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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있지! 게르테나."


"응?"


"안녕?"


제 딴에는 손가락으로 인형의 팔을 들어올리며 인사를 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지만, 시답잖아서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러자 메리는 끈질기게 목소리를 깔며 인사를 강요했다. 인형을 주는게 아니였나.


"뭐하는 짓이냐."


"메리가 뭐얼~? 인사를 한건 이 아이잖아."


얄미운 녀석.


그러고 보니 매일 같이 저 인형을 품에 끌어안고 있었지. 역시 저건 천장에 매달아 놔야 했던건데. 여자아이 품에 있는 괴기스러 인형은 언제봐도 어울리지 않는 구도였다.


"그 인형은 왜 항상 들고 다니는거냐? 집에 놔두고 와도 될텐데."


"방에 두면 이모가 무섭다며 치우라고 하거든."


"그, 그러냐..."


생기라고 느껴지지 않는 남색의 피부에 얼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빨간 눈과 실로 꿰맨 입. 그리고 산발로 늘어진 머리카락까지. 확실히 어두운 방에 놓여있다면 섬뜩한 모습이 틀림없을 것이다. 애초에 호의를 가지고 만든 기억도 없는 광기의 상징이지만 그렇게 대놓고 뒷걸음질 치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혼자 있으면 외롭잖아..."


인형을 꼭 끌어안은 채 눈을 조금 내리깔고 말하는 메리의 표정은 한순간 슬퍼 보였다.


"그보다 게르테나. 같이 서커스 보러가자!"


확실히 이 마을에 유명한 서커스단이 온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상관없는 일이라 대수롭게 넘겨 버렸지만 옆에서는 눈을 반짝거리며 서커스단의 사진에 관심을 가지던 메리의 모습 역시 기억이 난다.


"그렇게 사람이 바글거리는 곳은 딱 질색이다."


그래서 딱 잘라 거절했다.


"왜에~ 게르테나 같이 가자!"


"내키질 않는군." 


"분명 재밌을거야! 이모는 바쁘다고 했단 말이야."


그럼 나는 한가해 보인다는 거냐. 하지만 태도의 무례함을 지적할 겨를도 없이 메리는 내 팔을 잡아끌며 흔들어댔다. 힘이 넘치는 녀석이 있는대로 난리를 치니 머리까지 크게 흔들린다. 


멀미가 날거 같아 뿌리치려던 찰나에 눈 앞에 꽃병이 보였다. 꽃병의 물을 머금은 노란 장미는 꺾어올 때보다 꽃잎이 더 화사하게 피어 올라있었다. 


"하아... 알았으니까 이거 놔라."


"정말? 게르테나 최고!"



"서커스~ 서커스~ 재밌겠다! 그치?"


"흥. 심심풀이로는 나쁘지 않겠지."


메리는 정말로 기쁜건지 가벼운 몸을 폴짝거리며 의미를 알수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로서는 어린아이의 심정따윈 이해하지 못하겠다.


"서커스 정도로 신나서 콧노래까지 부르는구나."


그러자 메리가 콧노래를 멈추고 대답했다.


"으응. 서커스도 좋지만 게르테나랑 같이 있는게 더 기뻐."


"서커스를 같이 볼수있는 친구가 생겨서 정말 기쁜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 천진하고 꾸밈없는 미소로 그런 말을 할수 있는걸까. 이내 어울리지 않는 감상이 멋쩍어져,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쳐다보는 메리의 손을 잡고 빠르게 걸었다. 


"사람이 많으니 어서 가서 앉아있자."



"엄청 큰 사자가 나왔어! 게르테나."


"그야 서커스니까."   

 

조련사의 신호에 맞춰 사자가 뛰어 올라 링을 통과할 때마다 관객들은 환호했고 메리 역시 환호했으며 나는 그저 심드렁했다.


"게르테나.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리고 대목이 끝나자 메리는 오랫동안 참은 듯 가지고 있던 인형을 내맡기고 화장실로 달려가 버렸다. 어쩔수 없이 인형을 끌어 안은채 무대를 감상했다. 안그래도 재미없는 서커스였지만 어쩐지 한층 더 지루해진 기분이었다.


