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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에서 피가 흘러나가는게 느껴진다.
 아니, 배 뿐만이 아니라 팔, 다리, 그야말로 온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
 아아, 이렇게 죽는걸까?
 차가운 복도 벽에 쓰러져 앉아있을 터인데 차가움같은건 이미 느껴지지 않는다.
 느끼는 것은 바로 앞에 태양이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뜨거운 감각.
 아하하-, 역시 캐스터의 말을 들어두는게 좋았을까?
 뭐, 지금에 와서 후회해봤자인가.
 아아, 졸려.
 어라...?
 눈을 뜨고 있어도 흐릿한 시야에 무언가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 니까, 미스 카라코--"

 캐스터인거 같은데, 아무리 그라도 지금 상태의 나를 살리지는 못하겠지.
 아, 어둡다.
 이제는 시야에 빛마저도 들어오지 않는다.

 "정말 ------ 군요. -------- 에"

 이제는 귀마저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솔직히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건 아니지만, 죽을때까지도 혼자인가-.
 아아, 레이야, 그녀가 너무나도 보고 싶다.
 단 한번만이라도 그녀를 볼 수 있다면---
 의식이 끊키기 직전, 뭐, 어떻게든 되겠죠, 라는 캐스터의 긍정적인 목소리가 들린 듯 했다.


 ◇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해 눈이 내리기 시작한 시각, 항구의 동쪽에 위치한 어느 폐공장의 안에 더러워진 신부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어쌔신, 어제의 일을 보고하라"

 그 남자, 신부의 말에 하얀가면 뒤에 얼굴을 감춘 어쌔신이 대답했다.

 "캐스터의 마스터가 아처와 재계약을 했습니다"

 어쌔신의 말에 의하면 캐스터의 마스터가 아처의 마스터의 령주를 탈취한 모양이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캐스터의 마스터를 치는게 우선이겠군. 이 상황에서 어제 령주를 잃은건 꽤 타격이 클지도 모르겠군"

 어제밤 세이버의 습격을 받은 신부는 령주 한 획을 사용하여 어쌔신을 불러들인 것이다.
 저번 성배전쟁의 교회감독이 령주를 양도하지 않은 채로 죽어 이번 감독인 신부에게는 이전까지의 령주가 없다.
 그렇기에 가진 령주는 어쌔신의 령주 2획과 성배전쟁을 포기한 버서커의 령주 3획.
 랜서의 마스터는 랜서가 탈락했음에도 령주를 양도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소유한 령주는 총 5획.
 일반적인 서번트끼리의 전투에서라면 충분히 유리하겠지만 상대의 서번트는 둘.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캐스터를 놔둘 수는 없지. 현자의 돌이 더욱 커질터이니"

 어쌔신의 정보에 의하면 어제 캐스터의 마스터와 아처의 마스터의 대화로 캐스터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탈락한 버서커의 마스터에게서 캐스터의 마스터가 현자의 돌을 건넸다는 이야기 또한 들었다.
 이걸 바탕으로 생각하건데, 캐스터는 지금 현자의 돌을 만들고 있는 것이겠지.
 그러한 결론에 다다른 신부가 어쌔신에게 명했다.

 "어쌔신, 아처를 맡아라. 캐스터와 그의 마스터를 내가 없애는 동안 시간을 벌면 충분하다"

 어쌔신이 대답하고 영체화하여 사라졌고 신부는 그 뒤를 따르듯 어딘가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미스 카라코우지, 신부가 움직였습니다. 아마 이쪽으로 올거라고 생각됩니다만"

 신토의 호텔 건물 최상층의 한 방, 캐스터와 그의 마스터인 오리에가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습이 보이지않는 아처는 현재 건물의 옥상에서 나타날 적을 견제 중이었다.

 "드디어 움직이는건가? 그럼 아침에 말한대로 가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안 가는게 좋아요, 미스 카라코우지. 여기는 아처에게 맡기는 편이-"

 캐스터는 일어나며 말하는 오리에를 바라보며 걱정했다.
 캐스터의 걱정은 아침부터 계속되었다.
 오리에 자신이 신부와 싸우고 아처가 어쌔신을 막는다, 라는 작전.
 캐스터는 그것을 이유없이 제지했다.

