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교회를 나설 때만 해도 레이야스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던 오리에는 교회에서 점점 멀어짐에 따라 성배전쟁을 이기기위해 어떻게 해야 될 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도중에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하네, 오리에.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거야"

 리노의 말에 자신이 무언가 놓친 말이라도 있는지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해요.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오리에가 무언가 잘못하기라도 한걸까, 웃고있던 리노의 표정은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적을 대하는 듯한 살기를 띠고 있었다.

 "돌아갈 때까지가 소풍이라지만, 아쉽네. 우리들의 소풍은 여기서 끝이야"

 리노의 말에 오리에가 무슨 소리냐는 듯 멀뚱히 쳐다보자 리노는 말을 이었다.

 "너가 캐스터의 마스터라는건 알고 있어. 그리고 호텔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마력을 이용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도"

 이에 오리에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뭔가를 하고 있다고요?"

 그 표정은 작위적인것이 아니었다.
 오리에의 표정을 본 리노가 오히려 놀란 듯 품고 있던 적개심은 온데간데 없이 물었다.

 "뭐야? 캐스터의 독자적인 행동이었다는거야?"

 리노의 말에 오리에는 잠깐만요, 라고 하고는 잠시 생각을 하듯 멈추어 서있었다.
 아무래도 캐스터와 대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대화가 끝났는지 리노를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네요, 캐스터가 사람들의 마력을 모으고 있었군요"

 오리에는 방금 안 사실을 리노에게 전하고 이를 들은 리노가 오리에에게 말했다.

 "몰랐다니 다행이네. 그럼 그거 지금 당장 멈춰줄 수 있지?"

 당연한 듯 말하는 리노의 말에 오리에 역시 당연한 듯이 말했다.

 "아뇨, 그럴 이유는 없는데요"

 오리에의 말에 이번에는 리노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일반인에게까지 손을 댈 작정이야? 오리에"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지 않습니까, 캐스터도 바보네요. 죽을 정도로 마력을 뽑아내는 쪽이 이득일텐데. 아, 하긴 그러면 위치를 빨리 들켰겠네요"

 태연하게 사람이 죽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오리에의 머리속에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처가 쳐들어왔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미스 카라코우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리노가 적개심을 품고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당신을 쓰러뜨리는 수 밖에"

 그 말에 오리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리에는 자신의 서번트가 위험에 처했다고 하는데 그런건 상관 없다는 듯 미소지었다.

 "그런가요? 좀 더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에델펠트씨"

 오리에가 리노의 성씨를 입에 올린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


 한편 그 시각, 어둠이 내려온 교회로 향하는 언덕을 올라가는 자가 있었다.
 안그래도 어두운 겨울의 저녁이라고 하는데 언덕을 오르는 남자 또한 너무나도 어두웠다.
 블랙.
 방금 전 소우는 엔, 그리고 그의 친구와 헤어져 교회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 교회의 앞에 서서 신으로 향하는 문을 조용하게 밀었다.
 조심히 걸어들어가자 그곳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서있는 남자가 하나.

 "어서오시게, 기도라도 하고 갈텐가"

 근엄한 목소리의 소유자는 신부복을 입고 있었다.
 말과는 달리 위압적인 그 분위기의 안에서 소우가 말했다.

 "아니, 용무는 그쪽이다"

 "흠, 고해성사인가. 그것도 좋지-"

 소우의 말에 답하는 신부의 말에 소우는 조용한 목소리로 또 한번 부정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고해성사를 해야되는건 그쪽이겠지. 심판에 마스터라니 꽤나 부정 행위가 아닌가"

 그에 신부는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더니 이윽고 웃음을 흘렸다.

 "허허, 이거야 놀랐군.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찾지 못한 마스터를 나라고 하는 것인가? 세이버의 마스터여"

 신부가 웃으며 말하자 소우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는 듯 세이버를 실체화시켰다.
 그리고 던진 말은 한마디.

