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요?”


사신이라고요, 사신.”


그녀는 말을 내뱉으며 온 힘을 쥐어 짜 버린 듯 자신이 들고 온 물건에 체중을 실어 기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작나무에 매달린 매미와도 같았다. 사샤는 그제서야 그녀의 옆에서 일렁이던 하얀 것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그 물건은 뼈로 된 거대한 낫이었다. 키를 넘긴 길이의 자루는 마치 척추와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고, 날과 자루가 붙은 곳에는 턱뼈까지 붙은 두개골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날마저도 뼈로 된 듯 빛바랜 하얀색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섬뜩한 물건은 그녀의 말에 설득력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을 납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 머릿 속에 떠오른 질문을 여과 없이 내뱉고 볼 뿐이었다.


... 저승으로 사람의 목숨을 데려가는 그 사신 말이오?”


, 맞아요.”


검은 여자는 조금 체력이 회복된 듯한 표정으로 '더 무슨 질문이라도?' 라는 눈빛과 함께 그를 올려다 보았다. 마치 그가 말하는 것을 굳이 끊기를 바라진 않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질문이었기에 사샤는 대꾸할 말이 곤궁해져 버렸다. 딱히 할 말이 없어진 사샤는 다시금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림처럼 멈춰 있는 풍경들이 다시 눈에 담겼다. 그리고 자신의 앞을 쳐다 보았다. 자신을 사신이라 이야기하는 검은 망토의 미인이 서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반추해 보았을 때, 가장 논리적이고, 가장 대답을 듣기 싫은 질문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그럼, 난 죽은 겁니까?”


.”


.”


'.' 라는 대답을 듣자 마자 사샤는 간결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약간의 침묵이 둘 사이에 감돌았다. 여자는 더 이상 유의미한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듯, 미리 준비해 둔듯한 위로와 함께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목숨을 잃어 버리셔서 침통하실 거에요.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실거구요. 하지만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여자는 어디에 넣어 놨던 것인지 모를 서류철를 망토 속에서 꺼내어 분류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약장수처럼 이것저것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부터 저희 심연과 일을 하시기 위한 조건을 말씀 드릴게요. 당신은 지금부터 저희와의 계약을 통해서 또 다른 세상에서의 삶을 택하실 수 있어요. 일단 계약 조항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그녀를 앞에 두고 사샤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지금 눈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데려갈 존재가 저승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올라오던 때가 떠올랐다. 그를 조준하던 독일군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참호 너머로 총을 쏘던 자신이 떠올랐다. 전장으로 행군을 시작하던 때가 떠올랐다. 과거를 되짚어 가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두 가지 질문을 되뇌었다. 자신은 죽은게 맞는가? 아닌가? 그 두 개의 질문은 새끼를 치고 있었다. 제곱수로 머리 속을 가득 채워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혹시나 스쳐 지나간 총알에 기절한 사이 꾸는 꿈이 아닐까? 지금 서 있는 나는 살아 있는것이 아닌가? 내가 전쟁을 치루기는 한 걸까?

그런 사샤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한참 자신이 들고 있는 서류의 조항과 약관을 줄줄이 읊고 있었다. 그래서 앞에 있는 전사자는 자신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다는 사실을 상당히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사샤는 입을 벌리고 자신에 대한 질문을 반복하며 마치 묘비와도 같이 굳어 갔다. 그리고 그녀는 사샤의 모습을 쳐다보며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깨달았다.

'.' 라는 바로 그 대답.

그녀는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며 사태를 수습하려 하였다.


, 죄송해요. 제가 당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빨리 알려드리면 안 되나 봐요. 제가 사실 이 일을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되었거든요. 정말 죄송해요. 그런데 지금 이러시면 저도 제 할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요. 이거 어떡하지?”


그녀는 서류도 모두 놓친 채 두 손으로 자신의 낫자루를 그러쥐고서는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고 그 때, 사샤의 절규가 다시 멈춰버린 회색 하늘로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


느닷없는 괴성에 그녀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아까는 죽음의 공포에 직면했던, 지금은 그 자체가 되어버린 전사자는 마지막 남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두 번째로




-------------------


업로드가 늦었네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