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도우사로 오르는 계단 앞, 누군가가 서있었다.
 은발의 긴 머리카락, 멀리서 본 것만으로 그녀가 누군지는 명백하다.

 "레이야!"

 나도 모르게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달리는 걸음을 멈추지도 않은채 소리를 내뱉는다.
 이쪽을 돌아보는 그녀.
 그런 그녀를 달리던 속도 그대로 껴안는다.
 당연히 레이야는 그런 나의 속도를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어지려하는 것을 내 다리로 버틴다.

 "무슨 일인가요? 오리에"

 묻는 것은 내가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껴안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일까.
 그러나 그런 것은 어찌됐든 좋다.
 그저 잠시라도 이렇게 있고 싶어.
 나의 마음이라도 읽은 것일까, 그렇지 않겠지만, 그녀는 그대로 가만히 있어준다.
 얼마쯤 지났을까, 레이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일인가요? 오리에"

 못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번 물어오는 레이야의 말에 자신의 몸을 그녀에게서 떼내어 그녀를 바라본다.
 자, 어떻게 말해야할까.
 몇번을 생각해봐도 정답은 없겠지, 게다가 돌려말하는 것은 질색이다.

 "레이야, 나와 같이 런던으로 가지 않을래?"

 성배전쟁의 도중이라고 하는데, 무엇을 묻는 것인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거절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내가 시계탑을 뒤로 하면 될 뿐인 이야기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 물어본 말에 레이야가 대답한다.
 대답은 당연히---

 "네, 좋아요. 오리에"

 "에?"

 생각치도 못한 대답에 얼빠진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실책.
 아니, 그보다 지금 뭐라고 한거지.
 나의 얼빠진 반응에 못 들었다고 생각한걸까, 레이야는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같이 가도록 해요, 오리에"

 똑바르게 말하는 레이야의 말에 기쁜 나머지, 패닉.
 방방 뛸거 같은 몸과 날아갈 듯한 정신을 겨우 추스린다.

 "괘..괙, 괜찮겠어?"

 씹었다.
 어째서 긴장하면 이리도 발음이 망가지는걸까.
 부끄럽다.
 어쨌든 재차 물어본 나의 말에 레이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 전쟁이 끝나면 저도 갈 곳이 없으니까요"

 전쟁이 끝나면?
 어라, 그 후엔 성배로 기능하고 작동을 멈춰지는게 아니었나, 하는 나의 의문에 그녀는 대답해준다.

 "성배로서 기능을 다해도 마술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움직일 수는 있어요. 6명의 서번트분의 마력량을 제외하고는 남으니까요"

 분명히 성배로 작동하는데 필요한 마력량은 승자를 제외한 여섯 서번트의 분, 원래 자기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력량은 남게되는 것이다.
 아, 그랬구나, 간단한 이야기였어, 하고 생각하는 도중 레이야가 말을 잇는다.

 "아니면 마술을 못 쓰는 저는 필요없나요?"

 분명 무표정이지만 그렇게 물어오는 레이야가 너무나도 귀엽게 생각되어 다시 확하고 껴안고, 고개를 젓는다.

 "으응, 필요해, 무척. 모든게 끝나면 같이 가자, 레이야"

 "아, 그래? 이쪽은 레즈였나. 이거야 원, 성배의 내용물이 아닌 몸을 원하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좋은 분위기를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혀 몰랐다.
 언제부터 있었던거지.
 안고 있던 레이야를 품에서 해방하고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본다.
 아니, 째려보았다.

 "아, 오해는 하지말라고, 옅보기가 아니니까. 우리는 그저 대공동에 초대되었을 뿐이니까 말야"

 거기엔 라이더와 그녀의 마스터가 있었다.
 레이야의 안내를 받아 대공동에 들어선다.
 길고 긴 동굴의 외길을 따라 들어가다보니 넓은 지하공간이 펼쳐졌다.
 위에는 마치 구름이라도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높은 천장.
 시선을 위에서 조금 아래로 내리자 그곳에는 경사진 급한 높은 언덕이 있었다.

