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다음날 아침, 어제의 맑은 날은 계속되어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태양만이 밝게 빛나고 있어서인가 평소보다 기온이 높다.
 그런 일요일의 오전 9시쯤 조금 늦게 일어나 씻고 난 뒤,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주워입고 베이지색 카디건을 걸쳤다.
 탁자에는 원래 있던 주인의 것이라 추정되는 16칸 짜리 퍼즐이 하나.
 지금까지 별로 눈에 띄지도 않더니 오늘따라 눈에 띈다.
 꽤나 심심해 퍼즐을 맞추며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아아, 뭔가 할 거 없나. 어제도 그랬지만 낮만 되면 할게 없어지는군. 뭐, 어제는 꽤나 즐겼지만"

 음, 아무래도 꽃모양인거 같은데.
 퍼즐이란건 꽤나 어렵네.

 "마스터여,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갑작스럽게 라이더가 불평을 말한다.
 신경은 퍼즐을 맞추는 것에 집중한채 질문에 대한 의문을 묻는다.

 "아? 뭐가?"

 "어제의 일이다. 나만 빼놓고 재밌게 놀다니 말이다"

 "아니, 너도 있었잖아. 무슨 소리하는거야"

 퍼즐을 왼쪽 위부터 오른쪽 위쪽으로 순서대로 하나하나 맞추어나간다.

 "그건 실체화한 상태가 아니었지 않나. 나도 실체화한 상태로 마을을 거닐고 싶단 말이다"

 "아, 그래? 그럼 나가면 되잖아"

 위의 8칸을 맞추고 남은건 아래의 두줄.

 "오오, 진짠가? 그럼 같이 나가도록 하자, 마스터여. 데이트라고 하던가, 그런걸?"

 "아아, 그러던가"

 오, Rock다.
 이걸로 끝이다.
 마지막 남은 오른쪽 아래의 한조각을 위로 올려서 퍼즐을 완성한다.
 Rock! 역시 나는 천재가 아닐까, 처음하는 것을 이렇게 빨리 해결하다니.
 달성감에 속으로 기뻐하고 있는 도중에 라이더가 기쁜 듯 말한다.

 "그런가! 그럼 지금 당장 나가도록 하자, 데이트다!"

 "아? 데이트? 누구랑?"

 "응? 그대랑 가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상한 말을 하는 라이더.

 "나랑? 누가?"

 "응? 나"

 하아? 어째서?

 "하아? 어째서?"

 너무나도 이상한 말에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방금 간다고 하지 않았나"

 음? 그랬던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퍼즐에 신경이 너무 갔었던 모양이다.

 "아니, 미안하지만 기억에 없다만?"

 약 3초간의 공백.
 라이더는 자신의 귀를 후비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 내가 지금 잘못 들은건가, 마스터여?"

 ----살기다.
 이 녀석, 날 죽일 생각이다!
 Fuck! 이딴 일로 죽는다니 말도 안되지.

 "아니아니아니, 잠깐 기다려. 말이 헛나왔어. 가자! 가자고! 오오! Rock다!"

 "아아, 그러도록 하자"

 금새 살기를 거두는 라이더.
 그것뿐 아니라 언제 그랬냐는 듯 웃어댄다.
 이쪽은 심장을 꿰뚫리는게 아닌가 걱정했다고 하는데.
 뭐, 어찌됐든 할것도 없고 나가는 것도 나쁠건 없나.
 서둘러 나가려는 라이더에게 말을 건넨다.

 "어이, 나가는건 좋은데, 그 뿔이랑 옷은 좀 무리가 있지 않냐? 아니면 뭐야, 인간이 아니란걸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생각이냐?"

 분명 눈에 안 띌리가 없는 뿔과 에도시대보다도 전의 시대일게 분명한 기모노.
 이대로 나가면 이상하게 쳐다볼게 당연하다.

 "흠, 난 상관없다. 자, 나가자"

 "아니, 상관 없을 리가 있냐! 바보냐?!"

 기묘한 눈으로 쳐다봐지는 것은 사양이다.
 내가 거부하자 라이더는 꽤나 곤란하다는 듯 물었다.

 "그럼 어찌하면 좋은가?"

