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야, 바보"

 금빛 머리칼의 소년, 이라기엔 조금 나이가 들어보이는 청년의 말에 백발의 소년이 되돌아보며 묻는다.

 "뭐? 누가 바보야?"

 "너요, 너. 대답한 너요"

 백발의 소년을 놀리듯 말하는 금발의 청년.
 이에 백발의 소년이 다시 앞을 바라보며 걷는다.

 "바보는 너겠지, 알카이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이번 수석 이름 못 봤냐?"

 알카이드라 불린 금발의 청년이 갑자기 멈춰서자 이를 깨달았는지 백발의 소년도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본다.
 무슨 일이야, 라는 듯한 소년의 표정과는 달리 청년은 생각났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크큭, 그러고보니까 네 이름 없었지? 왜 기분이 나쁜가 했더니 그거 때문이었냐?"

 하하하하, 하고 웃음버섯이라도 먹은 것처럼 웃어대는 알카이드.
 그런 알카이드를 바라보는 소년은 미간을 약간 찡그렸으나 이내 무표정을 일관하고 앞을 바라보며 걸어나간다.

 "아-, 미안미안, 같이 가, 크극. 아, 웃다 죽는줄 알았네"

 알카이드는 겨우겨우 빠져나오는 웃음을 멈추며 소년의 뒤를 쫓는다.

 "아, 그런데 어디 가는거냐?"

 알카이드의 물음에 소년은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알카이드를 바라보고는,

 "다 왔어, 여기야"

 눈 앞의 건물을 가리킨다.
 거기엔 3층짜리 높이의 건물이 있었다.
 지붕에는 하늘 높게 솟아 하늘에 닿는게 아닐까 싶을 놀라울 정도의 거대한 십자가가 서있었다.
 물론 처음보는 사람이라면 그 거대한 크기에 놀라기보다는, 밑에 있는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것에 더 놀라겠지만.

 "뭐야, 너, 성당교회 소속이었냐?"

 소년이 가리킨 성당을 보며 알카이드가 묻자,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당의 문을 열었다.


 ◇


 성당의 내부는 무척이나 넓었다.
 수많은 의자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는 바닥과 달리, 3층 높이의 지붕엔 벽화라고 해야될까, 그런 것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시선을 둘 생각도 느껴지지 않는 것은 분명 정면에 위치한 스테인드 글라스에 그려진 성모와 그 바로 아래에 있는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때문일테지.

 "와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터져나오는 감탄사.
 이에 나도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아무래도 눈 앞의 동행자는 그런 것엔 안중에 없나보다.
 나를 놔두고 어느샌가 저 앞까지 간 그의 앞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둘, 조금 다가가볼까.

 "아니, 말도 안되잖아. 내가 그런 실수를 했다고? 그럴리가 없지"

 백발의 소년, 이라기엔 좀 그렇지만 어쨌든 그는 평상시와 달리 좀 흥분한 말투로 무언가를 따지고 있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미 나온 결과를 바꿀 수는 없어요"

 그의 말을 듣던 여성이 대답한다.
 아무래도 이곳의 수녀인거 같은데, 그가 따지는 걸 보면 성당교회 쪽의 선생인가보다.
 수녀복의 군청색과 같은 색의 머리칼은 바가지라도 씌운 듯 앞머리도 일자, 단발인 뒷머리도 일자였으나, 의외로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뭐, 모든 것의 완성은 얼굴이니까.
 어찌됐던 그녀에게 이것저것 따지는 그는 더 이상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뭐, 좋아. 그럼 내가 직접 과거로 갔다 오지"

 이상한 말을 지껄였다.

 "뭐? 뭔 소리 하는거야, 너. 100등 안에 못 들더니 결국 미쳤냐?"

 그의 말에 내가 한마디 하자 그가 나를 바라본다.
 평상시와 같이 아무런 감정이 보이지 않는 표정, 그런 얼굴로 그는 대답했다.