 "저 위가 대성배가 있는 장소에요, 오리에"

 레이야의 말에 따라 경사진 언덕을 오른다.
 거의 다 오르자 보이는 그림자가 둘.

 "어라? 뭐야. 어째서 라이더조가 아니고 성배랑 당신이야?"

 그가 세이버의 마스터가 되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글쎄, 그보다 한가지 말할게 있는데"

 밑도 끝도 없이 건네는 말에 잠시 멍하게 있던 그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비켜주지 않을래요?"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달려들어 순식간에 빼낸 칼등으로 그의 배를 쳐 날려버린다.
 아무래도 뼈나 장기의 손상이 예상되지만 그 정도는 마술로 어떻게 되겠지.
 그걸 보기도 전에 세이버는 뭔가를 느꼈는지 마력을 방출해 순식간에 나와 거리를 좁혔지만, 공중을 나는 검들에 의해 진로가 막히고 나는 그 틈을 타서 레이야와 함께 그 자리에서 떨어진다.
 그리곤 쓰러져 있는 세이버의 마스터를 집어들고 세이버의 범위에서 벗어난다.


 ◇


 "하! 무슨 생각이냐? 라이더"

 세이버가 오리에를 죽이려는 것을 막은 라이더의 검을 쳐내고 공중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라이더의 수레가 떠있었다.

 "무슨 생각이냐니? 그대의 마스터가 있으면 걸리적거리니까 떨어뜨렸을 뿐이다"

 세이버는 신이치가 걱정되었지만 라이더의 마스터가 신이치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물었다.

 "죽이지도 못할 녀석을 뭐하러 데려갔지?"

 "호오, 잘 알고 있구나, 세이버여. 뭐, 이유는 하나다. 싸움에 휩쓸려 죽어서야 의미가 없고, 령주를 발동하면 이쪽이 질게 뻔하니까 말이지"

 라이더는 그렇게 말하더니 켄묘렌을 빼내었다.

 "자, 시간을 끌 이유는 없지. 여기서 사라져라, 세이버. 문수보살의 지혜가 담긴 검으로 신과 통하고 연애감정을 폭파시켜 천귀의 비를 뿌린다[文殊智劍大神通 恋愛発破 天鬼雨]!"

 공중에서 분열한 수천, 수만개의 켄묘렌이 세이버를 향해 떨어진다.

 "칫, 소모전으로 가겠다는 것인가"

 세이버는 계속해서 쏟아져내리는 검의 비를 일일히 쳐낸다.

 "흐음, 역시 무리로구나. 뭐, 어차피 그대가 말한대로 소모전에 지나지 않으니까 문제는 없지"

 단 한번의 마력을 불어넣음으로써 발동하는 켄묘렌은 그 마력량에 의해 수가 변한다.
 이번엔 그것을 사용하는데 로우의 령주가 하나 사용되어 그 수는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수천개의 칼날이 떨어진 지금에도 아직 라이더의 근처에 떠있는 칼날은 끝이 없었다.
 비록 잠시뿐이나마 괴물이었던 버서커를 멈춰세웠던 칼날의 비를, 심장을 제외하곤 몸 전체의 마력이 저주 받아 침식당한 세이버가 막아내고 있었다.
 검의 영령은 그야말로 검에 있어서, 아니, 모든 서번트 중 자신이 최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모든 방향에서 떨어지는 칼날에 단 한번도 스치지 않은 채 막아내고 있었다.

 '흠, 이래선 진짜 보구의 사용 없이 전부 막아내겠구나, 로우'

 자신의 보구를 막아내는 세이버를 보며 지금의 상황을 멀리 떨어진 곳에 신이치와 함께 있는 로우에게 전했다.
 이에 로우가 고민하고 있자 라이더가 말을 이었다.