 "글쎄-, 일단 옷이랑 모자는 필수다. 칫, 어쩔 수 없지. 일단은 영체화로 따라와라. 의류점에 가겠어"

 이리하여 감탄사를 담으며 좋아하는 라이더녀석 때문에 일단은 의류점으로 향했다.
 신토의 번화가 중 한 의류점에 들어가 옷을 대충 고르자 라이더가 죄다 거부한다.
 Fuck! 여자의 옷 같은거 사본 적이 있겠냐고.
 그리하여 영체화한 라이더의 선택에 따라 이것저것 골라 계산대에 올리자 점원여자가 말을 건넨다.

 "선물이신가요? 포장해드릴까요?"

 어차피 근처 화장실에서라도 갈아입으면 되니까 포장은 안해도 되겠지.

 "아니, 가져갈 봉투 하나만 주시면 됩니다"

 알겠다고 대답한 여자는 도난방지택을 제거하며 말을 건네온다.

 "여자친구분 주실건가봐요?"

 '호오, 이 여자 뭔가 아는구나, 후후'

 Fuck, 꽤나 말 많은 여자다.
 게다가 어째선지 라이더가 기분나쁘게 웃어댄다.

 "아니"

 초단답.
 정색하며 말한다.
 이 정도면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진 않겠지.

 '우와, 너무하지않은가, 마스터여. 즉답이라니 고민정도는-'

 시끄러워, 뭘 고민하란거냐.
 어쨌든 점원이 계산을 다하고 봉투를 넘겨준다.
 그것을 건네받고 가게를 빠져나간다.
 근처 화장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실체화한 라이더가 옷을 가지고 들어가 갈아입고 나온다.

 "어떤가? 마스터여? 꽤나 귀엽지? 하지만 반하면 곤란하다고?"

 무릎까지 오는 흰색 원피스에 길게 늘어지는 베이지색 니트 카디건을 걸치고 머리에는 털실로 짠 하얀색 비니를 쓰고 있었다.
 뭐, 돈 들인 보람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 그리고 봐라, 로우. 커플룩이다. 같은 색!"

 거리에서 마스터라고 불러대면 이상한 눈으로 볼 녀석들이 있을거 같아 이름을 부르라 해두었다.
 그보다 커플룩이라니, 이 무슨.
 아아, 그래서 아까 가게의 여자가 여자친구껀지 물어본건가.

 "시끄러워, 그래서 어디가 가고 싶어서 나왔냐?"

 "음? 글쎄? 그저 돌아다니고 싶었을 뿐이니까. 돌아다니자고, 로우"

 목적지는 없는 모양이다.
 Fuck, 이거 아무래도 꽤 긴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아침과는 달리 구름이 조금 낀 하늘, 아무래도 밤에는 눈이 오려나, 하며 휴일의 낮이라 그런지 꽤나 북적대는 번화가를 한가로이 걸어나간다.
 어제도 그랬지만 이 부근은 사람이 많다.
 아무래도 지하철이 바로 근처에 있기 때문이겠지.
 더구나 최근에 비해 은근히 따뜻한 오늘은 더욱 더 사람이 많은 듯 하다.
 옆에는 원래부터 미인이라고는 생각했지만 현대의 옷을 입혀놓으니 지나가는 녀석들의 눈이 엄청나게 몰려드는 여자가 한명.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라이더는 태평하게 두리번거리며 재미난 것이라도 발견하면 나의 팔을 이끌어 나아간다.
 도중의 가게에 걸린 시계를 보니 시침은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이, 라이더. 슬슬 점심 먹자고. 벌써 2시다"

 "흠, 벌써 그렇게 됐나? 좋다, 점심을 먹으러가자꾸나"

 점심이라기엔 늦었지만 뭘 먹을까, 싶어서 둘러보는 도중 라이더가 손을 뻗어 한 가게를 가리킨다.

 "오오, 저것 봐라, 로우. 저 가게가 좋다"

 라이더가 가리킨 곳을 보자 어째선지 익숙한 가게가 있었다.
 아넨엘베.
 분명 어제 들어갔던 카페일 터인데-.

 "바보냐, 어제 갔었잖아. 뇌만 영체화한 상태냐? 아니면 뭐야, 닭 코스프레라도 하는 중이냐?"