 "미친건 너겠지, 알카이드"

 "하아?"

 그의 말에 내가 뭔소리냐는 듯 소리를 내자 그는 문쪽으로 걸어나가면서 말을 던졌다.

 "기사가 성당교회에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잊었어?"

 "아"

 그의 말에 나는 재빨리 그의 뒤를 따라 성당을 빠져나갔다.


 ◇


 "그런건 빨리 말해줘야지!"

 멍청한 기사, 알카이드가 소리친다.
 시끄러운 놈.

 "그런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나는 그에게 말을 던지면서도 앞을 보며 빠르게 걸어나간다.
 학원의 서쪽에 위치한 이곳에서 남쪽으로 가기전에 중앙에 들려야 할 일이 있기에 우선은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이번엔 어딜가는거야, 대체"

 불평을 말하며 따라오는 금발 머리의 그, 알카이드.
 왜 따라오는지는 모르겠지만, 호기심이 많은 남자다.
 분명 그저 시간이 비었고, 내가 뭘 하려는지 궁금할 뿐이겠지.
 그보다 멀다.
 이사장, 이 멍청이는 대체 돈을 받아다가 어디다가 쓰길래, 이동식 마술장치 하나 설치하지 않는걸까.
 필시 성당교회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겠다만, 이사장이니까 강압적으로 밀어붙여도 될텐데 멍청하긴.
 속으로 이런저런 이사장의 욕을 하면서 빠르게 걸어나간다.
 약 20분을 걸어 학원의 광장에 도착한다.

 "뭐야, 여긴 또 왜 왔어?"

 말 없이 따라오던, 아니, 뭔가 떠들어댔지만 내가 듣지 않은 것이지만.
 어쨌든 알카이드의 말에 대답해 줄 필요는 없지만 자비를 베풀어 대답해준다.

 "마술협회 소속한 사람 한명 찾아 와"

 "하아?"

 이 놈은 대체 그 말 밖에 할줄 모르나.
 이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있자 알카이드가 먼저 말을 꺼낸다.

 "내가 왜?"

 "안 도와줘도 별로 상관 없지만, 내가 먼저 찾으면 너 빼고 갈거니까"

 그의 물음에 답변을 해주자,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한걸까.

 "과연 그렇군. 나 몰래 찾아서 사라지면 안되지. 오케이, 도와주지"

 역시 멍청하다.
 계속 따라다니면 몰래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하는 것이겠지.
 이런 놈이 수석이라니, 대체 기사놈들은 시험을 얼마나 쉽게 내는거야.
 어쨌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술사 찾기가 시작되었다.


 ◇


 11시쯤 되었을까, 쓸데없이 몰려있을 중앙광장의 인파를 피하기 위해 이 늦은 시각에 광장에 도착했다.
 뭐, 볼 필요도 없이 이번에도 뒤에서 1등이라고 생각하지만 몇점인지는 알아두는게 낫겠지.
 그런 생각으로 광장에 도착하자, 아니나다를까 대부분의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남은 것은 나처럼 성적에 별 관심이 없거나 사람 많은걸 싫어하는 녀석들 뿐인지 열명도 채 되지 않았다.

 "어디보자"

 광장의 중앙에 놓인 게시판 중 가장 하위의 성적을 받은 이름이 써있는 게시판에 다가간다.
 거기에서도 맨 밑의 이름을 주시한다.
 거기엔 당연히 내 이름이 써있을 터,

 "1001위...... 네게브?"

 그러나 거기엔 알지 못하는 이름이 쓰여져있었다.

 "뭐야, 이 똥멍청이는. 나보다 점수가 낮다고?"

 내 이름은 네게브라는 녀석의 바로 위에 쓰여져있었다.
 1000위 메하, 신학 3점, 마술학 5점, 기사학 2점, 총점 10점.

 "10점인 나보다 점수가 낮은 놈은 대체 몇점인겨. 어디보자, 1001위 네게브, 신학 0점, 마술학 0점, 기사학 0점, 총점 0점?"