 "그러니까-, 이유를 말하라니까"

 답답한 오리에가 이 말을 한것도 수십번.
 그리고 또 이번에도 입을 다문 캐스터를 보며 이유를 말하지 않겠지, 싶어서 혀를 차며 나가려고 뒤돌아선 오리에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 어쩔 수 없군요. 상황이 코 앞까지 닥쳤으니. 저의 진짜 보구를 설명해드리죠, 미스 카라코우지"

 그저 안된다고 하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캐스터가 말을 잇기 시작한 것이다.

 "저의 뇌의 일부가 근원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계의 모든 정보가 자동으로 머리속에 들어오죠. 지금 이 모니터에 표시된 것도 그것입니다. 단, 얻는 정보는 세계의 모습 뿐으로 그 속까지는 알 수 없죠"

 캐스터는 알기쉽게 말하자면, 이라며 예를 들었다.

 "서번트로 예를 들도록 하죠. 서번트가 영체화한 상태에서는 그가 어디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 또한 인간이기에 인간이 볼 수 있는 것만이 보인다는겁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겉뿐이기에 진명이나 스테이터스 같은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건 인간을 봐도 마찬가지로 그 이름을 알 수는 없는겁니다"

 이해 되었습니까? 하는 캐스터의 말에 오리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OK, 그건 알겠어. 그건 알겠는데, 그게 어쨌다는거야?"

 "아아, 추측입니다. 모든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를 추측하는거죠. 의외로 이게 잘 맞아들었어요, 생전엔"

 캐스터의 말에 오리에가 조금 놀란 듯 말했다.

 "그럼 미래를 알고 있다는거야?"

 오리에의 말에 캐스터는 웃었다.

 "저에 대해서 모른다더니 진짜였군요, 미스 카라코우지. 장난인줄 알았더니. 좋습니다, 그럼 저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죠. 재차 말씀드립니다만, 저의 이름은 생 제르맹. 거의 근원에 다다른 연금술사입니다"

 캐스터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나가기 시작했다.

 생 제르맹[Saint Germain].
 인류 최후의 연금술사란 호칭이 있으며 1710년 유럽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프랑스의 위대한 작가인 볼테르의 말에 따르면, '절대 죽지 않는, 모든 진실을 전부 아는 사나이' 라고 할 정도로 그 당시 전역을 완전하게 뒤흔든 것으로 파악된다.
 카스퍼 하우저와 동시간대에 유럽에 '갑자기' 나타났으며 당시 프랑스의 왕인 루이 15세의 애인 퐁파두르 후작부인에게 "부인, 세상 모든 귀부인들의 소망은 불로 묘약"이며 또한 세상 모든 신사들의 소망은 "현자의 돌"이지요. 전자는 즉 영원한 아름다움, 후자는 영원한 부를 의미하는 것 입니다." 라고 하며 자신을 이 두가지 비밀 모두 푼 사람이라고 하여 연금술에 성공했다고 믿게 만들 수 있었다.
 당시 생 제르맹의 자산은 전 지구의 모든 자산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구상의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책을 보아도 그는 세계 각종 언어에 능통하다고 되어있으며 동양의 언어까지 전부 다 기본으로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게다가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 연주실력도 수준급 그 이상이고, 옷의 염색이나 가죽의 무두질을 획기적으로 개발하는 등 완전한 천재다.
 이를 두고 그라프 칼 코벤체르는 "전 생애를 통해서 만나 본 인물 가운데 가장 비범한 사람" 이었다고 평했다.
 그가 생애에 예언하듯 말한 것은 전부 사실이 되어 돌아왔다고 한다.

 잘난척하듯 말하던 캐스터는 이야기를 끝이라는듯 이렇게 말했다.

 "뭐, 사실 이제와서야 말하는 겁니다만 사람들 앞에 처음 모습을 보였을 때는 이미 근원의 끝자락에 연결되었던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전부 듣고나서 오리에가 입을 열었다.