 "감독관에게 세이버의 마스터임을 보인적은 없다, 적의 마스터"

 말과 동시에 세이버가 신부에게로 달려들고---
 탕! 탕! 탕!
 총탄이 세이버의 돌진을 막아냈다.
 하얀 망토 같은 것을 두른 자가 신부의 앞에 실체화하고 신부는 교회의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칫, 캐스터라고 생각했더니 어쌔신이었나"

 세이버가 혀를 차며 말하자 소우는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세이버, 저것은 여기서 떨어뜨려라"

 소우의 말에 세이버가 알았다, 고 대답하자 소우는 교회의 뒤편으로 돌아가 신부를 쫓을 생각인지 교회에서 나갔다.
 교회에 남은 자는 둘.
 하얀 머리칼의 검은 남자와 하얀 가면의 하얀 남자뿐이었다.
 어쌔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마스터가 안전한 위치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 반면 세이버에게 주어진 임무는 적을 쓰러뜨리는 것.
 적의 배후에서의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어쌔신에게 적의 전면에서의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세이버로부터 시간을 끌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럼에도 죽으라는 명령을 들은 남자는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검사의 앞에서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이러한 어쌔신을 본 세이버가 입을 열었다.

 "호오, 마스터에게로의 충성, 높이 사도록 하지. 허나, 여기서 죽어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만"

 어쌔신은 세이버의 말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흥, 뭐,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었군. 자, 그럼 여기서 사라져라, 어쌔신"

 세이버가 날았다.
 그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의 발 밑에서 엄청난 마력이 뿜어져나와 순식간에 그 거리를 좁혀나갔다.
 어쌔신은 그것을 손에 든 두정의 총으로 쏘아맞춘다.
 그러나 세이버, 검의 영령은 그 속도에서 총탄을 보고 전부 베어낸다.
 그리고 순식간에 거리는 좁혀져 어쌔신을 베어냈다.
 아니, 베어내는 순간에 어쌔신은 단 한번의 도약으로 방금 전 세이버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마력방출로 줄인 거리를 단 한번의 도약으로 벌렸다.
 비정상적인 도약력, 비정상적인 속도.
 사실 그 정도는 어쌔신이라는 영령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정상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두 가지.
 하나는 두 손에 들린 것은 보편화되어 보구라 여겨질 리 없는 것이 보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분명히 빗나가야 할 총탄의 궤도가 자신에게로 휘었다는 것이다.
 총기.
 총기를 지닌 영령이라는 것은 생각할 것도 없이 현대의 영령이다.
 미래의 영령이 아니라면 유도탄이란 것을 사용할 리는 없고, 애초에 저 구식의 M28을 미래에서 사용할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것은 단 한가지,

 "마술이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할터인데, 어쌔신의 주제에 마술을 쓰는가"

 마술.
 실제로 네크로맨서인 한 마술사킬러는 시체의 손가락에 저주를 걸어 탄환으로 사용하는데 그것은 오로지 적의 심장만을 노린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마술을 사용하면 가능한 것이지만-
 세이버는 어째선지 그것이 보구인 총기의 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유도라는 것은 알았다만 그래봤자지. 나에게서 이길 생각은 말아라"

 명쾌한 세이버의 말은 옳았다.
 어쌔신이 어떠한 영령이든 비록 그것이 헤라클레스라 하더라도 클래스에 얽혀있는 성배전쟁의 특성 상 어쌔신은 세이버를 백병전에서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원망할거라면 자신의 클래스를 원망하도록 해라!"

 세이버가 날았다.
 방금 전과 같은 상황.
 그러나 방금 전과는 달리 어쌔신이 피한 순간, 세이버가 뒤따라갔다.
 어쌔신에게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피하는 순간 날아오는 공격을 총으로 겨우 막아내고 다시 피할 뿐인 반복.
 그러는 도중 이대로는 안된다고 판단했는지,그렇지않으면 이미 유도라는 것을 들켰기 때문인지 어쌔신은 피하면서 총탄을 밑으로 쏘아냈다.
 총탄은 밑으로 쏘아진 순간 휘어져 세이버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것을 가볍게 막아낸 순간, 어쌔신은 사라져있었다.

 "칫, 도망쳤나"

 그리고 뒤이어 후방에 있는 교회의 문에서 소리가 들렸다.

 "놓쳤다. 마술까지 썼지만 이 쪽의 속도로는 전혀 따라잡을 수가 없더군"

 소우의 말에 세이버가 입을 열었다.