 ......
 말도 안돼.
 내가 대충 찍어서 냈어도 10점이 나왔는데 전부 0점이라니 아무리 무식해도 정도가 있지.

 "네게브란 놈, 이거 완전 똥멍청이네"

 "누가 똥멍청이냐, 누가"

 의도치않게 말한 내 말을 누군가가 들었는지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옆을 바라보자 거기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백발의 꼬맹이가 서있었다.

 "뭐야, 땅꼬맹이가 왜 이런데 있어. 형이라도 보러 왔냐?"

 "...... 뭐, 됐어. 그보다 너 마술학과 학생이지?"

 "뭐야, 귀여운건 좋은데. 어디서 반말이야"

 꼬맹이가 반말을 짓거리길래 혼 좀 내줄까한 그때 누군가가 걸어왔다.
 교복을 입고 있는걸 봐서 학생인가본데.

 "야, 찾았어?"

 "어, 이 녀석"

 금발머리의 조금 멍청해보이는 학생이 꼬마녀석한테 말을 건다.
 이에 꼬맹이가 나를 가리킨다.
 아무래도 꼬마의 형인가보다.

 "이봐, 형씨. 학교에 동생을 데리고 오는건 좋은데 같이 다녀야지. 아니, 그보다 나이도 어린게 반말을 내뱉는걸 보고만 있으면 안되지, 안그래?"

 "응? 동생? 누가?"

 내 말에 금발머리의 청년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친동생이 아닌가보다.
 이거야 원, 착각했군.

 "뭐야, 동생이 아니었어? 그럼 이 앤 뭐야"

 내가 꼬맹이를 가리키며 말하자 금발머리의 남자가 꼬마를 바라보더니 뭐가 그리 웃겼는지 바보같이 웃어댄다.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원래 저러니까 신경쓸거 없어. 그보다도 도움 좀 받자, 마술사"

 꼬맹이가 나한테 말했다.
 아니 근데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계속 반말이네.

 "야, 너 몇살인데 계속 반말이야, 어린게 미쳤나"

 그 말에 녀석은 나를 바라보며 그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한 것이다.

 "올해로 86세다만, 뭔 문제라도 있냐, 애송아"


 ◇


 "뭐?"

 네게브의 말에 붉은머리의 녀석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자, 녀석이 말한다.

 "마술사, 메하던가. 아무리 멍청해도 공간이동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마술협회로 가자. 돈은 지급하도록 하지"

 "꼬마야, 거짓말은 정도껏 쳐야지. 86살이 뭐야. 게다가 공간이동이라니 넌 여기 안 살아서 모르겠지만 걸리면 벌금에 구금이라고"

 "못한다고는 안하는군. 다행이야, 시간을 줄였군. 계좌 열어. 일단 선금 받고 생각해라"

 네게브가 막무가내식으로 일을 척척 진행해나간다.
 마술협회를 가려면 분명 40분은 걸어가야하던가, 확실히 귀찮긴 하지만,

 "이봐, 네게브. 굳이 공간이동을 할 필요가 있어? 돈이 있으면 택시를 타고 가면 되잖아?"

 네게브는 내 말을 무시하고 메하란 마술사의 계좌에 돈을 넘긴다.
 대체 얼마나 돈이 있길래 돈을 준다고 하는지 궁금해 네게브의 뒤에서 그의 계좌를 들여다본다.
 ......

 "미친... 이게 얼마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자 그제서야 내가 보고 있다는걸 눈치챘는지 그가 뒤돌아 나를 바라본다.

 "네가 평생을 모아도 모을 수 없는 돈이니까, 그렇게 부러워할 것 없어"

 그러고는 다시 앞을 바라본다.

 "어때, 나쁘지 않지?"

 마술사에게 던진 그 말에 마술사는, 

 "잘부탁드립니다, 네게브님. 뭐든지 말씀만 하시죠"

 이미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있었다.
 이 속물 자식.