 "다르다, 로우. 어제는 내가 먹지를 못하지 않았느냐. 나도 먹어보고 싶은게 있었단 말이다"

 "그러냐? 뭐, 좋아. 어제의 냉짬뽕도 괜찮았고"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어대는 라이더와 카페 아넨엘베에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실내의 따뜻한 공기가 반겨주었다.
 어제 왔더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인기가 없는지 점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손님이 별로 없었다.
 많은 자리 중에서 라이더가 창가쪽 자리가 좋다고 하여 맨구석의 창가쪽에 앉았다.
 뭘 주문할까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라이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로우, 이거 같이 먹지 않겠나?"

 "아? 뭔데?"

 라이더가 메뉴판을 손으로 가리킨다.
 거기엔 파르페의 사진이 찍혀있고 그 밑에는 점보 파르페라고 써있어 만화에서나 볼 법한 커플 한정 아이템이 있었다.
 파르페?
 어제 소우가 먹는 걸 보고 먹고 싶다는 생각은 했으나 굳이 두명이서 같은걸 먹을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점심이라기엔 디저트가 아닌가.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넌 그거 시키고, 난 다른거 시키면 되잖아? 굳이 하나를 같이 먹을 필요가-"

 "있어!"

 말도 끝나지 않은 도중에 즉답을 하는 라이더.

 "아니, 너, 끝까지 들으라고. 파르페는 디저트니까 다른 음식을-"

 "먹겠어, 로우"

 어째서 먹을지 말지 물어보던게 강요로 바뀐거냐?
 뭐,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거부할 필요는 없나.

 "Fuck, 좋을대로 해라"

 "후후, 그럼 이걸로 시키겠어, 로우"

 겨우 먹을거 하나에 라이더가 엄청나게 기뻐한다.
 환하게 웃으며 점원에게 주문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만다.
 의외로 Rock한 기분.
 지금까지 혼자서 떠돌아다녀서 몰랐지만, 의외로 동행인이란건 좋을지도 모르겠군.
 라이더는 주문을 마치고 나를 바라보며 왜 웃어?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 웃은적 없는데, 나"

 "그래? 잘못봤나보네"

 만난지 단 5일째, 고작 그것만으로도 내 성격을 파악한 것인지 웬만한 거짓말은 그냥 넘어간다.
 뭐, 입이 거친 내 말을 대충 넘기는건 이 녀석 말고는 없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라이더가 말을 건넨다.

 "있잖아, 로우. 내 소원은 알고 있는가? 말했던걸로 아는데"

 소환되었던 첫 날, 아처와의 전투가 끝나고 저택으로 돌아가 성배전쟁에 대해 설명할 때, 라이더에게서 들은 소원--

 '마스터여, 나는 말이지. 인간으로써 살아가고 싶다. 귀녀가 아닌 인간으로써 말이다'

 어째서인지 그것은 나의 머리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아, 알고 있다만, 그게 뭐?"

 "기억하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로우. 그래서 말인데, 인간으로써 살아가려면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지 않느냐?"

 "아? 필요한거?"

 "그, 왜, 뭐냐, 예를 들자면 호적? 이라던가?"

 아, 확실히.
 호적이 없으면 인간으로써 살아가는데 지장이 있긴 하겠군.

 "그렇군. 뭐, 그 정도는 아사가미 가문에 말하면 안될건 없겠지. 성배를 갖다주는데 그 정도도 안해주면 안되지"

 "오오, 그런가? 그럼 그건 그렇게하고 다음이다"

 다음?
 또 무슨 말이 나올지 어째 예감이 좋지 않다.

 "인간이 되면 뭘 하면 좋으냐?"

 "그야 네가 하고 싶은거 하면 되지. 그거까지 나한테 묻는거냐"

 이야기의 도중 커다란 파르페가 테이블의 중앙에 놓인다.
 크다.
 엄청 크잖아, 이거.
 지름 20cm에 높이는 30cm 쯤 되어보이는 파르페.
 딸기와 초코, 그것뿐 아니라 별의 별 맛의 아이스크림을 쌓아올려 거기에 빼빼로니 과자니 과일이니 이것저것 죄다 박아놓은 모양.

 "어이어이, 이걸 둘이서 먹겠다는거냐?"

 "좋지않나, 맛있어 보이는구나. 아, 그래서말인데 그대는 평소에 뭘하고 다녔는가?"

 파르페를 입으로 가져가며 물어오는 라이더.
 한 입을 먹고는 맛있는지, 오오, 하며 감탄사를 내뱉으며 계속해서 먹기 시작한다.