 "아아, 이쪽도 놓쳐버렸다. 역시 어쌔신인가, 기척차단을 파악할 수가 없구만. 그보다 소우, 사실 그 놈은 쫓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이어지는 세이버의 말은 소우에게 있어서도 꽤 충격이었다.

 "인간이 아니거든, 그거. 잘 만들어진 인형이다"

 공정해야 할 교회의 감독역이 마스터인 것이 부정이 아니라, 애초에 누군가의 의지가 깃들어 있을 호문클루스가 교회의 감독역이라고 하는 것이 부정이었던 것이다.
 신부를 쫓던 소우가 세이버가 있는 교회로 돌아오자 교회의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레이야스필이었다.

 "무슨 일이죠, 이건?"

 레이야스필이 교회의 내부를 바라보며 소우와 세이버에게 말을 던졌다.
 교회 내부의 모습은 참담했다.
 예배객이 앉아야 할 의자들은 죄다 원래의 자리를 벗어났고, 그 중의 절반 이상은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단순한 나무조각에 불과했다.
 게다가 바닥에는 무수한 총탄자국과 칼자국이 나있으며, 아침이면 햇볕이 들어올 유리창들도 거의 대부분이 깨져있었다.
 이 참상을 보고 물어보지 않는 자가 이상할 정도로 당연한 물음이었다.

 "마침 잘 되었다, 레이야스필. 교회에서 파견된 신부가 부정을 저질러 성배전쟁에 참가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소우의 말을 듣는 레이야스필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저 듣고만 있었다.
 이에 소우는 그녀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그렇기에 교회를 급습해 이 모양이 되었다만, 성배의 그릇으로써 그대는 어찌할 것인가"

 소우가 묻자 그제서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어찌하다뇨? 무엇을 말인가요?"

 "이미 탈락한 토지의 소유자인 토오사카 엔의 보호를 받거나, 아니면 어차피 성배에 손을 댈 자는 없다고 생각하니 여기에 남아도 좋다"

 이전의 성배전쟁에서 소성배를 노린 마스터들이 많았지만, 정직한 소우의 성격상 그런 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한 것이겠지.
 허나 실제로 이번 성배전쟁에서는 성배를 원하는 자들이 마스터가 된 것이 아닌, 성배전쟁 그 자체를 원한 마스터들이 많기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저는 성배의 그릇입니다. 비록 탈락했다고는 하나 마스터였던 자의 보호를 받을수는 없겠죠. 이곳에 머무르다가 서번트가 단 둘 남았을 때 대성배의 곳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레이야스필의 대답에 소우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레이야스필을 교회에 남긴채로 그곳을 뒤로 했다.


 ◇


 오후 7시, 공원의 일각.
 누군가의 왼팔인 듯한 것이 바닥에 떨어져있고 그 주변에 피는 흥건하게 고여있다.
 그 팔의 앞에는 오른손에 일본도를 들고 있는 여자가 서있고, 그 여자의 정면으로 3m 되는 거리에 금발의 여성이 한명.

 이상하다.
 분명 무언가가 이상해.
 방금 전까지 둘의 거리는 약 5m였는데, 그것을 단 한번의 도약으로 0으로 만들다니.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도 모르게 뒤로 뛰었다.
 아프다.
 그리고 오리에를 쳐다보자 그 발 밑에 무언가가 있었다.
 아프다. 아프다.
 공원의 가로등이 켜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에의 그림자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어디서 오는건진 모르겠지만 머리 속에서 아프다고 시끄럽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시끄러워!
 어찌됐든 이제는 적이 된 오리에를 쓰러뜨리기 위해 간드를 쏘려고 왼팔을 들어올리는데----

 "어...라?"

 반응이 없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들어올리려는 왼팔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지않는다.
 대체 어째서? 하고 왼팔을 보는 순간---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파!!!!!!!!!
 고통의 정체를 눈치챘다.
 거기에는 어깻죽지부터 그 아래에 존재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

 너무나도 아파서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었구나, 하며 마치 딴 사람의 일인 양 머리속에서 생각한다.
 오른팔은 자동으로 없는 왼쪽 어깨를 부여잡는다.
 이런 나를 오리에는 더러운 벌레를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본다.