 "아니, 근데 진짜 얼마를 줬는지 모르겠는데 택시쪽이 낫지않냐"

 다시한번 의문을 던지자 네게브는 토닥이고 있던 메하란 녀석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멍청한 놈, 넌 모르겠지만 나는 마술쪽에 들어갈때 절차가 까다롭다고, 그걸 다 받고 있다간 하루는 커녕 이틀이나 지나버릴걸. 뇌없는 마술사놈들, 내가 성당측이라고 일부러 늦게 해주는게 틀림없어. 그때도 그랬다고-"

 예전에 있던 일을 생각해냈는지 평상시와 다르게 말이 많아진 네게브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며 메하에게 말을 건다.

 "어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야"

 고개를 든 후부터 계속해서 계좌만 바라보고 있는 메하를 부른다.

 "아, 뭐? 못 들었어"

 대체 얼마를 받았길래 이 모양이냐, 이 녀석.

 "괜찮겠어? 걸리면 구금이라면서"

 "응? 그게 뭐?"

 그게 뭐냐니, 이 녀석 바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 녀석이 간단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면 그런대로 어쩔 수 없잖아?"

 ......
 아니, 그야 그렇지만.
 맞는 말이지만 뭔가를 말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입을 열려고 했으나, 그전에 어느샌가 말이 멈춰있던 네게브가 말을 꺼냈다.

 "메하, 그런 생각은 좋지않아"

 분명 연장자로써 무언가 말해주려는 것이겠지.
 아무리 그일지라도 역시 어른은 어른인 모양이다.

 "네?"

 어느새 존대하는 마술사.
 그런 메하를 언제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면서 네게브가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다니 그런건 바보가 하는 말이야. 이럴땐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지"

 "오오, 역시 돈 많으신 분은 뭐가 달라도 다르시네요"

 "...... 그래, 기대했던 내가 나빠"

 이 백발의 소년이 뭔가 조언을 해줄거라 기대했던 내가 멍청이였다.
 어쨌든 이리하여 기사인 나와 마술사인 메하 그리고 아마도 성직자인 그는 메하의 공간이동으로, 남쪽의 마술학과 중앙에 위치한 마술협회에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다.


 ◇


 "뭐야, 어디야 여긴"

 "멍청하긴, 눈 없냐? 방이잖아"

 공간이동을 하자마자 알카이드가 어딘지 묻자 메하가 대답했다.
 메하의 말대로 주변을 대충 둘러보니 어딘가의 방 안이었다.
 근데 그런것보다도 눈에 띄는 것이 한가지.

 "바로 옆이 마술협회라니 좋은데 사는군"

 "하핫, 그렇죠?"

 창문으로 보이는 마술협회의 건물이었다.

 "너, 너무 태도가 다르지 않냐?"

 "어, 다른데. 꼬우면 님도 돈 주시던가"

 이사장이 중세풍을 좋아하다보니, 성당측의 건물들도 그렇고 이쪽 마술측의 건물들도 그렇지만 대부분이 중세시대의 건물을 본따 만든 것이다.
 그런 중세시대의 세계에서도 그것은 독보적이었다.
 성당을 보고 그 거대한 십자가에 놀랄지라도 마술협회의 건물을 본다면 그건 정상측에 속했구나, 라고 생각할테지.
 마술협회 소속의 관련인물들이 살고 있는 이 탑은 그 정상이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그 통칭은 시계탑.
 5층 정도 높이에 메달려 있는 거대한 아날로그 시계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오랜만이군"

 10년도 전에 보고 온적이 없는 이곳에 다시 오게 될줄이야.
 쓸데없는 감상에 빠져있자 알카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게브, 안 가냐?"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 말을 무시한 채 방문을 열고 나간다.
 메하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학생 5명과 집주인 1명이 함께 살고있는 기숙사인 듯 하다.
 어찌됐든 2층이었던 방을 빠져나가 계단을 내려간다.
 1층은 꽤 넓은 홀로 이어져있었다.
 게다가 계단까지 오면서 지나친 방만 해도 5개가 넘는다.
 이곳의 반대편에 위치한 곳이 같은 구조라고 한다면 아마 사람이 전부 찬다면 20명이 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커다란 곳이었다.