"이번엔 저희 서커스의 진면목! 미스터 저글링입니다!!"

  

무대의 모든 조명이 꺼지더니 한곳을 향해 일제히 빛이 떨어진다. 그곳에는 미적센스가 심히 의심스러운 꼴을 한 피에로가 서있었다. 


피에로는 요란스러운 몸짓으로 인사를 하더니 허공에다가 공을 던졌다. 공을 던지고 떨어진 공을 받는걸 반복한다.  


와아!


공의 갯수가 늘어날 때마다 비례해서 높아지는 환성. 그리고 원을 그리며 빠르게 도는 형형색색의 공은 확실히 현란하고 화려했다. 처음에는 3개로 시작하던게 4개 5개 갯수가 점점 늘더니 마지막에는 십수개가 넘는 공을 완벽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공을 전부 다 품속에 받아대더니 폭팔하듯이 10개가 넘는 공을 전부 공중을 향해 던지더니 관객들을 향하여 머리를 숙였다. 기묘하게도 공은 알아서 피에로를 피해가는 것처럼 그 주변에 원을 그리듯이 깔끔하게 떨어진다. 그걸 본 관객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다녀왔어. 근데 뭔가 했었어?"


유유히 퇴장하는 피에로와 타이밍을 짜맞춘 것처럼 돌아온 메리는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저글링."


"뭐어? 여기서 가장 재밌는거잖아!"


나눠주던 팜플렛에는 서커스의 하이라이트라고 큰 글씨로 적혀져 있긴 했었다. 고작 화장실에 가는 사이에 하이라이트를 놓치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좌절하고 있는 메리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장난끼가 솟아 오른다.


"정말 멋진 저글링이었다."


"에엣!"


"그걸 못보는건 인생을 헛산거지."


"저글링! 저글링! 나도 저글링 보고 싶단말이야!"


"조용히 해라. 다음 묘기 시작한다." 



서커스가 끝나고 천막을 나오니 어느새 해가 넘어가 하늘은 노을빛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손에는 메리의 손이 포개진 채였다.


"정말로 재밌었지?"


"그저 그랬지."


"그래도 저글링은 못봤어..."


인형을 꼬옥 안은채 아주 약간 고개를 숙인 메리의 얼굴은 그림자가 져서 그런지 약간 침울해 보였다.


"그럼 내일 또봐!"


메리를 집 근처까지 데려다 주고나서 바로 아틀리에로 돌아갔다. 뒷정리만 마치고 쉬러 가려던 찰나에 새하얀 캔버스가 눈에 띈다. 


"조금만 그려보도록 할까..."


눈이 조금 감겨왔지만 그리고 싶은게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리고 싶은게 있으면 붓을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게르테나?"


붓과 캔버스가 스치는 소리만 들려오던 공간에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낯이 익은 목소리에 저절로 굽었던 등이 화들짝 펴졌다. 돌아보니 메리가 서있었고, 창문을 보니 날이 밝아 있었다. 밤을 새어 버린 모양이다.


"뭐야? 그 그림... 저글링?"


메리의 물음에 완성된 그림을 가릴 여유도 없이 그대로 앉은 채로 굳어 버렸다. 하필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녀석한테 들켜버린 것이다.    


"진짜 사람은 안그린댔는데... 설마 나를 위해서...?"

  

"아, 아니다. 이것은 일반화 된 저글러의 의념을 그린 것이다! 모티브도 다른 작품을 리메이크 해서 그린 것이다. 절대로 실존인물을 그린게 아냐! 절대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나조차도 몰랐지만, 말까지 더듬으며 소리치는 모습이 정말로 꼴사납다는건 알수 있었다. 


"진짜 멋져... 게르테나 고마워."


하지만 메리는 꼬투리를 잡거나 놀리려고 들지 않았다. 그 모습에 오히려 귀까지 뜨거워질 정도로 부끄러워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제 잘거니까 깨우지 말고 저리 가있어라!"


"있지. 다음엔 나 그려줘!"


"안 그린다!"