 "평소인가, 뭐, 나의 경우는 여행이었지. 유럽이나 중동 쪽이 성배전쟁이 자주 일어나니까 그리고 미국엔 딱 한번"

 말하며 수저로 뜬 파르페를 입에 넣었다.
 차갑다.
 Rock! 어제의 냉짬뽕도 그랬지만 꽤나 하는군, 이 가게.
 차가운거 뿐만 아니라 맛도 좋다.
 일본에 올 때마다 들려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
 파르페의 감상에 빠져있는 도중 라이더의 말이 들려온다.

 "흠, 여행인가. 그럼 나도 그대와 같이 다니면 되겠구나"

 "What-?"

 순간적인 두통에 머리가 아파와 저절로 미간을 찌푸려진다.
 같이, 여행?
 하아? 어째서?
 어째서 내가 인간이 된 뒤까지 네녀석 뒷바라지를 해주지 않으면 안되는거냐.

 "뭐야, 머리가 아픈가? 그러니까 차가운건 천천히 먹어야지. 생긴것과 달리 의외로 어린애 같구나, 로우"

 라이더는 두통의 원인이 자신인지는 생각도 못하는 모양인지 웃으며 파르페를 먹어간다.

 "Fuck한 라이더씨, 어째서 내가 너랑 같이 다니지 않으면 안되는겁니까? 아앙?"

 동행인이 있어도 괜찮겠다, 라고 생각한건 생각한거고 실제로 같이 다니면 귀찮을게 분명할 터.
 게다가 이 녀석 성격에 여기서 떨궈내지 않으면 진심으로 쫓아다니겠지.

 "음? 나를 소환한것은 그대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 신체가 사라질 때까지 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게 아닌가?"

 "하아? 책임? 뭐야, 네 말에 따르면 자식을 낳으면 죽을 때까지 책임 져 줘야한다는거냐? 아앙? 어른이 되면 지 혼자서 사는게 당연한겁니다만?"

 나의 말을 들은 라이더는 파르페를 먹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얼간이인 라이더라도 이해한 모양이다.

 "흠흠, 확실히 그렇다만. 뭐, 그딴건 어찌돼든 좋다. 난 그저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을 뿐이니까"

 파르페를 먹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좋아하는 사람?
 뭐야, 이 녀석, 지금 날 좋아한다고 말한거냐.

 "What!? 내 머리가 이상한거냐? 마치 너가 날 좋아한다고 말한 것처럼 들렸다만?"

 아니, 아무리 머저리라도 영령이라는 놈이 인간을?
 라이더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응, 그렇게 말했는데?"

 아니아니, 생각해보자.
 애초에 이 녀석, 남자 때문에 자신이 이끌던 부대랑도 싸웠던 녀석이 아닌가!
 머저리다.
 머저리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저기, 일단은 이유라도 들어도 되겠습니까? 라이더씨"

 파르페는 계속 줄어만 가는데 어째 먹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라이더는 그렇게 많은게 어디로 들어가는지 계속해서 먹어간다.

 "그렇구나, 우선은 외모인가"

 "아아, 그건 알고있어. 내가 한 외모하지"

 어째선지 진지하게 말하는 라이더의 말에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지만 그걸 긍정한 채로 라이더는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 그리고 두번째는 두뇌?"

 "Fuck, 방금은 누가봐도 츳코미 부분이다만. 그보다 두뇌는 뭐야, 두뇌는"

 "응? 로우, 머리 좋잖아. 그리고 세번째로-"

 "아, 멈춰, 멈춰"

 분명히 사실이지만 이상한 말을 계속해나가려는 라이더를 제지하고, 참고로 몇번째까지 있냐, 라고 묻자 라이더는 어디보자, 하더니 손가락을 접어간다.
 그 수는 어느새 열 둘.
 뭐가 그리 많은지 아직도 더 접어야되는 모양이지만.
 기가 막히는군.

 "아, 됐어, 그만. 먹기나 해라. 그거 다 세다간 밤 세겠다. 그런건 나중에 인간이 되고 나서 생각하고"

 "응? 아, 그래? 세어보라고 해서 세어본건데. 어쨌든 그런 이유로 인간이 되면 둘이서 여행이다, 로우"

 "Fuck, 좋을대로 해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파르페를 먹기 시작한다.
 이 녀석이 날 좋아하던 말던 나랑은 관계없는 이야기다만, 인간이 된 직후엔 힘들테니 같이 다녀줘도 괜찮겠지.
 뭐, 전부 성배를 손에 넣고 난 후의 이야기다.
 우선은 눈 앞의 파르페를 먹는데 집중할까-.