 "뭡니까, 설마, 마술의 실력이 높다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건가요?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 활동하는 마술사를 공방에 처박혀서 연구만 하는 마술사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다가온다.
 어느새 여기가 전장이란 것도 잊은 채로 고통에 헐떡이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한걸음 한걸음 다가온다.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에게서 멀어지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데도 어째서 두 다리는 움직여주지 않는걸까.
 계속해서 좁혀지는 거리.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손에 들린 칼이 닿는 위치에 선 순간,

 "뭐?! 바보냐!"

 오리에가 소리친다.
 그것은 나에게로의 고함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그런 것보다 순식간에 칼이 쳐들려 목을 노리고 내려온다.
 그것을---

 "거기까지입니다, 캐스터의 마스터"

 리노의 눈 앞에 나타난 아처가 막아냈다.

 "칫"

 오리에는 혀를 차고는 뒤로 뛰어 물러났다.
 정확히 방금 전까지 서있던 지점.
 리노의 왼팔이 놓여있는 그 곳에 오리에는 서있었다.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아처"

 오리에는 허리를 숙여 방금전까지 리노의 팔이었던 것을 집어 올렸다.
 거기에는 아처의 령주가 3획 남아있었다.

 "이걸 제가 가지고 있다는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겠죠? 아처"

 서번트의 명령권인 령주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 서번트의 마스터라는 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죄송하지만, 그걸 사용하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아처의 말은 옳았다.
 령주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술회로가 작동해야되는데 남의 팔에 있는 마술회로를 사용하는건 불가능.
 이식이라도 하면 모르지만 지금의 상태에선 단지 상대의 계약을 끊었을 뿐, 자신이 마스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헤에, 잘 알고있네요. 칫, 속아주면 좋았는데"

 그렇게 말하며 오리에는 아처에게서 빠져나갈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아처의 말에 놀라 여태까지의 생각이 모두 날아갔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에게 붙는게 낫겠죠"

 "뭐...라고?"

 리노는 아처의 말에 경악해 소리를 냈다.
 이 상황에서 아처는 마스터를 교체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처... 어째서?"

 조금이나마 고통에서 벗어나 제정신을 차린 리노가 아처에게 물었다.
 그에 아처가 대답했다.

 "어째서... 입니까? 이상하군요. 성배를 손에 넣기 위해 소환에 응했으니까 이기기 위해 강한 쪽에 붙는건 당연한 것이 아닌가요?"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선언하는 듯한 아처.
 이에 리노가 소리쳤다.

 "자신의 신념을 굽힐 접도로! 성배가 필요하다는거야? 아처!"

 그에 아처는 리노를 바라보았다.

 "신념?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저의 신념이라고?"

 서번트로 소환된 이래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적의를 표하는 아처.
 리노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틀렸다는거야? 당신은 생전에 사람을 구하며 살아왔잖아"

 이에 아처의 표정은 더욱 더 일그러졌다.

 "틀렸다. 사람을 구한 것은 오로지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다. 인간 따위 자신을 제외한 인간을 배신하지 않으면 못 살아가는 인종이지"

 아처는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갔다.
 예[羿].
 고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상의 궁수신 예.
 원래 천상의 존재로, 옥황상제인 제곡의 아들인 태양 열 명이 동시에 하늘로 떠올라 난동을 부리고 그 열기에 가뭄이 들고 숨어지내던 괴수들이 날뛰어서 지상에 피해가 심해지자, 옥황상제가 예를 지상에 파견을 했는데 열 명의 태양 중 아홉 명을 죽여버린다.
 그 뒤 아홉 개의 사람 머리를 가진 거대한 뱀 상류, 원숭이와 닮은 괴물 무지기를 비롯한 날뛰는 괴수들을 죽이는 도중, 옥황상제가 자기 아들을 9명이나 죽였다고 신에서 인간으로 마누라인 항아와 같이 강등시켜 버린다.
 그렇게 마누라랑 같이 인간이 돼서 좌절하고 있는데 마누라가 대책을 세워 보라기에 하는 수 없이 서왕모에게 가서 선단을 2개 얻어 왔고 길일을 잡아 함께 복용하기로 한다.
 이 선단을 하나를 먹으면 불로불사하고 두 개를 먹으면 선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선인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항아가 이를 들고 도망간다.
 예는 그 뒤 사람이 망가져서 한량이 되었고, 말년에 들인 봉몽이라는 제자가 대성하지만 이 제자가 스승인 예를 죽여버린다.
 원래 봉몽은 예를 정면대결로 꺾고 1인자가 되려고 했지만 실력으로 안 되니 통수를 친 것으로, 예는 복숭아나무로 만든 곤봉에 뒤통수를 맞아 죽었다. 
 신에서 강등되어 인간이 되고는 인간에게 배신당하는 인생.
 아처는 이를 괴롭다고 여겨 다시 신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신이 되기 위해서라면, 인간 따위에게 사역당할 수도 있고, 인간 따위를 배신할 수도 있고, 인간 따위 모조리 죽일 수도 있다"

