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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표현이 직설적인 아이. 그래서 곧 잘 웃는 그런 순수한 아이.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아이. 그게 내가 아는 그 아이의 모습이지 않은가. 


'선생님, 이대로 가다간 세계로부터 잊혀져 버려요.'


'그럼 게르테나도 세계로부터 잊혀지지 않을거야.'   


메리는 날 위해서... 그저 내 걱정을 하던 아이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곧바로 달려나갔다. 당장 메리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는 몰랐지만 그 아이를 붙잡아야만 한다.


"메리..."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계속해서 발을 내딛었다. 아이의 보폭을 따라 잡는건 금방이었다. 메리의 집으로 가는 철도 근처의 길에서 한 손에 잡힌채로 흔들리고 있는 파란 인형과 그 아이의 금발이 보였다.


"메리!" 


내 목소리가 들렸는지 메리는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메리가 멈춘 곳은 철로의 한가운데였다. 게다가 옆에서는 연기를 뿜어대며 기관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안된다! 이쪽으로 와라!"


메리는 몸을 돌리고 달리려고 했지만 이미 기관차는 너무 가까이 와 있었다. 커다란 그림자가 메리를 덮쳐온다.


"메...리..."


부르는 것이 늦어버렸고, 나 역시도 달려나가는 것이 늦어버렸다. 나는 그저 기관차에 치여 튕겨져 나가는 메리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메리이이잇!!"  



메리 메리 메리 메리 메리 메리 메리...!


눈 앞에 있는건 붕대를 온몸에 감은 채로 간신히 형체만이 남은 채로 심장만 뛰는 메리. 예쁘게 넘실거리던 금발도 꼭 잡던 작은 손가락도 감겨있는 채로 나를 바라볼 일도 없을 파란색의 눈도 시건방진 소리를 하는 목소리조차 무엇 하나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저 아이는 어떻게 된거냐! 어째서 눈을 뜨질 않아!!"


의사의 멱살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러대었지만, 의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간다.


"면목없습니다만. 이 아이의 뇌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딴건 오진이라고 괘씸한 소리를 하는 의사한테 주먹을 날리지도 못한채 멍하니 의사를 바라보기만 한다.


"이 아이가 더이상 눈을 뜰 일은 없을겁니다... 심장이 멈출 때까지 그저 잠들어 있을 뿐입니다..."


너무나 단호한 선고에 온몸에 힘이 빠져서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내가 메리를 죽인 것이다...


며칠동안 물도 음식도 입에 대질 않았다. 메리를 죽인 내가 무슨 염치로 산단 말인가. 아틀리에의 문을 완전히 걸어 잠근채 웅크려 있다가 죽어버리면 그 뿐. 가끔씩 입에서 나오는건 메리의 이름 뿐이다.


메리... 메리... 메리...


바닥에 나부러진 꽃병에는 완전히 말라 비틀어져 꽃잎이 다 떨어진 장미가 있었다. 나는 메리한테 아무것도 해주질 못했는데.


메리... 메리... 메리... 메리...


내가 더 빨리 그 아이를 불러 세웠다면. 내가 그 아이에게 그런 모진 말을 하질 않았다면. 내가 '저글링'을 그리질 않았다면.


캔버스 위엔 가증스러운 '저글링'이 공을 던지고 있다. 그 아이는 보지 못했던 저글링을 그리고 나서 그 아이가 뭐라고 했더라...


'있지. 다음엔 나 그려줘!'


메리의 목소리, 얼굴, 모습 무엇하나 빠짐없이 내 머리 속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수있는 일은 한가지 밖에 없다.


"그래... 그릴게..."


"널 그릴게. 캔버스 위에 생명을 담아 널 그리겠어!!"


"그렇게하면 분명 다시 기뻐해 줄거야! 메리."



며칠이 지났을까. 이미 그런건 의미를 잃은지 오래였다. 생명을 담은 그림을. 그 아이의 존재 그 자체를 이 캔버스에. 오롯이 그걸 위해 나는 여기에 남아있다.


"됐...다..."


"완성이다... 이것을 보여주면 분명...!!"


메리! 메리! 메리!


그림을 옆구리에 끼운채로 아틀리에를 빠져나와 메리가 있는 병실로 달려갔다. 폐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지만 이 그림을 보여주고 나서 모든 것이 끝나도 상관없었다.     


"메리!!"


하지만 병실문을 열자 그 안에 있는건 얼굴도 모르는 남자아이였다. 분명히 여기는 1인실일텐데. 마침 병실로 들어오는 의사를 붙잡고 다그쳤다.


"메리는 어딨나! 열차 사고로 크게 다쳐서 입원한 여자아이 말이다!!"


