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명 : AppData ]












 USB를 잃어버렸다. 너와 나를 아름답게 묘사한 그 USB를 잃어버렸다. 거기에 나랑 너랑 행복했던 추억들 전부 들어있는데. 너라는 존재가 그대로 깃들은 우리의 지난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단 말이야. 네가 보름달 밑에서 웃던 날, 내가 술에 취한 탓에 네가 집까지 데려다주었던 날, 네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와서는 내 품에 안겨 울던 날, 그리고 내가 너에게 고백하던 날. 하지만 지금의 나는 너의 그 달다 못해 녹아내리던 미소를 기억하지 못 해. 이제는 너의 그 쓰다 못해 아파오던 눈물을 기억하지 못 해. USB를 잃어버렸거든. 분홍색에서 검은색으로 점점 변화하던 그 USB를.




 데이터를 날려먹었다. 컴퓨터를 초기화하면서 모든 데이터를 날려먹었다. 내가 실수로 백업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애초에 그 수많은 데이터를 간직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기억하고픈 마음도, 남겨둘 마음도 전혀 없었다. 너와 내가 행복했을 때의 데이터를 결국 전부 날려먹었다. 키보드 몇 개 잘못 눌렀다고 컴퓨터 전체가 초기화되었다. 난 데이터를 복구시킬 생각이 없다. 아니, 그 괴로운 기억들을 꺼내고픈 생각이 없다. 하지만 내 속내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내 머릿속의 컴퓨터는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원망이 가득 밀려옴과 동시에 한이 맺혀왔다.




 프로그램이 삭제되었다. 너와 내가 붉게 꾸며갔던 그 프로그램이 삭제되었다. 기껏 열심히 설치해놨더니, 어느 순간 마음대로 사라져 버렸다. 프로그램 속 구성요소들부터 온갖 파일들까지, 설치는 한나절이었지만 삭제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허무하게 날아가버린 우리의 기억은 꼭 가시 달린 장미 같았다. 가시가 손에 찔렸을 때는 조금 따끔하기만 할지 몰라도 그 가시가 손에 깊숙히 박힌 순간 그것은 나의 상처로 변환되어 나타나는 것이었다. 아마 그것은 오랫동안 흉터로 남아 자리를 지킬지 모른다. 프로그램을 기록상으로는 복구할 수야 있었지만 그 모든 데이터를 완벽하게 복구해낼 수 없었다. 차라리 남은 추억에 고통받는 것보다는 방치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멍청하게 컴퓨터를 밖에다가 내놓는다. 마음 같아서야 비를 막아주고 싶지만 우리 집에는 우산이 없다. 화면이 물로 적셔져가고, 키보드 사이에 물이 고이며, 손으로 잡을 수 없을만큼 미끄러워진 표면을 아무리 닦아도 비가 끊임없이 내린다. 내 USB가, 내 데이터가, 내 프로그램이, 내 컴퓨터가, 내 마음이, '우리'가 비로 적셔져간다. 이 비가 그치면 깨끗이 씻어내리라 예상했던 아픔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행복했던 추억만이 더욱 상처를 입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 했다. 그럼에도 나는 컴퓨터를 지켜주지 못 했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구해주지 못 했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잡지 못 했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 시절의 그 데이터를 복구해내고 싶어.







 AppD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