"그려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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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는 여전히 아틀리에를 들락거렸고, 아틀리에 한 켠에는 어느새 '저글링'이 놓여져 있는게 자연스러운 광경이 되어있었다. 내가 어째서 실물을 그렸는지 완전히 납득하지 못했지만 '저글링'을 바라보는 메리를 보고 있자니 아무렴 어떻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 실패작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복잡한 생각을 그만두고 주변을 둘러본다. 우선 꽃병에 있는 장미가 시들해져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메리한테 새로 꺾어 오라고 말해야겠다.


"오랜만입니다. 선생님."


반갑지 않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나 반갑지 않은 얼굴이 서있었다. 정신이 팔려 사람이 들어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또 온거냐? 바로 돌아가라. 볼일 없다."


열어진 문에 멋대로 들어와도 되는건 하나로 족하다. 하지만 화상주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흘려보냈다. 


"그런 야속한 말씀을 하지 마시고..."


뱀같은 여자다. 눈짓으로 아틀리에를 훑어보는 여자의 모습이 그러했다. 돈이 되는 먹이를 찾는 듯한 무기질한 눈길. 예의를 갖춘 태도는 그저 겉치레의 불과하다. 그리고 이윽고 뱀의 눈은 무언가에 흥미가 생겼는지 욕망을 비췄다. 


"이 그림은 뭐죠?"


여자는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그림 하나를 가리켰다. 


"이 그림... 정말 멋져요..."


이미 내 존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여자는 황홀한 듯이 '저글링'에 눈을 떼질 않는다. 


"그 그림에 손대지 마라!" 


"있죠. 선생님 이거 팔아주셨으면 해요!"


'저글링'을 불쾌하게 어루만지며 여자는 아양을 떨며 졸라왔다. 점잖을 떨어대던 평소의 말투도 아니다. 그만큼 '저글링'이 마음에 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그림을 넘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역시 와이즈 게르테나는 이래야지! 그딴 추상화가 아니라..." 

  

내 그림에 손을 대는 불쾌한 벌레를 한시라도 떼버리고 싶었다. 이건 니년 따위를 위해서 그린게 아니란 말이다.


머리에 피가 차오른채로 그 년의 가증스러운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았다. 그와 동시에 팔레트 나이프를 거꾸로 집어들어 탁자에 내려치며 말했다.


"그 그림은 안판다."


고작 사람을 상대로 이정도로 살의를 느낀적이 있었을까. 적어도 그 자리에서 그 그림을 돈으로밖에 보지 않는 그 년의 눈을 파버리고 싶었고, 추잡스러운 말로 내 세계를 폄하하는 그 더러운 혓바닥을 잘라내고 싶었다. 진심으로.


"나가라..."


그년 역시 질려 버렸는지 그 후에는 순순히 아틀리에에서 나갔다. 



"게르테나. 왜 그래...?"


아틀리에에 온 메리는 내 이변을 알아챘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사실을 메리에게 털어놓기로 했다.


"화상주인이 '저글링'을 팔라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그 그림은..."


"괜찮잖아? 팔아버려도!"


"뭐?"


귀를 의심하며 그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평소와 같은 미소로 말하고 있는 그 아이의 표정에서 나온 말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화상주인도 멋진 그림이라고 했었지? 돈도 들어올테고."


어째서 그런 소리를 하는거지? 너한테 만큼은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 얼굴로,

그 미소로, 그 목소리로 그런 소리를 하는거지? 너는 돈밖에 모르는 녀석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게르테나도 세계로부터 잊혀지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그걸로 날 꿰어낼 속셈인가..."


더 이상 필요없다.


"애새끼라도 여자는 여자로군. 내 돈을 노릴 생각밖에 안해. 꼴보기 싫은 여자년들..."


나를 올려다 보는 메리의 표정을 보았지만 더 이상 그런것따윈 중요치가 않다.


"내 그림은 내 세계를 위해서 존재한다. 네 년들의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개를 들고 올려다 보는 메리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작은 몸이 파르르 떨려오는게 앞에서도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이내 소리도 내지 않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달려 나갔다.  


"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