"크게 다친 여자아이? 이 병실은 2주 전부터 올리버군이 쓰고 있었습니다. 다른 병실이랑 헷갈리신거 아닌가요?"


뭐?


"간호사. 소아병동에 메리란 아이가 입원해 있습니까?"


의사에 물음에 간호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병원에 메리란 아이는 물론 열차사고로 입원한 환자도 없는걸요." 



"말도안돼! 말도 안된다!"


그래, 멍청한 병원 녀석들이 헛소리를 하는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엔 메리의 집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없다면 당연히 집에서 치료 받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마당에는 바닥을 청소하고 있는 메리의 이모가 있었다. 


"어머, 게르테나 선생님 안녕..."


"메리는 어디있나! 병실에서 나온거냐!"


부여잡고 있는 어깨를 흔들며 대답을 강요하자 그녀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마치 미친사람을 쳐다보는 듯 한 표정에 조금 이성을 되찾고 다시 메리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 메리가 누구죠?"


"병으로 죽은 너의 형제의 아이 말이다..."


기분나쁜 소리를 한다면 그 아이의 이모라고 해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로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제가 동생에 대해서 말했었나요? 확실히 그 부부는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그 부부에게 아이같은건 없었는걸요..."


그녀의 태도에 그 말이 거짓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식은 땀이 흘렀다. 병원 녀석들과 일관된 주장. 그 아이의 혈육마저 그딴 몹쓸 농담을 할 거 같지는 않기에. 맥이 빠져 불러 세우는 목소리를 뒤로 한채 아틀리에로 돌아갔다. 


메리가 사라질리가 없어. 그렇다면 그 기분나쁜 생각을 떨쳐버릴 것을 찾아버리면 그만이다. 그 아이의 자취. 아틀리에에 수없이 드나들면서 자신의 물건을 갔다놨던 메리다. 


그 아이가 자신을 물건을 놓아두던 상자부터 미술도구가 들어있는 상자. 수납이 가능한 공간 전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스케치북. 크레용. 그림책. 리본. 인형. 그토록 많던 물건들이 보이지가 않는다.


"없어! 없어! 없어!!"


그리고 문득 그 아이를 위해 그린 '저글링'이 있던 자리를 둘러봤다. 그러나 '저글링'조차 사라져 버린 뒤였다.


"이게 무슨..."


혹시 몰라 화상주인과 알고 지내는 아들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그림을 돌려놔라! 어서!"


"잠깐만! 그 그림이라는게 뭔데? 무슨 소릴 하는거야? 아버지."


"'저글링' 말이다!"


"아버지 언제적 얘길 하고있는거야?"


"언제적 얘기냐고?"


"그게 '저글링'은 벌써 몇년 전 그림이잖아."


"몇년전...?"


"그러니까 우리 애랑 서커스 간 뒤에 그린거잖아. 그때의 아버지는 이상하게 친절해서 말이야. 애가 마음에 들었던 저글러를 그려서는..."


이 녀석은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나와 같이 서커스를 보러간건 메리란 말이다. 메리의 손 그리고 저글링을 보지 못해서 침울해하던 모습까지 눈에 선하다. 그럴리가 없다.


"그보다 저번에 말했던 자화상..."


얼이 빠져서 전화를 끊어 버리고 말았다.


"그럴수가.. 도대체 메리... 어째서..."


바스락. 


천이 스치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가려져 있던 메리의 초상화가 있었다. 마치 나를 불러 세운 것처럼 웃고 있는 그 아이. 나의 모든 것을 담아서 그린 그 모습은 진짜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생명을 담은 널 그리겠어.' 


'캔버스에 진실된 너를. 작품에 영혼을 바쳐 너의 존재 그 자체를.'


존재를 교환하는 것으로 공상을 현실로 바꾸는 것.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그 아이의 존재... 살아있는 증거를... 내가..."


이런 나조차도 친구라고 불러주며 손을 잡아주던 그 아이를 떠올리며, 나는 그 자리에서 오열하고 말았다.


메리는 여기에 존재한다.


"나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메리."


대답이 없다.


"그래도 혼자 있으면 외롭겠지..."


역시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거울을 가져와 얼굴을 들여다 본다. 눈가는 꼴사납게 빨개져 있고 비쩍 마른 모습이 볼품없다. 하지만 이제 그런건 상관없는 일이다.

 

"너에게 친구를... 나도 곧 그쪽으로..."


이상한 느낌에 얼굴을 어루 만지자 코피가 손에 묻어나왔다. 의식이 몽롱하다. 너무 과로한 모양이다.


"피곤하구나."


눈이 감기고 몸에 힘이 빠진다. 시야가 흐릿해지는 찰나에 메리의 모습이 보인다. 더 이상 그 아이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졸라도 괜찮겠지. 메리는 역시 미소만 지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조금만 잘테니까... 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