 ◇


 눈 깜짝할 사이라고 표현하긴 그렇지만, 꽤 빠른 시간에 그 컸던 걸 전부 먹어치웠다.
 의외로 포만감을 느끼며 창밖을 쳐다보자 눈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 나가면 꽤 추우려나, 역시 오늘 밤에도 눈이 쌓이려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자 어째선지 서빙하는 점원이 다가온다.
 그 손에는 커피잔과 유리잔이 각각 한개씩 올려진 쟁반이 있었다.
 서비스인가, 생각하며 멀뚱히 바라보고 있자 어느새 다가온 점원이 물어본다.

 "아이스커피는 어느쪽으로?"

 이에 라이더가 당연한 듯이 나를 가리키자 점원이 내 앞에 유리잔을, 라이더의 앞에 커피잔을 두고는 돌아간다.

 "뭐냐, 이건? 서비스인가?"

 "바보인가, 로우. 겨울철에 서비스로 아이스커피를 내놓는 가게가 있을리가 없지않나. 두뇌가 뛰어나다고 한게 얼마 안된거 같은데 말이야"

 나의 말에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며 말하는 라이더.
 Fuck, 내가 라이더한테 바보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라이더의 입에서 더 이상한 말이 나오기 전에 커피를 가리키며 말한다.

 "아아, 그러냐. 그럼 이건 대체 뭐냐"

 "그야 물론 아이스커피지. 로우는 차가운걸 좋아하니까 후식의 커피도 차가운게 나을까 싶어서 준비한거다"

 잘했지? 하며 물어오는 라이더.
 그런데 내가 아무리 차가운걸 좋아한다지만, 아니, 틀리다.
 별로 좋아하는건 아니다.
 보통이지, 이 정도는.
 그렇다쳐도 파르페를 먹은 뒤에 아이스커피라니, 정말--

 "얼간이, 차가운 파르페 후에 차가운 커피라니 차가운거에도 정도가 있지"

 "에에-, 틀렸어? 그럼 내꺼랑 바꿀까?"

 "됐어, 어차피 나온거다. 게다가 너도 파르페를 먹은건 같잖냐"

 이렇게까지 나의 취향을 맞춰주는 녀석도 없겠지.
 아니, 뭐, 취향이랄까, 보통이지만.
 그렇게 추운 한겨울에 따뜻한 가게 안에서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거대한 파르페와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완식하고 따뜻한 가게를 뒤로 했다.
 밖은 어느새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지상을 뒤덮어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어두운 하늘에 몇 시인지 싶어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자 시각은 3시 32분, 카페에서 1시간을 넘게 노닥거린 모양이다.
 의외로 시간이 빠르게 지났네, 생각하며 라이더의 옆을 걷는다.

 "오오! 로우, 저거 보러 가자, 저거"

 뭘 발견했는지 갑작스레 달려나가는 라이더.
 미처 조심하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라이더의 발이 미끄러져 뒤로 넘어진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팔이 나가 라이더의 팔을 잡았다.
 분명 텔레비전에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남주가 여주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안던데, 어째서일까, 아무래도 밟고 있는 장소가 나빴는지 자신의 발이 미끄러지는게 느껴지고--
 그 순간 낙하했다.
 퍽.

 "Fuck! 어째서 나까지 넘어지는거냐"

 쪽팔린다.
 지나가는 녀석들이 쳐다보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나는데, 라이더는 뭐가 그리 웃긴지 아하하하, 하고 큰소리로 웃어댄다.

 "시끄러워. 뭐가 그렇게 웃겨. 자, 아니다. 또 넘어질라, 혼자서 일어나"

 넘어진 라이더를 향해 무심코 내민 손을 되돌려 엉덩이에 붙은 눈을 털어낸다.
 이에 불만이었는지 웃어대던 라이더가 입을 연다.

 "에에-, 어째서 되돌리는거냐? 빨리 일으켜줘라, 로우"

 "꼬마냐?! 혼자서 일어나라고"

 "싫다, 그대가 일으켜주지 않으면 안 일어나겠어"

 하아?
 또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이 녀석은.

