 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떻게든 반격해야 했다. 분노했다. 일단 다짜고짜 위로 올라가고자 했다. SEN-B2e-1호가 도로 위에 있었다. 안드로이드가 미웠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외쳤다. 이것은 최은준 교수님이 SRT에서 알려준 것. 이 말을 하고 나니 최은준 교수님이 더욱 생각이 났다.
"관리자 모드 활성화! 포멧!"
SEN-B2e-1, 줄여서 1호가 내 말을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방어하려 했지만 총이 청산 총이라 쏘지 못한 듯 했다.
상관 없었다. 화학총을 꺼냈다. 어떻게든 단죄하고 싶었다.

그 때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었다. 생각해보니 강 건너 서울의료원 맞은편이 바로 강남경찰서였다.
경찰차들이 하나 둘 이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했다. 경찰이 왔으니 레볼루시아 안드로이드들이 어떻게 할 지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이 와중에 1호가 포멧되는 중인 지 안내음이 나오고 있었다. 이름을 부여하라던가 성격을 정하라던가 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계속 뭐라고 하지 않으니 '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이름과 성격이 매칭됩니다.'라는 소리가 나왔다.


펑.
삼성교가 폭음과 함께 붕괴했다. 397호와 762호가 자리잡고 바주카포를 쏘던 곳 바로 서쪽이었다.
이에 이제 막 삼성교를 올랐던 경찰차들이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는 듯했다.

"여기를 빠져나갑시다! 경찰이에요!"
"그러세!"
경찰에게 잡히면 곤란했기에 우리 리와인더 단원들이 서울의료원 쪽으로 난 길로 갔다. 아까 팡 씬이와 세르게이가 갔던 길이었다. 강을 건너려면 거기가 가장 빨랐다.

그 때 동부간선도로 교각 또한 안드로이드에 의해 붕괴했다. 우리들이 가는 진행방향의 왼쪽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경찰이 오지 않도록 지형지물을 파괴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경찰차가 올 길이 막혀 경찰에 잡힐 일 없이 도망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가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현재 레이더에 잡히는 안드로이드는 처음에 올림픽로 동쪽에 있던 XIA-H9-397과 같은 기종의 762호였다. 주무기가 바주카포인 듯 했다. 등에는 소총을 메고 있었다.
그리고 청산에 중독된 최은준 교수와 그를 병원에 데려다주러 간 팡 씬이와 세르게이를 제외하면 현재 전투중인 멤버는 4명. 각각 천 슈어 단장님, 크리스 이스트우드, 시즈오카 히카리, 그리고 나였다.

그 때 미야자키 츠바사가 패러렐라인으로 보고했다.
"찾았어. CCTV 해킹 결과 포격 지점은 파르나스 타워 상층부야."
"어, 고마워!"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렸다.
"멀리서 포격을 가했던 안드로이드의 위치는 파르나스 타워 상층부랍니다!"
"알겠네!"

그렇게 우리들은 파르나스 타워로 향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