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오리에와 레이야스필 그리고 신이치를 업은 로우가 대공동의 입구를 빠져나온다.
 아무런 말도 없이 휩싸인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로우였다.

 "자, 난 여기서 이만. 라이더-"

 침묵을 날려버리는듯한 가벼운 말투로 라이더를 부른다.
 아마 6일간에 걸쳐 생겨난 새로운 습관일테지.
 자신도 모르게 라이더를 부르고는 부끄러운 것인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Fuck! 진짜 도움이 안되는 녀석이로군. 이럴 때 있었으면 편할 것을. 칫, 어쩔 수 없군, 걸어가는 수 밖에 없나"

 욕을 내뱉는 로우의 말을 듣고 웃어줄 상대는 이제 없었다.
 이를 깨달은 듯 로우는 다시 한번 욕을 내뱉고는 신이치의 시체를 업은 채 계단을 내려갔다.
 남겨진 두명의 마스터, 아니 성배전쟁이 끝난 지금으로썬 단순한 마술사겠지.
 인형이었던 그녀, 레이야스필마저도.
 오리에와 레이야스필은 류도사 계단을 내려와 정해지지 않은 목적지로 향한다.
 우선 정해진건 약 5시간 후인 아침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가는 것 뿐.
 걸어가는 도중 오리에가 입을 연다.

 "조금 천천히 걸어가자, 레이야. 바쁠건 없잖아?"

 그 말에 레이야스필은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나란히 후유키시를 걸어나간다.
 밤이라고 하기엔 새벽을 향하는 1시, 7인의 마스터와 7인의 서번트가 싸운 성배전쟁이 모두 끝난 오늘의 새벽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


 내부를 가득 채운 보름달이 비추는 지상을 얼음처럼 차가운 겨울의 공기가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문득 옆의 소녀를 바라보자 그녀 또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제 탓이 아니에요"

 차가운 바람에 자신을 쳐다봤다고 생각했는지 이상한 말을 하는 소녀를 보고 웃는다.
 그에 소녀도 동화되었는지 웃어준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수많은 생각이 머리 속을 휘젓는다.
 세이버가 사라진 후 레이야를 손댄 순간 무언가가 일어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레이야는 더 이상 호문클루스가 아니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신체에 있던 서번트 일곱명분의 마력이 소모되었지만, 그녀 자신의 마력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그것으로 깨달았다.
 성배가 나의 소원, 그녀가 인간이 되는 것을 이루어주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밤에 소원이 한가지 이루어진다면 이 시간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하늘을 쳐다보면서 걷는다.
 바라본 하늘엔 수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어 마치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그것은 옆에 있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인지,

 "있잖아요, 오리에. 유성, 보고 싶지 않아요?"

 마치 소원을 이루어줄게요, 라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웃으며 장난으로 손가락을 치켜들어 공중에 선을 긋는다.

 "그렇네, 볼 수 있으면 좋겠네"

 장난으로 치켜든 손가락 끝.
 마치 마법과 같이 아름다운 빛이 꼬리를 잇는다.
 그 광경에 와아, 하고 놀라는 그녀의 웃는 표정은 너무나도 밝아서, 나도 함께 따라 웃는다.
 이 곳에서 레이야를 만나고부터 너무나도 행복하다.
 대체 이렇게 웃은 것은 언제 이래일까?
 너무나도 행복한 지금을 미래 영겁, 언제까지라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는 생각을 하면서 눈이 쌓인 후유키시를 걸어나간다.


 ◇


 "너의 탓이야, 신이치를 돌려 놔, 소우!!!"