 "근원에 닿아놓고 잘도 미치지 않았네? 아니, 인간으로써 살아있었다는게 신기할 정도"

 근원의 소용돌이.
 그것에 닿은 사람의 혼은 그 즉시 시작으로 돌아가거나 근원에 거두어지는 법인데, 이 마술사는 그것에 닿고도 현실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오호호호, 저야 천재니까요. 뭐, 진실을 말하자면 근원의 끝자락 그 바로 옆까지만 도달한 느낌이지만요. 그 때문에 세상이 보이기만 할 뿐, 그 속내용까지는 알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아, 그래? 근데 그러면 당신, 뭐 때문에 성배를 구하는거야? 그러고보면 듣지도 못했네"

 지금 막 생각났다는 듯 캐스터의 소원을 묻는 오리에.
 소환한지 5일째라고 하는데 이제와서 소원을 묻다니 너무한거 아닌가, 하며 캐스터가 입을 열었다.

 "뭐, 근원 같은건 솔직히 어찌돼든 좋습니다. 제가 원하는건 인류의 멸종을 지켜보는 것"

 "인류의 멸종? 뭐야, 당신. 사람 싫어해?"

 인류의 멸종을 바라는 듯한 캐스터의 말에 오리에가 묻자 캐스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뇨아뇨, 그게 아닙니다. 인류의 번영과 쇠퇴 그리고 그 끝을 지켜보고 싶었다, 라는 것입니다. 인류란건 꽤 흥미로우니까요"

 오리에가, 스토커냐, 라고 하며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으나 캐스터는 못 들은 척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결론을 말하자면 성배에 바라는건 수육입니다. 신체를 손에 넣어 인류의 번영과 쇠퇴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습니다"

 캐스터의 말에 오리에는, 결국 스토커잖아, 라고 말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스토커씨, 내 미래가 어떻길래, 이 현명한 작전을 제지하는거야?"

 오리에의 말에 캐스터가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스토커가 아닙니다! 연구입니다! 뭐 어쨌든, 말해도 괜찮겠죠. 본래 당신은 이틀 전 밤에 죽었어야 했어요"

 "뭐라고? 내가 죽어?"

 "네. 그저께 밤, 당신이 성배의 그릇을 데리러 갔을 때, 그곳에서 카라코우지 오리에는 어쌔신에게 죽을 운명이었죠"

 이틀 전, 리노는 버서커의 마스터를 구하러 간다는 명분으로 거리를 나섰었고, 아무런 위험 없이 버서커의 마스터의 곁에 도달했었다.
 그 때를 생각하는지 오리에의 표정은 좋지않았다.

 "그런데 왜 안 죽은거야?"

 "오호호호, 감사하도록 하세요, 미스 카라코우지. 제가 어쌔신의 마스터와 거래를 한 덕분에 살아난거니까요"

 그 근처에 있던 어쌔신의 보고를 받은 신부가 어쌔신에게 감시만을 명령했기에 현재 오리에는 살아있는 것이었다.
 이를 말하며 생색내는 캐스터를 오리에가 째려보며 말했다.

 "그럼 뭐야. 당신, 그 전부터 신부의 정체를 알고있었단거네?"

 "아-"

 캐스터가 실수했다는 듯 입을 막았지만 이미 나온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
 결국 오리에한테 욕을 얻어먹었다.

 "다시 이야기를 되돌려서 지금 내 미래는 어때? 뭐, 제지하는걸 보면 대충은 알겠지만"

 캐스터에게 자신의 미래에 대해 묻는 오리에.
 이에 캐스터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어쌔신과 제휴한 다음부터 당신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자는 변함이 없습니다, 미스 카라코우지"

 아, 역시? 라고 묻는 오리에에게 캐스터가 말했다.

 "네, 어쌔신의 마스터, 코토미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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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Caster
마스터        카라코우지 오리에 空小路織衣
진명        생 제르맹 Saint Germain
성별        남성
신장/체중    180cm/72kg
성향        중립 중용
스테이터스    근력 E 내구 E 민첩 D 마력 A+ 행운 A 보구 A++
클래스별 능력    진지작성 A / 도구작성 A++

보유 스킬
황금률 A / 예술심미 A
미래예지 C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캐스터의 경우 보구에 의해 가까운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보구

