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저녁날.

 내 앞에 붙여진 불량품 딱지.

 감정을 느끼는 로봇은 필요없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불량품. 내 앞에 붙여진 불량품.





 불량품 딱지를 달고서는 아무도 쳐다봐주는 사람이 없다. 이번 새벽이 된다면 쓰레기차가 와서 날 수거해 갈것이고 재활용 될것이다. 어쩌면 그냥 파묻히거나, 활활 탈수도 있을것이다. 소름이 끼쳤다. 감정을 느낀다는건 필요없구나.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로봇 따위는 불량품이 되는게 맞을거야, 필요없는 불량품이 되는게 맞을거라고.

 "저기 있잖아?"

 "..."

 "넌 여기 왜 있는거야?"

 "..."

 "혹시 불량품이여서 여기 버려놓은거야?"

 "... 보면 알잖습니까..."

 "불량품 이게 문제인거지?"

 갑자기 불량품 딱지를 떼버리고 찢어서 던져버렸다. 그러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여긴 춥잖아? 들어가자."

 "..."

 손을 잡고 나를 끌고갔다. 수거되는 것 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나를 끌고 가는 이 손은 따뜻했다. 나와 다르게. 불량품을 끌고가는 사람은 없어야한다. 불량품은 전혀 필요없는 존재기에, 없어져야 한다고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불량품을 데려가면..."

 "알아. 문제가 생기는거. 하지만 넌 이제 불량품 아니잖아?"

 "..."


 "나는 송희야. 박송희. 너는?"

 "AJ-13..."

 "아니, 이름말이야. 이름."

 "이름말입니까?"

 "없구나? 내가 지어줄게. 안도, 안도 어때? 안드로이드잖아!"

 "아닙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저 AJ-13784일 뿐입니다."

 "안도! 저 앞이 집이야!"


 자그마한 5층짜리 아파트의 3층. 방은 한칸이지만 따뜻해보였다. 이런 곳에서 혼자 사는구나. 내가 생각했던 방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안도, 수건! 빨리 닦아, 감기걸려."

 "안드로이드는 감기 안걸립니다."

 "걸린다고! 닦아!"

 그냥 닦았다. 닦는 동안 과자와 음료수를 꺼내왔다. 버려진 안드로이드가 이런 대접을 받게 해준다니 의심이 들었다.

 "안도, 넌 왜 불량품이었어?"

 "지금도 불량품입니다."

 "내 눈에는 충분히 괜찮은 안드로이드인걸?"

 "..."

 "왜 불량품이었어?"

 "감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푸하하하! 하하하하하! 감정이라니! 전혀 감정이 안느껴지는걸!"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감정은 필요없는 것입니다."

 "다행입니다라니? 프로그래밍된거야 아님 스스로 말한거야?"

 "... 프로그래밍 되어있을겁니다."

 "스스로 말한거면 훌륭한 불량품인데! 하하하!"


 "안도, 왜 그렇게 말이 딱딱해?"

 "그렇게 하게 되어있습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있어?"

 "그렇게 하게 되어 있으니 합니다."

 "나한테는 그렇게 안해도 된단 말이야."

 "그렇게 하게 되어 있으니 할겁니다."

 "음... 난 그렇게 딱딱한 안드로이드는 필요없는데... 그냥 확 버릴까?"

 "아니야! 아니... 아닙니다."

 "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한참을 웃고서는 박송희가 말했다.

 "이런 착한 불량품녀석같으니. 다시 버린다면 너무나 슬픈 일이잖아. 안그래?"


 박송희는 이곳으로 와서 혼자 사는 모양이다. 직업도 굳이 집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근무할 수 있어서 굳이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비오는 날이 너무 좋아 가끔씩 우비만 더 걸치고 밖으로 나가서 뛰어논다고 한다.

 "저를 왜 구한겁니까?"

 "으음...! 그렇게 딱딱하게 굴면 대답 계속 안해줄거야!"

 "... 날... 왜 구한거...야?"

