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 5


"학생, 학생! 다 왔어!"


술기운에 잠들었던 성준은 택시기사의 목소리를 듣고 부스스 일어난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지갑을 주섬주섬 찾기 시작한다. 택시기사는 취객인 성준이 혹시나 자신의 차에 실수하는 것은 아닐까하며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지켜본다.


"아, 찾았다."


성준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택시기사에게 들이내민다. 

택시기사는 카드를 포스기에 찍은 후, 택시비가 찍힌 영수증과 함께 돌려준다.


"수고하세요."


차문이 닫히자 꽃담황토색 택시는 우렁찬 엔진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성준은 사라지는 택시를 보다가 자신이 내린 곳을 두리번거린다.

자신이 서있는 광장에서 보이는 분수대, 광장 횡단보도 너머 보이는 상가단지, 늦은시간까지 열려있는 김밥천국 그리고 길건너 금릉역.

성준은 비틀비틀 걸으며 광장외곽 벤치에 앉는다. 그러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자신 이름과 함께 미친새끼라 중얼거린다.


"술을 얼마나 쳐마셨길래 여길 오냐···."


이 때, 또각또각 구둣소리가 그에게 다가온다. 성준은 파묻었던 얼굴을 살짝 들어 옆을 돌아본다. 술기운 때문에 자세히보이지 않았지만, 단발머리를 한 것 같은 여자였다. 곧 정체불명의 여자가 성준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니가 이 동네에 왠일이야."


성준은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술기운이 싹 달아난다. 흐리게보였던 여자의 얼굴이 점점 또렷해진다. 


"조안영?"


정체불명의 여자, 조안영은 자신을 휘둥그레 쳐다보는 성준을 한심스레 내려다본다. 양 볼이 발그랗게 올라온 것이 유독 눈에 띈다.

안영은 크로스백을 뒤적거리더니 숙취음료 하나를 꺼내어 성준에게 건넨다.


"얼마나 마셨으면 얼굴까지 빨개져."


성준은 숙취음료를 벌컥벌컥 들이킨 후 대답한다.


"몰라. 기억 안 나."


그녀는 성준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그 옆에 앉는다. 그리고 '말보로 레드' 담배곽과 라이터를 바지주머니에서 꺼내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성준에게 묻는다.


"너도 한 대 줄까?"


성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난 내꺼 필게."

"그래. 그러던가."


안영은 담뱃불을 붙인 뒤, 하얗고 매캐한 연기를 입가에 머금는다. 그녀는 성준을 힐끗 내려다본다. 그는 술기운이 다시 올라오는지 고개를 숙인 채 살짝 비틀거리고 있었다. 


"진짜 이 동네는 왜 온거야? 일산으로 이사간지도 오래됐잖아."


성준이 크게 한 숨을 쉬고 대답했다.


"나도 몰라. 카카오택시 부를 때 여기 눌렀나봐."

"제대로 갔었나보네."


잠시 후, 성준은 담배피는 안영을 스윽 쳐다보며 말한다.


"근데 너 담배 언제부터···."


안영은 담뱃재를 바닥에 탁탁 털며 대답한다.


"전 남친이랑 헤어지고, 1년 됐어."

"꽤 됐네."

"근데 나 담배피는 건 어떻게 알았어?"

"너 학교다닐 때, 지나가면서 피는 모습 봤거든."

"아···."


성준이 이해하자 안영은 갑자기 피식하고 웃기 시작한다. 성준은 혼자 쿡쿡 웃는 그녀를 보며 왜 웃냐고 묻는다.


"웃기잖아. 5년만에 이렇게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담배피는 이야기라는 게."

"그러게. 생각해보니까 웃기네."


성준도 그녀를 따라 쓸쓸하게 웃는다.



...



아파트단지와 상가를 이어주는 도보전용길 금빛로.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길따라 세워진 가로등 빛 덕에 환하다.

성준과 안영은 오랜만에 금빛로를 나란히 걸으며 밀려왔던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놓는다. 


"그러면 복학은 내후년에 하는거야?"

"응, 그렇지."


안영의 질문에 성준은 고개를 끄덕인다. 안영은 "그렇구나." 대답하며, 그에게 상혁의 사정을 조심히 이야기한다.


"니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 너희···."

"알아. 카메라는 내가 하기로 했어."


안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성준이 입을 열었다.


"난 솔직히 니가 안 할 줄 알았어."

"안하려고 했지."


안영이 걸음을 멈추고 먼저 가는 성준에게 묻는다.