현자의 돌 / The philosopher's stone A+ 대인보구
마법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방대한 마력이 응축된 돌.
사용할수록 돌 내부의 마력이 줄어든다.
재료만 있으면 다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지구상의 모든 현상을 받아들이는 뇌 / Akashic Records A++ 대인보구
뇌가 근원의 끄트머리에 닿아 현재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받아들여,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지하는 것 또한 가능하게 되나 미래예지의 경우 확실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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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스터의 말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아처에게 둘을 맡기는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면 결국 신부는 내가 있는 곳까지 올테지.
 결국은 같은 일.
 그렇다면 오히려 먼저 공격에 나서는 편이 낫겠지.
 그러한 생각으로 호텔 1층의 로비까지 내려간다.
 사람은 없다.
 미리 캐스터가 전부 잠재워두고, 밖에서 들어오지 않도록 사람을 물리는 마술도 사용해둔 상황.
 캐스터에게는 신부와 어쌔신의 위치를 전달하라고 해두었고, 만약을 위해 현자의 돌을 쪼개 아처의 령주가 깃든 것을 캐스터에게 주었다.
 싸우는 도중에 전부 소모해 아처가 소멸해서야 이기는 의미가 없다.
 여기서 어쌔신과 신부를 쓰러뜨리고 최종의 목표는 라이더와 세이버인데---

 '아처가 어쌔신과 조우했어요, 미스 카라코우지. 그리고 신부도 잠시 후 도착합니다'

 아무래도 나중의 일은 후에 생각하는게 낫겠지.
 자, 그럼, 교회의 감독이 무슨 자신감으로 집행자인 나에게 일대일로 도전해오는지 확인해볼까.


 ◇


 눈 덮인 옥상, 붉은색의 활을 든 아처가 층수가 조금 적은 건너편 건물의 옥상에 무언가를 포착했다.
 새하얀 모자와 옷, 게다가 얼굴을 가린 가면까지 백색이었다.
 눈이 내린 지형에서 웬만해서 그 모습을 포착하는 자는 없겠지.
 그러나 아처는 어쌔신의 위치를 간단하게 포착했다.

 '어쌔신의 위치는 파악했습니까? 아처'

 뒤늦게 들려오는 캐스터의 목소리.

 '아아, 파악했습니다. 쓰러뜨리면 되는겁니까?'

 현재 그의 머리속에서 자신의 마스터는 현자의 돌을 지닌 캐스터인 모양인지, 캐스터에게 물어보았다.
 그 물음에 캐스터가 수긍하자, 아처는 끈이 달린 하얀 화살을 붉은 활에 걸었다.


 ◇


 아처가 어쌔신을 파악한 것과 같이, 어쌔신 또한 아처를 파악하고 멈추어 섰다.
 본래라면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기척을 차단한 채로 다가가는 것이 어쌔신의 임무일터지만 이번엔 다르다.
 아처가 자신의 마스터에게로 돌아가지 않도록 정면에서 막는 것이 자신의 임무.
 그렇기에 아처의 시야에 들어오는 장소에서 실체화하여 아처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아처와 싸우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
 저번에는 버서커의 마스터의 조력이 주임무였기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에도 시간을 끄는 역할이니 최선이라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목표가 아처인 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아무래도 하늘은 어쌔신의 편인 듯, 새하얀 눈이 지상을 뒤덮어간다.
 아처를 바라보며 손에 든 M21의 방아쇠를 당긴다.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한 소음기는 그 역할을 다하여 아무런 소리 없이 총탄이 나아간다.
 그것을 본 아처는 손에 잡고 있던 활시위를 놓았다.
 날아오는 화살은 정확히 총탄을 맞추어 쪼개고 그 기세를 잃지않고 어쌔신에게로 날아온다.
 그것을 피하고 총을 다시 아처에게로 향하려는데,
 쾅-.
 어쌔신은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아처의 화살이 날아가 박힌 곳은 마치 소형의 운석이라도 떨어진듯 크레이터가 생겨나있었다.
 어쌔신은 아무래도 이전보다 그 위력이 상당해졌다고 판단하고, 저걸 스치기라도 했다간 임무는 고사하고 살아남지도 못하겠다고 생각하며, 손에 들었던 M21을 Suomi K31 두 정으로 교체한다.
 아무래도 한발한발의 세기에선 밀릴 것을 알고 물량으로 버틸 생각이겠지.
 아처를 바라보자 어느새 그 손에는 다섯개의 화살을 들고 있었다.
 아까의 화살이 다섯발,