 '광륜거를 사용하겠어, 로우'

 '뭐? 그건 안돼. 발뭉을 견대낼리가 없어'

 '하지만 방법이 없다, 로우'

 '칫, 그럼 켄묘렌이 전부 끝나기 직전에 발동해'

 로우의 말에 수긍한 라이더는 어느새 끝나는 켄묘렌의 수를 보고 세이버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상처따위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대단하다고 느꼈으나 그럴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마력을 수레에 몰아넣는다.
 남은 켄묘렌의 수는 약 100.
 그것들이 거의 동시에 떨어지는 순간, 수레의 진명을 입에 담는다.

 "하늘을 달려나가는 빛나는 구[光連車]!"

 켄묘렌을 쳐내다가 이를 본 세이버가 그것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뒤에서 떨어지는 칼날을 무시하고 검을 쳐들었다.

 "차올라라! 환상대검 천마실추[Balmung]!!!"

 수십개의 켄묘렌이 세이버의 등을 꿰뚫지만 그것을 상관하지도 않고 검을 휘두른다.
 천상에서 지상을 향해 추락하는 황금의 빛과 지상에서 천상을 향해 승천하는 황혼의 빛이 지상에서 조금 떨어진 천상에서 자신의 위력을 과시한다!


 ◇


 라이더의 보고를 받은 로우는 아무래도 걱정이 된 것일까, 신이치를 오리에에게 맡기고 자리를 떠났다.
 남은 자는 오리에와 레이야, 그리고 아직 쓰러져있는 신이치 뿐이었다.
 그곳에 향하는 그림자가 하나.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로우가 자리를 떠나자마자 그는 그들에게로 향했다.
 그의 기척을 눈치채고 오리에가 그쪽을 쳐다보자 거기에 서있는 것은 신부였다.

 "겍,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있는거야?"

 오리에가 놀라서 묻자, 신부는 오리에의 옆에 서있는 레이야스필을 보며 말했다.

 "성배를 얻으러 온게 당연하지 않은가"

 "칫, 대체 뭘 원하길래, 서번트도 없는 몸으로 여기까지 오는거야"

 오리에가 불평하듯이 말하자 신부가 대답했다.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캐스터의 마스터여"

 "응? 아, 나는 틀려. 원하는건 없는데?"

 오리에의 말에 신부는 그랬군, 마술협회의 소속이었지, 라고 하고는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그럼, 한가지만 묻겠다. 너는 마술협회가 시키는대로 하면서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는가?"

 신부의 말에 오리에는,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라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철학? 나 별로 그런데 관심 없는데"

 아무래도 생각만으론 부족했는지 입으로 뱉어낸 말에 신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 움직이는 것만으로 자신이 살아있다고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흠, 역시 인간에게는 무리한 이야기였나"

 "뭐야, 마치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는 듯 말하잖아"

 "음? 거기 있는 레이야스필에게 듣지 못했는가? 그렇지않더라도 캐스터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모양이군"

 신부의 말에 답하듯 오리에의 옆에서 레이야스필이 입을 열었다.

 "오리에, 그는 호문클루스에요, 아인츠베른의"

 뭣?! 하고 놀라는 오리에를 무시하고 신부가 말을 뭐가 즐거운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재차 소개하도록 하지. 이번 성배전쟁의 감독역인 하이드리히 폰 아인츠베른[Heydrich von Einzbern]이다."

 그의 자기소개에 오리에가 놀란듯 말했다.

 "뭐야, 그럼 아인츠베른의 마스터가 둘이란거야? 그보다 호문클루스가 자기자신의 의지로 성배를 원한다고? 말도 안돼"

 "아아, 말도 안되지. 단순한 인형이 성배를 원해 성배에 선택 받을 리가 없지"

 "그럼? 그쪽의 주인이 성배를 가지라고 명령이라도 했다는거야?"

