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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틀리에에 모르는 여자아이가 들어와 있었다. 


등짝까지 넘실거리는 금발이 인상적인 여자아이는 이쪽의 인기척도 알아차리지 못한채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괴짜로 여기며 피하는게 대부분인 마을의 아이들과는 사뭇 달라 그 모습을 잠시동안 지켜 보았지만, 이쪽을 눈치 챌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다소 언짢은 목소리로 불러내었다.


"거기서 뭐하는거지?"


작업에 방해가 되니 되도록이면 빨리 아틀리에에서 나가 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아무 거리낌 없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 그림 아저씨가 그렸어? 귀여워!"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커다랗고 새빨간 눈을 한 흉측한 몰골의 괴물의 그림이 걸려있다. 그 형상은 농담이라도 귀엽다고 할만한 그림은 아닐텐데.  


"그 말대로 그건 내 작품이다. 하지만 뭐가 귀엽다는거냐!"


"응? 귀엽잖아."


무엇보다 이 그림에 얄팍한 감상이 덧붙여지는 것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하나도 안귀엽다. 잘들어라. 이건 인간의 내면 속에 숨겨져 있는 광기와 붕괴의..."


그 아이는 이해를 못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그 바보같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도 멍청해진 모양이다. 친절하게 작품을 설명해 줄 이유가 없는데도.


"그것보다 왜 멋대로 들어온거냐?"


"입구가 열려있던데?"


"열려있다고 마음대로 들어오는 사람이 어디있냐!"


"안돼?"


뻔뻔한 녀석. 첫 인상은 최악. 그것이 나와 그 아이의 첫 만남이었다.


**

자신을 메리라고 소개한 그 소녀는 이따금 멋대로 아틀리에에 찾아오곤 했다.


"와아! 사탕이다!"


"먹으면 돌아가라. 작업에 방해된다."


"이 마네킹 대머리네~"


"멋대로 만지지마!"


멋대로 아틀리에를 헤집고 다니는 그 아이를 돌려보내고 쫓아내버려도 다음 날이 되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시 찾아온다. 그렇게 한바탕 하고 나면 힘이 쭉빠져 작품에 집중을 할수가 없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계속 그렇게 지낼수 없었기에 결국엔 그 아이를 쫓아내는 것을 포기했다. 그 아이 역시 내가 대꾸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소란을 떨지 않았고, 때때로 아무 말도 않은 채로 내 그림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조용히만 해준다면야 나야 그 아이가 있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무렵 내 작품활동은 정체되어 있었다.


"아버지도 돈 되는걸로 그리면 좋을텐데..."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육친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비굴해서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예전에 했던거랑 비슷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수화기를 던져버리듯 놓아버렸다. 아무도 내 세계를 이해 해주지 않는다. 내 추상화는 이미 한물 갔다고 삼류 잡지와 멍청한 평론가들은 나를 비하했다. 과거의 유물, 시대의 뒤쳐진 기인. 퇴물 게르테나라며 모욕적인 언사도 서슴치 않는다. 


"그저 입만 열면 돈! 돈! 하찮은 돈의 노예놈들! 그딴 녀석들이 내 세계를 알리가 없지!"


내 세계는 더욱 더 완벽해야 한다. 그런데 눈 앞에 있는 되도 않는 이 쓰레기는 뭐지? 문득 캔버스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혐오감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붓질을 해본들 그림은 더 나아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앉자 결국 캔버스 채로 내동댕이 치고 말았다. 한바탕 큰소리가 나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거칠게 숨을 헐떡인다.


"난 아저씨의 그림이 좋아!"


그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던 그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의 세계는 정말 멋진걸."


"어째서..."


내 세계는 나만의 것이다. 이런 어린 아이에게 동정을 받을 이유가 없단 말이다. 값싼 동정은 이쪽에서 사절이다.  


"어째서 나한테 들러 붙어있는거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부모가 그렇게 시키더냐? 내 돈을 노리고 접근하라고."


