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만 남은 앙상한 겨울나무와 답답하리만치 옷을 껴입은 사람들을 보면서 새삼 겨울이 한창이구나싶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적어도 실내에서는 겨울 느낌 같은건 눈으로만 느끼고 싶었다.


"아, 문 좀 닫으라고."


볼멘소리에도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저대로 곧장 음료수 코너로 갈테지. 저 인간이 고르는건 항상 같은거니까. 물건을 가져 오는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거센 외풍을 등진채로 그녀가 계산대 앞에 놓은 것은 인류가 만든 먹거리중에서 가히 최악의 혼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빨대도."


스무스하게 원터치로 천원짜리 세장과 빨대의 교환이 끝난다. 역시나 단골답게도 거스름돈조차 남지않는 깔끔한 지불. 몹시나 쿨하게 우유곽의 귀퉁이를 뜯고 빨대를 꽂는 그 모습에 왠지 모를 프로페셔널함이 느껴진다. 그것보다 아예 계산대 옆에 자리를 잡고 민트 초코우유를 섭취하기 시작하신다.


"아니 문이나 닫고 오라고..."


한번만 더 내 말을 씹어버리면 편의점 알바의 권한으로 너를 진상으로 간주하겠다는 눈빛으로 노려보자 그제서야 그녀는 빨대에 입을 떼고 문을 닫으러 총총 걸어나갔다.


니가 프로단골러면 나는 프로편돌이다 이 말이야.


내가 여기서 알바를 시작한건 1년 남짓.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드나들기 시작한게 그녀였다.


오는건 주에 한번꼴인가. 사정이 있어서 시간대를 바꾸면 그나마도 보지 못하는 그냥 그정도의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눈에 익으면 자잘한 정이라도 생기는건가 보다. 


어느날 다소 반가운 마음에 먼저 인사를 하니. 그녀는 말없이 투 플러스 원으로 딸려온 민트 초코우유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물론 민트 초코는 사람이 먹을게 아니기에 정중히 사절했지만. 


하지만 식성 외에는 의외로 말이 잘통해서 마주치는 종종 시답잖은 대화를 이어나가곤 했다. 무료하고 한가한 근무시간에 농담 따먹기. 그녀와 얘기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즐거워져 여기가 일터라는걸 잠시 잊어버리곤 한다.


"지금 니가 먹고 있는 민트 초코보다 더 경악스러운게 뭔지 알아?"


"그게 뭔데?"


"글쎄 초코 민트향 치약이 있다는거 알고 있었냐?"


"그런게 있어?"


"그러니까 말이야. 민트를 넣은 초콜릿이 첨가된 치약이라니 얼마나 뒤틀려 있어야 그런걸 만드는건지..."


현대의 식품가공과 의약산업의 어두운 이면에 몸서리를 치며, 그 맛을 상상한 것만으로도 입안에 들어온 것처럼 역겨워졌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니 그녀는 무언가를 내밀며 말했다. 


"그럼 이걸로 입이라도 헹궈내봐."


"고마워."


무심코 집어서 모서리를 뜯어내기 직전에서야 알아차렸다. 손에 들려있는건 민트 초코우유였다. 지나치게 풍족해진 식생활로 인해 본질을 잊은채 무분별하게 새로운걸 추구한 결과 탄생한 폐단이야 말로 민트 초코이며 그 존재의 부정에 열변을 토하고 있는 나에게 민트 초코우유를 마시게 한 것이다. 그야말로 간악한 술수.


"어디서 이런 흉물스러운걸!"


"그치만 생각해봐. 초코 민트향 치약보다는 민트 초코가 그나마 덜 꼬여 있으니까 초코 민트향 치약으로 역겨워진 멘탈을 이 민트 초코가 정화해줄거야."


듣고보니 맞는 말이군.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다. 일종의 이독제독인가. 근데 결국 데미지를 입는건 나뿐인데?" 


"좋은 말로 할때 치워라."


"에혀, 까탈스러운 놈. 그럼..."


그녀는 카운터에 가방을 올려놓더니 꽤나 요란스럽게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뒤적거린다. 꽤나 작아보이는 가방인데도 아직까지 찾고있는게 나오지 않는 것일까. 깜빡했다고 포기할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 쪽을 흘깃거리며 눈치를 보는듯한 그런 느낌이다.


몇번정도 눈이 마주쳤을까. 2월은 벌써 한가운데에 접어 들었고, 우리는 1미터도 안되는 편의점 계산대를 두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없이 건넨 것은 무늬가 없는 남색계열의 포장지로 곱게 싸여져 보라색 리본으로 밀봉된 주머니였다. 


그게 뭔지 유추해보니 당황스러워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지만, 잠시 마주치자 그녀는 피하듯 고개를 돌려버린다. 


"뜯어봐도 될까?"


잠시간의 침묵. 무언의 동의라고 여기며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었다. 거기에는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그래서인지 손길이 느껴지는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먹어봐..."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 나역시 대답 대신에 말없이 초콜릿 하나를 집어 먹었다.


적당한 씁쓸함과 혀가 마비되는 듯한 달콤함이 입안을 맴돈다. 그리고 엄습하는 알싸한 향기. 강렬한 민트의 향이다.


"들켜버렸네... 헤헤..."


멋쩍게 웃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끝내 다녹은 민트 초코를 목구멍으로 흘려보냈다. 달콤 쌉싸래하고 알싸함이 뒤섞여서 엉망진창이 된 그 끝맛이 오늘따라 감미롭게 느껴지는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