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동산에서, 그녀의 무릎을 배고 누워 있었다.


햇살은 따스하고, 누워 있는 동산의 풀은 보드라웠고, 그녀의 웃음은 아름다웠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를 포근하게 감싸오는 달콤한 감각.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꿈은 머지 않아 끝난다는 걸.


꿈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래 끝이 났다.


애초부터 그의 것이 아니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며 어둠만이 남았고, 그 속에서 그의 몸은 끌려가듯이 아래로 떨어져갔다.


끝없이 아래로 추락하던 그가 다다른 곳은, 빛도 온기도 없는 차가운 집의 침대였다.


"커헉-!!"


현실의 몸으로 돌아 온 그는 꿈과는 전혀 다른 현실의 중력에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 굳어 있던 팔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납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크으, 흐으으……."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벗어 난 그는 테이블로 걸어 가 반 쯤 남아 있던 위스키 병을 집어들었다.


한 번에 들이킨 위스키가 몸속을 타고 내려가자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병의 밑바닥이 보이고, 텅 비어버린 위스키 병이 바닥에 힘없이 떨궈졌다.


"욱, 우욱!!"


속이 울렁거렸다.


화장실로 달려가 방금 마신 위스키를 모조리 개워내고도 한참을 헛구역질을 했다.


이제 더 이상 개워낼 것도 없는데도 속은 계속 울렁거렸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심장은 뛰다 못해 가슴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고, 팔다리에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발 끝에서부터 얼어버릴 것만 같은 한기가 몸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 화장실을 나와 바닥에 널브려져 있는 옷가지를 대충 몸에 걸쳤다.


"흐으으. 추워……."


힘겹게 기어가 침대에 몸을 기댄 그는 옆에 떨어져 있는 전화기를 주워들었다.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누구 하나는 날 찾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화면 속에 떠 있는 건 스팸 문자 뿐이었다.


그래, 당연하지.


그녀와 헤어지고 마약에 손을 댔을 때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파탄나 버렸다.


마약이 주는 황홀할 정도의 평온함은 그 스스로 그를 지탱해주던 모든 것에서 도망치게 하였다.


일, 친구, 그가 좋아하던 서핑과 드라이브, 모두 그의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두통이 밀려오며 어지럽기 시작했다.


"싫어, 이제 더는 싫다고."


온 몸을 덮은 한기보다 더 그를 차갑게 만드는 외로움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더 이상 이렇게 힘들고 싶지 않다.


옛날처럼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퇴근 후에 친구들과 만나 술 한 잔 마시면서 웃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침대 위로 몸을 뉘이며 고통과 외로움으로 울던 그는 침대 한 가운데 놓여져 있는 주사기에 시선이 꽂혔다.


그래, 이게 다 저거 때문이야.


내가 아프고 괴로운 이유 모두, 저것 때문이라고.


"저것만 없다면, 저것만 없어지면 난 원래대로 돌아 갈 수 있어. 다시 예전처럼…… 다시, 예전처럼……."


하지만 그의 의지와 다르게 앙상한 팔은 주사기를 향해 뻗어졌다.


그의 몸은 알고 있었다.


이제 이 고통을 막을 방법은 저것 밖에 남지 않았다고.


비록, 그 끝이 파멸 밖에 없다고 해도.


"제발, 누가 도와줘……."


누가 이 손을 붙잡아줘.


누가 날, 이 빌어먹을 집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 줘.


제발, 도와줘.


손에 주사기를 꼭 쥐고 반대팔을 뻗은 그는 떨리는 손으로 주사기의 바늘을 꿈틀거리는 혈관에 가져다 대었다.


"제발……."


누가 날 좀 구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