 "아아, 그러냐? 그럼 앉아있던가. 난 갈테니까"

 그 말에 라이더는 뾰루퉁해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분명 혼자서 걸어가면 일어나서 따라올테지, 하고 걸어나간다.
 칫, 어째서 멈추는거냐, 내 발은.
 약 5미터를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전혀 일어설 기미가 없다.
 아무래도 내가 라이더를 얕본 모양이다.
 Fuck, 귀찮은 여자다.

 "어이, 일어나"

 "흥, 진작에 그럴 것을"

 어쩔 수 없이 돌아가 손을 내밀자 라이더는 기다렸다는 듯 그 손을 잡고 일어난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걸어나가는데,

 "어이, 라이더. 이거 안 놓냐?"

 어째선지 손을 놓지 않는다.

 "안 놓을거다만? 이러는게 넘어질 위험이 없겠지?"

 아니, 뭐, 그건 그렇지만-.
 하아, 어쩔 수 없나, 이러는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내 손을 잡고 걸어나가는 라이더에게 언제나와 같은 대사를 던져준다.

 "Fuck, 좋을대로 해라"

 그 말에 라이더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웃으며 걸어나간다.
 그 얼굴에 하마터면 이쪽도 웃게 될 것 같았지만 참아낸다.
 라이더는 눈치채지 못했겠지, 아마.
 그렇게 손을 잡고 걸어나가며 하는거라곤 구경뿐.
 벌써 적어도 한두시간은 지난거 같은데 돌아다니며 구경만 하고 있기에 먼저 말을 건넨다.

 "라이더, 이왕 나온거 뭐 하고 싶은건 없냐?"

 "오, 웬일이냐, 로우? 먼저 하고 싶은걸 물어보다니"

 ......라이더의 머리 속에서 내가 어떤 인상이길래, 웬일이냐는 소리까지 나오는거지.
 뭐, 딱히 부정하지는 않겠다.
 게다가 사실 걸어다니기만 하는게 지루했기에 물어보았을 뿐이었지만.

 "그래서? 하고 싶은건 있냐?"

 나의 말에 라이더치곤 꽤 길게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웨딩드레스란걸 입고 그대와 결혼이라던가?"

 ........

 ".......What?!"

 너무 놀라서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잖아.
 뭐? 결혼?
 아깐 여행에 따라온다더니 이번엔 결혼이냐.
 이제 대놓고 같이 살자는건가.

 "아니, 바보냐. 그런걸 물어본게 아니고-"

 "아하하하, 뭐, 알고있다. 그저 말해보았을 뿐이다"

 웃는 라이더의 모습이 어째 마음에 걸린다.
 아니, 잠깐, 걸리긴 뭐가 걸려.
 Fuck! 감염된거냐? 머저리 바이러스라도 감염된거냐? 나는!

 "Fuck! 어이, 가자, 라이더!"

 나는 라이더의 손을 잡은채로 끌고 걸어나간다.

 "에엣? 어디에 가는거냐, 로우"

 "시끄러! 까짓거 해주겠단 말이다! 그 결혼이란거!"

 미쳤다.
 역시 소환 도중에 내 머리의 일부분이 타버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라이더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남의 행동따위에 신경쓰지 않았을텐데.
 나는 어째서 이렇게도 미쳐버린걸까.
 라이더의 손을 끌고 걸어나간다.
 그러나 그 순간 분명 방금까지 어두웠던 지상이 어쩐지 밝아졌다.
 태양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사라진 것일까?
 반사적으로 시간을 확인하자 표시된 시간은 5시 36분, 분명 어제였으면 태양은 이미 져버린 시각.
 게다가 내리던 눈도 수도꼭지를 틀어잠근 듯 내리는 것을 멈추었다.
 이에 나는 빛의 근원을 찾아 바라본다.
 바라보는 곳은 한 호텔의 옥상.

 "Fuck, ...뭐야, 저건"

 내가 가리키기도 전에 라이더는 이미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보구인 모양이로구나"

 말도 안된다.
 저런 것이 평범하게 생길 리가 없지.
 보구인건 당연한거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Fuck! 보구에도 정도가 있지, 저건 마치-"

 --저걸 마법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마술의 영역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나와 라이더 두 명이, 아니 그 장소에 있는 모두가 바라본 하늘에 떠있는 것은--

 "아아, 마치 태양과 같구나"

 지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태양이었다.