 오리에는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해보았으나, 그럴 리는 없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아인츠베른이 호문클루스 5기를 준비해 후유키시에 보내면 토오사카와 마토우를 제외하곤 전부 아인츠베른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니.
 오리에의 말에 하이드리히는 당연히 고개를 저었다.

 "그저 나 자신이 단순한 인형이 아닐 뿐이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만들어진 순간부터 목적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지. 레이야스필이 성배전쟁에서 이기도록 감독으로써 도와라, 라고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러나 약 10년 성당교회에서 대행자로 있는 동안에 그 목적은 어긋나게 되었지"

 하이드리히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은 자신이 성배를 구하게 된 원인이 되는 이야기였다.
 아인츠베른 성에서 기본적인 것을 배운지 10년, 그리고 성당교회에 입적해 대행자로 사용된지 약 10년, 그 도중에 만난 한명의 이단자가 말했다.
 교회에 구속되어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네 녀석들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물론 그 말을 한 뒤, 그 자는 하이드리히의 손에 의해 죽었지만, 그 말만은 하이드리히의 가슴 깊숙한 곳에 박히고 말았다.
 만들어진 이래로 자신의 의지란 것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새삼 생각해 본 하이드리히는 약 20년 동안 그저 시키는대로 움직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자신은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다는 것인가.
 그 의문에 묻고 또 물었다.
 이단자를 죽이기 전에 묻는다.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답은 거의 동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는 것.
 묻기를 약 5년, 그 사이 천 명이 넘는 자에게 물어왔다.
 그럼에도 답을 찾지 못하고 성당교회의 대행자들에게 묻는다.
 그들 또한 대답은 동일했다.
 주를 믿는 것 자체가 사는 것이라 말한다.
 자신은 신을 믿어서 소속하게 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성배전쟁의 감독역으로 뽑히게 되기 위한 중간과정, 그렇기에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교회의 안에서 소속이 아닌 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단자면서도 성당교회에서 용인하는 그라면 무엇인가 알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말을 건넨다.
 다짜고짜 묻는 말,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물음에 그 자는 처음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글쎄,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거 아닐까?'

 목표.
 자신에게는 분명 목표란 것은 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것이다.
 그것을 말하자 그가 웃으며 말한다.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자신만의 목표란 걸 찾으면 되잖아?'

 자신만의 목표?
 그걸로 그 자의 말대로 찾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했지.
 그러나 역시 거기엔 나의 의지는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 또한 그 자가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지.
 그렇게 약 30년, 그렇다면 더 이상은 무의미하지 않은가, 더 이상 해봤자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 끝에 기적을 바라기로 했다.

 "성배라면 분명 나의 존재의 이유를 알려줄 터"

 신부가 길고 길었던 이야기를 끝내자 오리에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다.
 얼토당토 않는 이유였다.
 살아가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적을 바라는 자는 수도 없이 많다.
 당장 이번의 세이버와 라이더만 해도 두번째의 생을 위해 기적을 바랬다.
 그런데 지금 이 신부는 그 목적을 성배에 묻는다고 하는 것이다.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가.

 "어이없어. 자기가 찾아야 할 목적을 찾지 못해 기적을 바란다고? 제 정신이야? 당신"

 "아아, 제 정신이다. 그보다도 성배를 눈 앞에 두고 말이 너무 많았군. 넘겨주지 않는다면 힘을 쓸 뿐이다"

 칫, 하고 혀를 차는 오리에가 검을 손에 든 것과 동시에 하이드리히의 발이 땅을 박차고 거리를 좁혀온다.


 ◇


 황혼의 빛이 황금의 빛을 전부 잠재우고 그 안에 있던 모습을 드러낸다.

 "가자! 광륜거! 속도를 늦추지 마라!"