 '이건 생전에 소련의 저격부대는 위기도 아니었군'

 하며 어쌔신은 쓴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아처는 그 활시위를 손에서 놓아, 다섯발의 화살이 어쌔신을 노리고 날아온다.
 첫번째의 화살의 위력을 보고 놀란 것은 어쌔신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화살이 엄청난 폭음을 내는 것을 본 아처 또한 사실은 놀라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현자의 돌의 백업을 받고나서는 첫 싸움.
 자신도 정확한 위력은 몰랐던 것이다.
 소환된 이후로 한번도 웃지않았던 아처가 뭐가 그리 웃겼는지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아처는 확신하며 활시위를 당겼다.
 이번의 마스터는 분명히 자신에게 성배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


 같은 시각 호텔의 로비에 신부가 들어선다.
 그 순간 위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마력의 탄환.
 현자의 돌에 의해 그 하나하나가 A급 보구의 통상공격에 필적한다.
 그러나 신부는 예상한 듯 그것을 전부 피해내고 서서, 정면에 서있는 오리에와 대치한다.

 "환영 인사가 지나치군, 캐스터의 마스터"

 옷을 털며 말하는 신부의 말에 오리에가 대답한다.

 "어라, 그래요? 여기에 들어올 정도면 이 정도는 가벼운거 아닌가요?"

 비록 현대의 마술사인 캐스터의 결계라고는 해도 입장이 거절된 자가 그 안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마술사로써 꽤 뛰어나다는 증거.

 "흠, 너무 추켜세워주지마라. 생각하는 만큼 뛰어난 자도 아니니"

 "네, 그러도록 하죠. 그래서 용건은 뭐죠?"

 "거래를 하도록 하지. 령주를 양도하지 않겠나, 캐스터의 마스터여. 그 대신 목숨은 살려주겠다"

 대놓고 말하는 신부의 말에 오리에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되겠네요. 령주를 양도하지 않아도 살아있을테니 거래가 아니죠, 그건"

 "그런가, 그럼 잠시 후 재차 묻도록 하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부는 땅을 박찬다.
 상호간의 거리는 10m를 넘고 있었으나 그것을 가볍게 돌파한다.

 '빠르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는 것을 느껴 오리에는 뒤로 빠지며 마탄을 쏘아낸다.
 그러나 그것을 피하면서 거리를 좁히는 신부.
 오리에는 그 모습을 보고 안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일본도를 손에 든다.
 거리는 좁혀져 검이 닿는 거리, 그 거리에서 오리에의 검이 신부의 가슴을 노리고 들어가--
 챙-.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어느새 신부의 손에 들려있는 흑건이 들려있었다.

 "뭐야, 대행자?!"

 오리에가 놀라 뒤로 빠지는 순간, 신부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흑건이 날아가 오리에의 배를 꿰뚫는다.

 "컥"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새어나간다.
 배에 꽂힌 흑건을 빼낸다.
 찔릴 때보다도 더한 고통.
 그것을 참아내며 빼낸 흑건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상처를 마술로 치료한다.
 상처는 순식간에 마치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사라진다.

 "호오, 그게 현자의 돌의 힘인가. 대단하군. 그 정도의 상처를 한 순간에 치료해내다니"

 놀랐다는 듯 말하는 신부를 바라보며 오리에가 입을 연다.

 "놀란건 이쪽이에요. 성배전쟁의 감독이 대행자라니 생각치도 않았으니까"

 "이상한 이야기로군. 감독이란건 본래 마스터들의 난동을 막기 위한 것도 있지"

 그렇기에 강한 것은 당연하다, 라고 말하는 본래 감독역이었던 신부의 말에 오리에는 끄덕이며 말한다.

 "네, 물론 그건 알고 있지만, 전례가 전례이다보니 이런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설마 전례를 되풀이하다니 성당교회도 꽤나 멍청한 사람들 뿐인가 보군요"

 교회를 매도하는 오리에의 말에 신부는 쿡쿡 웃는다.
 그리고는 이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라는 듯 화제를 전환한다.