 인간에게 배신 당해 더 이상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영령.
 성배를 얻기 위해서라면 과거의 긍지같은건 필요치 않다는 그였다.
 모든 것을 들은 리노는 이를 꽉 깨물고 있었고, 오리에는 아처에게 말을 건냈다.

 "좋아요, 아처. 그렇게까지 원하는 성배, 제가 손에 넣게 해드리죠. 갑시다, 아처"

 오리에는 말을 마치고 공원을 걸어나갔다.
 더 이상 리노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피비린내 나는 공원을 뒤로 했다.
 이를 따라갔는지 아처도 영체화하여 사라져, 공원에 남은 것은 이제는 떨어져나간 어깨를 붙잡고 피웅덩이에 쓰러진 리노 뿐이었다.


 ◇


 오리에가 호텔에 돌아오자 캐스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리에는 캐스터를 보자마자 생각났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처를 놓치면 어떡해요. 보통이라면 죽었으니까, 그 상황"

 오리에의 말에 캐스터는 웃었다.
 그에 오리에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뭐가 웃겨?"

 오리에의 말에 캐스터는 웃던걸 겨우 멈추고 말했다.

 "아뇨, 캐스터인 제가 아처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미스 카라코우지"

 "그래서, 놓쳤다고?"

 어이없다는 듯한 오리에를 앞에 둔 캐스터가 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팔은 언제까지 들고 있을겁니까? 미스 카라코우지"

 캐스터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말했다.
 이에 오리에는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말할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 리노의 팔과 현자의 돌을 건네며 말했다.

 "아처의 령주는 이쪽에 옮겨줘. 나 혼자 두 서번트분의 마력을 충당하기엔 나 자신이 약해질 수도 있으니까"
 
 "호호, 확실히 그 편이 낫겠네요"

 이를 받아든 캐스터는 금새 령주를 적출해, 현자의 돌에 령주를 옮겨 아처의 마력공급은 현자의 돌이 전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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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Archer
마스터        --
진명        예 羿
성별        남성
신장/체중    187cm/72kg
속성        질서 중용
스테이터스    근력 B 내구 C 민첩 C 마력 A++ 행운 D 보구 EX

클래스별 능력
단독행동 A+
-마스터의 백업이 전혀 필요 없는 상태.
대마력 A+
-A+랭크 이하의 마술은 모두 무효화한다. 사실상 현대의 마술사는 피해입히는 것이 불가능.

보유 스킬    신성 A / 심안(偽) B / 천리안 B

보구

활과 화살 A+   
-천제 제준으로부터 하사받은 붉은 활과 끈이 달린 하얀 화살로 이름은 없지만 신의 무기이기에 높은 랭크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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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우가 그곳을 지나간 시각은 오후 9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작년 10월에 막 공사가 끝난 공원의 옆 도로변의 인도를 지나가는 도중 영체화 중인 세이버가 말을 걸어왔다.

 '소우,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다만'

 그 말을 듣고 소우가 걸음을 멈추더니 공원의 안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감독역이 없으니 전투의 흔적이 남은 모양이로군"

 공원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거기엔 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많은 피가 흩뿌려져있었다.

 '호오, 아무래도 피의 주인은 살아남지 못 했겠는데'

 세이버의 말을 들으며 소우는 피가 이어지는 곳으로 걸어나갔다.

 '이걸로 남은 서번트는 넷인가, 끝이 얼마 남지 않았군'

 세이버가 기쁜 듯이 말하는 도중 소우는 피의 흔적이 이어지는 그 끝에 도착했다.
 공원의 입구에서 그 핏자국은 끊켜있었다.