 빛의 결계가 깨졌음에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자신에게로 내려오는 수레를 세이버의 검이 베어넘긴다.
 오른쪽의 말의 목이 세이버의 검에 의해 떨어져나가는 순간 왼쪽 말의 오른쪽 첫번째 발굽이 세이버의 가슴을 짓밟는다.
 컥, 하는 소리와 동시에 쇼우츠렌과 다이츠렌이 세이버의 목을 베러 달려든다.
 그러나, 팅, 하는 검을 팅겨내는 소리와 거의 동시에 세이버의 검이 말의 다리를 노려 베어내고 순식간에 일어나 말의 목을 날려버린다.
 그 사이에 라이더는 수레에서 빠져나와 거리를 벌린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세이버와 라이더는 대치하고 있었다.
 검에 찔려 등이 상처와 피로 얼룩진 세이버.
 아무런 상처 없이 서 있는 라이더.
 지금의 모습만 보면 분명 라이더 쪽이 이기고 있다고 생각되겠지만, 라이더는 자신의 수레를 잃고 남은 것은 검 세자루 뿐.
 반면에 세이버는 마력의 소비가 크긴 하지만 상처는 시간이 지나거나 치료 마술 한번으로 해결되는 부분이고 보구 또한 아무런 피해가 없다.

 "흠, 끝이로구나"

 라이더의 말에 세이버가 입을 연다.

 "호오, 한번 더 그 분열하는 검을 쓰진 않는건가?"

 "후후, 쓰기전에 그 검으로 나의 목을 벨 것이 아닌가?"

 서로의 거리는 너무나도 가까웠기에 분명 라이더의 말대로 켄묘렌의 주창이 끝나기도 전에 세이버의 검이 라이더의 목을 날려버리겠지.

 "그런가, 그럼 얌전히 죽어라"

 세이버가 라이더에게 달려든다.

 "Fuck!!! 이대로 죽는거냐!"

 누군가의 외침에 라이더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을 때는 이미 세이버가 코 앞까지 온 상황.
 고함소리가 들린 곳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마력덩어리가 날아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세이버의 검은 라이더의 목을 베어낸다.
 스윽,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라이더는 세계에서 사라졌다.

 "라이더의 마스터인가. 그 정도의 마력을 신이치에게 썼으면 사라지는건 내 쪽이었을텐데, 무식하군"

 "Fuck! 닥쳐라, 세이버. 지금이라도 죽일 수 있다만? 너의 마스터의 머리에 바람구멍이라도 내줄까? 아앙?"

 로우의 말에 세이버는 웃는다.
 그 말이 허세라고, 할 수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실제로 이 상황에서 로우가 신이치를 죽일 리는 없었다.

 "뭐, 좋아. 자신의 서번트가 사라진 슬픔에 매도하는 것 정도 이해하마"

 세이버는 로우를 지나쳐 신이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뒤에 남겨진 로우는 그저 라이더가 있었던 장소를 바라볼 뿐이었다.


 ◇


 신이치의 곳에 다다르자 거기엔 캐스터의 마스터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그녀의 앞에 서있는 남자였다.
 은발의 머리칼을 삐죽삐죽하게 세운 그는 신부복을 입고 성해포를 양 어깨를 덮어 허리까지 내려오게 두르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나, 어쌔신의 마스터"

 나의 말에 캐스터의 마스터는 자신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뒤쪽으로 빠진다.
 그녀도 신이치를 지키려고 했는지 아니면 자신이 위협당했을 뿐인지 이미 근처에는 싸운 흔적이 있었다.

 "신이치는 맡기겠다"

 어찌됐든 내가 사라지면 그녀는 신부의 손에 죽을테지, 그렇다면 신이치를 맡겨도 문제 없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서번트가 하나 남은 지금, 그녀가 먼저 성배에 소원을 바라면 모든게 끝나버리겠지만, 그렇다고 눈 앞의 적을 방치한 채 성배를 손에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그녀가 신이치를 데리고 멀어지는 것을 보고 눈 앞의 적을 쳐다보았다.

 "역시 마지막에 남는건 세이버인가, 아쉽군. 그대로 라이더와 동시에 사라졌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래도 날 쓰러뜨릴 녀석이 없었던 모양인지라. 그보다 서번트도 없는 네 녀석이 무슨 일이지?"