 "와, 넓은데! 이런 곳에 6명 밖에 안 산단 말이야?"

 생각한걸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듯이 말하는 알카이드의 말에 메하가 대답했다.

 "원래는 12명 조금 넘었었나? 그랬는데 아무래도 학기가 지나면서 빠져나가는 애들이 많아서"

 그렇군.
 아마도 도중에 자퇴를 하거나 학과를 바꾼 학생들이겠지.
 1학년이나 2학년엔 그런 녀석들이 많을테니.

 "흠, 좋은덴데. 아깝네, 기사학과쪽엔 이런데 없나"

 부러운듯 말하는 알카이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1층의 정문을 열었다.
 지상보다 조금 높은 곳에 지어졌는지 열자마자 나온것은 안전을 위한 난간과 문의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20칸도 채 되지않는 계단이었다.
 계단을 내려가 고개를 들었다.
 눈에 펼쳐지는 것은 사이에 아무것도 없이 펼쳐지는 거대한 시계탑.

 "우와, 겁나 크네"

 감탄을 내뱉는 알카이드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시계탑으로 걸어나간다.


 ◇


 "그런데 마술협회에는 무슨 일로 가시는거죠?"

 가까워보였지만 그래도 걸어서 5분은 걸어야되는 거리에 위치한 시계탑.
 걸어가는 동안에 마술사 메하가 물었다.
 근데 네게브가 순순히 대답할리가,

 "점수 되돌리러 간다"

 "겍, 어째서?!"

 이건 말도 안돼!
 여태껏 내 말을 무시해온 네게브가 순순히 대답하다니.
 이런 나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메하가 말했다.

 "네 놈은 멍청하니까 어르신께서 대답해주시지 않는거야, 그렇죠? 어르신"

 "뒤에서 2등이 수석보고 멍청하다고? 야, 너 맷돌 손잡이를 뭐라고 하는지 알아? 그걸-"

 "거기 바보, 시끄러워. 그보다 마술사 넌 어르신이라고 하지마라. 그런건 지금부터 만날 협회의 꼰대같은 놈을 부를때나 하는 말이니까"

 "넵! 네게브님!"

 이 녀석 이거 완전 네게브의 부하가 다 됐네.
 그러는 동안 마술협회의 정문에 도착한다.
 가까이서 본 시계탑은 정말로 거대했다.
 1층만 보자면 아까의 성당보다는 좁을 지 몰라도, 위로 솟은 높이가 장난이 아니니까 전체로 보자면 엄청난 크기겠지.
 네게브가 시계탑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 뒤를 따라가는 우리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긴 의외로 소란스러웠다.
 해리포터라는 영화에서나 볼 듯한 이상한걸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았으나, 그에 비해서 건물의 내부는 의외로 평범했다.
 물론 여기서의 평범이란건 이사장이 좋아하는 중세시대의 느낌이란 것이다.
 물 흐르듯이 흐르는 인파를 구경하고 있자 네게브가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졸업시험을 앞두고 바쁜건가. 샐러맨더의 꼬리, 새끼 히드라의 표본. 게다가 저건 오닉스드래곤의 비늘인가, 잘도 찾았네. 아니, 배양한건가"

 뭔소린지 모를 소리에 마술사인 메하는 알아듣나 싶어서 바라봤더니,

 "뭘 봐. 마술사라고 꼭 알아야되냐? 아니면 뭐야, 기사인 넌 칼만 보고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물건인지 안다는거냐? 오, 대단하시구만 그래. 역시 수석은 달라!"