 성배전쟁이 끝난 다음날, 회사에서 소우의 연락을 받고 마토우저택에 돌아온 마토우 신고는 신이치의 방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의 아들의 시체를 보고 소우의 어깨를 잡고 울부짖었다.
 그도 분명 신이치의 죽음이 소우의 탓이 아니라는 것과 마술사로서의 길을 택한 신이치가 죽은 것은 신이치 자신의 탓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럼에도 눈 앞의, 심장이 멈추어버린 신이치를 보고서 할 수 있는건 그저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이었겠지.
 그걸 알기에 원망을 받는 소우도, 문 옆의 벽에 기대서 그걸 지켜보는 로우도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그 울분을 듣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체력이 바닥났는지 주저앉은 신고를 향해 소우가 말했다.

 "신고형, 나, 외국에 나가려고 해"

 그 말에 신고가 듣는건지 마는건지 고개를 떨군채로 가만히 있자 소우는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로우형의 말에 따르면 성배전쟁은 일본땅이 아닌 외국에서도 벌어지는 모양이야. 그래서 나는 로우형과 함께 떠나기로 결정했어. 그 동안, 신이치를 부탁해도 될까?"

 신이치의 심장에 걸린 저주를 풀기위해 성배를 찾아떠나겠다는 소우의 말에 신고는 그제서야 머리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바보구나, 소우. 신이치는 내 아들이니까 내가 보살피는건 당연하잖아?"

 눈물로 구질구질해진 얼굴로 겨우겨우 말하는 신고의 대답에 소우는 미소지은 뒤,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간다.
 로우가 그 뒤를 따라가려고 문고리에 손을 대자, 신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우라고 했던가? 하나뿐인 내 동생, 소우를 부탁해도 될까?"

 방금까지 원망했던 자신의 동생을 부탁하는 신고의 말에, 로우는 뒤돌아 신고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소우가 지었던 미소보다도 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우도 바보지만, 당신도 바보로군. 소우는 내 동생이다. 죽게 놔둘 리가 없잖아. 게다가 난 더 이상 친족이 죽는걸 보고 싶지는 않거든"

 그 말에 신고가 조금이지만 미소를 띄웠다.

 "아아, 안심했다"

 그걸로 더 이상의 말은 없을것 같아 로우는 뒤돌아 방을 나가려다가, 문득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다시 신고를 보고 말했다.

 "신고... 형. Fuck, 어색하기 그지없군. 무리다, 무리. 어쨌든 신이치의 신체는 토오사카한테 협력을 구해. 그리고 당신도 무리하지 말고. 정작 돌아왔더니 시체를 지키다가 당신이 시체가 되어있어서야 말도 안되니까 말야"

 그걸로 끝인지,

 "자, 그럼 나중에 보자고, 형님"

 하고 문을 닫고 떠나는 로우.
 그걸 바라보며 신고는 살짝이지만 웃음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하하, 동생이 하나 늘었다, 라는 건가. 나쁘지 않네"

 그 후, 두명의 동양인 콤비가 런던의 시계탑 근처에서 벌어지는 성배전쟁에 모습을 보이는 것은, 멀지 않은 훗날의 이야기.


 ◇


 "으으, 어이, 물"

 며칠 전부터 신토의 사립병원, 엔의 아버지가 원장으로 있는 병원의 201호의 2인실을 혼자서 독차지하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보통이라면 당연히 2명이서 사용하고 있어야 할 2인실을 그녀 혼자서 쓰는 이유는 당연했다.
 그녀가 일반인에게 들켜선 안될 마술사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자신의 금발머리를 묶고 다니지만 아무래도 환자다보니 머리를 풀고 있는 혼혈인인 그녀는 다른 부분은 멀쩡했지만 왼팔의 어깨부터 그 아래가 붙어있지않았다.
 그럼에도 이미 고통은 남아있지 않은지 태연히 물을 마시기 위해 누운채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뭐야, 엔! 없어? 어딜간거야"

 몇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는 상대의 목소리에 결국 그녀는 자신의 몸을 일으킨다.
 그와 동시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이 열리고 여전히 빨간색만을 입고 있는 엔이 들어온다.

 "앗, 일어났어?"

 상반신만을 일으켜 앉아있는 리노를 보고 달려오는 엔.
 그를 보며 리노는 불평을 말했다.