 "성배가 필요해서 말이다. 양보할 생각은 없는가?"

 "아아, 나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그런가, 그건 유감이로군"

 말이 끝남과 동시에 먼저 달려드는 신부를 베어넘기는 것으로 끝.
 분명 그렇게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챙,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
 방심했던 탓일까, 세이버의 발뭉을 하이드리히의 오른손이 받아내고 순식간에 왼손에 들린 흑건이 자신의 심장을 노리는 것을 늦게 파악하고 발뭉을 되돌리지만, 이미 때는 늦어 가슴이 꿰뚫린다.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다.
 세이버는 간신히 피해 심장이 찔리는 것은 면했다.

 "호문클루스라 인간이랑 다를 것은 예상했지만, 대단하군"

 세이버는 비록 자신의 몸이 완벽하게 자신의 맘대로 움직이는 않지만 그래도 방금 전 라이더의 칼날의 비를 막아낼 정도인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것에 놀랐다.


 ◇


 언제부터 잠들어있었던건지 눈을 뜨자 그 앞에는 아인츠베른의 마스터와 오리에라는 여자가 보였지만 무언가를 보고 있는지 이 쪽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일단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오리에는 내가 눈을 뜬 것을 눈치챘는지 이쪽을 보고 말을 걸어온다.

 "아, 깨어났어요?"

 "으-, 어디야, 여긴? 아니 그보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어라? 아무것도 기억 안나요?"

 아무래도 어째서 자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분명 그녀가 내 앞까지 온건 기억나는데 그 이후는 전혀 기억이--

 "아"

 생각났다.
 이 여자, 분명 날 죽일 기세로 쳤다.

 "너! 날 죽일 생각이었냐?!!!"

 "아차, 생각난 모양이네요. 아니 뭐, 살아있으니까 됐잖아요?"

 음? 확실히 지금 살아있다.
 어째서 기절해 있는 동안 죽이지 않은거지?
 그 의문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 또 다시 나의 의식은 거기에서 끊켰다.


 ◇


 아무래도 방금 전은 세이버가 방심했기 때문이 아니었던 듯 하다.
 세이버의 상처는 계속해서 늘어만 간다.
 그것은 하이드리히가 령주의 백업으로 자신을 강화한 것, 그리고 세이버가 자신의 보구인 다인슬라이프의 저주에 침식당한 것, 두가지의 원인에 의한 결과였다.
 그러던 중 계속해서 밀려 그저 방어 밖에 하지 못하던 세이버가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다인슬라이프를 꺼내들었다.
 그 순간 세이버는 몸 전체를 덮고 있는 저주가 심장을 파고 드는 것이 느껴졌다.
 주어진 시간은 약 10초 이내가 아닐까.
 그러나 다인슬라이프를 들고 있을 때만은 그 저주에 침식당한 부분이 반대로 더욱 힘을 띄게 된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쓰러뜨리면 될 뿐이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들어오는 세이버의 검을 막은 것만으로 하이드리히의 두 팔이 부러졌다.
 령주에 의한 순간 치료로 부러진 팔을 순식간에 회복하지만 뒤에 들어오는 세이버의 검에 가슴이 뚫렸다.
 약 3초가 되지 않은 시간에 하이드리히는 그 심장을 뚫리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세이버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이번의 다인슬라이프로 세번째.
 과거의 전설이 지금 현실이 되었다.
 10초가 되지 않는 시간에 다인슬라이프를 손에서 놓았지만 심장을 파고드는 저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칫, 저주를 피할 수는 없다는건가. 뭐, 적어도 신이치에게 위협이 될 놈은 죽였으니까 걱정없겠지"

 자신이 사라질 것을 알고서도 자신의 마스터인 신이치를 위협하는 것을 제거하고, 결국 세이버는 온 몸이 저주에 먹혀 그 자리에서 검은 안개가 되어 모습을 감추었다.