 지가 괜히 찔려서 오히려 큰소리다.

 "뭐야, 왜 이래. 아무말도 안했잖아, 아직"

 "시끄러, 본 것 자체가 이미 죄닷!"

 "헐 노답"

 그런 느낌으로 잠시 메하와 투닥대고 있자 네게브가 멈춰있던 발걸음을 옮긴다.


 ◇


 "이봐, 마빈 어디있어?"

 소란스런 인파를 지나 시계탑의 중앙에 위치한 데스크에 있는 한 마술사에게 묻는다.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는 마술사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컴퓨터를 두드린다.
 요즘 세대에 컴퓨터가 없는데가 있을리는 없겠다만, 마술사란 놈들이 컴퓨터라니.
 뒤에서 두리번거리며 수근대는 두 녀석의 목소리와 앞에서 두들겨대는 자판소리에 머리가 아파올 때 쯤,

 "아, 마빈씨는 지금 211층에 계신답니다"

 마술사의 말을 듣고 예의상 고개를 끄덕여주고 뒤로 돌아 북동쪽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로 걸어나간다.

 "뭐야, 마술사들이 엘리베이터라니"

 알카이드의 실망스런 말투에 메하가 말한다.

 "뭐래, 엘리베이터가 아니면 뭐, 지팡이라도 타고 다니리?"

 엘리베이터가 없을 시절엔 공간이동이 허용돼서 개인으로 움직이기 편했는데 성당측의 반발도 반발이지만, 쓸데없는데 마나를 소모한다고 이사장이 금지시킨 지금엔 마술사도 그저 연구할 때를 제외하면 일반 사람들과 같다.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 211층의 버튼을 누른다.

 "와, 300층까지 있다니 미쳤어. 안 무너져?"

 알카이드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보고 놀란다.

 "바보냐, 무너질 리가 없잖아. 마술로 지탱하고 있으니까"

 "아, 그래? 근데 이거 211층 올라가려면 한참 걸리지 않아?"

 알카이드가 말하는 도중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다.

 "211층에 이동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안내목소리가 나오는 것과 동시에 띵, 하는 소리가 나오고 문이 열린다.
 눈 앞에 보이는건 대리석으로 된 벽으로 둘러쌓인 약 10미터가량의 복도와 그 앞에 위치한 문 하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걷고 있자,

 "우와!! 뭐야, 이게! 전혀 엘리베이터가 아니잖아!!"

 쓸데없이 소리치는 알카이드.
 이에 메하가 귀를 막으며 말한다.

 "시끄러워! 좀 조용히 놀래라! 그보다 아까 공간이동 해놓고 뭘 그리 놀라는건데, 금붕어냐?!!"

 "아니, 그건 그렇지만 엘리베이터가 통째로 공간이동이라니 대단하잖아!"

 시끄럽게 떠드는 둘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괜히 데려온게 아닌가 싶다.

 "둘 다 시끄러워, 그리고 공간이동한건 말하지마. 갇히고 싶어?"

 "아"

 이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메하가 입을 다문다.
 그 옆에선 쓸데없이 들떠있는 알카이드.
 그런 두명을 뒤에 두고 나는 눈 앞의 문을 열었다.
 나무로 된 것처럼 보이는 문을 열자 거기엔 소음으로 가득찬 방이 있었다.

 "마빈, 있냐?!"

 뒤에서 뭔가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
 그런 방의 중앙에 냉장고가 놓여있고 그 뒤편에 소파가 있다.
 이쪽에선 소파의 양 끝만 보여 가운데 앉아있으면 보이지 않는 구조로 그 소파의 앞엔 분명 텔레비전이라도 놨겠지.
 아마도 텔레비전에서 들리는 소리라고 생각되는 노래 아닌 소음을 들으면서 소파로 다가간다.
 아니나다를까, 소파의 정중앙에 앉아있는 귀마개를 한 노란머리의 남자.
 나이는 이제 20대 후반으로 보이지만 그걸 보이는대로 믿는 놈은 분명 이 녀석에 대해 아는게 없는 놈일테지.
 내가 온 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눈을 감고 앉아있는 녀석의 귀마개를 벗긴다.