 "그래서 아까의 거래는 할 생각이 들었나? 캐스터의 마스터.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

 "헤에, 마치 지금은 제 목숨이 당신의 손에 있다는 듯 말하시는군요"

 신부의 물음에 오리에가 대답한다.
 그에 신부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어쌔신이 탈락한다, 생각하며 양손에 흑건의 자루를 잡아들고 말한다.

 "거절하는가, 그렇다면 그 심장 가져가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건이 던져지고 동시에 신부의 몸이 튀어나간다.


 ◇


 사실 대행자와의 싸움은 자주 있었다.
 봉인지정 된 마술사를 잡으러 가면 만나는 교회의 수도복을 입은 자들.
 몇번이나 그들을 죽이거나 패배시키고 봉인지정을 시계탑에 인수해왔다.
 그러니 아까는 대행자임을 몰랐기에 방심했을 뿐, 더 이상 밀릴 이유는 없다.
 날아오는 흑건을 검으로 쳐내면서 살짝 뒤로 빠진다.
 어느새 다가온 신부의 오른손에 들린 흑건도 쳐내고 도리어 그 심장을 노리고 칼을 휘두른다.
 그러나 그것을 신부는 몸을 돌려 피해 아무런 피해없이 그 상태로 흑건을 내지른다.
 물론 그것이 일반적인 일본도였다면, 의 이야기.
 심장을 노려 휘둘러진 일본도는 신부가 몸을 돌린 순간 빛을 발한다.

 "뭣?!"

 쾅-.
 그리고 그대로 폭발을 일으킨다.
 검이 폭발하는 순간 신부가 뒤로 뛴 듯 거리는 다시 벌어졌다.
 근접한 거리.
 일반적으로 그 거리에서 폭발을 일으키다니 비정상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겠지.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폭발에 의해 너덜너덜해진 신부복을 입은 상대가 입을 연다.

 "그 거리에서 폭발이라니 생각치도 못했군. 현자의 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인가"

 신부는 아무런 상처가 없어보였다.
 그 상황에서 아무런 상처가 없다니.
 지금까지의 대행자와는 무언가가 다르다.
 그게 무엇인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뭐, 그런거긴 한데, 생각치 못한거 치곤 반응속도가 대단하잖아, 당신. 전혀 상처도 없어보이고"

 "흥, 고작 10년 된 애송이한테 져서야 대략 30년의 세월이 아깝다"

 현자의 돌이 없었다면 동시에 세개 이상의 마술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자의 돌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줄어가는게 단점이기에 빨리 쓰러뜨리지 않으면 당하는건 이쪽이다.
 최대한 마술은 아끼는 수 밖에는 없는데, 아무래도 눈치 챈 듯 하다.

 "아처가 어쌔신을 쓰러뜨리는 동안 버틸 생각인가 보군. 역시 첫 일격으로 목숨을 끊었어야 했나. 뭐, 좋다. 버틸 수 있다면 버텨봐라"

 여태까지 마술행사의 한조각도 느껴지지 않았던 그의 몸에 마력이 흐르는게 느껴진다.
 령주를 사용했는지 그 양이 심상치 않다.
 이거야 원, 아무래도 장난은 끝난 듯 하다.
 원래부터 꽤나 상대를 압도하는 분위기를 자아내던 신부였지만 그 분위기는 더욱 더 날카로워져 쳐다보는 것도 버거울 정도.
 압도적으로 강해보이는 눈 앞의 적은 첫발을 내딛었다.


 ◇


 끝이 없다.
 수없이 많은 탄환을 쏘아냈지만 그것을 전부 막아낸다.
 처음엔 피하려던 아처는 탄환이 자신의 심장을 노리고 움직이는 것을 느꼈는지 그 이후로는 자리에서 발을 떼지 않고 오로지 화살만을 쏘아내고 있다.
 화살이 지면에 박힐 때마다 크레이터가 생기고 쌓여있던 눈들이 튀어오른다.
 그 눈이 아처가 어쌔신의 모습을 파악하는데 방해가 되어 지금까지 어쌔신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눈이 쌓이지 않은 날이었다면, 분명 어쌔신은 이미 영령의 좌로 돌아가있었겠지.
 아처의 운이 없는건지 어쌔신의 운이 좋은건지, 아니, 분명 아무래도 둘 다 겠지만 불운과 행운의 교차로 지금 이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어쌔신은 계속해서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모습을 감추며 탄환을 쏘아낸다.
 그것을 하나하나 화살을 쏘아 떨어뜨리는 도중, 머리 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아처. 보구를 사용하세요'