 ◇


 신이치와 이야기를 나누던 오리에는 놀랐다.
 갑자기 신이치가 쓰러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의 심장의 부근에는 옷의 위로도 퍼져나온 기분 나쁜 검은색의 마력덩어리, 저주였다.
 오리에가 급하게 신이치의 신체를 확인했으나, 그것은 죽음에 가까운 저주였다.
 이런 저주를 발생할 원인은 단 하나.
 오리에는 급히 일어나 싸우고 있는 세이버를 바라보았다.
 세이버가 들고 있는 검붉은 검, 다인슬라이프.
 그녀가 본 것이 이번으로 세번째.
 버서커를 없애는데 한번, 아처의 보구를 막는데 한번,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전설에 의하면 세번째 뽑아들었을 때 그 저주는 주인을 집어삼킨다고 한다.
 결국 눈 앞의 하이드리히를 찌른 세이버는 그 모습을 이 세계에서 감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옆에서 엄청난 마력이 느껴져 바라보자, 온 몸에 세겨진 레이야스필의 마술회로가 신체의 밖으로 드러나있었다.
 모든 서번트, 마지막으로 남았던 세이버까지 소멸되면서 일곱서번트의 마력이 모두 소성배인 레이야스필에게로 모여들었다.
 성배전쟁의 본래의 목적인 근원의 소용돌이.
 그것이 이곳 후유키시에서 발생한 것이다.
 분명 수십분 이내에 성당교회와 마술협회에서 이 사실을 포착하고 달려들겠지.
 그러나 여기에 남은 마술사들은 근원에 관심 따위 없었다.
 오히려 근원이 연결되면서 레이야스필의 인격이 사라진 것에 걱정하는 카라코우지 오리에.
 더 이상 성배에 관심이 없는지, 아니면 신이치가 걱정인건지 뒤늦게 신이치에게 달려가는 아사가미 로우.
 그리고 또 한명, 근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존재의의를 알기 위한 호문클루스, 하이드리히 폰 아인츠베른.
 심장을 뚫려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무래도 심장을 약간 비껴간 모양이지만, 마술사 하나 처리하는데는 문제가 없겠지.
 레이야스필과 오리에를 향해 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눈치채지 못한 오리에는 그쪽은 신경도 쓰지 않은채 무심코 레이야스필의 몸에 손을 가져가고, 그것을 막기위해 하이드리히가 달리는 도중 손에 든 흑건을 던지려 팔을 휘두르고---
 멈췄다.
 하이드리히는 달리던 속도 그대로 땅에 처박힌다.
 그러고는 일어나지 못하고, 오리에의 손은 레이야스필에 닿는다.
 그에 의해 무언가가 벌어졌는지 빛나던 회로가 작동을 멈춘듯 사그라들고, 그와 동시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듯 쓰러진다.

 "레이야! 괜찮아?!"

 쓰러지는 레이야스필을 부축하며 오리에가 말을 걸자, 이내 정신을 차린 듯 눈을 떴다.
 그리고는 잠시동안 오리에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오리에?"


 ◇


 창 밖에는 얼어붙은 눈보라.
 숲의 대지를 얼리는 극한의 밤.
 얼어붙은 땅에 세워진 고성의 밖의 하늘은 칠흑과 같았다.
 칠흑같은 대기에 먹혀질 듯한 고성의 내부의 한 방에는 집안의 모든 호문클루스를 모았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적은 수의 호문클루스들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이미 이 성의 주인인 아인츠베른이 쇠퇴했다는 증거겠지.
 마치 죽은 듯 누워있는 그들을 바라보는 노인이 입을 열었다.

 "준비는 끝났다. 이 순간부터 아인츠베른은 하늘의 잔을 포기하고 기나긴 영면에 들어갈 것이다"

 단 한마디.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일까.
 노인은 눈을 감았고, 성의 모든 존재가 얼어붙은 듯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