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은 처벌규정 위반으로 검열. 뒷부분은 최소한의 자비로 남겨둔거라 조만간 잘릴 수 있음
"지금이요? 지금은 살았는 지 죽었는 지는 불명이고 우리 4명만 호텔 붕괴에서 빠져나왔죠."
그렇게 답한 레드는 무언가 번뜩 떠오른 듯 같이 왔던 살인체스 동료들에게 말했다.
"그럼 상금은?"
레드의 말에 머루, 코더, E가 잊혀진 것을 되살려내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김수빈 기관사와 장의민 기관사에게 은행이 있으면 데려가달라고 했다. 김수빈 기관사를 필두로 4인방은 기대를 품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구경하러 온 인파들도 우르르 몰려갔다.

4인방은 ATM 기계에 도착하자마자 계좌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서야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호텔에서 구출되면서 통장같은 서류들을 가져오지 못한 것이었다. 아마 그들의 소지품들은 무너진 호텔 잔해에 깔려 그것을 찾기란 백사장에서 바늘찾기와도 같았을 것이었다.
"뭐야? 이러면 생존했는데도 아무 의미가 없잖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들떠서 ATM기에 달라붙다싶이 있던 레드가 실망을 금치 못하고 투덜거렸다. 레드만이 아니라 코더, 머루, E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이거 안 됐네. 이만 가자."
머루가 등을 돌리며 ATM기에서 멀어지면서 손짓했다. E가 할 수 없다는 투로 머루를 따라갔다. 코더도 조금만 더 해보려다가 포기하고 이미 멀리 떨어진 머루와 E의 뒤꽁무늬를 쫓아갔다.
레드는 혹시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계속 ATM기를 만져보고서야 이내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런 그녀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손에 파지직하는 느낌이 든 것이었다. 레드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하였다. 그녀는 무언가 기이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0과 1로 이루어진 숫자들로 보이는 무언가가 코더의 주위를 돌며 감쌌다. 코더는 살짝 공중에 뜬 느낌과 찌릿찌릿한 느낌을 받고 안 그래도 경계심이 가득하던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고립자들 중에서 가장 힘이 센 검열이 화들짝 놀라 코더에게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이미 그 무언가는 코더를 놓고 사라진 상태였다.
"코더!"
검열이 코더의 상태를 살폈다. 뒤따라오던 레드도 같이 간호나 응급처치를 하려고 준비했다. 코더는 감전당한 것과도 같은 감각에 평형을 잃고 넘어져있는 상태였지만 코더는 모두의 우려와는 다르게 금방 일어났다.
"굳이 안 챙겨주러 와도 되거든?"
코더가 무심한 듯 말했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과는 반대였다.
머루와 E도 마침 옆에 있던 염유현에게서 소식을 듣고 방향을 틀어 코더에게로 모였다. 코더는 무안한 건지 자신의 몸을 움직여보이며 정상임을 확인시키려 했다. 코더가 허리를 이리저리 돌리고 팔을 빙글빙글 돌렸다.
"자, 이거 봐. 완전 멀쩡하잖아? 그러니까 신경 안 써도... 어? 이게 뭐야?"
코더가 팔을 가볍게 돌리자 허공에 무언가 네모난 것이 나타났다. 흡사 게임에서 보던 메뉴 화면이었다. 그 화면에는 닉네임과 인벤토리와 개발자 옵션 등 여러 옵션들이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중 로그인과 로그아웃 기능은 막혀있었다.
"뭐야 이건?"
코더가 무심결에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 레드가 아까 자신의 손에 느낀 감정을 토대로 자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녀는 코더가 한 것을 똑같이 따라했고, 팔을 가볍게 휘두르자 그녀도 똑같이 상태창이 나왔다. 화면 구성은 코더와 똑같았다. 그러나 코더의 것과는 다르게 개발자 옵션이 막혀있었다.
"아니, 이게 왜 나오는 거야?"
머루가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 말했다. 그러고보니 확실히 그도 전선에 닿은 듯한 따끔함을 느끼긴 했다. 이에 머루도 코더를 따라해보았고, 레드와 같은 상태창을 열 수 있었다. E도 머루처럼 개발자 옵션이 막혀있었다.
그 4인방을 포함한 신길역의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신길역 일대가 반쯤 파괴되는 참혹한 전투현장을 목격한 검열도 이런 비상식적인 일에 잠깐이었지만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딱 한 명, 중학생인 염유현만은 이 상황이 짐작이 갔다. 신길역을 떠나기 전의 이민이 말해주었던 우주전쟁과 관련이 있을 터였다.

4인방은 신기해하면서 상태창의 이곳저곳을 만지기 시작했다. 상태창이 왜 나왔는지, 그리고 이게 왜 하필 그들에게 갔는지 등 알고 싶은 것이 산더미였지만 지금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인벤토리에 얼마 있나 보자."
레드가 그 말을 하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에이, 아무것도 없잖아."
레드가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머루와 코더와 E도 인벤토리를 확인했으나 그곳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코더는 자신에게만 있던 옵션인 개발자 옵션이 궁금해졌다. 코더가 개발자 옵션을 열자 키보드가 떴다. 그리고 그 위에는 python이니 뭐니 하는 것이 적혀있었다.
python 뭐시기 하는 것은 분명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리키는 것일 거라고 코더는 쉽게 유추해내었다. 그는 그가 고등학생이었지만 프로그래머이기도 했다는 사실에서 만든 코더라는 이명답게 바로 명령을 하나 써보았다.

print('Hello World!')