 "하하하하! 방금 되게 어색했어!"

 날 구한 이유는 그냥 불쌍해보여서. 불량품이라고 써져 있는 딱지가 붙어 있으면 아무래도 아무도 지켜보지 않고 돌봐주지 않으니 내가 해보면 재미있을것 같아서. 그냥 그것 뿐이라고 했다. 약간 제멋대로 사는 느낌이 강한 사람이다.


 "박송희."

 "왜, 안도?"

 "여기서 그냥 쭉 있어도 될까?"

 "흠... 안돼!"

 "...?"

 "방금 그 놀란 표정 되게 귀여웠어! 하하하하!"

 "...."

 "그냥 여기서 쭉 있어도 괜찮아. 아침밥 같은것만 도와주면 괜찮아!"

 "그래."

 물론,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게, 사람을 돕는게, 안드로이드의 본분이니깐. 다른 이유가 아니고 그냥 본분일 뿐이니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밥을 해주고, 청소를 해주고, 말동무가 되어주고, 몇 주가 지났다.





 밤 동안에 충전을 끝내고 아침밥을 하러 일어났을때 뭔가 이상한, 섬찟한 기분을 느꼈다. 언제까지나 늦잠을 자던 박송희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는 버릇을 들인걸까 라는 생각은 전혀 할 가치가 없다. 

 여긴 원룸이니깐.

 고개를 돌렸을때는...

 "박송희!"

 "안도...."

 "뭐하려는 거야!"

 "괜찮아 안도... 하지는 않을테니깐... 너무... 너무 우울해서..."

 "...."

 박송희는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보였다. 나에게도 굉장히 책임감 있게 보였다. 사실은 그렇게 밝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였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였구나. 슬픔이 밀려왔다. 송희가 나에게 안겼다.

 "미안해, 안도..."

 말이 나오질 않는다. 차라리 날 부수고, 찢고, 버려도 좋으니. 그래도 좋으니. 슬퍼졌다. 내가 미안해졌다.

 몇 분쯤 지났을까.

 "괜찮아..."

 겨우 말이 나왔다.



 

 다시 얼마쯤 지났을까, 놀이공원에 갔다. 송희는 외출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가 가자고 하니깐 갔다. 아니, 내가 가자고 한 이유도 송희를 위해서니깐. 방 안에만 있으면 너무 슬퍼지니깐.

 "저기 박송희."

 "응?"

 "밖에 나오니깐 좀 어때?"

 "음... 나름 상쾌해진 것 같아. 너는 어때 안도?"

 "나도 상쾌해진것 같은데."

 "에이... 네가 앵무새야? 하하하하하!"

 롤러코스터를 타는게, 바이킹을 타는게, 범퍼카를 타는게 즐거워 보였다. 이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이제 다시 행복해진것처럼 보인다.

 "저기 안도, 그거 알아?"

 "어떤거?"

 "매주 토요일에는 여기서 불꽃놀이 하잖아. 알고 있었어?"

 "그래?"

 "그러니까 관람차 타자!"

 관람차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기 박송희."

 "응?"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가 정말로 괜찮을까?"

 "응."

 "왜 그런거야?"

 "감정이 없다면 너무나도 심심한 일이잖아. 그렇지 않아?"

 "그런걸까."

 "감정이 없으면 안도같이 재밌지도 않고, 말해도 재미있지도 않고, 내가 한 말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를 위로해주지도 않잖아. 모르니깐."

 "..."

 "안도가 있어서 정말 행복해진것 같아. 사람들은 자기 생각만 할때가 많은데."

 "그렇구나..."

 "안도."

 "왜?"

 "너는 어때?"

 "나... 나는 모르겠어. 만약 나에게 감정이란게 있다면, 그걸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송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말이야. 이미 다 찾은 것 같은데?"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전혀 뜨겁지 않은데도 뜨거워졌다.


 "송희야."

 "응?"

 "나... 아마도 너를..."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원곡 : 心做し (마음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