역겹다.


"그렇지 않으면 왜..."


"아저씨의 그림이 좋으니까 그런거야!!"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쳐다보던 그 아이는 이내 아틀리에 밖으로 뛰쳐 나갔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 것만 같은 표정을 하고선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한심하긴."


역겨움은 나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건만. 뭘 쓸데없이 화풀이를 하고 있는거지. 그 아이가 어찌되는건 상관없는 일이지만, 뒷맛이 씁쓸해지는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아이는 아틀리에에 오지 않았다.


***

그 이후로 며칠이 지났을까. 작업이 전혀 손에 잡히질 않는다. 꼴보기 싫은 아들 녀석의 전화도 소란스럽게 박차고 들어오는 그 아이도 더 이상 오지 않았건만. 나는 아무 것도 할수가 없었다. 


답답함에 머리를 쓸어 올린다. 여기 들어온지 얼마나 지난걸까. 두꺼운 블라인드를 올리니 날은 이미 밝아 있었다. 그 아이가 뛰쳐나가고 나서부터 아틀리에에 틀어박혀 있었나. 갑자기 내리 쬐는 햇볕에 눈이 부셔왔다. 


"그래, 산책을 나가야겠다."


기분전환. 이렇게 슬럼프가 왔을때는 기분전환이 필요하다.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본다. 풍경을 보고 싶을 뿐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녀석들 뿐. 그 아이처럼 환한 금발을 가진 여자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 있냐. 어디 있는거냐."


분명히 이 마을에 산다고 했었다. 그래. 나는 산책하러 가는 길에 둘러 보는 것 뿐이다. 그러면 되는 거다. 


"저기, 혹시 메리라는 아이가 어디에 살고있는지 알고있나? 금발머리를 가진 여자아이 말이다."


눈에 띄는 외모 덕분인지 그 아이의 집은 쉽사리 알아낼 수 있었다.


"어머, 선생님! 게르티나 선생님 맞으시죠?"


정원에 들어서자 낮선 중년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곤란한 듯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언제나, 메리가 신세지고 있죠? 한번 찾아 뵈었어야 했는데."


"...그 아이의 어머니인가?"


"아뇨... 이모에요."


웃음을 거둔 여자는 짐짓 무거운 표정으로 한 손으로 가볍게 입을 가린채 눈을 돌리며 말했다. 


"그 아이의 부모는 수년 전에 전염병으로 그만... 메리는 제가 데리고 키우고 있답니다."


"그런가..."


"부모를 잃고, 조금 별난 아이라 친구도 없고... 그 아이 밝아 보여도 어딘지 외로워 보여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고개를 숙인채 여자는 감사를 표한다. 


"그래도 선생님네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는 즐거워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흥, 감사받을 일 같은건 하지 않았다."


"근데 요즘 메리가 풀이 죽어서는 밖으로 통 나가려 들지를 않네요. 혹시 선생님 댁에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요?"


그 아이의 방이라고 생각되는 2층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창밖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그 아이는 재빨리 머리를 숙인다.


"그런거 없다. 그러니 와도 좋다고 전해다오."



간만에 산책을 나갔더니 몸이 조금 쑤셔오는 듯 하다. 그것도 운동이라고 이렇게 어깨를 두드리는 꼴을 보면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콜록. 콜록.


탁한 공기가 목구멍을 때리는 것처럼 마른 기침이 새어 나온다. 


"환기도 좀 시켜둬야겠군."  


아틀리에의 문을 열어두고, 다시 캔버스 앞에 앉아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하자. 산책을 갔다오고 다소 활력을 되찾은건지 의욕이 조금 생기는 것 같다. 그러고는 바깥을 향해 말을 걸었다.


"왜 그러지?"


대답은 돌아 오지 않는다.


"문이 열려있으면 들어오는거 아니였냐?"


"응!"


어린아이 특유의 소란스럽고 짧은 발걸음 소리가 이쪽을 향해 달려온다. 다시 시끄러워 지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