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제 대통령 선거 출구조사 발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선거는 특히나 더 중요한 선거죠?"
 여자 아나운서가 옆에 선 앵커에게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최초로 북한 출신 주민들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진 선거로서, 북한 출신 주민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당선자가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의 말이 끝나자 여자 아나운서가 다시 말을 받았다.
 "네, 잘 알겠습니다. 이어지는 출구조사 발표도 저희 ABC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TV 속에 몰두하던 나는 옆에 누군가 앉은지도 모른채 있다 뒤늦게야 알아차리곤 화들짝 놀랐다.
 "뭐야..! 언제 온거야?"
 "..방금 전에."
 동료인 한강철이였다.
 정보기관의 북한 주민 할당제로 정보기관에 들어오게 된 북한 출신 요원이였다.
 요즘 북한 출신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는 벌써 북한말의 억양은 찾아볼 수도 없을 수준이였다.
 특히나 그의 특징은 과묵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였는데, 어쩌면 그것이 정보기관에 들어오는데 장점이 되었을런지도 몰랐다.
 "오늘 선거날이라 다들 쉬는데.. 너랑 나는 못 쉬는구나.. 응?"
 그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TV만 쳐다보며 묵묵부답이였다.
 그런 그를 장난스레 흘겨본 나는 다시 TV로 눈을 돌렸다.
 "지금부터 출구조사 발표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여자 아나운서가 소리치자마자 화면에는 숫자가 나타났다.
 여러 화면들과 함께 점점 숫자는 0에 다가갔고, 10여초를 남기자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이 숫자와 함께 나타났다.
 현직 대통령의 얼굴이 숫자 1과 함께 나타나자마자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오늘이 휴가를 쓴 날임을 미처 잊어버리고 설정해 둔 알람이 머리맡에서 울렸다.
 나는 모처럼 가진 휴일의 단잠을 빼앗은 알람을 신경질적으로 꺼버렸다.
 이미 잠은 깨어버린 후라 눈을 비비며 무의식적으로 TV를 켰다.
 TV에서는 어제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가 지지자들 앞에서 한 연설이 나오고 있었다.
 "더 이상 남북 주민들 간의 갈등은 없어야하고, 또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통일을 완성할 수 있는 정부를 만들어주신 국민 여러분들의 위대한 선택에 감사드립니다!"
 연설 화면이 사라지고 앵커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 어제 당선된 이영정 후보의 연설 보셨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주요 격전지였던 북한지역에서 이영정 후보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는데요, 소장님, 어떻게 보십니까?"
 화면이 한 백발의 노인을 비췄다. 자막에는 모 정치연구소의 소장이라고 나왔다.
 "아무래도 투표율에서 큰 차이가 났었죠. 남한지역의 투표율은 50%를 조금 넘긴 반면에 북한지역은 첫 선거이다보니 90%를 넘기지 않았습니까? 그 수 많은 표들이 이영정 의원에게 갔다고 봐야겠죠."
 "그럼 북한지역의 주민들이 이영정 후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적극적인 전범 수사 및 처벌 의지를 보였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아시다시피 지난 전쟁 당시에 일부 군인들의 전범 행위가 논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수사도, 또 처벌도 이뤄지지 않아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상당했죠. 그 불만이 투표로 표출되었다고 봅니다."
 "네, 그럼.."
 거기까지 듣고서 나는 TV를 껐다. 정권이 교체되었으니 정보기관에도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이럴때 만큼은 물갈이에 휩쓸릴 걱정 없는 말단이라 좋았다.
 나는 별 걱정없이 커튼을 열며 오랜만의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했다.

 6개월 뒤

 새 정부 출범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정부가 바뀌면 윗 사람들 바뀌는거야 당연하다지만 파격적인 인사로 한동안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또, 대통령은 임기 초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국회를 압박해 전범 처벌과 관련된 법안을 통과시켰고, 그로 인해 우리는 전범 수사 및 체포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을 쉴 새 없이 업무에 파묻혀 살아가던 와중, 팀장님이 나와 한강철을 불렀다.
 팀장님은 며칠 밤을 새신건지 책상에는 피로회복제가 널부러져 있었다.
 "한강철 요원. 그리고 정하섭 요원. 두 요원은 이수연이라고 하는 전범 용의자를 체포하는 작전에 투입된다."
 그러면서 용의자에 대한 서류를 건넸다. 용의자에 대한 정보를 읽어보던 중 나이 부분에 눈길이 꽂혔다.
 "30대..초반이요? 그럼 전쟁 때에는 20대 초반이였다는 말이잖습니까?"
 "좀 특이한 케이스지.. 일반 병사임에도 전범 용의자라니.."
 서류 밑에 적힌 죄목은 더욱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21명 연속 살인..? 허, 참 특이한 케이스네요.."
 서류를 조용히 읽던 한강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있습니까?"
 "강원도의 모 자연유치원에 있다는 정보를 파악했어. 아마 인근에 숨어서 지낼 가능성이 높아.. 자칫 잘못하다간 아이들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 주의하게."
 "그런데.. 이 사건이 왜 저희한테 온겁니까? 이미 수사까지 모두 마쳐서 체포만 하면 되는걸.."
 "지금 상황이 상황이잖나.. 당장 전직 육군참모총장까지 전범으로 체포된 마당에 거물급 인사가 어디 한둘인가? 체포만 남겨두고 바빠서 떠나버렸네."
 "아.. 알겠습니다."
 "건투를 빌지."

 유치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한강철을 바라봤다.
 무언가 평소와는 미묘히 달라보였다.
 나는 그에게 괜시리 말을 걸어봤다.
 "걱정하지 말라고. 처음 하는 일도 아니고.. 이번 일도 잘 끝나겠지.."
 그는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직감적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나 말을 아꼈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동료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차창 밖의 풍경을 내다보았다.
 이상하게도 날이 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