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다. 일어나기에는 내 몸에 너무 피로가 쌓였다.

"아 너무 피곤해..좀 더 자야지..."

느낌이 근데 껄쩍지근했다. 

"오늘 뭐 있었던 것 같은데...뭐였지...? 아! 오늘 공시 결과 나오는 날이잖아!"

그렇다 나는 공시 3수생이다.  여태껏 결과는 다 불합격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합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시험이 워낙 술술 풀렸기 때문이다. 희망을 가지고 마우스 버튼을 클릭했다.

'이석찬 씨 불합격입니다. 죄송합니다.'

아... 이번에도 불합격이다. 재도전할 여력 따윈 이제 나에게 없다. 여태까지 공무원 시험 본다고 학원비 보내주신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 이 길을 선택한 게 너무 후회가 되었고, 자괴감이 들었다. 밀려오는 절망감은 덤이었다.그 와중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야, 니 합격했냐? 나 합격했다!"

"어 그래 축하해..."

"니 또 불합격이냐? 에휴 쯧쯧"

"불합격이다 어쩔래.. 끊어."

아침부터 전화해서 저렇게 사람을 박살시켜 놓는다. 아오, 진짜 짜증나.

전화벨이 한 번 더 울렸다. 엄마였다.

"석찬아, 합격이냐잉?"

"아니요, 죄송해요..."

"이게 벌써 몇 번째드나? 빨리 포기하고 딴 길 알아보랑께."

"하지만 요번에는 예감이 좋았어요."

"예감? 예감 좋다는 소리 들은지 벌써 2번째여. 그리 예감이 좋으면 마트 가서 예감 사먹든지 알아서 혀! 저런 밥버러지 같은 놈. 누구 뱃속에서 저런 게 나왔는지 몰라...아고..."

이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믿었던 엄마에게도 저런 말을 들을 줄이야. 끝없이 추락하는 내 인생이 참으로 한심했다.

"그래 ,이럴 바엔 그냥 죽는 게 낫겠어."

죽기로 결심하고 나는 당진으로 갔다. 가서 마지막 일몰만 보고 없어져야지. 

터미널에서 왜목마을 행 버스를 타고 차창에 몸을 기댔다. 마지막으로 볼 평화로운 도시 정경이니 잘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시간 후 안내방송으로 왜목마을에 도착했다고 나왔다. 아무생각 없이, 내려서 정처없이 걷던 도중 한 카페가 보였다.

"그래, 마지막으로 커피 마셔야지."

카페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카페 사장이 말했다.

마침 카페에는 도깨비 OST인 'stay with me'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참 이상황에 나랑 같이 살아줘라는 노래 제목을 들으니 같잖았다.

"하, 참 같잖네. 저딴 게 노래 제목이라니. 남은 이렇게 힘든데 노래는 같이 살아달라고 지랄지랄 하고 있고."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이걸 속으로만 생각한다는 걸 실수로 입 밖으로 냈고, 그걸 카페 사장이 들었다.

"무슨 힘든 일 있어요?"

"아뇨, 없으니까 빨리 커피나 주세요."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여기 의외로 자살하러 사람들이 많이 와요. 총각은 그러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앞날이 창창해 보이는데."

"앞날이 창창하긴 뭐가 창창해요? 공시도 3번 친거 다 떨어졌는데 친구라는 녀석은 전화해서 또 떨어졌다고 놀리질 않나, 믿었던 엄마는 밥버러지 새끼라고 하질 않나, 내가 뭐가 앞날이 창창해요? 장난해요?"

적막이 흘렀다. 이윽고 사장은 나에게 말했다.

"저도 한때는 잘나가던 중소기업 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IMF 때 망해서 고향인 이곳으로 쫓기듯이 내려오게 되었죠. 그나마 있던 처음 카페를 차렸을 때는 동업자에게 사기 당하기도 했고, 두 번째 자리 잡은 곳에서는 터를 잘못 잡아서 망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여기서 빚도 다 갚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일하며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지금 빛을 발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말아주세요. 주변인이 당신을 후벼 파고 찢기게 하더라도 저 소리는 나와 상관없는 소리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더욱더 갈고닦아 주세요. 나중에 그리고 성공해서 당신을 비웃었던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세요. 그게 죽음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일 거에요."

주인의 조언은 무언가 엄정하면서도 따뜻했다. 30년을 살면서 들어본 유일한 따뜻한 소리여서 그랬던 걸까. 석양이 지는 왜목마을 해변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