 "이 정도의 피를 흘리고도 자력으로 돌아간건가? 누군지 대단하군"

 '어쩌면 이긴 녀석이 죽은 녀석의 시체라도 들쳐메고 갔을지도 모르지'

 "그럴 수도 있겠군. 어쨌든 누군지 확인되지 않는건 아쉽게 됐다"

 소우가 말을 마치고 방향을 바꿔 왔던 길을 돌아갔다.
 이에 세이버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입구를 앞에 놔두고 왜 돌아가나, 소우'

 세이버의 말에 소우가 뒷처리다, 라며 대답하자 세이버가 그걸 왜 너가 하냐는 식으로 말했다.
 이에 소우가 마술로 피의 흔적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며 말했다.

 "감독역이 없는 지금, 뒷처리는 각자의 몫이다. 토지의 주인인 토오사카가 해야 될 일이겠지만, 엔이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

 '그렇게까지 해서 마술을 안 들켜야되는건가? 나는 잘 모르겠군'

 "이 정도의 규모야 방치해도 일반인에게 마술이란걸 들킬 리는 없지만 규모가 커 들켰을 경우엔 시계탑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까 일단은 처리해두는 편이 좋다"

 소우의 말에 세이버가 크게 웃었다.
 뭐가 웃기지, 라는 소우의 말에 세이버는 답했다.

 '아니, 아무것도 무서워할거 없을 것 같은 네녀석이 시계탑이 움직일 것을 무서워할 줄은 몰랐으니까 말이지'

 그게 조금 웃겼을 뿐이다, 하고 큭큭 웃어댔다.
 소우는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내뱉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집행자라는 놈들은 꽤나 악질이니까 말이다. 봉인지정도 아닌 것에 집행자가 올 리가 없지만"

 '집행자? 저번의 덩치 큰 애송이가 건네준 정보에 의하면 캐스터의 마스터가 집행자가 아니었던가?'

 세이버를 소환한 다음날, 정보꾼인 스즈키 쿄우이치[鈴木恭一]가 가져온 것에 의하면 캐스터의 마스터는 런던의 시계탑에서 이번 성배전쟁에 파견된 마스터로 본업은 집행자라는 모양이었다.
 그 옆에 있었던 세이버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던 듯 했다.

 "맞다. 잘도 기억하고 있군. 관심 없다고 생각했는데"

 '뭐, 적을 알아두는건 나쁠게 없으니까 말이다'

 "흐음, 이걸로 끝이다. 돌아가도록 하지"

 어느새 피의 흔적을 전부 제거한 소우는 공원을 빠져나가 자신의 저택으로 향했다.


 ◇


 밤 11시경 토오사카 저택의 초인종이 울렸다.
 엔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하며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하이, 토오사카 엔"

 문의 앞에는 피투성이가 된 리노가 고통을 참으며 웃는 듯한 표정을 하고 현관의 옆에 기대고 서있었다.
 어째선지 영어로 말하는 리노의 인사에 엔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이유를 묻는다.

 "우왁! 뭐야, 어떻게 된거야?!"

 "... 차를 내올거까진 없는데, 나 안 들여보내줘?"

 잠깐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다시 웃는 얼굴로 고개를 들고 건네는 리노의 말에 엔은 언젠가 그녀가 단신으로 이 집을 찾아왔을 때를 생각해냈다.

 "농담할 때야?! 어서 들어와!"

 엔이 리노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하자 리노는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뉘였다.

 "치료마술 정도는 쓸 수 있지? 엔"

 "어? 응, 쓸 수는 있는데-"

 엔이 자신이 없는 듯 말했음에도 리노는 엔에게 부탁하고 눈을 감았다.

 "엑, 아니 리노씨가 쓰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

 이에 엔이 거절하듯 말했으나 리노는 눈을 뜨지 않았다.

 "에엑?! 여기서 죽으면 안돼! 정신차려!"

 엔의 리노의 몸을 흔들었지만 리노가 깨어나지않자 조심스레 코에 귀를 가져다 데었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어 아무래도 잠들었을 뿐인 듯 했다.

 "우와, 놀랐다"

 엔은 놀란 마음을 가다듬고 이것저것 챙겨와 리노를 간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은 깊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