이는 Hello World!라는 문장을 출력하라는 뜻으로, 가장 기본적인 컴퓨터 언어였다. 코더가 이 구문을 입력한 후 실행하자 허공에 Hello World!라는 11글자의 알파벳들이 생겨났다. 그 알파벳은 고체의 입체의 형상으로 나타나 바닥에 안착했다.
코더가 놀라며 다른 구문도 입력해보았다.

print('an eggs')

코더는 이번에는 알파벳이 나올 지 아니면 진짜로 달걀이 나올 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알파벳이 나오는 것을 보고 대충 규칙을 알아챘다.
코더 주변에 있던 4인방들은 그것을 보고 경탄했다. 신길역의 고립자들도 같은 반응이었고, 축소인간의 존재 이후 새로운 돌파구의 등장에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그 후로 몇 시간 정도가 지났다. 모든 사람들은 희망에 차 분주해져서 여의도역으로 향하는 5호선의 열차에 모여있었다. 인원에 비해 수송정원이 부족해보였지만 김수빈 기관사가 몰던 또다른 열차가 여의도역에 있었다. 여의도역은 이미 플랫폼까지 완벽하게 무너진 상태였지만 그들에게는 든든한 수단이 있었다.
"여의도역으로 가는 터널 뚫었습니다!"
고등학생 프로그래머인 일명 코더가 여의도역 쪽에서 나오며 말했다. 그의 옆을 따라갔던 김수빈 기관사도 오케이 신호를 보냈다. 그들이 5호선 열차 운전실에 올라타자 문이 닫혔다. 그리고 코더가 상태창을 이용해 코드를 짜서 입력했다. 지하철이 나름 준수하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가자! 종로3가역으로!"
방화행 지하철이었다가 코더에 의해 상일동행 지하철로 바뀐 이 장의민 기관사의 지하철은 방독면을 나누어준다는 종로3가로 향하고 있었다. 이는 신길역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과, 종로3가역은 방독면을 나누어주는 장소이므로 어느 정도 대비가 되어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그리고 상태창을 얻었다는 사실에 의해 종합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중간부분 검열


「그럼 타개책은 뭐가 있습니까?」

절대신이 이 메시지를 5번 가량 칠 때서야 이한서에게 메시지가 갔다. 혜움과 이민은 그걸 보고 엄청 경이로워했다.
"타개책이 뭐냬."
이민은 그걸 듣고 혜움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주었다. 혜움은 주위를 살피고 오고는 이민에게 따라읊게 했다.
"그냥 전쟁에서 이기는 수밖에 없음. 대신 여의도역에서 특이한 반응 감지."
이한서는 그것을 곧바로 따라 적어 보냈다. 절대신은 그 메시지를 받고 절망을 느낀 한편 여의도역의 화면을 살펴보았다. 분명 아까 확인했을 때 작살나있던 터널이 왠지 모르게 다시 복구되어있었고, 지하철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운전석에 무언가 이상한 무언가가 씌워져 있었다.
절대신은 그걸 보고 코더와 통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크립토 윌 바이러스 때문에 NPC와의 대화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코드를 자세히 관찰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것을 조작하고 있었고, 목적지는 종로3가역으로 쓰여있었다. 절대신이 그것을 보고 다시 키보드를 쳤다.

「혹시 그 쪽으로 가주실 수 있습니까? 가는 것이 불가능하면 종로3가역으로 가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한서는 그것을 받고 이민에게 전했다. 혜움이 동의하고 이민도 이에 찬성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종로3가역으로 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노량진을 다시 뚫기에는 힘이 너무 들고 위험한 까닭이었다. 그리고 대방역 부근은 이미 드워스터 레나의 대규모 교전으로 폭풍이 일고 있었다.
이민은 이한서를 보며 무기 없이 다닐 수 있을 지 걱정했다. 그리고 번뜩 떠올리며 주머니에서 파괴자를 꺼내 이한서에게 건넸다. 이한서는 얼떨떨하게 받아들였다.
"어, 고마워. 근데 이게 뭐야?"
"이름은 나도 몰라. 대신 SF스러운 무기랄까?"
이한서가 시험삼아 아무곳을 향해 발사해보았다. 그러자 광선을 맞은 한강철교의 튀어나온 철근 부분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이한서가 위력에 감탄하며 파괴자를 소중히 다루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은 안심하고 종로3가를 향할 수 있었다. 해는 어느새 뉘역뉘역하다 못해 지평선 너머로 들어가고 있었다.


*


한편 신길역의 일행들은 여의도역에서 일부 생존자들을 구출했다. 코더는 관리자 옵션으로 그곳에 있던 김수빈 기관사의 지하철을 다른 방향의 선로로 옮겨 그곳으로 가게 했다. 그리고 장의민 기관사의 지하철과 연결시켰다.
코더가 열심히 여의나루역으로 통하는 길을 열었다. 신길역의 일행은 종로3가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구하면서 갈 생각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기다림에 지쳐 하나둘 씩 잠들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1시 50분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사태가 있었기에 피로가 많이 쌓였을 터였다.
살인체스를 했다던 이들도 곯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레드가 먼저 곤히 잠이 들었다. 그리고 머루도 눈이 감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그의 상태창이 갑자기 열리더니 붉은 글씨로 무언가가 떴다.

'당신이 살해당할 날은 오늘입니다.'

그 글에 머루는 잠이 확 달아났다. 그리고 아직 깨어있는 E에게 가서 상태창을 보여주며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정체를 알려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후 부분 검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