 "늦어, 어디 갔다온거야?"

 말하면서 물병을 가리키자, 엔이 물병을 리노에게 건넨다.
 리노가 이를 마시는걸 바라보면서 엔이 대답했다.

 "아-, 에미야씨한테 잠깐 전화하고 왔어"

 그 말에 푸웁, 하고 마시던 물을 공중분사하는 리노.

 "에엣, 더럽게 뭐하는거야아?!"

 "아니, 잠깐,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지금 뭐라고?"

 이불에 퍼진 물을 수건으로 닦는 엔에게 리노가 묻자 엔이 대답했다.

 "응? 전화하고 왔다고"

 "아니아니아니,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앞!"

 리노의 말에 엔은 말을 다시 한번 입속에서 되뇌이더니 아아-, 하고 말했다.

 "에미야씨 말하는거야?"

 그 말에 리노가 고개를 엄청나게 끄덕이자, 엔은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에미야 시로씨, 리노씨가 다쳤다고 말했더니 토오사카, 아니, 지금은 같은 에미야였지. 어쨌든 린할머니랑 오신다길래"

 "에엑?! 어째서 말한거야?! 아니, 그보다 설마-"

 "응, 이미 병원 앞이래, 호실 물어보시더- 케엑"

 엔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리노는 자신이 다친걸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오른손만으로 엔의 멱살을 잡아 흔들어댄다.
 그러는 도중,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거기엔 반가운 얼굴이 두명.
 그 얼굴에, 리노는 다음과 같이 반응하는 것이었다.

 "겍, 진짜냐"

 그 후, 어딘가의 인형술사의 도움으로 그녀가 의수를 다는 것은, 아직은 먼 이야기.


 ◇


 극동의 땅에서 수일간의 성배전쟁이 일어난지, 딱 일주일이 지난 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이렇게 말하면 뭐가 끝났는지 모를테니 차근차근 설명하자면, 성배전쟁이 끝난 그날 아침, 나와 레이야는 호텔을 정리하고 나와 역 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 그곳에서 항공기를 타고 장장 12시간 25분이나 걸려 런던 현지 시각인 오후 1시 15분에 런던의 한 공항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8시간이라는 시차가 적지 않았지만, 이미 여러번 경험해본 나로써는 아무렇지 않았기에, 게다가 레이야도 괜찮다고 하였기에 그대로 시계탑으로 향했다.
 시계탑에 도착한 그 즉시 지하에 있는 자신의 교수실에 있을 로드 엘멜로이 3세를 찾아가, 성배전쟁의 결과를 알렸다.
 그 뒤론 이미 후유키시에 근원이 발생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윗놈들이 뭘 들고 나올지 모르니, 엘멜로이 3세가 아닌 그의 선대이며 지금은 은거한 엘멜로이 2세가 직접 자신의 제자들을 불러들일 모양이지만,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
 보고의 뒤, 근처에 위치한 자신의 기숙사로 돌아왔다.
 애초에 조수 겸 도우미라는 걸 부를 수 있는 시계탑의 특성상, 두명이서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방이었기에, 특히나 집행자에게는 특실이 주어지는 학원이다보니 레이야가 살 곳은 걱정이 없었다.
 어쨌든 그리하여 레이야와는 같이 살게 되었고, 드디어 바로 어제 저녁, 엘멜로이 3세가 다른 윗놈들의 의견을 대충 어느 정도 수렴해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원하는거요? 으음-, 아, 저 영국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오리에"

 라는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우선 그녀의 기분이 내킬 때까지는---

 "오리에, 뭐하고 있어요? 빨리 안오면 먼저 갈거에요?"

 그날의, 처음봤을 때의 옷을 입은 오리에는 마치 처음 본 그날과 같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그것을 눈 안쪽에 새기며, 외투를 들고 일어선다.

 "지금 갈테니까 같이 가, 레이야-"

 ---눈 앞의 행복을 만끽하도록 하자.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