 "으아악!! 뭐야!!! 누구야!!!!"

 엄청난 소리에 한손으로 귀를 막으며 한손으론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의 전원을 꺼버린다.

 "으아아, 이제야 살겠네"

 뒤에서 귀를 막고 있던 알카이드가 귀에서 손을 떼며 말한다.
 그 옆에선 의외로, 라기보다 전혀 들리지 않았는지 멀쩡한 메하.
 아무래도 음성차단 마술이라도 쓴 모양이다.

 "그래서, 무슨 용건입니까? 네게브씨?"

 눈살을 찌푸리며 날 바라보는 마빈.

 "원망하지 마, 마빈. 소리 틀어놓은건 너잖아"

 "...... 귀마개 뺀건 네게브씨거든요?"

 "뭐, 어쨌든 시간도 없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지"

 마빈은 내 말에 한숨을 내쉬고는, 성이 안찼는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다.

 "땅 꺼지겠네"

 뒤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알카이드가 말한다.
 그런 알카이드의 말을 무시한 채로,

 "기사에 마술사까지 데려와서 이번엔 뭘 하려고요"

 "이번엔?"

 알카이드가 말하자 마빈이 입을 연다.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시간 없다고, 마빈"

 나는 마빈의 말을 끊고 말을 잇는다.

 "일주일 전 아침으로 보내줘"


 ◇


 "뭐요? 과거로 보내달라고? 이 양반이 진짜 미쳤어요? 시간축 옮겨다니는거 금지됐다고 몇번이나-"

 네게브의 말에 마빈이 안된다고 말하자 네게브가 뒤돌아보며 말한다.

 "너넨 여기서 저거라도 보고 있어"

 알카이드와 메하를 보고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말하는 네게브.
 그리고는 다시 마빈을 바라보고 말한다.

 "중요한 이야기니까 일단 다른데서 이야기하지"

 네게브의 말에 마빈은 한숨을 내쉬고 앉아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왼편에 위치한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에 네게브도 따라들어와 문을 닫으며 말했다.

 "내가 시간이동을 할거면서 밖에 두명을 왜 데려왔는지 알아?"

 "설마...?"

 네게브의 말에 마빈이 인상을 쓰며 말한다.

 "봤어요?"

 마빈의 말에 네게브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잇는다.

 "일주일전 그러니까 시험 시작 날 아침에 금발머리 녀석이 이상한 말을 했어. 시험점수 바꾼다더니 이제 어디 갈거에요, 랬던가. 그때는 원래 멍청한 놈이니까 무시하고 별 생각 안했는데 오늘이 되어서야 깨달았지"

 "시간여행... 바보같은 놈이 뭔 생각으로!"

 마빈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안고 방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그런 마빈을 보며 책상의 맞은편에 앉으며 태연히 말한다.

 "어쩔래?"

 "어쩌긴 뭘 어째요"

 마빈이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네게브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안해줘도 상관 없어. 아, 그러고보면 너 싫어하던게 누구더라? 팜힐이던가?"

 네게브가 팜힐이라는 마술사의 이름을 말하자 마빈은 결국 소리쳤다.

 "아, 형님!! 나 착한거 알잖아!! 과거 보내줄게 보내준다고!!!"

 "그래? 안 해줘도 되는데 일단 감사해두지. 아 참, 3명 다 보내줘야 돼"

 "알았다고 알았어요. 근데 저 문제아는 왜요? 쟤도 봤어요?"

 네게브의 말에 마빈은 포기한듯 말하며, 어차피 보내줄거 궁금증이나 해결할 심산으로 묻는다.

 "너니까 말해주는데, 쟤 공간이동 할 줄 알더라고"

 "네? 무슨 소리에요, 쟤 완전 꼴통인데요?"

