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이제 미술작품을 그릴 거에요. 주제는 자기자신이에요~"


미술선생님의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고 의욕이 팍 죽었다.


자기 자신을 나타내라는 말은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자기 자신을 그리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끄집어내라는 말과 같다. 그런데 어찌 일개 고등학생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끄집어낼 수 있냐는 말이다.


선생님이 예시로 보여준 작품이 있다. 급식을 좋아해서 얼굴을 식판으로 바꾼 작품이었다. 아니 도대체 급식을 좋아한다는 것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었다는 것이 된단 말인가?


사람은 모두 밥을 좋아하며 특히 고등학생은 성장기라 식욕이 왕성하여 밥을 먹기 더 좋아한다. 게다가 학교에서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라고는 밥 먹는 시간인 급식시간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급식을 좋아한다는 것은 모두에 해당하는 말인데 어찌 급식을 좋아한다는 것이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 된단 말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것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까? 고양이를 좋아하든 피아노를 좋아하든 그것이자기 자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고양이든 피아노든 그것은 겉을 떠도는 어중이떠중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나 자신은 무엇인가? 무엇이 나 자신이란 말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과학이다. 그러나 이것도 본질이 아니다. 정작 잘하는 과목은 영어인데 좋아하는 과목이 과학이라고 해서 과학이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영어를 잘하지만 막상 외국인과 마주치면 심히 쪼그라드는데 영어가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별명도 그렇다. 타인이 본인보다 나를 더 잘 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것도 타인의 눈에서 겉만 본 것일 뿐이다. 타인이 아무리 뭐라고 한들 개개인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까? 개인의 숨겨진 면, 개인의 프라이버시까지 알 수 있을까? 결국 타인의 시선도 속의 깊은 내면까지 볼 수 없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림을 그리라니까 선생님이 보여준 예시작품과 똑같이 그리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선생님이 똑같이 그리지 말라고 했는데도 식판을 복사해서 붙여놓고 자기 자신에 대한 고찰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자기 자신을 고찰하지 않고 남들과 떠들며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며 겉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지각했다.


결국 진정한 나 자신은 나 자신을 모르는 자신이다. 그 소크라테스도 자기 자신를 알라면서 정작 누가 자기는 아냐고 물어보자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 자신은 나 자신을 모르는 자신이다.


그러나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정작 수행평가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였다. 세상의 기준이라는 것도 참 단순하고 한심하기 그지없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