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고 있어? 편하게 앉지않구."


어색한 자세로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나를 보고 배시시 웃으며 놀려대는 그녀.


이런 광경이 여전히 믿기지 않을때가 있다. 그녀는 누구나 주목을 할 정도로 예뻤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지나친 관심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다가 그녀가 내비치는 관심은 추종자들로 하여금 화젯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그런 그녀가 나와 사귀게 된지 3개월이 지났다. 한동안은 내 옆에 그녀가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고 너무나 생소해서 종종 그녀에게 왜 내가 좋은지 물어보곤 했다. 그럴때마다 그녀는 지금처럼 장난스럽게 웃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나치게 눈부신 그녀에 비해 보잘것 없는 자신의 열등감에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녀의 대답 같은건 상관없었다. 그게 뭐든 받아들일 준비는 항상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3개월 남짓 그녀가 보였던 모습은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질문을 내뱉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만큼 부족함 없이 정말로 행복하니까.


하지만 드물게도 지금은 긴장을 하고 있었다. 목이 타서 내온 쥬스를 벌컥벌컥 마셔도 갈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너무 급하게 들이킨 나머지 사래가 들려 연거푸 기침을 하니 그녀는 뭐가 그리 흥미 진지한건지 가늘게 눈을 뜨며 귀여운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럼, 먼저 샤워하러 갈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하마터면 머금고 있는 쥬스를 뿜을 뻔했다. 성급히 머릿속에서 정리되지도 않은 말을 더듬어보려고 했지만 이미 그녀는 총총 욕실로 내빼었다.


"하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거 같다. 닫힌 문 너머로 흘러나오는 샤워기 소리. 딱히 특별할거라곤 없는 여자아이의 방. 그리고 처음부터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조금 과하다 싶은 향기. 의식을 하고나니 모든 것이 자극이 강했고 고혹적으로 보인다. 


그런 내 속을 빤히 알고있을 그녀는 샤워를 하고 있으면서도 키득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문득 여태까지 너무 휘둘리는게 살짝 열이 받았고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하고만 있자니 배알이 꼴린다. 어떡하면 이 기분을 풀수있을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재밌는게 떠올랐다.


우선 인기척을 숨기고 조용히 현관까지 가서 신발을 들고 빈방에 숨어있기로 하자. 다 씻고 그녀가 돌아왔을때 내가 가버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황당해 할까. 물론 적당히 당황하는 선에서 다시 나와 사실대로 말은 해야겠지.


빈방 문 앞에서 들어가기를 조금 망설였지만, 골탕먹은 그녀의 표정을 떠올리니 그런 예절같은건 이미 뒷전이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건 서늘한 냉기와 그 이상으로 코가 비뚤어질거 같은 강렬한 방향제와 탈취제 냄새였다. 다른 방에서 나던 것과 기본적으로 같은 종류의 향기 같았지만 아예 액상를 들이 부은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비교가 안되게 짙은 농도였다.


"무슨 냄새야. 그리고 에어컨을 틀어놨는데 왜 문을 닫아뒀지?"


저도 모르게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중얼거리며 벽면을 더듬거려 실내등의 버튼을 찾아서 눌렀다.


딸깍.


불이 켜진 방에는 무언가 덩어리 같은 것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잘보니 그 하나하나가 신체부위 같아 보였다. 


어깨죽지까지 온전한 팔은 홀로 잘려진 손과 손바닥을 맞대고 깍지를 낀채 기도를 하는 듯한 모양새였고, 다리 역시 길이가 제각각인게 발목 언저리까지 잘린건 바닥을 딛고 세워져 있었으며, 허벅지 전체까지 달려있는 다리는 관절이 기묘한 방향으로 접혀져있다. 특히 머리가 없는 몸통은 겨우 남아있는 부분들이 제각각이라 그것들을 한데 모으면 무척이나 기묘한 오브제처럼 여겨질 것 같았다. 


단순히 기묘함을 넘어서 무언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거 같아 더욱 더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그 절단면에서부터 묻어나온 검붉은 얼룩은 마치 말라붙은 피같은... 


저도 모르게 침이 꼴깍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터무니 없는 광경에 진상을 알아내고자 손을 뻗으며 나아가려 했지만 오른쪽 볼에 익숙한 손길이 느껴졌다.


"들켜버렸네..."


몹시나 낯익은 목소리. 다만 약간은 낮게 깔려서 평소와 같은 장난기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바람에 일렁이던 파도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면 그런 느낌이 드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요했지만 몹시나 깊고 맑은 목소리였다. 


그녀는 질책하며 화를 내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저 웃기만 했다. 멀리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것처럼 웃음소리는 점차 커져간다. 


"후..."


그리고 웃음소리가 사라지자 순식간에 방안은 적막에 잠겼다. 


얼굴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손길만이 있을수도 없는 지금의 상황속에서 나와 그녀의 존재를 더욱 확고히 했고, 지금 이 상황이 꿈도 뭣도 아닌 생생한 현실임을 깨닫게 해준다. 마치 여기에 박제되어 버린채 다시는 빠져 나갈수 없을거 같은 그런 절망적인 현실이었다. 


어째서 이런짓을 한 것인지. 무슨 생각으로 그런건지. 설마 처음이 아닌건지.


무엇보다도 나도 저렇게 되는걸까.


기나긴 고요 속에서 수많은 질문들이 머리 속을 지나쳐간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가장 궁금한 것을 질문으로 삼았다.


"왜 내가 좋은거야?"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체념이 아닌 그녀를 알고자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