 긴박한 캐스터의 목소리.
 아무래도 그의 마스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듯 하지만,

 '아직입니다. 구름 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태양이 지지 않았습니다'

 태양이 지상을 비추고 있다.
 구름에 가려 지상에 햇볕이 들지 않는다고 할 지라도 태양이 떠있는 동안은 보구의 발동이 불가능하다.
 규격 외의 보구를 가졌음에도 제한조건이 있기에 지금은 도움이 되질 않는 것이다.

 '읏, 그런가요. 그렇다면 태양이 지는 순간 보구를 발동해주세요, 아처. 그리고 제가 있는 곳으로 와주시면 됩니다'

 빠르게 말하는 캐스터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다급해서 평소의 차분했던 모습이 상상이 되질 않는다.
 어쨌든 그의 말에 수긍하고 어쌔신에게 공격을 퍼붓는다.


 ◇


 나는 지금 호텔의 최상층의 어느 방 의자에 앉아있다.
 나의 마스터는 1층에서, 아처는 옥상에서 싸우고 있는데, 내가 하는 것이라고는 지켜보는 것 뿐이다.
 생전에도 싸우는 곳에는 나서지 않고 언제나 공방에 박혀서 연구만을 해왔다.
 물론 그것으로 인해 무기는 강해지고 그 국가는 전쟁에서는 승리를 쟁취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다.
 해준거라곤 고작 소환될 때부터 지니고 있던 현자의 돌과 신체의 강화 뿐.
 아무리 현재의 모든 상황이 머리 속에 들어온다고 해도 지금은 쓸모가 없다.
 소유한 보구 중 제일 높은 랭크의 보구라고 하는데 정작 전장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것은 꽤나 한심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나, 이게 나라는 사람이니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나는 여기서 단지 자신의 예지가 틀리기를 기도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선 뭐, 어떻게든 되겠죠, 라는 말마저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미래가 보여버린다.
 게다가 아무래도 이미 늦은 모양이다.


 ◇


 어느새 둘의 싸움은 끝이 나있었다.
 피범벅이 된 오리에는 벽에 등을 기대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상처라고 부르기도 힘든 치명상.
 흑건이 배를 뚫어 벽에 박혀있으며, 왼쪽 어깨는 반쯤 잘려나가 팔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고, 오른쪽 발목의 밑으로는 어디로 갔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오리에의 앞에 서있는 백발의 신부의 모습은 상처하나 없었다.

 "자 그럼, 령주는 받아가도록 하지"

 신부는 오리에의 앞에 주저앉더니 그녀의 왼팔에 자신의 오른손을 데려고 팔을 뻗어---
 스윽-
 오른팔을 베이면서 순간적으로 뒤로 뛰었다.
 그리고 자신이 있었던 오리에의 앞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나타났다.

 "아쉽군요.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했던 당신이라면 방금걸로 죽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상처 하나라니"

 "흥, 캐스터인가. 너의 힘으로 날 이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나, 현대의 마술사인 네 놈이"

 신부의 말에 캐스터는 크게 웃었다.
 뭐가 그리도 웃긴 것일까, 웃어대던 캐스터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도망가는게 좋을거에요, 신부씨. 이미 낮은 끝났으니까"

 캐스터의 말을 신부는 이해하지 못했다.
 허나, 그 순간 거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머리속에서 어쌔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처가 보구를 사용했습니다. 이걸 빠져나가는건 불가능합니다. 부디, 대피하시길'

 불가능을 확신하는 어쌔신의 말.
 이에 신부는 표정하나 일그러뜨리지 않은채로 전했다.

 '알겠다. 나는 지금부터 전장으로부터 이탈하겠다. 그대도 가능하다면 빠져나오도록'

 신부는 어쌔신이 수긍하는 것을 듣고 눈 앞에 있는 캐스터를 두고 등을 돌려 빠르게 호텔을 빠져나갔다.
 그런 신부를 쫓을 생각은 없는지 캐스터는 뒤돌아 오리에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