 마빈의 말에 네게브는,

 "그보다 마빈, 일주일 전에 어디에 있었어?"

 무시하고 마빈의 위치를 물었다.


 ◇


 방에서 나오는 두명의 모습을 보고 소파에서 일어나자, 네게브님이 말했다.

 "가자"

 "오, 진짜 과거로 가는거야?"

 "네게브님, 저도요?"

 내 의문에 네게브님이 나를 바라보며 대답한다.

 "지금부터 일주일 전으로 갈거야, 물론 너도"

 "엑, 어째서요? 아니, 난 여기 이동시켜주는걸로 끝난거 아니야?"

 내 말에 네게브가 내쪽으로 걸어온다.

 "무슨 협박을 해도 안 갈거야, 내가 미쳤어? 거길 왜 가?!"

 더 이상 이 말도 안되는 범죄집단과 함께 갈 이유가-

 "계좌 열어, 과거 갔다오면 두배 더 줄테니까"

 "넵! 네게브님! 지옥이라도 따라가겠습니다"

 즉시 계좌를 열어 돈을 넘겨받는다.
 액수는 아까 전에 받은 금액만큼.
 갔다오면 여기에 2배라고?!
 말도 안돼!
 난 이제 부자닷!

 "돈에 미쳤구만, 저거"

 멍청한 금발머리가 뭔가 말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너네 안 가?"

 "갑니닷!!"

 이렇게해서 나의 돈벌이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보다 이거 불법인데 잘도 협력해주네요, 저 선생님"

 마빈이란 마술사가 엘리베이터랑 이어진 문의 반대쪽에 있던 문을 열고 들어가는걸 보고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네게브님이 무덤덤하게,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길 사기는 당하는 놈이 나쁜거라고 했어"

 뜬금없는 말을 하신다.
 뭐, 공간이동도 그렇고 불법을 들키지 않으면 장땡! 이라고 생각하는 분이니까 사기라도 친 모양이다.

 "그것보다 너네 과거로 넘어가면 다른 사람한테 말 걸지마. 특히 너"

 네게브님이 멍청이를 보며 말했다.

 "왜 나만 특히냐?!"

 이에 소리치는 멍청이를 네게브님이 무시하고 들어간다.

 "풉, 꼴 좋다. 발목 잡지 마라, 멍청이. 과거 바뀌면 여기도 일그러지니까"

 "누가 멍청이야? 누가?"

 "너요, 너"

 멍청이를 놀리면서 방에 들어간다.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력제어실?"

 특정한 마술 이외의 모든 마술이 금지되는 공간이었다.

 "뭐야, 문제아가 그런 것도 알아?"

 내가 자신도 모르게 흘린 소리를 마빈이란 선생이 들었는지 괜한 시비다.
 저런거에 대답해봤자 귀찮아질 뿐이라 입을 다물고 있자 마빈이란 선생도 별로 신경 쓸거 없다고 생각했는지 네게브님에게 말한다.

 "정확히 언제로 보내드려요"

 "12월 17일 오전 8시"

 네게브님의 말에 마빈을 알겠다고 하고는 말을 덧붙였다.

 "근데 저는 시간담당이라 공간까지는 못 봐줘요. 여기 나갈때 거기에 있는 제 눈에 띄지말아요. 전 저번주에 네게브씨 본 적 없으니까"

 "알겠으니까 돌려"

 "아, 돌아올 땐-"

 마빈이 뭔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네게브님이 말을 끊는다.

 "알고 있어"

 "음, 뭐 네게브씨니까 알아서 잘 하실거라고 믿습니다. 제발 저한테까지 문제 생기지 않게-"

 "아 좀 알겠다잖아"

 이윽고 알카이드가 짜증났는지 소리치자 마빈이 마지막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마술의 영창을 외친다.
 그에 보이지않던 바닥과 천장의 마법진이 붉게 타오르고---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