"나 때문에 안하려고 했던거야?"


앞서가던 성준도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안영과 마주보며 한치의 고민없이 대답했다.


"어. 맞아. 너 때문에 안하려고 했어."


이윽고 성준이 안영의 앞으로 다가온다. 안영은 다가오는 성준을 심기불편하게본다.


"솔직히 우리 웃으면서 이야기할 사이는 아니잖아."


안영이 반문했다.


"우리가 서로 잘못한 것도 아닌데."

"불편하잖아."


성준의 한마디에 안영은 말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한숨만 쉴 뿐이었다.


"그래서 계속 나 피할거야?"

"그건···."


성준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괜시리 안영의 눈을 피했다. 

안영은 성준의 모습을 보곤, 자신도 다른 곳을 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난 니가 이제 잊었으면 좋겠어. 5년이나 흘렀으니까."


성준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 잊었어. 잊었다고."



...



월요일 오후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퇴근길, 우산을 미처 챙겨오지 못했던 준철은 회사정문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이 때, 옆에서 경적소리와 함께 하얀색 레인지로버 한 대가 정문 앞에서 멈춘다. 곧 운전석 창문이 열리면서 성준이 모습을 드러낸다.


"준철씨, 비오는 데 타세요. 모셔다드릴게요."

"아, 저···."


준철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레인지로버로 달려온다. 그리고 순식간에 조수석에 올라탄다. 성준은 창문을 올린 뒤, 준철이 안전벨트를 매자 브레이크에서 발을 때어 자동차를 움직인다. 준철은 골목길 운전에 집중하는 성준을 보며 입을 연다.


"성준씨, 정말 고마워요. 어떻게 집에 가나 싶었는데."

"아니에요."


말을 마친 성준은 갑자기 피식 웃는다. 준철은 성준이 왜 웃는지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본다.

이윽고 성준이 웃은 이유를 준철에게 설명한다.


"금요일에 저한테 말 놓기로 하셨잖아요."

"아, 그랬죠."


준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놓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저 혼자만 말을 놓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그리고···."

"그리고요?"

"제가 낯가리는 성격이어서···."


멀리 신호등 색이 초록불에서 빨간불로 바뀐다. 성준은 브레이크를 밟아 자동차 속도를 천천히 줄여간다. 곧 차가 정지선 앞에서 멈춰섰다.


"저도 낯 많이 가려요."


성준은 창밖에 비치는 신호등을 확인하며 말했다.

잠시 후, 신호가 바뀌었다. 성준은 엑셀을 지그시 밟으며 이야기를 마저 이어간다.


"그럼, 좀 편해지면 그 때 놓으세요. 안 보챌게요."

"아, 네."


준철이 대답하자, 성준은 쿡쿡 웃는다. 그리고 왼쪽 백미러를 힐끔 내려다보다 차선변경을 하며 장난스레 말한다.


"준철씨가 말 놓게 하려면 빨리 친해져야겠다."


준철은 말없이 웃으며 운전하는 성준을 조용히 바라본다.



...



어느덧 목적지인 혜화동에 다다랐다. 성준은 티맵이 켜진 핸드폰을 슬쩍 내려다보고 준철에게 커피 한 잔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좋죠."


준철이 대답하자, 성준은 핸들을 돌려 스타벅스 주차장으로 방향을 바꾼다.

랜드로버는 하수구관을 밟는 덜컹 소리를 내며 스타벅스 주차장 안으로 들어온다.

비 오는 날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에는 사람들이 꽤나 북적거리는지 주차장에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도 맨 끝에 가서야 남은 한, 두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어떤 거 드실래요?"


성준이 스타벅스 안으로 먼저 들어오며 뒤따라오는 준철에게 묻는다. 준철은 메뉴판을 스윽 훑어보고 대답한다.


"저는 돌체라떼요."


성준은 계산대로간다. 그리고 카드를 리더기에 카드를 꼽고 직원에게 메뉴를 말한다.


"돌체라떼 아이스 톨 사이즈하고요, 자바칩프라푸치노 샷 추가해서요."

"휘핑크림 올려드릴까요?"

"네. 올려주세요."

"돌체라떼 아이스, 자바칩프라푸치노 샷 추가 톨 사이즈. 휘핑크림 올려서. 계산완료되었습니다. 카드 뽑으시면 됩니다."


성준은 직원이 주는 영수증을 챙기고 리더기에서 카드를 뽑는다. 그리고 준철과 함께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